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그 거칠고 거친 물질 

On 'Wild Wild Matter'

 

구나연(미술비평가, 스페이스 애프터 디렉터)

 

 스페이스 애프터(SPACE ÆFTER)는 기획전 《Wild Wild Matter》로 문을 연다. 이 전시는 ‘미술에서 물질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첫번째 실마리로 ‘신체’를 선택하면서 시작되었다. ‘물질’은 미술에서 근본적이며 원초적인 존재론과 맞닿아 있다. 과거의 미술은 물질의 문제를, ‘재현’과 ‘형식’의 관점으로 전개해 왔으며, 이는 미술의 언어화, 나아가 모더니즘이라는 근대적 소산으로 귀결된 취약하고 폐쇄적인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술에서 근대, 언어, 형식, 모더니즘과 같은 낡은 잔해물을 털어내고, 물질을 다시 들여다 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당신과 나, 지금 우리 모두의 신체라는 물질을 미술로 들여다 본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인간 신체의 특권적 위치와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신체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과 우리가 신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적 행위 상태를 세계와 뒤엉키는 가변적 접면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현상이자 작용인 신체라는 물질을 통해서 정신과 육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와 분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인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이고, 현상이라는 세계의 역동과 끊임없이 얽혀 있다. 캐런 버라드(Karen Barad)는 ‘현상이란 물질화의 회절적 패턴(“diffraction patterns”)이며, 현실은 현상 속의 사물로 구성되고, 세계는 내부-작용(intra-activity)과 물질화의 역동적 과정이라고 설명한다.[1] 그리고 이는 관념적인 차원이 아닌 양자역학의 물리적 차원과 관련된다. 버라드는 닐스 보어(Niels Bohr)의 양자물리학이 가진 철학적 이슈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이론이 표상주의(representationalism)의 근본적 실패라는 명백한 결론에 이르렀고,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반표상주의자의 접근으로 “상보성(complementarity)”이라는 인식론적 틀을 기반으로 한다고 보았다.[2] 여기서 표상주의는 곧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기호화 된 세계의 폐쇄적 체계를 넘어, 현상(phenomena)으로 수렴되는 관계와 관계의 존재론적 원초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내부와 외부의 경계 짓기를 통해 주체와 객체,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는 근대적 태도의 종결은 곧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우주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을 깨웠고, 인간의 특권적 위치는 무효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은 물질적 상호작용 속에 늘 얽혀 있으며, 내부-작용을 통해 경계는 끊임없이 변모하고 변화하고 또 사라질 수 있다는 상보성과 관계성 기반을 통해 가능하다.

 특히 미술은 세계 현상의 물질로서 변화무쌍하게 현시한다. 그것은 시각적 재현 방식이 아닌, 비가시성의 시각화와 가시적 현상의 재형성으로 나타난다. 미술은 물질로서 세계의 일부가 되는 복잡한 매듭이며, 미술의 물질은 세계를 규정짓는 경계를 지우고 흐트러뜨리는 얽힘의 매개이다. 그리고 이 확신을 구체화하기 위해《Wild Wild Matter》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인 미술을 통해 신체와 세계의 현상의 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이소요(Soyo Lee), 고등어(Mackerel Safranski)가 펼친 작업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정신과 육체라는 양분화 된 신체가 뒤섞이는 부분이다. 이소요는 우리의 육체가 물질로 해체되어 현상의 부분으로 흡수되는 일과 인간의 태도에 대한 사유로 안내한다. 고등어는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끊임없이 육체라는 물질로 각인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하여 이들의 작업 안에서 육체와 정신,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는 흐트러지고, 선형적 시간의 구성은 왜곡되며 뒤틀린다.

 

 이소요의 <원형보존>(Dying Art, 2012/2022)은 작가가 박사과정 시절 2011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뮈터박물관(The Mütter Museum)에서 액침표본의 참여관찰을 신청하고, 직접 손상된 액침표본을 복원해 간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액침표본의 복원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조형성을 얻어 다시 전시될 수 있는 상태의 표본 복원과 처분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표본의 폐기 절차 모두를 수행했다. 그리고 폐기의 방식은 “하수관에 그냥 흘려 보내도 된다”(You can just pour it down the drain)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적 관찰 대상으로 원형이 복원되는 상태는 보존을,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태계적 과정으로 진입하게 되면 하수관으로 향하는 생물에 대한 근대적 접근 방식은 작가에게 많은 사유를 안겨주었다. 이소요는 이에 대해 그의 발제문 「21세기 해부학 표본 - 기술 매체의 역사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해부학 표본은 과학과 의료의 현장을 떠나 여러 경로로 흩어지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정체성이 과학적 자료에서 역사적 유물로, 또 예술적 인공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드렸습니다. 이 같은 사물이 예술로 들어오고, 미술관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생체에 대한 감각을 새로이 일깨우며 이들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3]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생체의 측면들을 “돌봄”(care)의 대상으로 아우를 것을 제안한다.  버라드 연구자인 박신현은 그의 논문「캐런 바라드의 육체의 윤리와 정치」에서 데리다의 ‘다가올-정의’(justice-to-come) 개념으로 우리 몸의 형성과 재형성이 이미 타자들과 얽혀 있고, 책임은 살아서 현존하는 것을 넘어 더 이상 없거나 아직 현존하는 않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책임으로까지 나아간다고 한 버라드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또한 이를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물려받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물려받음'의 개념으로 정의와 존중의 책임을 논한다고 설명한다.[4]  이소요는 과학적 근거가 되기 위해 표본 과정을 거친 뒤, 수세기를 지나며 그 위상의 변화와 함께 물질로서 손쉽게 폐기되는 대상들과 살아 있는 신체의 관계를 돌봄이라는 행위로 목도하게 만든다. 이는 ‘죽음’ 혹은 ‘과거’에 대한 묵시적 낭만화가 아닌, 물질로 존재하는 육체의 반향이 일으키는 파동이자 회절(diffraction)로, 지속되는 물질로서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즉 세계의 역동하게 하는 물질의 작용들은 곧 변화와 그 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고, 이 변화는 결코 인간적 개념의 ‘살아 있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5]

