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다시, 그날처럼
1
때 아닌 아침부터 알람이 귓가에 울렸다. 습관처럼 무시하려 했으나 곧 오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부자리를 거두며 상체를 일으켜 새삼스레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사는 집은 춘천 외곽에 위치한 시골마을 끝자락의 허름한 주택이었다.
낡았지만 튼튼한 나무책상 위에는 본가에서 챙겨온 책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옆의 반듯한 서랍장은 잡다한 기구들을 품은 채 굳게 닫혀있었다. 창가에 걸린 커튼은 내리쬐는 햇볕을 금빛 비늘처럼 걸러냈다.
시선의 마무리는 침대 옆에 기대어둔 목발에 향했다.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좀처럼 적응하길 거부하는 듯했다. 왼쪽 옆구리에 목발을 끼우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타인이 보기에 남루한 살림살이겠으나 묘하게도 집은 나의 삶과 닮아 있었다.
외따로 서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고독하면서도 풍족한 온기를 품은 자리. 도시와의 접점이 끊겨버린 이 공간에서 나는 고립이 아닌 안식을 느끼고 있었다.
책들이 나의 대화 상대였고, 닳은 가구들이 단단히 제자리를 지켜줬다. 세상이 시끄럽게 변해가더라도 이곳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감는 것을 시작으로 외출 준비를 다그쳤다. 찬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닫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다. 잠깐 밖을 내다보니 포장도로 위에 은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운동화를 꿰어 신고, 현관문을 열자 늦가을의 추위와 함께 친구가 불쑥 들어왔다. 안경에 한순간 서리가 끼었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의 검은 코트 소맷자락에서 긴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의 손으로 밖의 기온을 가늠했다.
“생각보다 바깥이 춥나보네. 후드재킷 하나로 괜찮겠지?” 내가 물었다.
“어차피 차로 이동하잖아. 최근에 언제 나갔어? 사람은 만나?”
“아니, 원고 작업이 한창이라 이 방에 틀어박혀있는 편이야. 만날 사람도 없는데다 시골이니까. 텃세 부리던 주민들도 지쳤는지 찾아오질 않네.”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의 처신은 대비되었다. 그럼에도 친구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져온 두터운 우정 덕분이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사이였다. 몇 마디 말로도 서로의 공백이 금세 메워지는 듯했다.
“준비 끝난 거지?”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지. 문 좀 잡아줘. 조금이라도 편하게 걷고 싶어.”
현관을 꼼꼼히 잠그고 한명의 뒤를 따라 승차했다. 차 안에는 잡다한 서류와 야구모자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검은 더플백에 몽땅 우겨넣었다.
“너도 여전하구나. 청소 좀 하고 살라니까.”
“우리가 괜히 친구냐?” 한명이 시동을 걸면서 내뱉었다.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쉬지 않고 회포를 풀었다. 어느새 차창 밖 풍경은 시골의 고즈넉함에서 점점 시내의 활기로 변해갔다. 북적이는 거리에 들어서자 잊고 있던 풍경들이 차차 눈에 들어왔다.
맑은 하늘 아래 늘어선 상가와 골목 사이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안고 거리를 누볐다. 도착한 식당은 남춘천역 인근에 위치한 숯불닭갈비집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숯불에 고기가 타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고, 실내는 전통적인 나무 기둥과 따뜻한 조명으로 꾸며졌었다.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 밑반찬과 신선한 쌈 채소가 담긴 바구니가 나오고, 양념된 닭다리 살과 비빔 막국수, 물 막국수, 공깃밥 등이 차례로 정갈하게 차려졌다.
모든 음식에 윤기가 흐르고 기름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식사였지만 어색함은 한 점 없었다. 서로를 배려하듯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식탁 위에는 너그럽고 따뜻한 공기가 가득 흘렀다.
“요즘 회사는 잘 돌아가?” 나는 문득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결국 피할 수 없는 현실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젓가락을 열심히 놀리면서도 씁쓸하게 웃었다.
“반도체 시장이야, 전쟁터지 뭐. 하루가 멀다 하고 엎치락뒤치락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도 임직원분들 모두가 힘내서 일하는데 감사할 따름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 한 숟갈을 펐다.
“그래도 네가 있으니 버텨내는 거 아냐? 원래 뚝심 하나는 남다르잖아.”
