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Sungwoo
| 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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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painting in 2020 / Installed in 2024


Oil on canvas 


200x230cm




안팎의 그림들


몇몇 특정한 시기에 나는 나에게는 꽤 많게 느껴지는 수의 그림들을 폐기했었다. 보통 프레임에 붙은 천을 뜯어내어 버리고, 남은 프레임에는 새 천을 씌워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버려진 그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불에 타 사라지거나 불에 타는 신세는 가까스로 면했다 해도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어딘가 어둡고 축축한 곳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으스스 한 기분이 든다. 어느 강연에선가 강연자가 작가는 초창기의 작업들을 설령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을 때, 나는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었지만 이내 '니가 뭘알아?' 하는 반감이 아랫배에서 울컥 올라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당시의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그림을 뜯어내는 이유가 단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면, 그런 그림이 뭐 한둘이었을까. 어쨌든 와중에 그나마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추려내야 했다. 새 캔버스를 마련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작업보다는 아직 시작하지 못한 그림이 늘 더 시급했다. 그렸던 그림 위에 덧 그리거나 그림을 뜯어내고 다시 새로운 그림을 시작하는 것은 회화 작가들에게는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어떤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이야기할 추억거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해도, 어쨌든 나에게 그것은 끝끝내 유쾌한 경험들이 되지는 못했다.


그 일은 마치 실패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행여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미련들 때문에 그 일은 며칠에 걸쳐 이루어졌다. 더 나은 실패, 덜 나은 실패, 전적인 실패, 모호한 실패,,, 그러다 보면 자연히 저 반대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살아남은 작업들로 시선이 향했다. 내가 무엇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고, 안과 밖을 가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마저도 속시원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일은 가능한한  빨리 끝나야 할 일이었고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150호 이상의 큰 캔버스들을 뜯어내는 일은 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각별했던 만큼 유독 마음이 편치 않다. 나의 그림들은 표면 안료의 두께 때문에 일단 한번 프레임에서 뜯어내면 그림이 상하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들을 바로 버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의 그런 결정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나의 선구안이 탁월했기 때문인지 그 작업들이 전시를 통해 다시 부름받는 일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림들은 한동안 나의 작업실 한편이나 창고에 보관된다. 시간이 지나 내가 그것에 남겨둔 일말의 미련인지 가능성인지 모를 빛마저 희미해져, 그것이 무거운 짐 이상의 무엇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버려진 다른 그림들을 따라 정말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밖이지만, 정말 밖은 아닌, 이곳에 있어야 한다.


안에 있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으로, 밖의 시간을 기다리며 혹은 지연시키며, 밖이라고도, 밖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곳에 놓여져 있는 그림들.

《그 “밖”의 것들》이라는 전시 기획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중 한 그림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전시장 안에 놓여야 할까. 이전의 온전한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면 차라리 다가오는 밖의 시간을 조금 더 미루는 방식은 어떨까. 아주 조금의 미련과 조금의 가능성을 더 보태고 지금보다 더 나은 옷을 입혀서. 마침 보관을 위해 지인에게 얻어온 옷도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그 그림은 파란 하늘을 그린 그림이었네.




작가 소개 



한성우(b.1987)는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이나 장소를 주제로 작업을 한다. 그러나 대상 그 자체를 재현하는 대신, 인적이 사라진 공간이나 오래된 벽과 바닥, 혹은 신체에 남겨진 흔적 등 전경에 가려진 이면에 더 관심을 둔다. 작가는 기존의 의미나 용도가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주관적 감상을 투영해 눈앞의 풍경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재현하고자 한다. 2020년부터는 유행이 지나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꽃무늬 벽지나 고정되지 않는 시간으로서의 환절기를 주제로 점차 추상화된 화면을 구축해왔다. 근래에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작가 특유의 마티에르(matière)를 보다 얕게 얹거나, 같은 대상을 두고 구상에서 추상까지 여러 캔버스에 나누어 작업해보는 등 재현의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다.

에이라운지, 서울(2023, 2017); 송은아트큐브, 서울(2020); Space BM, 서울(2015); 윌링앤딜링, 서울(2013)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Books and Things», Helen J Gallery, 로스앤젤레스(2023, 2022); «Summer Love», 송은, 서울(2022); «몸짓을 따라가며, 주변을 배회하고, 중심에 다가서려는», 학고재 청담, 서울(2020); «Dramatic Scenes», 스페이스K, 과천(2017) 등 국내외의 전시 공간에서 열리는 유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3년에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Han Sungwoo (b.1987) works with everyday sceneries and places as his main subjects. Instead of representing the subjects themselves, Han puts more focus on the hidden aspects such as abandoned spaces, old walls and floors, or traces left on the body; the artist tries to recreate his viewpoint towards the world by projecting subjective impressions through places where they had lost their original intention or purpose. Then he deconstructs and reassembles these landscapes. From 2020, Han has been gradually constructing abstract works with objects such as out-of-date flower-patterned wallpapers or passing time in between seasons. More recently, Han has diversified his way of representation by utilizing various media to make his unique matière extra thinner or by working with the same object with different approaches from conceptual to abstract on multiple canvases.

Han has held solo exhibitions at various venues such as A-Lounge, Seoul (2023, 2017); SongEun ArtCube, Seoul (2020); Willing N Dealing, Seoul (2013), and has participated in numbers of distinguished exhibitions in and out of Korea, such as Books and Things, Helen J Gallery, Los Angeles (2023, 2022); Summer Love, SongEun, Seoul (2022); Tracing, Detouring, Piercing, Hakgojae Chungdam, Seoul (2020); and Dramatic Scenes, Space K, Gwacheon (2017). Han was part of the residency in Naji Residency, Seoul Museum of Art, Seoul in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