 

 고등어는 이번 전시에서 <Dhak>과 <crash> 시리즈, <light, light, twisted light>, 그리고 <light, body>(작품 모두 2022)를 엮어낸다. 그는 자신이 심리상담을 경험하면서,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신체가 게속해서 “구축과 파괴”를 반복하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견디기 어려운 이미지들 때문에 신체는 발작과도 같은 압박”을 체험하게 된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비물질적’ 상태로 각인되는 기억이라는 이미지가 신체의 뚜렷한 증후이자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과 그 치료 방식에 주목한다.

 고등어의 작업에서 번개는 빛에 의한 공포기억 치료기법인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과 자신이 겪은 번개의 기억에 대한 이미지이다. 그의 작업에서 드러난 과거, 기억, 소리, 빛은 관습적으로는 비물질적이라 불리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신체라는 물질을 통해 그것은 오롯이 현현한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의 현상과 신체라는 물질이 얽히는 것은 곧 나의 “피부 속에 타자를 갖는 일”(having-the-other-in-one’s-skin)이자, 세계에 나를 개방하는 일이며, 또한 세계가 나를 부분으로 포용하는 것이다. 즉 섣불리 ‘정신’으로 일컫는 인간의 상태는 곧 뇌와 신경이라는 물질적 과정이며, 또한 세계라는 현상에 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형적 시간이나 전형적 공간을 벗어나 유동하는데, 고등어는 이를 “몸의 발생”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5개의 번개에 4개의 천둥소리를 작업에 담으며 아직 오지 않은 하나의 천둥소리를 작업 밖에서 기다려본다. 그 소리는 천천히 나에게. 나의 몸에 올 것이다. 많은 대기를 회전하여 결국 나에게 오는 천둥소리(징후)는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리고 그때 몸이 발생한다.”[6]

 그의 영상 작업 <Dhak>은 인도에서 산과 번개를 상징하는 나무의 이름을 제목으로 따왔다. 그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사건을 경험할 당시 자신의 목소리, 번개와 천둥 소리, 동생과 소근거리던 이야기, 그리고 숨죽여 천둥소리를 기다리던 순간의 소리들을 구체적 기억의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신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또 신체에 일으키는 징후로 나타나는 탈언어적 상태로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이미지는 세계의 현상과 몸이 내부-작용하는 가운데 경험이 물질로 각인되며 나의 부분이 되고, 나 역시 그 현상의 부분이 되면서 끊임없이 파동하는 얽힘이다. 하여 고등어는 기억의 볼륨을 엮어 직접 카펫을 만들고, 그 짜임을 거대한 기억의 덩어리로 만든다. 그리고 관객은 그 위에 앉아 영상을 보며 또다른 매듭을 엮어 나가게 된다.

 

 이소요와 고등어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지닌다. 이소요는 실제 인체에서 파생되어 이제는 사물화 된 물질과 이에 대한 연구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고등어는 자신의 신체로 체험한 기억과 감각의 트라우마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은 신체라는 물질이 세계의 현상과 엉키고 드러나는 각각의 경우의 수를 만든다. 그리고 이 두 작업은 모두,  미술이 또 하나의 신체이자 물질로 작용하는 새로운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미술이라는 물질이 신체와 세계의 현상과 부둥키는 “거칠고 거친” 물질적 방식의 변화이다. 재현이라는 역사적 과정 이후, 또 문화와 권력의 장소로서 신체라는 논의 이후 나타나게 된 신체는 인간의 몸으로 그어진 경계들을 점차 지워가는 방식이다.

 미술과 물질을 어떻게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개념, 정보, 기술 그 어떤 것으로 나타날지라도 미술은 물질에 관한 논의와 떼어질 수 없다. 그리고 이 물질은 근대성의 산물로써 기능하는 언어나 형식에서 벗어나, 물질적 상호 관계로 다시 언급되어야 한다. 이번 전시에 캐런 버라드의 이론이 큰 영감이 된 것은, 그의 ‘행위적 실재론’이 미술이라는 물질이 세계의 현상 속에서 자리하고 스며드는 상태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근대의 적자인 모더니즘과 그 양자인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근대성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부정이 수반되는 가운데, 이제 미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물질’이라는 존재론적 명제로 접근해 본다. 그리고 이를 ‘신체’에 대한 관습적 경계를 허무는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Wild Wild Matter》는 첫번째 추론에 다가가고자 한다.

 



[1] Karen Barad,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40.

[2] Ibid., 123-124.

[3] 이소요, 「21세기 해부학 표본 - 기술매체의 역사적 측면」,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 42집,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1, 168.

[4] 박신현, 「캐런 바라드의 육체의 윤리와 정치」, 『동서문학비교저널』, no. 59,  한국동서문학비교학회, 2022, 301.

[5] Barad, Ibid., 179.

[6] 고등어, 「Dhak & Crash 작업노트」(202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