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님이


시 : 노선주

곡과 노래 : 최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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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끙끙대던 꽃님이가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밤새 헬기에선 붉고 하얀 종이가 날렸다

꽃님이의 작은 발이 마당에 덮힌 종이를 밟고 비틀거렸다

망치질을 뚝딱 뚝딱. 뚝딱

붓칠도 근사한 꽃님이네 집엔

눈도 못 뜨는 강아지가 네 마리나 낑낑 거리는 소리도 못내고 있었다

민주주의 말로는 쉬운데

자리잡고 자라는 와중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눈감는 아픔들이 너무나도 많아

민주주의 말로는 쉬운데

자리잡고 자라는 와중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서 있는 지금 현재에 우리들이 있어

엄마는 우유를 젖병에 담아 물리며

"야들 엄마는 워디갔댜?"

꽃님이는 며칠을 울고 난 그 눈에 젖은 면수건을 올려주었다

"꽃님아 최루탄이래 너는 손이 없어서 비비지도 못하네, 내가 대신 닦아 줄게"

부른 배로 뒤뚱거리던 꽃님이는 어디로 갔을까

순이, 영이, 철수, 복남이만 남겨두고

부른배로 뒤뚱거리던 꽃님이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민주주의 말로는 쉬운데

자리잡고 자라는 와중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눈감는 아픔들이 너무나도 많아

민주주의 말로는 쉬운데

자리잡고 자라는 와중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서 있는 지금 현재에 우리들이 있어

이야기 듣기

독자에게


1980년 5.18때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구요. 철없던 마음에 ‘방학인가?’ 좋았어요. 며칠을 헬리콥터가 하늘을 날아다녔어요. 집이 전남대 바로 앞이었어요. 마당 넓은 집엔 하얀 개, 꽃님이가 있었어요. 마침 임신을 했는데 매일 최루탄이 터지면 낑낑거리며 울었어요. 집 안으로 데려와 손수건으로 젖은 눈을 닦아주면 힘이 드는 듯 잠이 들었어요. 이제 ‘꽃님이’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침, 점심, 저녁으로 터지는 최루탄 소리와 총성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 해요. 어릴 적, 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꽃님이를 안고 대문 안쪽에 붙어 하루종일 밖에 귀를 기울였어요. 이 시를 통해 518이 박아놓은 파편들을 꺼내봅니다. 지금은 대문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꽃님이’는 실제로 저희 가족이 기르던 진돗개였어요. 꽃님이가 임신을 한 것을 알고 정말 기뻤습니다. 제 우유를 남겼다 주고, 새로 태어날 강아지들을 무척 기다렸어요. 그런데 꽃님이는 강아지들을 낳고 죽었어요. 학교에 갈 때면 멍멍 짖어주고 돌아올 때면 꼬리를 흔들던 꽃님이는 어린 저에게 작은 희망이었습니다. 말뚝에 목끈이 묶인 ‘꽃님이’를 통해 당시 518을 겪으며 작은 기억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망치질 뚝딱 뚝딱 / 붓질도 근사한 / 꽃님이의 집’은 아빠가 손수 만든 꽃님이의 집입니다. 당시 경제부흥으로 건물이 올라가고, 부흥하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랬을까요? 희망차게 하루하루 망치질과 못질을 하던 시민들은 가족과 함께 할 날들을 꿈꾸며 희망에 차있었겠지요.

최루탄이 터져도 ‘손이 없어’ 비비지도 못하는 개처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하루가 지나고 마루에 엎드려 지냈을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강아지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꽃님이’처럼 518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지요. 엄마를 빼앗아가고, 가족이 사라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날을 기억합니다. 518은 저에게 늘 숙제였습니다. 헬리콥터 소리, 흩날리는 전단지, 낑낑거리며 울던 꽃님이.. 이해중선생님께서 초등학교 학생들과 518 시와 노래를 만든다고 하셔서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미얀마사태를 보면서 미얀마의 수많은 어린이들을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울까? 518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우리 일상의 작은 투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젖은 수건을 올려주듯’ 옆 친구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과 518을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어요. 우리 학생들에게 518 사건을 이야기해주면 공감이 힘들었지요. 프랑스혁명처럼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지요. 우리 학생들이 518, 미얀마사태 등 민주주의를 위해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갖기 바랬습니다.

노선주, 프랑스 디종한글학교장 시.

번역 안 뷜리 (16세, 디종한글학교 청소년 반학생)


시 원본


밤새 끙끙대던 꽃님이가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밤새 헬리콥터에선 붉고 하얀 종이가 날렸다.

꽃님이의 작은 발이 마당에 덮인 종이를 밟고 비틀거렸다.

망치질 뚝딱 뚝딱

붓칠도 근사한 ‘꽃님이네집’엔

눈도 못 뜨는 강아지 네 마리가 낑낑소리도 못 내고 있었다.

따뜻한 우유를 젓병에 담아 물리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야들 엄마는 워딜 갔댜?’

꽃님이는 며칠을 울었다.

나는 꽃님이 눈에 젖은 면수건을 올려주었다.

‘꽃님아, 최루탄이래.

너는, 손이 없어 비비지도 못하네.’

내가 대신 닦아줄게.’

부른 배로 뒤뚱거리던 꽃님이는

어디로 갔을까.

순이,

영이,

철수,

복남이만 남겨두고.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