2023 문예창작공모전 비평 당선작
2023 문예창작공모전 비평 당선작
우수상
용기에는 책임과 풍자가 뒤따른다
<돈 룩 업> 비평문
국어국문학전공
20191093 정원화
Ⅰ. 서론
<돈 룩 업>(2021)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디비아스키 혜성을 발견한 두 천문학자가 사고를 막기 위해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을 풍자를 통해 묘사한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돈 룩 업>의 감독 ‘아담 맥케이’는 사회, 환경, 정치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를 향한 그의 관심과 주목은 곧 그의 작품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빅쇼트>, 기업가이자 제46대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생애를 그린 블랙코미디 전기영화 <바이스>가 그의 주요 작품이다. 위의 작품을 비롯하여, <돈 룩 업> 역시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아담 맥케이의 시선이 담겨있다.
모든 생명체가 멸종할 수도 있는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상황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혜성을 목격한 민디 교수와 천문학자들은 백악관을 찾아간다. 그러나 대통령 올린과 비서실장인 올린의 아들은 혜성의 소식에는 무관심하다. 당장 눈앞에 놓인 자신의 지지율, 자신을 둘러싼 인사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 혜성의 지구 접근 소식을 다룬 뉴스가 이후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는 문제 해결보다 자신의 이익을 어떻게 더 가져갈지, 지지율을 어떻게 높일지만 생각한다. 이처럼, 한 국가의 대통령인 올린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눈앞의 이익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상으로 영화 속에서 표현된다.
언론으로 등장하는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들은 정확한 사실의 전달,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하지 않고 자극적인 유머에만 관심이 있다. SNS를 통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중들은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되려 그들은, 이 모든 일이 음모론에 불과하다며 사실을 감추려 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한 사회를 이루는 다수의 대중은 그저 자극만을 찾아다니며 사실을 외면하는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이처럼, <돈 룩 업>은 자신들의 이익과 현실에만 집중한 채 정작 중요한 문제는 놓치고 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주로 정치인들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을 코미디 형태로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당대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와 그 주변 인물들을 유사하게 등장시켜 직접적인 묘사를 그린 것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돈 룩 업>은 자신의 이익만을 찾아 나서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풍자를 통해 묘사함과 동시에, 환경 오염에 대한 심각성 및 정보 불균형 등 우리 주변 곳곳에 자리 잡은 사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개봉 시기가 코로나 19 사태와 겹치며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가상의 영화 속 ‘혜성’이라는 재난이 현실의 공간 속 ‘코로나 19’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미국의 정부는 코로나 19를 대비하기보단 은폐하고 숨겼으며, 언론들과 SNS 역시 잘못된 소식, 자신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왜곡된 소식만을 편집해 노출했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였으며, 이를 꼬집고, 동시에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와 같은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너무 과한 묘사를 사용하였고, 사실과는 거리가 먼 묘사를 거듭하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Ⅱ. 본론
1. 지나친 풍자 사용
코미디 영화는 어떤 영화 장르보다 대중적이며, 높은 관중 수를 기록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코미디는 현실을 비틀기 위해 슬랩스틱, 패러디, 개그, 농담 등의 표현 요소를 활용한다. 이 중 <돈 룩 업>에서는 ‘풍자’를 이용해 웃음을 유발한다. 정치인과 사업가를 풍자의 대상으로 두어 그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고 부적절하게 묘사한다. 영화는 주인공인 민디 교수와 오글소프 박사의 관점에서만 묘사된다. 그들은 현재 디비아스키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으며, 적절한 조치가 필요함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과 사업가, 언론인들은 그들의 주장을 무시한 채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풍자’를 선택했다. 민디 교수는 혜성의 지구 충돌 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백악관으로 향했지만, 대통령의 긴급회의로 인해 약속이 미루어진다. 이때 대통령의 회의 주제는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의 사생활 문제였다. 어쩌면 국가를 넘어 지구라는 행성의 미래가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회의를 선택한 대통령을 영화는 풍자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회의를 마치고 민디 교수의 주장을 듣고 난 이후에도 대통령은 혜성의 지구 충돌 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과한 표현 방식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올린 대통령은 우유부단하며, 쾌락에 집중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올린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도 계속해서 무리한 판단을 시도한다. 실패 확률이 높음에도 로봇을 활용해 혜성을 파괴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적인 연출을 위한 조치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과할 정도의 풍자가 영화의 흐름 속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까지 한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설명한다.
