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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릭스3
Kylix3
2023
종이상자, 인쇄된 이미지, 밀랍, 유토
cardbord box, printed image, bees wax, oil clay
90x9x126cm
(...) 몇년 전, 나는 사적인 이유로 옛 아마존 여전사의 이루어지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희곡 <펜테질레아>(1808)와,베를린 반제호수에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성과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을 다룬 영화 <아무르푸>(예시카하우스너,2014)에 몰두하게 되었다. 글과 영화를 뒤적거리다가 그 이야기들을 재현하고 있는 그리스 도기화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최근에는 그 이미지들과 나의 책상자 작업을 연결시키는 <암포라> 연작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암포라 연작들이 제작되는 작업실 풍경을 <스튜디오> 연작에 회화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매번 사람들이 발음도 어려운 ‘펜테질레아’, ‘클라이스트’, 그리스 도기와 같은 태곳적 사물들이 출몰하는 나의 작업들 앞에서 많은 물음표들을 떠올리는 것을 보게 된다. 여러 질감이 혼합된 <암포라>를 보고 어떤 재료로 제작되었는지를 물어오면 오히려 대답은 쉽다.재료는 종이이고 표면에 보이는 노란 부분은 밀랍,무수한 손자국이 찍힌 부들부들한 부분은 유토이고 내부는 비어 있다고 답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흥미로운 표정을 짖고그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등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왜 그리스 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희곡 ’펜테질레아’, ‘클라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를 물어오면 대답을 주저하게 된다. 살면서 맺게 되는 녹녹치 않은 관계 속에서 내가느끼는 감정들이 그 글과 영화들에 잘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특히 다른 사람들이 클라이스트의 연인으로 추정하였던 여성과의 마지막을 묘사한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의 감정이란 것이 사실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두 인물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오랫동안 지녀왔던 외로움을 알아보게 되고 둘이 함께 생을 마감함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서로가 서로에게 단절된 것 같고, 사랑의 열정에 빠져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비관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그려진다. <암포라> 연작들이 바탕을 두고 있는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한다는 것이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책 작업은 이렇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글과 이미지의 형태로 담고자 자연스럽게 택하게 된 방식인 것 같다.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작업의 과정들, 참고한 것들을 글과 이미지의 형태로 정리하고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욕조프리퀄>(물질과비물질, 2016), <그림인덱스>(코우너스인쇄, 제책, 2020)이 그런 책들이다. <욕조프리퀄>은 전시될 동안만 온전한 형태로 있고 대부분은 조각조각 분해되어 있는 설치 작업의 특성상, 현장의 기록을 보존하고자 만들게 되었다. <그림인덱스>는 종이상자에 다양한 예술공간에서 수집해 온 인쇄물이 붙어 있는 <책상자> 작업에 사용된 재료의 목록을 일종의 작품에 달린 각주처럼 소개한다. 현재 준비 중인 책 <창작경로>는 앞에서 서술한 최근 3-4년 간의 작업 과정을 지도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책이 될 예정이다. 이 책은 작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작품활동’과 작업실에서 혹은 일상적인 삶에서 창작자가 ‘창작’을 해 나가는 과정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런 활동이 없다면 창작은 중단되는 것인지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 이미지와 비평 글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전시 도록이나 작품집의 구성을 피하고 나의 작업 과정 외에도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창작자들의 작업 과정 기록들, 인터뷰들 또한 책 안에 같이 담고자 한다. 책의 원고 수집을 위해 작년부터 주변 창작자들 몇몇 분에게 그들의 작업 과정을 소개하고 기록해주기를 부탁드렸고 현재 3-4분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참여 중이다. 작년 11월 말 참여자 분들이 서로 처음으로 같이 만나 자기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고 그 두번째 모임을 1월 말 <그“밖”의것들> 전시 기간에 난지 회의실에서 갖고자 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준아, 강희정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매체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기엔 두 작가 모두 개인적인 기억이나 감정에서 작업이 출발하지만 그것을 강하게 드러내고 분출하기보다는 여러 단계의 조형 작업을 통해 감정을 다루어 간다는 공통점을 갖는 것 같다.
작가 소개
강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읽는' 사물인 책 위에 드로잉을 하여 '보는' 사물로 변형시키거나, 상자의 표면에 이미지들을 덧붙여 입체 책들을 제작하고 이것들을 다시 드로잉의 형태로 변형한다. 강희정의 책, 드로잉, 입체 작업들은 서로 독립되어 존재하기보다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화여대 미술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독일 브라운슈바익 조형대에서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는 표현방식들을 연구하였다.
개인전으로 《가족》(세바스티안 브란들 갤러리, 쾰른, 2009), 《낯선 이들》(세바스티안 브란들 갤러리, 쾰른, 2012), 《욕조 프리퀄》(반지하B½F, 서울, 2015), 《그림 인덱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8), 《아센바흐의 지도》(오래된 집, 서울, 2021)을 가졌으며, 참여한 주요 그룹전으로는 《유랑하는 흐릿함들》(템포러리 갤러리, 쾰른, 2011),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아트선재센터, 서울, 2015),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하이트컬렉션, 서울, 2017), 《Discordant Harmony》(Inside-Out Art Museum, 베이징, 2017), 《또 다른 밤》(금호미술관, 서울, 2020), 《Two Two is Six》(중간지점, 서울, 2021), 《그래비티 샤워》(N/A, 서울, 2021) 등이 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와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작업했다. 2016년 동명의 전시를 기록한 책 『욕조 프리퀄』을 출판하였다.
Kang Hee Jung studied Painting and Printmaking at Ewha Woman's University and completed her studies in Fine Arts at the Hochschule fur Bildende Kunste Braunschweig in Germany in 2012. She produces books in various forms with texts and images chosen from her collection of printed materials that were once placed in art spaces. Her individual experiences on art as well as how she responds to artworks and their creators are archived in the books.
Her solo exhibitions include Family (Sebastian Brandl Gallery, Cologne, 2009), Strangers (Sebastian Brandl Gallery, Cologne, 2012), Bathtube Prequel (Vanziha B½F, Seoul, 2015), Image Index (Cheongju Art Studio, 2018), The Map of Aschenbach (Old Haus, Seoul, 2021). She was also included in various group shows as Normadische Unscharfe (Temporary Gallery, Cologne, 2011), REAL DMZ PROJECT 2015 (Art Sonje Center, Seoul, 2015), I Love You, I Love You Not (HITE Collection, Seoul, 2017), Discordant Harmony (Inside-Out Art Museum, Beijing, 2017), The Other Night (Kumho Museum of Art, Seoul, 2020), Two Two is Six (Jungganjijeom, Seoul, 2021), Gravity Shower (N/A, Seoul, 2021). She has published Bathtub Prequel in 2016.
https://sumsaram.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