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Sooji
|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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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투 더 아트: 2024 봄

Goodbye to the art: spring in 2024

2024

mixed media 

size variable






버리는 중.



1.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것

2. 지니고 있고 싶은 것

3. 지니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는 것

4. 버려도 되는 것

5. 버려야만 하는 것

 

어딘가 ‘정착한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버릴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줄어드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작업실을 옮길 때면 금새 불어나 있는 짐들의 순위를 위와 같이 매기게 된다. 다음 장소의 상황 등에 따라 결국 3, 4, 5번과 그리고 가끔은 2번도 버리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계속되는 유랑생활 속에서 알게 된다. 절대 폐기 불가라고 생각했던 1번에 속해 있는 <글자 쓰는 기계>(2016) 와 <종이 만드는 기계>(2018) 또한 ‘굿 바이 투 더 아트(Goodbye to the art)’ 프로젝트로 작년 네덜란드에서 마지막 전시와 함께 폐기하게 되었다. 전시장에서 매일 조금씩 해체된 두 도구들은 나무로 돌아갔다가, 지금은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에 있는 친구의 작은 서점 한 벽면의 책장이 되어 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의 시간이 끝나가며 우습게도 또 다시 순위를 매기고 있다. 다행히 바로 옮길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에 입주하게 되어 커다란 도구들이 짐같이 느껴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 4번과 5번 정도를 고민하는 꽤 괜찮은 상황이다. 전시 철수와 함께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게 될  5번에 해당하는 것들이 아쉬워 조금 설명을 하자면:

 

철제 원통

도구 5-4를 만들기 위해 을지로에서 비교적 싼 가격에 제작할 수 있었던 800 x 800 x 850cm 크기의 철제 원통이다. 회전시키며 실을 촘촘히 감으려면 실의 압력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해야 했고, 감은 실을 빼낼 때 마찰력이 적은 표면이어야 해서 철제로 제작하였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작업장이 야외라는 점, 그리고 작업 시기가 장마 기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여 비가 온 며칠 새 원통이 모두 녹슬어 버렸다. 아무리 지워봐도 녹이 빠지지 않아 새로 제작하게 되었다. 녹슨 모양이 꽤 재미있어 지니고 있고 싶기도 했지만 상당히 크고 무겁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구멍이 뚫린 나무 프레임 두 개

도구 5-2를 구성하는 구멍 뚫린 프레임이다. 구멍은 스스로 뚫기에는 정확도가 맞지 않아 CNC 가공을 맡겼고, 프레임 양 끝은 사개맞춤으로 고정하였다. 기존보다는 조금 두꺼운 목재를 사용하고, 안쪽으로 판재를 추가 부착하여 실의 압으로 프레임이 안쪽으로 휨을 방지할 수 있게 하였다. 계산 착오로 구멍 위치가 맞지 않는 프레임 두 개를 만들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버려도 되거나, 모르겠거나, 지니고 있고 싶은 것들이다.

 

작업이었거나, 작업의 일부가 될 수도 있었던 것들을 버리면서 또다시 생각해 본다.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 되고, 어떤 것이 쓰레기가 되는지. 작품의 시작과 끝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작가의 허가만이 전부라면 참 가볍고도 무거운 일 아닌지. 또한 근거지를 옮겨가며 사는 것이 새로운 일반이 되어버린 이러한 삶의 방식 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하기만 하면서 살 수 있을지. 만들면서도 버리고, 버리면서도 다시 만드는 일련의 방식을 이어 오면서 끊임없이 드는 의문들이다.

 

작년에 제작을 마친 ‘네 가지 도구’를 통해 올해도 많은 것들을 열심히 생산할 예정이다. 버리는 나중을 상상하며 하는 작업은 때론 무의미하게 느껴져 가능한 버려지지 않을 상황을 준비하며 작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업의 계획 단계부터 보관과 이동에 용이하게끔 일부 조립식으로 제작을 하거나, 가능한 사이즈를 줄이거나, 정말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포기하거나 하는 것들이다. 상상력은 늘 공간에 갇혀 있어서 무모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굿 바이 투 더 아트(Goodbye to the art)’ 프로젝트의 호기롭던 초반과는 달리 말미에 느꼈던 파도 같은 무력감을 되새겨 보면 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소개 


이수지는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공간디자인)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인포메이션 디자인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네덜란드와 한국을 기반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오면서 미술과 디자인, 오브젝트와 평면의 경계 없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형식의 개인화를 탐구하며 도구를 짓고 그에 따른 평면 결과물을 얻는 과정을 거쳐, 2021년 귀국 후 평면에서 이탈하여 조형적 결과물을 얻는 도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개인전으로는 《네 가지 도구》(김희수 아트센터, 서울, 2023), 《Goodbye to the art》(LimestoneBooks, Maastricht, 2023) 등이 있으며, 2019년 얀 반 에이크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여러 레지던시에서 작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 그리고 수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림큐브(서울)에서 개인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Sooji Lee majored in Industrial Design (Spatial Design) at Hongik University and received her Master's degree in Information Design from the Dutch Design Academy Eindhoven. She has been working as an artist based in the Netherlands and Korea,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art and design, objects and flats. Since 2016, Lee has been exploring the personalization of form, building tools and obtaining flat results, and since returning to Korea in 2021, she has been focusing on researching tools that deviate from the flat and obtain sculptural results. Recent solo exhibitions include Four tools (Soorim Art Center, Seoul, 2023) and Goodbye to the art (Limestone Books, Maastricht, 2023), and Lee has continued her work in various residencies, starting with the Jan van Eyck residency in 2019. In 2023, she will be a resident at the MMCA residency, and in Soorim Cube(Seoul) with a solo exhibition supported by Soorim Cultura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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