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실로 세상의 불법을 총괄하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신라 경덕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당나라에 들어가 일행선사壹行의 풍수지리의 오묘한 이치를 모두 얻고 돌아와서는, 일행이 점지한 '동방산수도'에 의지하여 호남에 삼암사三巖寺를 창건하니 (하나는 명주의 용암사, 둘은 광양의 선암사, 셋은 승평의 선암사이다) 선암仙巖이 즉 그중 하나이다. 이는 곧 신라 헌강왕 7, 8년의 일이다. 도선이 삼암사를 창건하여 삼한을 통합하고 백성을 구원할 군주(고려 태조 왕건)가 세상에 나오기를 기원하였으니, 이는 실로 조선 국가를 돕고 보완하는 길한 터이다.고려 선종 3년 병인년에 대각국사가 중국 송나라로부터 귀국하여, 7년 뒤 임신년 봄에 고승의 행렬이 이곳에 이르러 산수의 맑고 신령스러움에 감탄하였다. 마침내 서쪽 봉우리 탑(지금의 대각암)에 석장을 꽂고 암자를 지어 천태종의 수행법을 닦았다. 하루는 선정 중에 중국의 조계산이 완연히 보이는지라, 국사가 깨닫고 말하기를, "이 땅은 참으로 선禪과 교敎를 크게 떨침이 반드시 중국의 조계산과 같을 것이다" 하고, 산 이름을 청량에서 '조계(曹溪)'로 바꾸고 가람을 중창하여 허물어진 것들을 모두 일으키니, 이는 실로 조선 불법이 융성하게 일어난 성지이다.그로부터 360여 년이 지나 조선 선조 때에 갑자기 정유재란의 병화를 만나 7천여 칸의 보배로운 도량과 절터가 모두 초토화되었다. 산의 대덕인 경준 경준敬俊,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삼화상이 다 함께 원력을 내어 4, 5년이 채 되지 않아 옛 모습을 모두 회복하니, 이는 곧 선조 35, 36, 37년의 일이다. 그 후 90여 년이 지나 숙종 24년 무인년에 침굉 침枕肱선사의 문인인 호암약휴護巖若休대사가 원통각을 짓고 관음성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고, 3년 뒤(신사년)에 53불의 전단향 나무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또 다음 해(임오년)에 대법당과 오십전(지금의 불전)을 수리하고 마멸되고 벗겨진 것들을 아울러 고치니, 그 공을 크게 모은 것이 이전보다 더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