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애프터의 기획전 《Wild Wild Matter》는 크게 두 개의 보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보존, 다른 하나는 기억의 보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보존 모두 불가능한 일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신체로 수렴되는 물질적 보존이라는 것이 이 전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오늘은 먼저 이소요 작가의 보존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이소요 작가는 사라져야 할 육체를 액침보존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Wild Wild Matter》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품 제목은 한국어로는 <원형 보존>, 영어로는 <A Dying Art>라고 명했습니다. 어쩌면 원형 보존과 A Dying Art는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우리 말로는 (죽은)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고, 영어로는 죽어가는 혹은 사리지는 ‘기술’인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원형이건, 사라짐이건, 기실 그대로 보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20세기 중후반까지 액침 표본을 통해 생물을 보존하는 일은 교육적, 기록적으로 매우 일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변형되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현재는 과학적 정밀성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거의 ‘사라지는 기술’ (Dying Art)이 된 것이죠. 이소요 작가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뮈터 박물관에서 직접 액침표본 연구에 참여 하면서 생물의 물질화 과정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액침표본 중에 크게 변질되어 자연화 상태 즉, 썩거나 상한 상태가 되면 ‘하수구에 버려도 된다’는 지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자신이 참여한 표본 보존 과정에서 나온 잔여물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보존합니다. 그것은 생물의 상태나 도구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엄연히 생물이 남긴, 또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죠.
예컨대 원형 보존 중 하나는 이소요가 한 신생아의 액침 표본이 심하게 변질되어 소장실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표본이 어떻게 뮈터 박물관에 소장되었는지의 기록도 명확치 않았죠. 이에 이소요는 박물관 자료실을 뒤져 이 액침 표본이 1930년대 임신 당뇨를 앓고 있는 산모에게서 태어나 팔다리가 짧은 상태로 곧 사망한 신생아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심하게 훼손된 이 표본을 깨끗이 처리하여 다시 온전한 액침 표본으로 만들게 되죠.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던 표본의 역사를 밝히고, 그 표본의 훼손을 복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업은 이 표본을 깨끗하게 처리할 당시의 불순물을 버리지 않고 작가가 따로 보존 처리한 것이며, 사진 이미지는 표본의 훼손 당시와 다시 정상 표본으로 복구된 당시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존’이라는 것이, 그 이유만으로 완전히 다른 역사적, 환경적 맥락으로 이동되는 일을 매우 흔히 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생물 미디어에서 비롯된 것들, 특히 그것이 신체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 더욱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게 되죠.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신체가 완전히 물질화의 상태로 되었을 경우에는 ‘신체’라는 정체성이 삭제되고 “하수구에 버려도” 되는 물질로 격하됩니다. 작가는 이러한 측면을 아루르며 ‘돌봄’이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돌봄은 세계와의 새로운 엉킴을 낳고, 엉킴은 ‘현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또 과거의 미래로서의 현재와 밀접하게 뒤엉킵니다. 따라서 이소요가 복구한 액침 표본은 물질과 생명의 중간에서 우리에게 ‘연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지속’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돌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소요의 표본들은 생물의 물질화라는 당위의 과정과 더불어 이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물질로서의 얽힘, 그 매듭을 보여줍니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우리, 그리고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이 ‘물질’이라는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 조밀하게 엮여 들어가고, 이를 미술이라는 물질로서 드러내는 것. 이것이 《Wild Wild Matter》에서 이소요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나연, 미술비평가, 스페이스 애프터 디렉터)
스페이스 애프터의 전시 《Wild Wild Matter》가 담은 두 개의 보존 중 이번에는 고등어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고등어는 동시대 한국 미술에서 드로잉이라는 장르의 위상을 변화시킨 작가입니다. 그는 연필 드로잉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필은 그 물성 자체가 칠하는 힘에 따라서 매트하거나 모래알 같은 표면의 질감 차이로 형태와 물질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고등어」 인터뷰, 『보더리스 스토리텔러』, 전주국제 영화제, 2022, 65) 이처럼 고등어 작가에게 연필의 물성은 평면 위에 이미지를 드러내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영상 작업인 <Dhak>과 연필 드로잉 <crash> 시리즈, 패브릭으로 제작한 <light, light, twisted light>를 통해 작업 영역의 확장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그는 시각적 이미지와 텍스트, 청각적 음향 효과, 그리고 촉각적 밀착을 아우르며 감각의 문맥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관객은 작은 플래시를 들고 그가 만들어 놓은 검은 커튼 사이로 어느 방에 들어갑니다. 그 방에서 관객은 먼저 <Dhak>과 마주합니다. 이 영상은 작가가 경험한 적 있는 신체의 예측불가한 과민 반응과 과거에 파편적으로 보존된 것들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특히 그에게 목소리와 천둥소리는 어떤 사건의 단편을 함축한 파동으로 우리의 신체에 깊숙이 파고들어 때로 발작적 증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신과 번개를 상징하는 나무의 이름에서 따온 <Dhak>은 이 같은 증후에 대한 치료방법인 EDMR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빛으로 우리의 눈에 자극을 주고, 우리의 신체에 고여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급작스럽게 나타나곤 하는 공포를 소환하고 융해시키는 역할을 하죠. 작가는 이 치료방법이 지닌 빛의 기능과 번개의 기억을 일상의 소리들과 천둥소리로 결합합니다. 또한 영상에 속에서 다섯 개의 테마로 새겨진 말들은 순차적 어순과 서사를 갖기 보다 흩어지고 부유하는 경험의 암호들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영상의 장면들은 작가 자신의 신체를 자극하는 트라우마의 양태를 드러내고, 과거의 목소리들과 파편화된 기억, 사건 등을 묶고 이어냅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고등어는 영상이라는 방식을 통해, 세계 현상과 관계하는 신체의 상태를 '실'처럼 이어진 짜임으로 펼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직조되어가는 얽힘의 관계는 결국 몸이라는 물질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태들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고등어가 직접 손으로 짠 매트 위의 촉감을 느끼며 앉아 그의 영상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현상과 한 사람의 신체가 얼기설기 엮어내는 상호 작용의 역동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록처럼 반듯한 편직이 아니라 각기 다른 질감과 크기의 실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짜여진 상태로 불현듯 우리의 신체를 휘두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이미지를 우리는 고등어가 조성한 어두운 방 안에서 플래시를 켜고 비밀스럽게 관찰하게 됩니다. <crash> 시리즈는 공포 기억에 대한 메타포이자 암시로 다섯가지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놀이에 빠진 어린 아이의 그것이면서, 무섭게 들이치는 우레의 그것이기도 합니다. 하여 소리는 다섯 점의 드로잉 안에서 충돌하며 소스라치는 신체와 세계 현상의 거칠고 아름다운 접면을 드러냅니다. 고등어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재현할 수 없는 감정들, 언어가 되지 않는 감정들을 그림을 통해 형상화하고 싶고 또 그 감정이 놓여 있는 신체,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신체를 그리고 싶은 거 같습니다." (위의 책, 66) 우리는 이번 《Wild Wild Matter》에서 고등어 작가가 어떤 "상황에 놓인 신체"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체라는 물질 속에 보존될 수밖에 없는 세계라는 현상과의 기묘한 '얽힘'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구나연, 미술비평가, 스페이스 애프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