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사별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아내의 손이 힘 없이 떨어졌다. 그때 아내의 손목에서 내가 사준 시계는 멈추었다. 시계에 아내의 죽음이 새겨졌다. 나는 그 시계를 내 외투 속 주머니에 품은 채 살아갔다. 어쩌면 내 심장 박동이 시계를 자극시켜 시간이 흐르길 간절히 바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은 아내로부터 흐르지 않았나 보다.
아내와 나는 같은 학교 교양 수업에서 처음 마주쳤다. 늙은 교수가 지루한 목소리로 중간고사 일정을 고지했다. 강의가 끝나자 옆자리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 중간고사 날짜 4/27일 맞죠?”
나는 속으로 ‘방금 들은 것도 기억 못하나.’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다. 그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내게 먼저 말을 걸고 싶어 한 신호였다는 것을. 나는 늘 “눈치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기에, 그때도 그녀의 뜻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눈 대화는 오래 남았다. 시험 얘기에서 전공 얘기로, 그리고 사소한 농담으로 이어졌다. 나는 무심히 대꾸했지만, 그때 이미 아내 특유의 밝음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아내와 연애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무난히 흘러갔다고 생각한다. 별 탈 없이 만났고 서운해하거나 화낼만한 상황을 서로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 단계를 생각했고, 결혼을 위한 동거를 시작했다. 다소 앞서 나가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는 서로가 너무 좋았다. 단지 그 이유로 미래의 두려움을 자주 잊곤 했다. 아내와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 아내의 몰랐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바로 안 하는 습관이라던가. 어질러진 방을 치우지 않는다던가. 이런 습관들을 넌지시 돌려 말한 적이 있으나 아내에 청결의 척도와 나에 청결의 척도가 늘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만 한다면, 혹은 시간이 흐른다면 서로가 이런 모습을 사랑해주리라 생각했다. 태양이 총명하게 빛날 때 그림자도 같이 어두워지는 법인데, 우리는 단 한번도 서로의 그림자를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혼했다. 내 나이 24, 아내 나이 23에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사고 쳐서 일찍 결혼했다고 수군거렸지만, 아니었다. 우리는 둘이서 결혼했고 둘이서 이혼을 준비했다. 그리고 하나가 남았다. 또한 새 생명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고를 치기는 했다. 어린 나이에 얼마 안 만나고 결혼해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를 너무 동경했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과대평가했고 단점을 외면했다. 그렇기에 같이 살수록 더 낯설어졌다. 아내의 청결함을 미래의 내가 이해할 거란 순간은 당연히 오지 않았고, 나의 단점을 조목조목 읊는 아내의 모습만 보였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 내가 성실히 사는 것을 보고 굳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잠만 자니 내심 서운했다고 한다. 나는 아내가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해서 돈을 모으고 더 좋은 곳에서, 살려는 나와 이대로도 좋은 집에서 아늑하게 살고자 하는 아내는 서로에게 자신의 꿈을 욱여넣었다. 나는 아내의 웃는 얼굴을 문득 보는 순간 실없이 헤실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의 꿈을 위해 내 몸을 갈아 넣고 있는데 아내는 이대로 좋다느니, 우리의 행복만이 더 중요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아내는 나를 보고 애먼 행복을 잡기 위해 노력해 보여 미련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득 우리들의 머리에는 ‘우리’라는 말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걸 온몸으로 느낀 건 결혼한 지 딱 1년이 되던 해의 금요일이었다. 나는 퇴근을 하고 사람으로 질식할 것 같은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집 앞 놀이터에 계속 서성거렸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무슨 말이 오갈지 알기에 숨이 턱 막혔다. 그래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의 연기처럼 바람에 이끌려 사라지고 싶었다. 그때 장을 본 아내와 눈이 마주쳤고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우리 두 부부는 거울 속 비친 배우자와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겨눈 뒤 말로 상대방을 난도질했다. 죄책감은 나도 아내도 없었다. 그냥 우리는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의 청춘을 시들게 한 범인을 난도질하는 게 죄책감이 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복수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가 되고 나니 그랬던 게 무슨 의미였나 싶다. 서로 마주 보며 아무 말 없이 밥만 삼킨 기억만 남았다. 