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가면
11월 18일, 선선한 가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문경은 어둡고 밝은 구름들로 누덕하게 채워진 하늘 아래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경은 그녀가 지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이유이자 그녀를 기대와 긴장으로 부풀게 만든 근원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고, 문경은 맑은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루를 열어주는 남편의 목소리는 달콤했고, 그가 정성껏 만들어준 샌드위치와 커피는 감성적인 그녀를 감격시키기에 완벽했으며, 들뜬 마음에 처음으로 시도해본 핑크색 톤의 화장과 코발트블루 색의 폴로 가디건은 본래 그녀 자체의 모습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문경은 비 오는 날을 싫어했지만, 오늘같은 날은 왜인지 날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러 간다는 문경에게 남편은 우산을 건네주며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을 남겼다. 바깥의 세상은 한가로이 내리는 부슬비가 거리거리의 색채들을 더욱 선명한 빛으로 바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고즈넉함 속에서 외투를 어루만지거나 하늘을 굽어보기도 하면서 주말 낮 풍경의 평온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문경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3시 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 시간은 3시였다. 문경은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친숙한 모습의 그녀는 13년만에 보는 친구를 마치 어제도 봤던 것처럼 문경을 맞이했다. 소라라는 친구는 중학교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똑같은 자연갈색의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언제나 일련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옷차림, 두껍고 동그란 안경을 쓴 것까지 모든 게 놀랍도록 그때와 닮아 있었다. 문경은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덤덤한 반응으로 나오는 그녀를 보고 속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소라에게 늦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얼마나 기다렸느냐고 물었다. 소라는 자신도 방금 왔다고 말했다. 문경은 이내 추억을 되새기는 듯한 인자한 미소로 넌지시 말을 던졌다.
"그때랑 하나도 안 변했네.“
"보이는 건 똑같지?"
소라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예사로운 미소도 학창시절에 줄곧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아직이냐고 그녀가 묻자, 한 명은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늦고, 다른 한 명은 막 나오려던 참에 부모와 언쟁이 오가는 바람에 약간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고 소라가 말했다.
"난 처음 듣는 말인데." 문경이 말했다.
"오늘 동창 모임 내가 주선했잖아. 일일히 말하기 번거로우니 그랬겠지." 소라는 자신이 제일 먼저 도착했으니 피차 잘 된 거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소라는 이 카페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로 수제 바닐라빈 라떼를 추천했다. 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20분쯤 지났을까, 한나와 주연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평온한 모습이었다. 겨울잠을 양껏 자고 느긋하게 일어난 곰의 형상처럼 두 사람은 활기를 띈 채 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소라는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둘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그동안 대략 어떻게 살고 지냈는지, 애인과 있었던 일부터 독립을 원하는 자신과 부모의 갈등에 대해서, 직장 상사에 대한 증오와 존경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마음에 대해서, 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에 대해서 각자의 열변을 털어놓기 바빴다. 문경은 오랜 친구들을 보며 웃었고, 반가움과 떠들썩함이 가져다주는 생기에 속절없이 흘러들어갔다. 10년이 넘는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그들은 음료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진동벨을 쳐다볼 새도 없이 그들만의 정취에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뭐가 어찌되었든 현실을 정신없이 살아내던 각자의 삶 속에서 지금 이 시간만큼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같이했던 친구들과 함께 있다. 또 서로의 삶의 한 조각을 나누고 있다. 달갑지 않은 다른 생각들은 왁자지껄하게 피어나는 그들의 목소리와 커피머신 같은 소리들에 섞여 맥을 잃고 사라졌다. 카운터에서 바닐라빈 라떼 두 잔을 들고 돌아온 한나와 주연은 소라와 문경보다 더 거리낌 없는 사이처럼 보였다. 소라의 말에 의하면 한나와 주연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현재까지도 종종 만났었다고 했다. 문경은 처음 아는 사실들이 많다고 말했고, 주연은 웃으면서 이쯤 되니 떠날 사람은 자연스럽게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게 됐다는, 다소 현학적인 말투로 자신의 깨달음을 수더분하게 드러냈다. 대학교 때 철학을 전공했다는 주연은 그들이 처음 같은 학급의 같은 나이로 만났던 중학생 때부터 남들과는 어딘가 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부분이 있었다. 문경은 주연을 비롯한 네 명과 우정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시간들 틈에서 주연이 차지했던 영향력을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주관이 확실했고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이 몸에 배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기에 주연의 그런 면은 타고난 것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본인이 말한대로 "불행이 최고조" 에 달했던 중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그녀가 스스로를 정제하고 많고 깊은 생각들을 거치면서 마침내 도달한 초연의 경지일 것이었다. 주연은 매사에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현자같은 사람이었다. 주연은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현재는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는데, 본인은 매우 강하게 독립의 뜻을 피력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부모를 굴복시키기 쉽지 않은 듯해보였다. 문경은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한나와 주연을 차례로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버스 사고의 진위에 대해 한나에게 물었다. 한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요 앞 사거리에서 추돌 사고가 있었어." 한나는 자기 앞의 놓여 있는 빨대로 음료를 저었다. 이에 소라가 반문했다. "큰 사고였어?"
