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 아라
1. 일정
11:00 충청남도부여교육지원청부여도서관 건물 앞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 259)
ㄴ주차 가능하고 근처 공영주차장도 있음
ㄴ카카오맵 후기 중 이 도서관이 부여의 인구감소의 원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보고 둘러보고 싶어짐
12:00 점심 삼정식당 : 사골 냉면집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 292 1층)
13:00 식당 맞은편 동네 연립 투어 (삼진연립, 쌍북연립, 국제연립 그리고 한국통신 사원주택이 빈집으로 남아있음, 백제연립, 장미연립)
14:30 카페에서 한숨 돌리고
15:30 쌍북주공아파트 (1991년 준공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328번길 15) 왕궁아파트 (2000년 준공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352번길 11)
16:30 동남주공아파트 1986년 준공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20)
ㄴ3층, 기와지붕 특징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
17:00 집으로~
2. 주제나 질문
호스트 이름과 연결해보려 탐방 타이틀 <부여아라>로 지어봄.
소도시 임장은 어떤 관점으로 할 수 있을까?
3. 만난 사람
부동산 중개인 (부여 왕궁아파트 빈집 소개)
벌써 세번째 부여 방문이라 익숙한 길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는 길이 많아지는 것은 마치 읽은 책이 많아지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번 일정의 호스트를 맡아 사전 조사를 하다가 맵에서 장소 후기를 보고 궁금한 부여도서관을 첫 장소로 정했다 굉장히 안 좋은 후기였는데 가보니 보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 건물 입구부터 책 읽는 공간까지 접근성이 불편하고 책은 많지만 읽고 싶은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옛 건물의 독특한 정취와 등나무 휴게 공원이 있는 너른 바깥 공간은 참 멋졌는데 아쉽다. 규암면에 새로운 부여 도서관이 생긴다는데 그 때 이 도서관은 어찌될까.
대도시 아파트의 임장은 지대 값을 크게 보겠지만 소도시에서는 가격이 크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연립 주택 내부 계단, 옥상 등 건물 곳곳을 삶의 공간으로 공유하며 쓰는 분들의 풍경에 더 눈이 갔다. 문화재 발굴지로 지정된 땅에는 빈 빌라들도 있었는데 이 중 한국통신 사원아파트 속 가구 등 살았던 흔적을 가득 남긴 채 비어있었다. 왜 남기고 갔는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아무쪼록 이곳에서 잘 살고 나갔기를 자연스레 빌게 되었다.
실제로 부여에서 살아보고 싶은 집으로 생각했던 아파트 내부도 구경해보고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동남주공 단지도 돌아봤다. 아파트 임장이라기 보다 점점 공원 산책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아파트를 둘러싼 큰 나무를 더 보게 되었다. 길냥이들이나 새들의 집이 되어주니 숲 속에 사는 느낌도 날 것 같았다.
부여도서관: 단일 시설이 한 지역의 인구를 감소시키는 원인이라는 건 다소 비약이지만 직접 가보니 왜 그러한 말이 나왔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시설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 창고에 가깝다. 서가를 제외한 열람 공간이 심히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하다. 굳이 일반 서가 공간을 두고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한 청소년기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보면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책상/의자가 있는 영역), 즉 도서관을 방문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의 크기보다 이 시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무 공간이 더 컸다. 넓은 뒷마당 공간이 얼마간 매력적이기도 해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이긴 했으나 일단은 새로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니 이 건물은 이제 어떻게 쓰일지가 궁금하다.