마치 카드로 쌓아 올린 견고한 탑이 바람 한 번에 무너진 광경을 본 기분이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 8년 중 같이 산 시간은 4년, 별거는 1년, 간병 3년으로 그마저 같이 산 시간의 절반은 이혼을 위해 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와 행복해지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은 늘 삐걱거렸는데, 이상하게도 헤어지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일이 술술 풀렸다. 재산분할도, 서약서도, 마치 오래전부터 연습해온 동작처럼 손쉽게 오갔다. 우리는 부부라기보다 이혼을 연습하는 동료 같았다. 함께 있을 때는 늘 엇박자가 났는데, 서로 등을 돌리려는 순간만큼은 한 박자도 틀리지 않았다. 왜 같이 있을 때는 마음이 잘 안 맞다가 헤어질 때는 이렇게나 죽이 잘 맞는지 모르겠다. 모든 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변호사는 예정대로라면 이번 주 안으로 도장이 찍힐 거라 했다. 그런데 그때, 아내 쪽에서 이혼을 보류하고 싶다는 뜻밖의 말이 전해졌다. 이유를 묻자 변호사는 짧게 답했다.
“직접 들어보시죠.”
그가 내민 봉투에는 병원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어떤 서류보다도 무거웠다. 나는 순간, 끝났다고 믿었던 결혼이 다시 시작된 듯한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시작은 결코 우리가 원했던 종류의 시작이 아니었다. 대학병원, 낯익으면서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이 눈에 보이자 심장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차를 몰아 병원으로 갔고 아내의 이름을 찾았다. 중환자실. 아내는 혈액암 항암치료를 받던 중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에 걸렸다고 한다. 나는 두 가지 병명을 듣자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간호사가 면회를 위해 멸균 복을 입히고 마스크를 쓰고 면회 시간의 고지를 듣는 순간에도 정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파리한 아내의 얼굴을 보니 정신이 올곧게 섰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은 후 지쳐 잠들어 있는 얼굴만 보고 왔다. 면회 시간이 끝난 뒤 이혼 조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이혼 취소 요구를 수락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또 다른 시간이 찾아왔다.
아내의 폐렴이 좋은 경과를 보이고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뒤 나는 매일 퇴근 시간에 들러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는 주말 하루만 와도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병실 문을 열 때마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나를 맞았다. 흰 벽과 철제 침대 위의 그녀는 내게 더 이상 아내라기보다 환자였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웃으면, 그 순간만큼은 다시 연인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밤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정말 다시 부부일까, 아니면 환자와 간병인일까?’라는 물음이 목에 걸렸다.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내의 병실을 둘러보니 시계가 고장 나 있었다. 처음 올 때도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였다. 아내는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마치 우리 관계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지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다음 날 나는 작은 시계를 사 들고 병실에 갔다. 포장을 뜯으려다 잠시 손이 멈췄다. 괜히 아내가 쓸데없는 걸 왜 샀냐고 말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득, 이유 없는 선물도 우리 사이에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거, 네가 말하던 멈춘 시계 대신이야.”
나는 조심스레 건넸다. 아내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팔을 내밀었다.
“고마워. 이제는 시간이 다시 움직이네.”
아내는 조금 말을 멈춘 뒤 말했다.
“ 병실에 있으면 나 빼고 다 분주해. 하다못해 저 밖에 나무들도 옷을 갈아입는데. 나는 여기에 얌전히 있어. 나 없는 세상이 이렇게나 조용히 흘러가는 게 조금 쓸쓸하네. 나는 아직 여기 있는데. 이제 이게 내 거울이야.”
아내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나는 시계를 채워주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특별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우린 부부였고,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랑하듯 시계를 내밀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내의 앙상한 팔에 시계가 감기자, 멈췄던 우리 둘의 시간이 조금은 다시 흐르는 것 같았다. 미약하지만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닌 서로를 위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말했다.
“오빠 얼굴 보니까 좋네. 맨날 출근하는 뒤통수만 보니까. 얼굴 까먹었는데 우리 남편 많이 늙었네.”
