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Torso
2011
color and ink on hemp cloth
66×41cm
4-2
Gillette
2011
color and ink on hemp cloth
66×41cm
팔과 다리가 잘린
13년 전, 저는 이름 모를 병 속에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치료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치유는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뇌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에요. 이렇게 제 몸과 마음이 어긋나 버렸고, 판단과 행동도 뒤엉켰어요. 그러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 파열이 생겼습니다.
왜 아프기 전에는 내 안에 장기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할까요? 심장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만큼 그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없습니다. Torso(2011)는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의 미술사에서 여성성이란 제한되고 닫힌 공간이며, 낯설고 이질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여성과 관련된 공간은 집이나 혹은 정원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공간은 신체적인 자각으로 발견되고, 각 장기가 산수(山水)라는 열린 공간으로 표현됩니다. 병의 경험은 일종의 여행입니다. 저는 질병이 주는 감정적 경험을 지리적으로 치환해, 닿기 힘든 내면의 영토를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은 기암괴석이 솟아 있으며, 자욱이 안개가 핀 이상한 공간입니다. 이는 상상력과 개인적 경험에 중심을 둔 내면 분석을 통해, 제 공간이 확장된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새로운 공간이 망각 속에 묻혀있던 욕망을 끌어내는 것을 실감합니다. 땅을 걷는 것이 어떻게 마음의 풍경을 거니는 것인지 확인합니다.
그림 속 여자는 한 손에 붓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업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했기에 아프다고 붓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느슨하게 회복의 의지를 붙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림을 그린 후, 이것이 너무 직접적이고 실패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그림을 잘랐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질병의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 때문에 삶도 작업도 완벽할 수 없고, 우리가 완성하려는 것은 미완으로 남게 됩니다. 모든 작업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 잘린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지의 걸작
발자크의 소설 『미지의 걸작』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여기서 젊은 화가 푸생은 우연히 프렌호퍼라는 노화가를 만납니다. 그는 아직 완전무결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기에 완성하지 못한 '알려지지 않은 걸작'에 대해 들려줍니다. 푸생은 자기 연인 질레트를 프렌호퍼의 모델로 보내, 그림의 완성을 기다립니다. 등장인물과 독자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결과물을 보고 싶어 애탑니다. 하지만 그의 캔버스엔 뿌연 안개와 질레트의 발만 그려져 있었죠. 이 소설은 자크 리베트 감독에 의해 영화 <누드모델(Le belle Noiseuse)>(1991)로 제작되었어요. 영화 속 화가는 완성된 그림을 벽 속에 매장해, 누구도 볼 수 없게 합니다.
저는 걸작을 그리려는 프렌호퍼와 그에게서 뭔가를 배우려는 패기의 푸생, 그리고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 질레트까지,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영감으로 삼아 Gillette(2011)를 그렸어요. 저 자신을 모델로 삼았고, 붓과 먹 얼룩을 그려 넣었습니다. 또, 부서진 몸을 치유한다는 의미로 화폭에 바느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나면, 왜 이렇게 부끄럽고 후회가 남는 걸까요? 그 때문에 그림은 완성될 수 없고, 미지의 영역에 자리하게 됩니다. 저는 이 그림에 너무 많은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그림을 잘랐고 바느질했던 실도 빼냈습니다. 여기저기 수습되지 않은 자국이 남았지만, 그래도 나름 정리했습니다.
고통의 수기
이전엔 내 몸의 주인이 ‘나’라는 것, 내 몸을 탐구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 결과, 몸과 마음, 몸과 삶, 몸과 자연, 몸과 사회가 모두 어긋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두 폭의 그림은 제 나름의 '질병 수기'입니다. 보통의 질병 수기에서 기대하는 병의 증상과 치료법, 치료 과정에서의 어려움, 회복과 일상 복귀의 내용은 없지만, 그에 따른 상실과 고통을 인정하면서 나를 재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병의 독특한 특성은 그것에서 벗어나 회복의 개운함을 느끼고 나면, 그 고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복기에 있는 이는 과거 질병의 무게와 나아갈 미래 사이에 걸쳐 있기 마련입니다. 병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병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병 속에서만 그려질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것이 제 작업의 결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거겠죠. 또, 여성의 몸을 소재로 삼았기에 전시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수기 덕에, 저는 가끔 결핍을 들킬까 전전긍긍했던 그때로 돌아가 나를 바라봅니다.
작가 소개
김보민은 회화와 드로잉, 벽화 등의 방식으로 개인적 경험을 징후들과 연결해 작업한다. 산수화의 맥락 안에서 역사, 전통, 현대, 마음을 풍경으로 은유한다. 지필묵 매체 변주를 통해 그 가능성을 실험하며, 찾지 못한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여행하고 있다. 개인전《그림자의 강》(김희수아트센터, 서울, 2023), 《섬》(산수문화, 서울, 2021), 《나는 멀리 있었다》(PS 사루비아, 서울, 2019), 《먼 목소리》(포스코미술관, 서울, 2016)를 비롯해, 《시간의 두 증명》(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우란문화재단, 서울, 2020), 《One Shiny Day》(국립현대미술관, 뉴델리, 인도, 2019), 《정글의 소금》(베트남여성미술관, 하노이, 베트남, 2018), 《Permeated Perspective》(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2013) 등 국내외 여러 전시에 참여했다. 수림미술상(2023)과 뉴욕 폴록-크라즈너 재단 그랜트(2018), 중앙미술대전 우수상(2005) 수상자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서울, 2023), 인천아트플랫폼(인천,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고양, 2020), 그리고 ARNA레지던시(룬드, 스웨덴, 2018)에 참여했다.
Kim BoMin produces works by connecting personal experiences with diverse signals through such forms as painting, drawing and wall painting. Kim depicts the cultural landscape where traditions, modernity, mountains and rivers, landscape and cities are mixed up within the context of landscape paintings. Kim tests the potential and boundaries of traditional media by experimenting with materials and painting variations on a theme, building on Korean traditional painting techniques. Kim has held a solo exhibition titled River of Shadows (KimHeeSoo Art Center, Seoul, Korea, 2023), The Isle (Sansumunhwa, Seoul, Korea, 2021), I Was Far Away (PS SARUBIA, Seoul, Korea, 2019), Distant Voices (POSCO Art Museum, Seoul, Korea, 2016) while participating in many group exhibitions at home and abroad including Time States (SNU Museum of Art, Seoul, Korea, 2023), One Shiny Day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New Delhi, India, 2019), Salt of Jungle (Vietnamese Women's Museum, Hanoi, VIetnam, 2018), Permeated Perspective (Doosan Gallery, New York, USA, 2013). Kim is a winner of Soorim Art Prize (Soorim Cultural Foundation, Seoul, Korea, 2023),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Grant (New York, USA, 2018) and Superior Prize of the Joongang Fine Arts Prize (Newspaper Joongang, Seoul, Korea, 2005). Kim participated in a number of residency programs, including SeMA Nanji Residency (Seoul, Korea, 2023), IAP Residency (Incheon, Korea, 2021), MMCA Residency (Goyang, Korea, 2020) and ARNA Residency (Lund, Swede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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