한나는 소라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랜저가 지바겐을 들이받았나 보더라고."
한나는 키가 작고 통통한 체구에 딱 달라붙는 연하늘색 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팔 곁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은색 빛의 체인 가방이 있었다. 한나는 앞머리 없는 중단발 머리에 끝에는 숱을 약간 쳤고 마치 요즘 유행하는 것이라면 다 해보고 싶은 어린 소녀의 열망을 간직한 채 자라버린 느낌을 가진 여자였다. 얼굴이 하얗고 살결이 고운 데다 전체적인 외양이 동안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 전혀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나 본인도 늘 젊은 채로 있고 싶은 바램이 있는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면 늘상 발랄하고 귀여운 옷차림만을 고수했다. 한나는 꽤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이제 막 돌이 지난 쌍둥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앞장서서 누군가를 변호하거나 지켜주는 용맹함은 없었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기대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동창들은 그런 상냥함을 사랑했다. 실제로 그녀들은 가령 부모와 싸웠다던가, 시험을 망쳤다던가, 아끼던 무언가를 버려야만 했던 상황 등에서 한나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갈구했다. 한나는 그럴 때마다 개의치 않고 그들을 받아줬다. 아무리 결과와 빠른 해결이 중요한 사회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진심 어린 위로인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면서 자신의 능력치를 부풀리고, 자신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아프고 쓰라릴 때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준 존재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언제든 나약할 수 있는 존재다. 한나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무게 실린 말의 중요성을 잘 알았고, 그렇기에 자신이 받은 따스함을 남에게 실천할 수 있었다.
"요즘 서울에 추돌 사고가 그렇게 많나 봐. 뉴스에서도 계속 그 얘기야. " 주연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네도 운전 조심해. 특히 문경이 며칠 전에 차 새로 뽑았다고 했잖아."
"내가 감히 사고를 낼 위인이라고 생각해? 내 성격 알잖아, 겁 많아서 어디 흠집이라도 낼까 주차도 겨우 하는데."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벌어지는 거야. 우리 중학교 떄 걔 누구지, 그 부모님이 꽃집 하시고 되게 꼼꼼하셨던... "
"수민이?"
"그래. 걔 부모님이 장사 하느라고 연중무휴로 일하셨는데, 몇십년만에 쉬려고 휴가 갔다가 교통사고 나서 돌아가셨잖아."
수민의 부모님은 매사에 진지하고 빈틈없는 사람들이었다. 문경은 강경한 그들의 모습에 약간 서늘함을 느꼈던 지난 날을 떠올렸다. 주연은 언젠가 그들 넷이 수민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식물과 꽃을 그 진땀 어린 정성스러운 손길로 하나하나 솎아내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 매사에 철두철미하신 분들이 조심 안 하셨을 리가 없는데. "
"안타깝지. 수민이는 그렇게 한동안 학교 못 나오다가 졸업하고."
"사람 일 혹시 몰라. 주연이 제외하고 다들 그런 일 안 생기게 주의해. 특히 오늘처럼 비 오는 날. "
소라가 어르듯이 말했다.
주연이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아까까지 선선하게 내리던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람들을 센치함으로 물들게 했던 기분 좋은 가을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얼룩진 채 먼지 섞인 허연 잔재로 뒤덮여 있었다. 빗줄기가 이제는 거의 폭우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연이은 천둥번개 소리도 들려왔다. 문경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주연은 커피를 마셨다. 소라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반쯤 녹은 얼음밖에 남지 않은 컵에 시선을 고정하다가 교묘한 눈길로 친구들을 살폈는데, 그 움직임이 매우 날래고 조심스러워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도 비가 많이 왔었는데."
누군가가 턱을 괴며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문경은 순간 찬물을 맞은 듯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탁하고 시린 공기가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무슨 날?" 주연이 물었다.
온 교실이 침묵으로 가득했던 날.