결국, 지나친 풍자의 사용으로 인해 화면 밖의 관객들은 점차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주인공이 가진 ‘절대적 선’의 이미지는 점차 희미해지게 된다. 영화 초반부의 민디 박사는 지구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의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쾌락이나 이익에 조금씩 흔들리며 결국 주인공까지 풍자를 통해 묘사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풍자하는 지경에 도달하고, 일부에게만 적용해야 할 문제의식의 초점을 모두에게 적용하였다. 결국, 영화를 통해 쏘아 올리고자 했던 화살은 방향을 잃은 채 목적 없는 비행을 이어가게 되었다.
대통령 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더 데일리 립’이라는 뉴스 역시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진다. 혜성의 충돌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하고자 자료를 준비하며, 민디 교수의 인터뷰를 위해 방송국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을 알리려고 하는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미디어 트레이닝’을 강요하며 조롱하고 그들을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한 소재로만 여긴다. 민디 교수에게서 방송적 재미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뉴스는 그를 자극하고 가르쳐 미디어 속 과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게끔 유도한다.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는 민디 교수와 오글소프 박사에게 사적인 농담만을 건넬 뿐, 정작 혜성의 지구 충돌 소식은 전달하지도 않는다.
이에 생방송 중 오글소프 박사는 화를 낸다. 대중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무시당하는 오글소프 박사를 동정하지도, 지지하지도, 그에게 공감하지도 않는다. 이 장면을 언론과 대중들은 편집하고, 공유하며, 그를 조롱하는 모습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역시 너무 지나친 풍자라고 느껴졌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풍자는 오히려 의미와 힘을 잃게 된다. 과한 영화적 설정으로 오히려 주인공들의 주장 역시 신뢰성이 떨어지게 느껴졌다.
2. 일방적인 정치 혐오 조장
영화에서 정치인은 공공의 적으로 묘사한다. 대놓고 비난의 화살을 정치인에게 날릴 수밖에 없는, 잘못은 모두 정치인에게 있는 영화 구성을 가져가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상황 속 모든 잘못이 정치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은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정치인은 권력의 유지와 지지율을 위해, 사업가는 기업의 성장과 돈을 위해, 언론은 시청률, 연예인은 관심, 네티즌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진실을 뒤로한 채, 아무런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그저 비난만을 내뱉는다.
이 사태의 원인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있다. 그 누구도 이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영화에서는 대통령 올린을 악의 선두에 세워두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탓을 하는 척하지만, 결국 그 원인을 정치인에게서 찾는다. 이는 영화의 일방적인 정치 혐오 조장으로 비치게 된다.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건 일종의 자연재해이다. 인간의 활동 범위 밖, 인간의 권한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자연재해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마치 정치인, 대통령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에필로그에서는 감독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대통령, 정치인과 일부 권력층들이 다른 행성으로 탈출을 한다. 그들은 옷 한 벌 입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로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다. 도착한 직후 그들은 외계인들에게 변을 당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감독이 원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는 감독의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예술이지만, <돈 룩 업>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표현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빌려 일어나는 지나친 정치 혐오 조장으로 보인다.