아내는 시계와 노란 잎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나무를 바라보다 내게 말했다.
“오빠에게 있어서는 나는 몇 번째였어?”
나는 아내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가 싸우기 전 늘 내뱉던 전조 문장이다. 아내는 “오빠에게 있어서는 나는 뭐야?” 혹은 “나는 오빠에게 몇 번째로 중요해?”이고 나는 “제발, 어린 애처럼 굴지 마.”와 “오늘 말고 내일 이야기하자.”로 포문을 열었다. 설마 나는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 순간에도 싸우기를 원하는지 의문이 들어 눈의 저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내의 눈에는 별처럼 작은 빛이 돌았다. 진심으로 묻는 거다. 나는 호흡을 들이마신 뒤 처음으로 아내에게 진정한 나를 소개했다.
“나는 늘 나밖에 모르고 살아왔어. 그런데 너와 산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우리 둘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버텼던 것 같아.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집세도, 전기세도, 수도세도 못 내잖아. 그래서 나는 눈을 돌렸어. 참 편한 변명이었어. 넌 늘 여기 있었는데, 나는 늘 멀리 있는 우리만 좇았어.”
말을 잠시 멈춘 뒤 다시 숨을 고르고 해야 했던 말을 다 했는지 검토했다. 그때 어린아이가 자신의 보물을 숨기려 골방에 두었다가 잊어버린 것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해야만 하는 말을 어리숙한 나에게서 받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은 늘 너였어. 다른 누구도 아니야.”
아내는 꽃내음을 맡는 장난스러운 아이처럼 꽃받침을 하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니 빙긋 웃었다. 얼마 만에 아내의 미소를 보는지 모르겠다. 연애 때 이후로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코를 훌쩍거렸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말로 대답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그런 말 좀 같이 살 때 많이 해주지.”
방울방울 맺은 눈물을 조금 훔친 뒤 시계를 매만지며 말했다.
“나도 오빠가 우리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쯤은 알았어.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오니까. 근데 그 짧은 순간에 한 번만 나를 돌아 봐주길 기다렸어. 이기적인 걸 아는데도 그렇게 오빠가 힘든 걸 아는데도 계속 유치하게 그러고 싶었어.”
이제 아내의 눈물로 병원 이불이 조금씩 물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내는 속에 있는 말을 모두 토해냈다.
“미안해. 오빠. 끝까지 투정만 부리네.”
“미안해하지 마. 우린 싸우고 후회했어도 결국 여기에 같이 있잖아. 그게 다야.”
우리는 외면하지 않고 처음으로 화해했다. 거기에 서로의 환경에 대한 모욕도, 지난날의 탓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아내와 내가 가장 건강하게 화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병원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내의 상태도 나날이 악화해갔다. 의사와 상담할 때부터 상황이 안 좋아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안 좋은 줄 몰랐다. 일주일에 주말에도 병문안 왔던 나이지만, 더 오래 있지 못한 것이 내내 가슴 속에 결렸다. 아내는 침대에 겨우 얕은 눈가를 훔친 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오빠, 나 오빠랑 같이 창밖에 햇빛 보고 싶어. 하루, 종일 형광등 불빛만 보니까 너무 답답해. 따뜻한, 햇빛이 보고 싶어.”
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아내의 침대를 창가 쪽으로 옮겼다. 바람이 스쳐 들어오자, 아내는 가늘게 웃으며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런 게 다 선물이야. 오늘 이렇게 풍경을 보는 게.”
아내의 몸은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상태를 누구보다 아내는 힘들어했다. 누구보다 쾌활하고 움직이기 좋아하던 아내는 오랜 침묵 끝에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빠, 나 부탁이 있는데.”
“어, 뭐든 들어줄게. 말해봐.”