연립주택 및 빈집: 정비되었는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로 환경이 쾌적하다고 느껴졌다. 학교로의 접근성이 좋지만 학원 등의 교육 인프라나 방과후 혹은 가족 문화생활 공간의 다양성이 역력히 부족해보였다. 부여만의 문제보다는 중소도시 문제의 전형과도 같다. 빈집들에서는 아이들이 살았던 흔적이 꽤나 많이 보였는데, 이들의 문화 환경이 신경쓰였다.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멀지 않은 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는 것이 보였는데, 그 집들에서 산다고 아이들의 삶이 이 연립주택에서의 삶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느껴졌다 (물론 신축 아파트들에 어떤 부대시설이 들어오는지에 따라 얼마간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부여에는 현재 대학이 한국 전통문화대학교 단 1개만 있고, 주변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공주대학교나 건양대학교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2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인구 유출을 줄일 교육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전통역사문화재 외에는 두드러지는 산업이 없어(이 마저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생각이 든다) 새로운 기능을 유치하거나 타 지역과 자원을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왕궁아파트, 동남주공아파트: 두 단지 모두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는 것은 동일했으나 조경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 왕궁아파트는 오와 열을 맞춘 직방형 건물들과 그 사이가 아스팔트로 덮인 주차 공간으로 구성된, 매우 정리가 되어 있으나 단조롭고 야외 공간을 생활 공간으로 누릴 이유가 많이 없는 타입이었다. 그에 비해 주공아파트는 건물의 모양은 비일관적이고 오와 열을 맞추지 않은데다가 동선이 각 건물 간 여백 공간 사이를 유기적으로 가로 지르고 있어 마치 공원에서 그러하듯 산책한다는 감각이 들었다. 건물 사이 공간이 빼곡히 나무와 초목으로 채워져 있었고, 조악하긴 했으나 사람들이 쉬거나 둘러앉을 수 있는 야외 공간도 존재했다. 주공아파트에서 아라님이 "아파트 공원 같다"는 말을 하셨는데, 크게 공감했다. 이런 느낌이 정확히 의도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초목이 관리되지 않고 수목의 연령이 아파트와 함께 높아진 것이 영향이 컸을 듯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아파트의 높이가 5층짜리로 낮았고 나무들의 스케일감이 아파트와 비슷하거나 더 컸기 때문에 나무 공원 사이에 아파트가 묻혀 있는 감각이 들었을 것이다.
부여도서관 : 도서관이지만 책 대여점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펼쳐 볼 수 있는 공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책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성인 4명이 앉아 계속 그 자리를 이용한다면 다른 사람은 책만 빌려서 휴게실을 이용하거나 서서 보거나 바닥에 앉아야하거나 집으로 가야한다. 어린이 도서의 경우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폐기해야할 책이 한곳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도서관 건물은 구. 교육청청사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건물 구조상 1층 경우 천장이 낮은 구간도 있고, 입구 계단은 한 칸의 폭이 좁고 가파르다. 휠체어 이동구간이 있지만 문 앞에 공간이 너무 좁아서 출입이 가능한지 알수 없었다. 게다가 삼락회라는단체가 입주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으로 쓰기에도 좁은 곳에 퇴직교원 단체가 입주해서 쓰고 있는 특이한 상황이다. 또, 일요일에 휴무, 점심시간이 따로 있다는 지점에서 부여도서관의 현 상황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이쯤되니 도서관이용 을 위한 접근성이나 거주민의 수요는 어느 정도인지, 그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운영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도서관 주변은 현재 사비왕궁터 발굴과 정비사업으로 어수선하며, 도서관부지는 부여군청에 매각되어 곧 이전할 예정이다.
인근 연립주택과 한국통신 사원아파트 : 부여도서관 인근에 위치한 연립주택지 중 일부는 발굴지에 포함되어 있다. 발굴조사를 위해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지만 명확히 어디가 어딘인지 알 수 없었다. 연립주택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이 때문에 이사를 한것으로 보인다. 입구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취득한 국유/군유재산입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에 위치한 풍납토성과 유사한 사례다. 풍납토성인줄 모르고 집 짓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토성구간의 일부였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만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문화재발굴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거주지를 의도치 않게 없애야 한다는 지점이다. 당연히 보상을 해줄테지만, 이사가는 걸 원하지 않는 개인의 욕구 혹은 상황이, 문화재 발굴로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있다기 보다 그냥, 한번 이 부분을 생각해보면 어떤 의견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1990년~2000년대 지어진 아파트 (왕궁아파트, 동남주공아파트) :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답사를 많이 했었어서 그런지 큰 감응은 없었다. 다만 집값이 저렴하고, (아니 저렴한것이 아니라 이게 정상일지도), 동남주공아파트 경우 연탄난방과 굴뚝, 더스트슈트의 흔적이 아주 잘 남아 있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안쪽에 연탄이 있어서 이것은 굴뚝이 아니라 연탄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또 지하주차장을 만들어야할만큼 차가 많지도 않고 마주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왕궁아파트의 일부 동은 필로티 구조로 1층 한쪽을 비우고 평상과 의자를 설치해두었다. 바로 옆에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몸은 평상으로 향했다.
줄탁동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새끼와 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 라는 말이 맴돌았다. 여러 정부와 지자체 사업들로 지역을 활성화시키려 할때 지역 내부에서의 힘이 없다면 결국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3번째 본 부여는 무기력이었다. 대구 권상구 같은 인물이 부여에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