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m Jieun
| 엄지은 

6


footdraggers 

2021-2024 

paint on mdf plywood

120x120cm





기워 만든 세계


2440


나무벽으로만 된 전시공간을 구해놓고, 거꾸로 하얀 벽을 치면 욕심일까? 2021년 온수공간에서 개인전 <워킹 메들리>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전시 공간은 온통 나무 벽이었는데 흰 방이 하나 필요해 방 하나를 MDF로 두르고 하얗게 칠했다. 3주간의 전시가 끝난 후 철수가 시작되었다. “얘네는 어디로 보낼까?” 벽에서 뜯어낸 하얀 가벽들을 어디에 버릴 거냐는 물음이었다. 당장의 선택이 필요한 큰 폐기물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민끝에 결국 나는 타카가 마구 박힌 판재들을 작업실로 옮기게 되었다. 

작업실은 이화사거리에 있는 하얀 건물 4층에 있었다. 집과 가까운 위치 덕분에 2년을 보냈던 공동 작업실이었다. 건물의 계단은 1층에서 2층으로 가는 계단만 조금 높은 편이었고 그 이후는 평균적인 높이의 계단이었다. 철수날 3명이서 판재들을 하나둘씩 올렸는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지막 반층을 마저 올리기가 힘들었다. 그 반 층이 계단 높이가 제일 낮았는데도 말이다. 아마 판재가 작업실에 들어설 공간이 없어서 지레 겁을 먹었던 듯하다. 빠르게 포기하고 판재들은 일단 건물의 3층과 4층 사이의 반 층에 적재해두었다. 박스 테이프를 길게 찢어 튀어나온 타카들에 임시로 붙여두었다. 며칠 뒤 아래 층 입주인의 전화를 받고서야 판들을 작업실 내부로 하나씩 옮겼다.

작업실의 높이는 다행히 2.5m가 조금 안되었다. 3개의 구역으로 나뉜 이화동 작업실은 나를 포함해 4명의 작가가 사용하고 있었고, 내 자리 위에는 천장의 보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보에 높이 2.44m의 판재들을 세로로 걸쳐두었다. 작업실에 앉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짧은 망치의 노루발로 타카를 뽑았다. 스스로 이유는 딱히 묻지 않았다. 

작업실에 세워둔 하얀 벽을 원형으로 자르기로 했다.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사물이 중국식 회전 테이블이었기도 하고, 막연히 원이라는 도형과 신체의 관계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업실에 놓인 책상만 제외하고 재료들과 잡동사니를 모두 한쪽에 쌓고, 판재를 얹을 두 개의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다. 두 개의 의자 위에 판재를 하나 얹었더니 내가 쓰는 공간이 꽉 찼다. 나는 그제서야 작업 공간의 크기가 1220, 2440의 MDF판 하나 정도라는 걸 알았다. 판 하나를 반으로 잘라 1220짜리 정사각형으로 만들고, 모서리를 잘라 원판 두 장을 만들었다.



변신

  

2022년에는 하반기 내내 한 그림에 대해 생각했다. 그 해 여름에 부산해양박물관에서 마주쳤던 <파상군선도>이다.  신선무리가 파도를 건너가는 장면을 그린 병풍 그림이었다. 신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거친 파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중 장과로라는 인물은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고 있었다. 하루에 만 리를 갈 수 있는 이 당나귀는 쉴 때는 얇은 종이처럼 접어 보관하고, 필요할 때 종이에 물을 뿜으면 다시 당나귀가 되었다. 장과로는 필요할 때마다 모습을 바꿀 수 있어서 시체가 되었다가 술그릇이 될 수도 있었다. 장과로의 도술은 긴 시간동안 사회의, 사람들의 거울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장과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다.


擧出多少人 (거출다소인) 많은 사람을 들어보아도

無如這老漢 (무여저노한) 이 늙은이 같은 이 없네.

不是倒騎驢 (불시도기려) 나귀를 거꾸로 탄 게 아니라

萬事回頭看 (만사회두간) 모든 일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네.


겨울에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이뤄진 공연 <환등회>에 장과로를 소환했다. 작업실에 있던 원판 두 장을 포개어 붙이고 바퀴를 달아 수레를 만들었다. 수레엔 프로젝터를 싣고 박쥐 떼의 소리와 함께 극장을 누볐다. 수레는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무대 뒤 편에서 극장무대감독님의 보살핌을 받았고, 무대 조감독님의 사랑을 받아 ‘깨비’라는 이름도 생겼다. 장과로는 ‘깨비’가 되어 프로덕션의 공식적인 무대소품이 되었다.

수레에는 구멍을 뚫어 긴 나뭇가지로 수레를 끌 수 있게 했다. 얇은 나뭇가지와 무거운 수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나뭇가지가 너무 휘어져도 부러질까 위험하고 너무 힘을 주지 않으면 수레가 밀리지 않았다. 마치 강 위에서 노를 젓 듯이 힘의 균형을 잡아야했다. 어떤 한 방향으로 힘이 기울어지게 되면 무게 때문에 몸보다 수레가 먼저 움직이고 만다. 그러면 이내 나뭇가지가 수레에 걸치지 못하고 밑으로 빠져서 무대 바닥을 긁게 된다. 몸은 나뭇가지의 힘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수레의 움직임을 인지하며 천천히 움직여야했다. 