올린 대통령은 성별만 여성일 뿐, 많은 부분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닮아있다. 지구 환경문제에는 무관심하며, 무지하고, 기업들의 이익과 발전에만 주목한다는 점이 닮았다. 그렇기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드러낸 영화로 미국 내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다. 비록 대다수의 관점은 올린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돈 룩 업>은 비단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간 미국을 이끌었던 많은 대통령을 비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3. 대중에 대한 무관심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적 고위층 인물들에 대한 풍자’이고,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피력하지 못하는 하층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하층민을 대표하는 인물은 힘이 없는 민디 교수, 오글소프 박사와 그들의 주변 지인들이다. 그러나, 정작 모든 하층민들은 영화 속에서 아무런 정보나 지식 없이 끌려다닐 뿐, 영화에서는 대중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하다. 상류층 인물에 대한 풍자는 끊임없이 나열하였지만, 정작 그들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하층민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민디 교수의 일행들은 일반 대중이라고 할 수 없다. 정보의 불균형은 대통령, 기업가들이 아닌 민디 교수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하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지만, 그들은 그저 해당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서만 전달하고자 한다. 식당에서 다른 박사들과 혜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 내용을 들은 다른 시민이 민디 박사를 추궁하는 장면이 나온다.
민디 박사는 내용을 알리지 않으려 숨기지만 결국 들키게 되고, 대중들은 이에 크게 분노한다. 민디 교수의 일행도 결론적으로 대중에게 내용을 전부 공개하지도 않았으며, 그들 역시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방법을 생각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화에서는 미국의 상황이 주로 비치며 다른 국가들은 소외된다. 한국, 러시아, 중국 등이 짧게 등장하지만, 영화에서의 표현처럼 오로지 미국만이 이 문제를 지배하려고 한다. 영화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주목을 하지 못해 주제가 퇴색되는 부분이 있다.
영화 <윈드 리버>에서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지역을 영화에 등장시켜 인디언 가족의 고난을 직접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원주민들을 배척하는 모습이 나온다. <윈드 리버>는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디언의 삶을 묘사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돈 룩 업>에서는 다양한 인물들과 주제를 전달하는 과정 속, 본질적인 주제인 ‘일반 대중들’에는 주목하지 못하였다. 민디 교수나 오글소프 박사 역시 지식과 권력을 향유할 수 있는 상류층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고, 결국 영화에서 수많은 ‘보통의’ 대중들은 배제되었다.
4. 해답 없는 결말
블랙코미디의 구조는 ‘해피엔딩’을 구조적 관습으로 사용하는 코미디와는 다르다. 블랙코미디는 인과 관계와는 무관한 제3의 결론으로 도달하거나, 비극으로 종결되거나, 혹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결국 모두를 비판한다. 주인공의 불행은 어떤 과실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비극적 종말은 전 인류의 불행으로 판명된다. <돈 룩 업>에서도 이 블랙코미디의 성질은 그대로 나타난다. 결론으로 도달할수록 지구 종말에 가까워지고, 주인공 민디 박사의 불행은 세상의 부조리함 때문으로 설명된다. 선으로 보이던 민디 박사도 결국 점점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권력들의 꼬드김에 넘어가기도 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간다.
대통령과 사업가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행태를 영화는 비판한다. 일반 대중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뚜렷한 생각과 판단 없이 SNS 속 세상에 갇혀 끊임없이 선동당하고 끌려다니는 모습이 비판적으로 묘사된다. 속도감 있고, 산만하게 비판과 풍자만을 이어온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웃지 못한 채 영화의 끝을 마주한다. 결말은 종말이었으며,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간 일부 상류층은 더욱 수치스럽고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영화에서는 해답을 제공하지 않았다. 현실의 어렵고 복잡한 경제 문제와 국가 지도부의 정치적 결정, 그리고 평범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줄 때 빛났던 감독 아담 맥케이의 재기발랄한 연출력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풍자극에서 다소 방향 잃은 나침반처럼 휘청거린다.
해답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속에서 영화는 몇 가지 제안을 건넨다. 환경에 대한 주인 의식과 비판적 태도를 갖추고 SNS의 지나친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합당하다고 단언하기는 불분명하다. 모든 영화가 해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종말을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해답으로 나아가는 힌트를 조금은 구할 수 있다.