아내는 미약한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해줘. 공포에서 우리가 나눈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나는 그 말의 저의를 몰라 한동안 당황하다가 이내 뉴스에서만 보던 단어인 안락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내는 내 당혹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넋을 놓고 의사에게 다가가 아내의 선택을 말했다.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와 식은땀으로 젖은 아내의 머리칼을 조용히 넘겨준 뒤 손을 잡았다. 아내는 실눈을 조금씩 뜨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 나 이혼한 여자로 기억되기는 싫어. 적어도 오빠한테는 여전히 아내였으면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아내는 병약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이 순간에도 농담이라니. 나는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내는 나보다, 왜소해서 이런 순간조차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누구보다 강인하게 삶을 진지하게 살고 있었다.
의사가 준비를 마쳤을 때 병실 안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기계음, 복도에서 들리던 발자국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바늘은 여전히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천천히 와. 행복할 때 나 떠올려주면 좋고.”
나는 아내의 유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꼭 잡았다. 연애 때부터 꼭 잡아 온 손이지만 오늘은 유달리 따듯했다. 그 마지막 온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약물이 서서히 흐르자, 아내의 호흡은 잔잔한 파도처럼 잦아들었다. 마치 오래된 안락의자가 서서히 소리가 멎어가며 멈추는 것처럼. 아내의 손은 내 손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이내 툭 하는 소리에 시계가 멈추었다. 아내의 죽음이 시계에 각인되었다.
그 후로 모든 일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듯이 순차적으로 흘러갔다. 장례식까지 나는 정신없이 끌려갔다. 마침내 아내의 밝은 미소가 찍힌 사진과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한 뒤에서야 그때 아내가 내 곁을 떠나갔음을 절감했다. 그전까지는 아내와 닮은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아내도 어딘가에 있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밝게 찍힌 아내의 미소는 그녀가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함을 내게 밝게 선사했다. 나는 길이 나 있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은 기억에 이끌리듯 낯익은 골목으로 흘렀다. 집으로 바로 가는 길은 아니지만 왜인지 길이 익숙해서 발이 따르는 데로 내 의식을 내맡겼다. 지나가다 문득 옷 가게를 넋 놓고 보는데 잃어버린 목소리가 들린다.
“옷 예쁘다.”
아내 목소리다. 고개를 들어 들린 쪽으로 돌아보았지만 이미 목소리의 주인은 없다. 당연하다. 그건 그리움이 진동하는 소리니까. 마른세수한 뒤 무거운 다리 하나를 힘겹게 땅에 뽑아 올렸다. 그 자리에 있다간 지박령이 될 것 같았다. 오늘따라 익숙한 길에 공기가 무겁다. 폐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담배 끊은 지 5년이 되어 가는데 오늘따라 담배가 당긴다. 후하고 내뱉으면 몸이 가벼워질 것 같은데 아내의 당부 중에는 금연이 있었기에 오늘은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아내의 시계가 내 가슴을 툭 치는 거 보니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다. 나는 허공의 수신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따라 왜인지 귀가가 무섭다. 집에 가면 고독이 눈에 보인다. 빛이 들여진 곳에 그림자가 더 선명하듯 집은 너무 어둡다. 불을 켜면 킬수록 방 안이 더 어두워졌다. 전등 불빛이 가구를 비출수록, 아내 없는 자리가 선명해졌다. 나는 그 공허함을 버티지 못해 오래 서성이다가 결국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녀가 떠난 집을 한 번도 치우지 못했다. 청소란 곧 그녀의 사망 신고서에 직접 도장을 찍는 일이기에 나는 참 많이 머뭇거렸다.
