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진 개인전
2023.10.06 - 2023.11.05
수요일 - 일요일, 12 pm - 7 pm
주최 : 송세진
그래픽디자인 : 마카다미아오!
전시서문: 구나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KT&G 상상마당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습니다”
<Behind>
Sejin Song Solo Exhibition
06.Oct.2023 - 05.Nov.2023
Wed - Sun, 12pm - 7pm
Organized by Sejin Song
Graphic Design by Macadamia oh!
Essay: Gu Nayeon
Sponsored : Arts Council Korea, KT&G SangsangMadang
"This exhibition is support by Korea Arts Council Korea Academy of Arts and Creativity 2023”
비하인드, 비하인드, 비하인드....
구나연(미술비평가)
"그렇기에 이명이 느껴질 때면
시간과 기억 같은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송세진, <작업>(2023) 중에서)
생각은 언어의 형태도 아니고, 기억이 이미지의 형태인 것도 아니다. 생각과 기억의 작용은 언어나 이미지로 치환될 뿐, 뇌의 신경세포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 뒤에는 시냅스와 신경세포의 대사의 작용이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 이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기억에 아파하기도, 생각에 매몰되기도 한다. 만일 괴로운 기억에 대해, 이건 나의 뇌에서 이동하는 신경물질의 정상적 결과물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통이 분비물, 슬픔은 지방, 비애가 쓸개즙이라면. 그렇지만 '나'라는 신체는 너무나 복잡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닦이지도 않는 분비물, 연소되지 않는 지방, 없으면 병이 되는 쓸개즙처럼, 고통과 슬픔과 비애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송세진의 개인전 《Behind》에서 이명이 중요한 단서가 되는 이유도, 이것이 증상으로 나타난 이별의 고통과 슬픔이자 비애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이미지와 언어의 형태로 어른거리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지각과 다르고, 끊임없는 오류와 왜곡을 통해 몸 안에 재차 저장되며 치유되지 않은 채 불현듯 역류한다. 우리 안에서 온전히 소진될 수 없는 기억은 마치 불법 시간 여행자가 그러는 것처럼, 현재를 기억의 영토로 소환하여 조합하고 조작한다. 그래서 이명은 걷잡을 수 없이 나타나면서 과거의 기억에 대한 통증의 신호로 잔존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의 뒤편과 기억의 뒤편이 만나는 접면에서 기이한 사소설 같은 공상과학의 서사로 나타나는데, 그것이<Work>이다.
싱글 채널 비디오 작업인 <Work>는 개별적 경험에서 비롯된 어떤 징후가 오감에서 이탈된 신호인 점, 그리고 이것이 축적된 기억의 관성을 통해 발현되는 낡은 기술의 측면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다. 송세진은 그동안 무관해 보이는 통찰과 경험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영상과 유리와 같은 그의 주력 매체부터, 균사와 심리, 시선과 권력, 정체성과 미디어를 종횡하며 도출되는 새로운 교집합들이 그의 작품 안에 혼융하면서 새로운 의미와 문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work>는 어떤 주체가 정체성, 기억, 차원을 넘나들 때 파생되는 원심력으로 이미지와 언어의 무한한 이탈을 생성한다. 그의 서사는 현실에서의 적확한 인덱스가 불가능한 기억이라는 지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데이터 라벨러는 이미지를 지시하는데 실패하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서구, 남성, 백인을 주체로 하는 근대적 역사의 문맥으로 이동한다. 즉 과학기술적 혁신이 근대의 합리성에 기반한 낡은 진보 담론과 결탁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배 구조와 첨단 기억 장치 기술 전반의 인프라에 깊이 연루된 사실은 개인의 기억과 시공의 차원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이반과 이명 증상의 추이와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세진은 작업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Work>(2023)는 렉처 퍼포먼스 노화된기술(2023)에서 AI를 학습하기위해 데이터셋을 분류하여 언어로 카테고리화 하는 분류자의 정치적인 개입이 들어가는 “자의적인" 방식에 대한 방대한 리서치 중 (알게 된) 이미지와 사진, 언어, 소리의 자의적인 조합을 주인공이 이별 후 들리기 시작한 이명 빗대어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예술 작품에서 지극히 사적인 것은 언제나 거시적 역사와 결합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송세진의 방법론은 개인의 메타포로 세계를 독해해 나가며 직면하게 되는 명료 혹은 모호의 양태를 드러낸다. 이는 한 나약한 개인의 두려움과 강인함의 혼재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공간과의 변증을 통해 쇄신되며 작품 안에서 점차 뚜렷해 지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그의 오랜 리서치 결과물인 <노화된 기술>(2023)에서는 노화의 한 증상이기도 한 이명을 낡은 기준으로 데이터를 분류하고 학습시키는 첨단 기술 시스템과 대비시킨다. 이명은 일종의 기억장치인 뇌에 내장된 오작동으로 완치가 힘들고 만성적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데이터 학습 기반의 AI기술에 내재하는 오래된 기준과 분류는 뿌리깊은 편견의 작동 방식으로 구축된 '의도적 오류'를 통해 만연된 억압으로 전이된다. AI의 해묵은 시선은 의료사에 축적된 신체 데이터와 이를 형성하는 과정에 건재했던 관찰자의 권력과 관련되며, 최첨단 기술의 작동 방식에도 여전히 '의도적 오류'를 생성한다. 그리고 이것은 편향된 분류체계를 옹호하고 배제의 정치학을 구축하면서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한다. '의도적 오류'인 기술적 이명은 고통의 재양산과 모욕의 일반화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이번 전시와 동명의 작품인 <Behind>는 카메라와 필름으로 이미지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 시간여행자의 무한한 시공의 루프를 통해 구축된 세계관의 트레일러와 같다. 그리고 이 영상에는 일제강점기 시기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수집한 한반도 전역과 만주 등지의 버네큘러(vernacular) 이미지가 등장한다. 식민 지배라는 극단의 점령 상태에서 시선은 굴욕의 서사를 강요하는 고답적 우월성을 전제로 한다. 하여 송세진의 작업에서 시간여행자는 고통을 양산하는 인물이기도, 고통을 전달하는 인물이기도, 고통을 기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늘 '뒤'의 존재인데, 가려져 있기 때문이며 가려져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뒤'에 있음을 통해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고, 그렇기에 그 기록 사이의 관계와 진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들은 人, 空, 時의 '間'과 같은 존재이다.
송세진의 작업 역시 시간여행자와 같이 '사이'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이를 잇고 끊고 다시 봉합해 내는 것과 관련된다. 이것은 가시적인 것들의 사이에 상존하면서 숨어 있는 뒷면들을 그가 구사하는 허구를 통해 탈각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뒷면으로써 출발하고 이를 우리 앞에 열어 놓는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닦이지도 않는 분비물, 연소되지 않는 지방, 없으면 병이 되는 쓸개즙과 마주하면서, 그것이 닿으려 하는 시대와 역사의 방향에 주목하고 때로 발을 맞춘다. 그렇게 비하인드, 비하인드, 비하인드... 간의 관계가 나타난다. 생각과 기억은 언어와 이미지라는 표면을 통해 육체 위에 잠시 각인되었다가 다시 흐릿해 지기를 반복하고 결국 사라진다. 송세진은 이러한 변형과 망각을 자신이 더듬어야 할 뒷면으로 보는 것 같다.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경험과 신체로 발굴되는 낡은 역사와의 불화를 오늘의 서사로 직시해 가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