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답사를 위해 다녀온 노만주의 연희 2층 테라스
극장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긍정하기 위하여 <긁(극)적이는 객석들>은 극장 바깥으로 나간다. 극장‘에서’ 사회가 바뀌길 바라지 말고, 극장 ‘바깥으로’ 나가 잠깐의 극장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단 6일간(7/14~19) 공연이 만들어지고, 그 기간 또한 낮에는 원래의 기능(카페)대로 운용되며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극장의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장소. 우리의 움직이는 장소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다 다른 극장들이 하는 이야기가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연극이 하는 이야기가 나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고 느껴진다면, 극장의 무게추가 여전히 무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대가 유려하게 변화하더라도 객석이 여전히 그 무대를 ‘보아주기 위한’ 공간으로만 상정된다면, 그 무대는 여전히 공연자의 것이다. 공연은 공연자의 연출된 행위뿐 아니라 연출되지 않은 행위가 교차하고, 동시에 관객의 다종다양한 행위들이 공존하는 시공간이다. 공연이란 것이 개인의 몸과 행위, 나아가서는 인지와 감각까지도 통제 가능한 시공간으로 오도되지 않기 위하여, 연출에 부여된 통제성을 건드리고자 한다.
어떤 자아도, 어떤 역할도, 어떤 공연도 연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연출이란 늘 성공할 수만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공연자도 관객도 '공연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소외할 수 있는(해도 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지 않을까. <긁(극)적이는 객석들>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연출되는 극장이, 그곳에 자리한(할) 개개인의 존재 양태와 의미 자체를 고정해둘 수는 없어야 한다고 외치기 위하여 극장 바깥으로 향한다. 극장의 기능과 질서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