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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title)
2024
charcoal, pastel on paper
42 x 29.7cm
untitled(title)
작업의 시작은 ‘untitled’로 이루어진 제 작품의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작업의 제목 대부분을 'untitled'로 붙여왔고, 이는 관객이 작품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작품이 늘어나자 반복되는 'untitled'로 인해 작품의 분류가 어려워졌고, 이는 같은 해, 같은 크기, 같은 재료로 제작된 작품들에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untitled' 뒤에 괄호를 열고 숫자를 적어 분류를 시작했습니다. 'untitled(0000)'. 숫자는 작업을 시작한 날짜나 시간, 혹은 끝난 시간이나 날짜, 지인의 생일, 우연히 눈에 띈 숫자 등 작업과 크게 연관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괄호를 사용한 제목 체계는 분류에는 효율적이었지만, 저에게 계속 '굳이?'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분류의 역할 말고는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 숫자는 불필요해 보였고, 실제로 'untitled' 뒤에 붙은 숫자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원하기도 했지만 무언가 저를 계속 찜찜하게 만들었습니다.)
제목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전시 때 흔하게 배치되어 있는 평론 글과 캡션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담이지만 종이를 없애고 QR코드로 대치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단순히 종이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혹은 '제목 없음'이라고 정하는 것은) 작가라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저는 참여 작가들의 작품의 제목을 그려보려 합니다. 제목을 쓰거나 적는다는 표현이 아닌 '그린다'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말 그대로 그림이기 때문이고 (이는 라이브 드로잉에서 확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어가 지시하는 의미에서 벗어나 한글의 자음과 모음, 알파벳, 혹은 숫자나 기호 등, 그것을 이룬 형태를 바라보고 그릴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그린다는 것, 혹은 그림을 쓴다는 비유적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제게 제목은 이런 여러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참여 작품의 제목을 하나씩 그려 나가며 또 어떤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완성된 작업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작업 전 계획을 세우며 생각했던 여러 생각 중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 저의 제목 체계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매번 그림이 완성된 후 제목을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untitled(title)로 정했습니다. 무제(제목)라는 앞으로 진행될 작업을 통해 내게 있어 그 밖의 것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조금 곁에 두고 지켜보려 합니다.
작가 소개
이진형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그는 시각 기반의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수집한 이미지가 가진 분위기의 질감과 구조적 윤곽 등을 부분적으로 포착한 후, 내용이나 의미를 소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화면을 재구성하는 회화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비원향》(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20), 《Pinhole》(에이라운지 갤러리, 서울 2021), 《O》(더 소소, 서울, 2022)가 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8 신한 영 아티스트 페스타, 2019 사루비아 전시 후원작가, 2021 창작공간 달 4기 입주작가, 2022 인천아트플랫폼 13기 입주작가, 2023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등에 선정되었다.
Jinhyung Lee completed his B.F.A in Painting from Hongik University in 2008. He collects various images that can be encountered in visual-based media and uses them as materials for his work. After partially capturing the atmospheric texture and structural contours of the collected images, he continues his painterly experiments by reconstructing the screen in a way that erases the content and meaning. His solo exhibitions include B1Hyang (PS Sarubia, Seoul, 2020), Pinhole (A-Lounge, Seoul, 2021), and O (The SoSo, Seoul, 2022), and he has participated in numerous group exhibitions. He was selected for the 2018 Shinhan Young Artist Festival, 2019 Sarubia Exhibition Sponsor, 2021 Space Dal 4th Artist-in-Residence, 2022 Incheon Art Platform 13th Artist-in-Residence, and 2023 Seoul Arts Foundation Artistic and Creative Activity Support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