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대 서계 장민성 (疎月 趙敏紀) | 정치외교학과 20
한글, 화선지에 먹
〈누구의 씀〉
나는 나를 쓰고 있는가?
서예에서 개성의 형성이나 필성의 확립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느 날 제자와 술을 마시고 붓을 든 나는 의문을 품었다. 내 글씨는 과연 나의 것인가. 오랜 임서와 학습을 통해 몸에 스며든 스승들의 기억인가. 혹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붓과 몸이 만나는 순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흔적인가. 내 몸은 왜 붓을 들면 저절로 반응하는가.
문장을 짓고, 지면에 옮겼다. 내가 잘 쓰지 않았던 한글로. 한글은 너무 쉽게 읽힌다. 보기 전에 읽혀버린다. 선과 호흡, 압력과 움직임은 문자 뒤로 물러난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이자 필획의 사건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연면하는 필획과 우하향하는 장법, 무거운 역입은 내 몸에 밴 필성이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오히려 너무 잘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멈추었다. 이것은 지금의 생각인가, 아니면 몸이 반복하는 습관인가?
그 순간부터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자모의 결속을 풀어버렸다. 자모는 해체되어 덩어리로 남았다. 대신 연면과 의련으로 기운만 이었다. 기필에서 힘을 빼고 던졌다. 익숙한 흐름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비틀었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익은 필성을 낯설게 바라보기 위한 시도였다.
첫눈에 글자가 읽히지 않는다면 성공이다. 문자 이전에 흔적과 몸짓이 보이도록, 읽는 시간을 비틀었다.
〈누구의 씀〉은 완성된 답이 아니다. 오히려 필성이 습관이 되는 순간 그것을 다시 의심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작업은 ‘무엇을 썼는가’보다 ‘누가 쓰고 있는가’를 묻는다. 필성의 형성과 해체 사이에서, 쓰는 주체의 정체성을 묻는다.
이 작품은 선언이라기보다 질문이다.
이 씀은 누구의 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