아내의 물건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침대 머리에 놓인 머리핀, 10년째 취향이 바뀌지 않는 향수, 먼지가 하얗게 쌓인 소설책. 나는 하나씩 물건의 먼지를 치워가며 아내의 흔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내의 화장대 옆에는 한 번도 열어 본 적 없는 서랍이 하나 있었다. 서랍을 열어 먼지가 피어올랐고, 오래된 편지 봉투 뭉텅이가 눈에 띄었다. 연애하던 시절에 생일마다 쓴 편지였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것 하나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봉투를 쓰다듬었다. 시간이 꽤 되어 빛이 바랬지만, 한 글자씩 읽기 시작했다. 편지는 엉성한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채은아, 내가 지금 비록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하얀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이지만, 이마저도 사랑해주는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 남들 다 가는 곳 데려가지 못해서 늘 마음이 걸려. 그런데도 네가 늘 괜찮다고 웃어주는 모습을 보면 나는 내일을 다짐하게 돼. 너랑 함께 있으면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이 세상도 조금은 따듯해지는 것 같아. 요즘 나는 꽃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지나치는데 예쁜 꽃 보면 너랑 한번 보고 싶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너가 제일 먼저 생각나. 언젠가는 번듯한 집 하나에 우리가 같이 살고 좋은 거 같이 보고 웃는 그런 친구 같은 부부가 되고 싶어. 늘 부족한 나를 조금 더 믿어주고 아껴줘서 고맙고, 언젠가 네가 ‘괜찮다’ 말보다 ‘행복하다.’ 말을 하게끔 해줄게. 언제나 믿어줘서 고맙고, 많이 사랑해.”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뒤로하며, 편지의 나머지를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비교적 색 바라지 않은 편지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나는 이런 편지지에 써 준 적이 없다. 의아해하며 편지지를 열었을 때 예쁘고 정갈한 글자가 중간까지 적혀 있다.
“오빠 편지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서 엉성한 거 알지? 이해해줘. 나는 늘 오빠한테 편지만 계속 받았는데 한 번도 답장을 쓴 적이 없어 미안해. 항상 오빠가 글 잘 쓰는 게 부러웠어. 오빠 글에는 나조차도 모르는 내가 있은 것 같았거든. 오빠 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내가, 정작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신기하지? 오빠가 본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는 늘 부족하고 서툴다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적어준 글 속의 나는 웃고 있고, 빛나고 있더라, 그게 참 이상하게도 힘이 됐어. 언젠가부터 오빠와 내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보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만 계속하게 된 걸 보고 참 무서웠어. 그때 나는 문득, 오빠 눈 속에서 예전의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꼈어. 밝고 씩씩하다고 믿어주던 내가 아니라, 서운함과 원망으로 얼룩진 얼굴만 남는 것 같았어.
그게 제일 두려웠어. 언제가 오빠 눈에도 내가, 그냥 흔한 사람, 함께 살았지만 금세 잊히는 사람으로 남을까 봐. 그래서 오늘은 조금 무리해서 이렇게라도 글을 남기고 싶었어.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오빠, 나는 오빠가 기억하는 순간처럼 더는 웃지도, 힘차게 걸어 다니지도 못할 거야. 몸은 점점 말을 안 듣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가 끝내 부부로 남았다는 거야. 혹시라도 서류 한 장으로 등을 돌렸다면, 나는 훨씬 더 무서웠을 거야. 이 순간에도 오빠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는 게 참 따뜻하네.
그러니까, 오빠. 부디 오빠가 기억하는 내가 마지막까지 웃고 있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 서운하고 원망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날, 나는 오빠 덕분에 빛났다는 걸 꼭 기억해줘. 그게 내가 오빠와 살면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니까.
끝까지 사랑해, 오빠. 그리고 내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ps.
아 마지막으로 담배는 꼭 끊었으면 좋겠어. 내가 아파보니까 병원은 살면서 꼭 멀리해야 하는 곳인 것 같아.”
아내가 병원에서 쓴 편지이다. 나는 편지를 시계가 있는 호주머니 반대쪽에 집어넣고 잠시 마른세수했다. 어느새 손이 너무 축축해져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눈도 씻었다. 한동안은 화장실에서 못 나왔다. 아내의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추억이 돌부리처럼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참이 더 걸렸다. 마침내 마지막 상자를 닫고 나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현관을 가는 내내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 여기에 책상을 이렇게 놓고 저기에는 이 벽지로 하자.”
커튼 자락이 흔들리면 “우리 집은 남방이니까 햇빛이 많이 들겠지? 이 커튼 어때? 예쁘지 않아?”하고 웃던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내의 짐을 정리하면 할수록 아내의 얼굴이 더 선명히 살아났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빈집에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리고 보고 있을 아내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내의 시간이 새겨진 시계를 보려고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꺼내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시계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찔한 마음에 시계를 보니 집에서 고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시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바늘이 아내를 지나고 있었다. 그제야 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내다운 작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