한나가 의아한 눈으로 소라를 쳐다봤다. 소라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딱 오늘처럼 폭풍우가 치던 날, 네가 전학 갔잖아. 소문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하나가 누군가를 집어삼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사실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을 뱉어버린 순간부터 모든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단 한 명이 노를 저음으로 인해 두 명은 자동으로 물살 위를 가로지르는 꼴이 되었고, 한 명은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고,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무슨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모든 게 불확실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 말이 세상에 던져진 이후부터, 이곳 서울 중심지에 있는 대형 카페에 모인 네 명의 동창생들 모두가 일제히 누가 가장 보통의 사람인지 따져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문경은 굳게 닫힌 입으로 가만히 짙은 테이블 아래를 응시했다. 주연은 소라를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꺼낸 장본인은 천진한 얼굴빛을 띄고 있었다. 네 명은 마치 인적 없이 시커먼 한밤중에 커다란 야생 동물이라도 만난 것처럼 말문이 막혔다.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문경이었다.
"동창들끼리 진짜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옛날 얘기를 하는 건 좀 그렇네. "
문경은 웃어보였다. 한나는 불안한 눈길으로 그들을 살폈고, 주연은 아까부터 침묵을 지킨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라는 13년 전 그날의 주인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 의중을 알 수 없는 난폭한 광선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소라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했다.
"1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아픈가 보구나?"
한나가 경악했다. 그녀가 무어라 말했지만 그럴수록 소라는 점점 의기양양해졌다.
"각자 자기 마음들에 좀 충실해져봐. 스스로를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라고. 뭘 그렇게 숨겨?"
한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주연은 오른발로 자신의 왼발 뒷꿈치를 몇 번 찼다.
"그때 일, 문경이한테는 힘든 일이었어. 우리 다 알잖아. 그때 문경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허!"
소라가 주연을 향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조소를 터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웃긴다."
주연이 도끼눈을 뜨고 소라를 쳐다보았다. 소라는 기세등등하게, 그러나 조금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경은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때 그 교생이 날짜를 다 채우기도 전에 도망치듯 떠난 이유가?"
소라는 문경의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머지 두 명에게 뻗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솔직히 너네, 그 소문 진심으로 믿었잖아. 어차피 다 지난 일이니까, 가슴에 손을 얹는 심정으로 말해봐.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건데?"
"말했잖아. 우리는 스스로를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왜, 십 몇년만에 즐겁자고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니까 놀랐어? 알겠다. 너 지금 불안하구나. 꽁꽁 싸매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겨 놨는데, 그 상자를 내가 찾아버려서. 심지어 열쇠도 쥐고 있네? 자, 이제 어떡할 셈이지?"
"너..."
"이제 그만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얘들아. 소라 너도 그만둬.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 지나쳐. 당사자한테 좋은 기억이 아닌 일을 이렇게까지 끄집어낼 필요는 없잖아."
"아니, 뭘 꽁꽁 싸매고 뭘 아무도 보지 못하게 숨겨 놨다는 거야?"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문경아, 네가 그때 많이 힘들었다는 거 알아. 근데 우리도 많이 당황스러웠어. 그때 애들이 하도 그 소문을 진짜인 것처럼 몰고 가니까..."
"근데 그렇게 당당하면 전학을 갈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아?"
"솔직히 그때 그 사람이랑 네가 다른 친구들보다는 훨씬 가까워 보였던 건 사실이야.“
“그리고 교생한테 개인적으로 편지를 받은 적도 있었잖아”
“잠깐,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는 너한테밖에 안 말했는데, 주연아.”
“...진짜 그 소문을 퍼뜨린 게 너였어?”
“주연아.”
“...”
“말도 안 돼.”
“적어도 이것 하나만 말할게.”
"난 그 교생이랑 친했어. 수업 관련해서 무언가를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줬거든. 난 그 친절함이 좋았어. 하지만 난 그저 역사 공부를 좋아하던 학생이었고, 그 교생이 역사를 가르쳤을 뿐이야. 나랑 그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파문?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그 소문이 온 교실을 휩쓸고, 같은 소문으로 묶인 그 사람이, 그것도 한참 어렸던 내가 보기에 무척 커 보였던 어른이 나에게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고 한순간에 외면해버린 사건? 너네가 그 사건의 당사자였다면 과연 어깨를 당당히 펴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까? 난 그러지 못했어. 부끄러운 과거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해."
"그때 우리는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거야. 뭐에 씌였던 게 분명해.”
이윽고 문경이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에는 환한 빛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