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일상적인 속도를 기어이 제어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 이런 것도 예술이 해야 되는 일이고 예술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활동 방식의 이름을 ‘지연’이라고 명령해 보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비유를 통해 말하자면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게 하는 장력인 거죠. 제가 이 책에 실려 있는 비평 글을 쓰던 시기는 많은 부분 박사 논문을 쓰던 시기기도 했거든요. 제 박사논문 제목이 「동시대 미술의 비디오적인 지연에 관하여」 라는 제목이었어요. 그러니까 원래 이 '지연'이라는 것이 제 연구의 주제이기도 했던 것이지요. 논문을 집필하면서 동시에 비평문을 써가다 보니까, 제가 평소에 하고 있던 ‘시간의 제어’와 같은 생각이 비평에도 어느 정도 묻어 들어가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이 약간이라도 묻어 있는 글들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 이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지연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우리는 운동의 세계에 삽니다. 저희가 이렇게 살고 움직이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가 계속 돌아가고 있고, 그것이 인간의 삶이든 동물의 삶이든 물질의 삶이든 간에 삶의 디폴트가 운동이라고 정의가 됩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다른 한편에는 어떤 정지가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사진 같은 매체가 어떤 움직이는 것을 고정하는 그런 매체잖아요. 그런 인위적인 정지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정지와 운동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애매한 상태, 어떤 망설임의 상태, 그것을 저는 지연이라고 명명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