블랙박스의 극장은 프로젝터의 빛을 통해 이것도 될 수 있었고 저것도 될 수 있었다. 커튼 사이로 동이 트고, 벽에서는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었다. 박쥐 떼는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며 짹짹였으며, 극장의 기둥은 커다란 당나귀 엉덩이로 변했다. 2층 객석엔 불이 나고 벼락이 쳤으며 늑대가 뛰어다녔다. 1층 출입문이 있는 통로에서 큰 뭉게구름이 등장했으며, 천장에서는 하얀 뱀과 하얀 종이가 와르르 쏟아졌다. 빛은 누구보다 가볍게 모습을 바꾸며 극장을 조형했고 수레는 그 누구보다 무겁고 아슬아슬하게 바닥을 기어다녔다. 동그랗고 하얀 수레 ‘깨비’는 퍼포머로서 관객의 시야 뒤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각자의 방법으로 균형을 잡으며 파도를 건너는 신선들처럼, 거꾸로 가는 세상에 거울이 되어 경고를 했던 장과로처럼, 이 사물은 물질과 작업 사이 그 어딘가에서 모습을 바꾸며 가볍고도 아슬아슬하게 노를 저으며 시간을 건너가고 있다. 

해를 지나 ‘깨비’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로 옮겨져 시시하게도 책상 상판이 되었다. 상판은 한동안 고정되지 못한 채 덜컹거리며 누워있었다. 꼭 맞는 다리를 찾지 못해 여기에도 올려졌다가 저기에도 올려졌다가 했다. 그러다 퍼포먼스 <배꼽점>을 준비하며 커다란 원형 회전테이블이 객석이자 무대가 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원판은 간이 무대가 되었다. 



원을 그리는 방법

  

레지던시 퇴소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고민했던 실질적인 문제는 결국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과 함께 갈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매년 하는 고민이지만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서바이벌 마냥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라며 선언한다. 물건과 사물을 구분하고, 소품과 작업을 구분한다. 다음 공간을 염두하고 어떻게 옮길지, 어떻게 쌓을 지 고민한다. 

스튜디오에서 방금전까지 테이블 상판이었던 원판을 뒤집어보니 사물의 시간이 드러났다. 밑면의 흔적을 바라보는 순간 사물로부터 나라는 사람을 분리해낼 수 있었다. 전시장 가벽을 다 뜯어 작업실로 가져오기로 한 결정부터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결정이었다. 무언가 내재되어있는 것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연민이라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당장에 언어화가 안되는 이상한 믿음일지라도. 먼지가 금새 달라붙는 정전기 청소포처럼 물리적 세계는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 이것 저것이 엉겨붙어 굴러가는 세계이다.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울 때 여러 개의 직선을 겹쳐 원을 그리던 경험이 생각났다. 십자형태를 그리고 위아래, 양 옆 지름을 동일하게 표시한 다음 모서리를 둥글리는 방법인데, 네 개의 모서리를 똑같이 둥글게 그려내는게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여러번 그려도 한쪽이 툭 튀어나와 감자같이 되거나, 너무 얄상해져서 계란처럼 되기도 했다. 선생님이 모형자나 컴퍼스를 쓰지 않고 원을 그리는 훈련을 시켰던 것은 아마도 몸과 연필만으로 정확한 비례로 사물의 형태를 그리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림 실력이 늘어갈수록 언제부터인가 ‘원처럼 보이게’ 그려낼 수있었는데, 곡선을 쓰지 않고 거의 직선으로만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아마 균일한 곡선을 손으로 그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매끄러워 보이는 세계는 사실 분주히 기워 만든 세계라는 것을 익히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footdraggers>는 버려지기 직전의 후보가 되었다가 작품이 되었다. 자꾸만 질척거리고 끊임없이 시간을 끌다가 이름도 생겼다. 원을 그리는 방법, 작업이 되는 방법은 누구도 특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물질의 소용은 어디까지인지 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물질은 눈앞에 있었기에 변할 수 있었다.



작가 소개


엄지은은 카메라를 든 신체를 매개로 비디오와 퍼포먼스, 그리고 리서치 작업을 통해 감각으로서의 서사를 탐구한다.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세계의 리듬과 공명하는 순간에 주목하며, 이때 발생하는 개인의 감각이 어떻게 공동의 감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전문사에서 인터미디어를 전공했다. 개인전 《LIFE VEST UNDER YOUR SEATS》(상업화랑, 서울, 2017), 《워킹 메들리》(온수공간, 서울, 2021)와 퍼포먼스 《배꼽점》(신촌극장, 서울, 2023)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으며, YPC스페이스, 인천아트플랫폼, 도쿄 사이언스 뮤지엄, SeMA창고, 두산갤러리, 아웃사이트, 아마도예술공간, 민주인권기념관, 아트스페이스 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콜렉티브 '좋은이웃사람'과 '예술근육강화훈련'으로 활동하였다. 


Jieun Uhm works primarily with video, performance, and research, which she employs to explore narrative as a sensory experience, mediated through the body holding a camera. Her focus lies in recognizing the moments when individual subjective experiences resonate with the rhythms of the world. Contemplating how these personal perceptions, formed at specific instances, can evolve into shared and universal perceptions. She received a BFA and an MFA in Intermedia from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She has held a few solo projects including LIFE VEST UNDER YOUR SEATS (Sahng-Up Gallery, 2017) and Walking Medley (Onsu-gonggan, 2021), and performance Navel Point (Sinchon Theatre, 2023). She presented performance in MMCA Cheongju and Theater QUAD and participated in group exhibitions held in YPC space, Incheon Art Platform, Tokyo Sicence Museum, SeMa Storage, Doosan Gallery, Out_Sight, Amado Art Space, Democracy and Human Rights Memorial Hall, Art Space Pool. She was engaged in collective 'The Good Neighbor' and 'Practice of YSGY (Yaesulgeuny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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