지구의 마지막, 운석의 충돌 장면의 묘사는 비단 인간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지구에 있는 곰, 사슴, 벌과 같은 다양한 구성원을 비춘다. 동물들은 평온하기도, 때로는 어딘가로 도망치기도 한다. 고대 문명에 사는 인디언 부족의 모습도 비춘다. 그들은 운석이 떨어지며 불타는 숲을 향해 춤을 추며 일종의 의식을 한다. 도시의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리기만 한다. 신생아의 모습을 보여 재앙의 순간에도 일어나는 새 생명의 태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 민디 교수의 가족과 일행은 탁자에 앉아 와인을 곁들인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다. 식탁이 흔들리며 공포감에 휩싸인 순간에도 서로를 바라보며 애써 태연한 척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영화는 결국 마지막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응축시킨다. 재앙이 닥칠 땐 도망칠 수 없으며,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다소 끔찍한 결론을 짓는다. 앞서 언급한 ‘해답이 없는 영화’라는 말은 위와 같은 <돈 룩 업>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던 동물, 부자, 인디언,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고 있던 민디 박사는 피할 수 없는 재앙 아래 똑같은 최후를 맞이한다. 다소 허무한 해답을 건네는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의 허구성과는 거리가 있는, 그렇기에 가장 현실적인 결말일지 모른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 <그린랜드>에서는 조금 다른 결말을 제시했다. 2020년 <돈 룩 업>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그린랜드>는 액션 재난 영화로서 혜성 충돌을 48시간 앞둔 사람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돈 룩 업>과 달리 혜성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다. 지구멸망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 특정 지역, 나라에만 위험이 닥친 상황 속, 사람들은 벙커에 들어가기 위해 다툰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의 본성, 질투를 영화에서는 표현했다.
그들은 무사히 다른 벙커에 들어갈 수 있었고, 결국 생존하게 된다. <돈 룩 업>과는 다른 마무리를 선택했다. 이 점이 해답을 주는지에 대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린랜드>에서는 인간들의 다툼을 보여주며 가족의 소중함, 사람들의 화합과 인내가 필요함을 영화의 중심 주제로 전달하며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돈 룩 업>은 다르다. 가족 간의 소중함을 주제로 하기도, 사람들 간의 화합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가족들은 마지막, 멸망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화해를 나눈다. 그마저도 민디 박사의 인간적인 사과와 화해보다는 재앙을 앞둔 순간에서의 연민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든다. 사람들 간의 화합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
영화 전반적으로 계층 간의 불화와 불신을 묘사했으며, 최종 장면에서도 사람들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희생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이렇듯 두 작품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지만, 마지막 장면을 통해 제시한 해답의 성격을 통해 두 영화를 구분할 수 있다. 상호 간의 비교를 통해 <돈 룩 업>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관객들의 앞에 펼쳐놓기만 할 뿐,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어질러놓은 상태로 떠나갔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5. 영상 음악의 활용
<돈 룩 업>의 영화 음악은 평가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지만,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영화 중반부 민디 교수를 중심으로 한 ‘룩 업’파와 정치인, 기업가를 중심으로 한 ‘돈 룩 업’파가 나뉜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종의 유세를 펼친다.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는 의미의 선동을 펼치는데. ‘룩 업’파는 유명 연예인의 힘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의 세력 확대를 위해 일종의 자선 콘서트를 열게 되는데,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커디’가 직접 출연해 'Just Look Up'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 영화의 형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배우와 가수들의 콘서트 장면을 영화 일부로 구성해 현실감 있는 영화 장면을 구성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장면의 등장은 영화의 주제의식 및 방향성과는 무관해 보인다. <돈 룩 업>에서는 영화가 가진 여러 가지 요소들을, 영화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 방식을 활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지금껏 민디 교수가 호소해오던 사회 문제가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경우에는 로맨스와 뮤지컬을 접목했다. 두 주인공의 사랑을 그려내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요소를 첨가해 노래를 관객에게 이해시켰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의 깊은 사랑을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Just Look Up' 음악의 콘서트 장면 삽입은 <돈 룩 업> 속 어떤 효과도 주지 못한다. 영화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룩 업’파는 노래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영화 내부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음악의 삽입은 영화 외부의 관객들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거나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결국, 콘서트 장면의 삽입은 영화에 어우러지지 못했으며, 그 자체로 별도의 장면으로 보았을 때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니는 장면이 되고 말았다.
