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종이에 관하여
안소연
5, 6년 전에 헤적프레스와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그때 썼던 한 단락의 글은 여기저기 복사해서 붙이고 조금씩 다듬다가 종이 한가운데 찍어 놓은 점처럼 검고 단단한 모양이 됐다.
종이는 한때 내가 만들어 놓은 글의 뭉치를 또 다른 한계 안에서 펼쳐 보이기에 적당하다. 어떤 대상과 떨어뜨려 놓은 적 없던 비평의 글을 따로 종이에 옮기는 이 일은 어떤 형상을 상상하며 비어 있는 곳에 흙을 붙이는 조각가의 행위와 닮아 있다. 여기에 놓인 글은 한때 구체적인 대상을 앞에 놓고 사유했던 내 글쓰기의 태도를 알려준다. 이제 그 대상과 한참 떨어져 있는 이 종이 위에 사유의 흔적으로만 남게 된 글을 꺼내본다. 이는 글과 종이가 조각처럼 오로지 그것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눈앞의 허공에 비평의 대상을 떠올리며 낱말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나의 글쓰기 행위가 오래된 기억 속에 있던 소조의 감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글쓰기의 습관, 방금 쓴 글자들을 독백처럼 읽어내고 글의 형태를 손으로 단단하게 빚듯 호흡과 두께를 허공에 그려내는, 이 글쓰기의 습관은, 글의 형태에 관한, 더 나아가 글의 잠재적이면서 한시적인 모습에 대한 가능성을 살피는 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물질적인 감각은 비평의 대상과 접촉하려는 시도로서, 끊임없이 원형을 상실하면서(까지) 원형을 갱신하는 소조의 과정과 그것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된 것 같다. 나는 작업하는 친구의 작업실에 꼬박 3개월 동안 드나들며, 대상도 없고 크기도 없는 한 사람의 얼굴 모양을 흙으로 만들어 석고로 주물 뜨는 작업을 간신히 끝마쳤다. 이 행위와 물질적인 감각이 어떻게 나의 비평적 글쓰기와 닮았는지, 머릿속에서 혹은 두 손에서 차츰 선명해지는 비평 글쓰기와 소조의 행위 간 겹침을 어떤 언어로든 말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이들이 종종 말하는 것처럼 언어의 한계가 가져다 주는 글쓰기에 대한 절망감을 비롯해, 되레 비평을 소외시키는 비평이라는 관계 설정의 오해와 간극 속에서, 나는 비평적 글이 가져야 할 (문학적‧비평적) 창의성과 (담론적‧시대적) 통찰력을 모색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의 한계를 경험할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한계가, 글쓰기에 대한 또 다른 비판적 가능성이 될 수 있겠다고 고쳐 생각하기도 했다. 언어에 대한 절망감을, 비평적 글이 갖는 폐쇄성을, 나는 뒤라스의 글쓰기와 존 버거의 실천에서, 그것[한계]을 초월할/외면할 어떤 방법이 있을 거라 여겼고, 그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 “비평적인 것”이라 판단했다.
비평가의 글쓰기가 직조하는 스펙트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넓으며, 어떤 면에서는, 적어도 나의 글이 비평의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내가 확신하는 소조의 감각이 그러하듯) 비선형적 관계로 맺어진 창의적 협업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은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매체, 그리고 또 다른 읽기의 절차와 과정 속에서 비평적 글의 형태가 적어도 조각적 혹은 영화적 구축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흐릿한 희망을 불러왔다. 나는 비평의 글쓰기에 있어서, 글(자)와 종이라는 특정 매체로부터 출발해, 그 관계를 증폭시킬 만한 또 다른 매체로의 변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필름 메이커 김민정은 비평의 글쓰기를 소조에 빗대어 말하는 내 옆에서 그것을 다시 필름에 대한 감각으로 바꾸어 우리 둘 사이의 숱한 대화를 이어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쓴 어떤 비평의 글 하나를 영상 속에 재배치하는 작업에 함께 해줄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나의 모호하고 불확실한 제안에 자신이 영상을 다루는 방식으로 함께 모험해 보겠다며 창작과 비평 사이의 이상한 협업에 참여해 주었다. 비선형적인 사건과 장면의 겹침, 내가 생각하는 비평의 글은 그 상황 속에 유령처럼 떠돈다. 그래서 나는 김민정에게 내가 쓴 글을 영상 자막으로 각색한 것과 2023년 봄부터 2024년 여름까지 내 글쓰기의 여백을 채운 사진과 영상과 소리를 직접 찍고 녹음하여 공유했고, 그는 그의 방식대로 한 편의 영상을 만들어 주었다.
운이 좋게도, 몇몇 작가들은 그들의 시공간 속에 나의 글쓰기를 위한 여분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기도 했다. 오래 전 김온은 나에게 낭독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나의 어린 딸이 상상해주었던 “책꽂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A4 두 페이지에 꽉 찬, 읽기 어려운 글을 쓸 수 있게 그만큼의 종이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수수께끼의 시인 자끄 드뉘망은,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시 <책꽂이>를 그의 책 한 자락에서 꺼내 내게 보냈다. 그 시는 박연주의 디자인으로 종이 위에 검은 글자들을 얻어 어떤 모양을 갖게 됐다. <내가 네게서 묵은 적은 얼마나 적은가>는 내가 석고 두상을 만들러 다니던 때에 썼다. 딱 두 번 본 그의 얼굴을 이제 기억조차 하기 힘들지만, 뒤셀도르프에 사는 그는 내 글에 대한 답장을 길게 써서 보내면서 산책길에 동행한 강아지 사진을 함께 전했다. 나는 그의 얼굴 보다, 그의 전시장에서 내가 상상했던 방 안을 서성이는 한 남자의 모습과 그가 키우는 강아지의 걸음걸이로 그를 기억하며, 나의 글도 그 옆에 다시 놓아본다.
나는 내 글에서 비평적 몸짓과 목소리의 뉘앙스, 어떤 시선과 언어의 불확실함 마저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침묵과 행간이 보여지기를 바란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이 비평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십여 년 전, 매일매일 글을 쓰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글과 나를 따로 떨어뜨려 놓기 힘들었다. 동시에 그것에 좀 무심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글쓰기의 매체에 대해 고민했던 것도 그때다. 또 다른 글쓰기 지지체라는 신체에 감각을 나누어 놓기 위한, 그것을 공유하기 위한, 아직도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글쓰기의 변환을 시도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