Ⅲ. 결론
2021년의 문제작, 영화 <돈 룩 업>은 모두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정치인과 기업가부터 시작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도 잘못을 묻고 반성하며 변화하기를 촉구한다. 혜성의 지구 충돌이라는 주제를 통해 환경문제와 사회 문제를 꼬집었다.
현실적인 인물들의 반응은 많은 문제를 유발하기도 했다. 블랙코미디 장르의 본 영화는 ‘풍자’라는 기법을 활용해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임에도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거나, 공식적이며 중대한 업무를 비전문가인 자신의 아들에게 맡기는 형태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성공한 사업가를 묘사할 때도 어딘가 어색하고 말을 어눌하게 묘사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기까지 한다. 비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비롯하여,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주인공 역시도 풍자의 대상이 되어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영화 속 모든 대중도 전부 풍자의 대상이 된다. 지나친 풍자의 사용은 결국 비판을 뛰어넘어 ‘조롱’의 모습으로까지 비친다. 특정 대상, 특정 집단, 특정 사건을 향한 감독의 비판은 비판의 선을 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비판의 주장은 제 힘을 잃고 말았다. 정치인에 대한 날 선 비판만을 영화에서는 제기하고 있다. 그 속에서 정치인은 아무런 가치조차 지니지 못하는, 대중의 반대편에 놓인 ‘절대적 악’의 의미로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정치인을 주인공과 반대되는 절대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일종의 정치 혐오를 조장한다고 느껴졌다.
앞서도 언급했듯, 영화 속 대중들도 비난의 화살을 피하진 못한다. 환경 오염의 주범이며, 판단력을 상실한 채 선동을 당하거나 혹은 하는 사람들로 묘사한다. 더불어, 영화에서는 대중들의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지 못하였다. 정보를 얻지 못해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거나 의견조차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에서 배제되었다. 혜성을 피하지 못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상황 속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했을지 의문이 남는다. 대중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워버린 영화는 우리에게 그저 그들의 모습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던져놓은 채 멀어지고 말았다.
영화는 수없이 등장하는 집단들에 대한 날이 선 비판을 하면서도 정작 아무런 해답은 제공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해야 하고, 미디어는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야 하며, 대중들은 서로를 선동하거나 당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만을 공유해야 한다는 우화적인 결론만이 남는다. 결국, 펼쳐놓은 상황과 메시지를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영화는 마무리되었다는 인상을 진하게 남긴다. 강한 어조로 비판만을 남발하다 힘없이 마무리되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영화의 다양한 구성요소 역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많은 피로를 남긴다. 예시로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커디’의 'Just Look Up'이라는 노래의 콘서트 장면을 넣었는데, 이는 영화의 방향과는 무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영화의 흐름이 끊길뿐더러,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답을 제공하는 중심적 역할은 수행하지 못한다.
영화 <돈 룩 업>은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 저마다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또 지구 종말을 맞이했을 때, 혹은 맞이할 순간까지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도 남긴다.
영화 종반부, 아무런 일이 해결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할 처지에 처한 민디 박사는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혜성이 존재하는 걸 아는 이유는 우리가 봤기 때문이에요. 에베레스트산만 한 혜성이 지구로 날아오는 게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끼리 그런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고 처 앉았으면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죠? 어떻게 고치죠?”
감독이 대중, 정치인, 사업가 등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압축시킨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십억의 인간들은 결국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기 바쁘고, 내 이익을 챙기는 게 최선이라 믿는다. 나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 속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영화는 여전히 풀어내지 못한, 어쩌면 영원히 풀어내지 못할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홀연히 멀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