그가 잠시 나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곧 수긍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야, 그런 소리 들으니까 힘은 난다. 하지만 뚝심도 밥은 먹어야 나오지 않겠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릇이 비어갈 때쯤이었다.
한명이 태연하게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너 있잖아. 그… 이다애, 걔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
“연락 안 한 지 1년은 지났어. 핸드폰 번호도 바뀌었고, 몇 번 왔었던 문자도 무시해버렸었어. 이런 절름발이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겠어? 그냥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거지.”
“너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것도 여전하구나. 일주일 전에 걔가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길거리 공연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명해졌어. 혹시 관심 있으면 네가 한 번 가보면 좋겠다 싶더라. 위치는 아쉽게도 네 집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홍대입구역 쪽이야.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한다는 것 같던데 나는 일이 바빠서 엄두가 안 나. 너라도 응원해주는 게 어때?”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에 처한 자신이 내릴 결정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얼핏 들려오는 옆 테이블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야야, 잘 좀 생각해봐라. 사람 인연이란 게 참 기묘한 거거든. 한 번 끊어졌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야. 네가 그걸 놓치면 두 번 다시 못 볼 수도 있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가서 확인해보는 게 맞지 않겠냐? 미루다보면 결국 후회하는 게 인간이야. 미련한 짓은 이제 그만두라고. 완벽한 순간만 기다리다 쫄딱 망한 사람도 봤다니까.”
그들 사이에서는 그저 그런 충고였겠지만 나에게 닿는 순간에 강한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눈을 뜸과 동시에 명확한 어투로 대답했다.
“좋았어. 한 번 가볼게. 나도 한 번쯤은 다시 만나보고 싶었어. 물론 다시 만나자거나 다른 사적인 기대는 안 해. 네 말대로 응원해주고 싶어. 내 꿈을 격려해주고 의지해준 사람도 그녀였으니까.”
“그 말은 다애한테 가서도 꼭 해라. 네가 소설로 먹고 사는 동안 그녀는 노래를 고집한 거야. 둘 다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신기하네. 본인이 한두 번 음악을 포기하고 싶다한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도공을 빗대어 조언했던 게 아직도 떠올라. 장인은 완벽함을 추구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도자기를 깨부수지만 그것조차 다른 이에겐 흡족한 작품일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간다면 미래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었어. 나는 지금도 그 생각으로 살아가. 누군가 해줬으면 싶었던 말이었어. 오늘에는 소설이 큰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고, 창작의 고통이 몹시 괴로워도 이것만큼 나를 매료 시킨 것도 없었어.”
“늘 하는 말이지만 돈 문제라면 혼자 끙끙 앓지 마. 필요하다면 언제든 얘기해. 내가 도울 수 있다면 그건 나한테 전혀 부담이 없다.”
한명과의 만남은 늘 이런 식이었다. 가족만큼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위로를 받고 기대게 된다. 동갑이지만 어쩔 때는 형처럼 느껴진다. 또래보다 이르게 사회생활을 부단히 노력해봤기 때문이리라. 그의 재산이 아니라 태도가 부러웠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를 끝냈다.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었으므로 당장 서울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친구의 차를 타고 집에 들러 간단히 짐을 챙긴 뒤 다시 춘천역까지 함께했다. 차에서 내리며 한명에게 ‘회사에서도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고, 그는 웃으며 ‘서울에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땐 홀가분했으면 좋겠다’고 응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서로의 마음을 깊이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전역 이후, 처음 마주한 서울은 낯설 만큼 눈부셨다.
고개를 들어 올릴수록 유리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첨예했고, 보도 위에는 여유라곤 찾을 수 없는 직장인들과 카메라를 쥐고 서성이는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창밖의 풍경은 영화의 필름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홍대에 가까워질수록 노을이 짙어져 태양이 한강 끄트머리에 겨우 걸렸다.
홍대와 가까워진다. 그녀와 가까워진다.
한명이 남겨준 인터넷 링크를 통해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화려한 주변 건물을 비교해 금방 공연장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른 저녁시간대임에도 식당가는 예약까지 꽉 채워져 있었고,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방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발걸음과 웃음소리는 나에게 이 도시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과 변치 않게 번성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공연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그녀에게 들키길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대감을 억누르지 못해 진이 빠졌다. 멀리서 빨간 목도리를 두른 그녀가 걸어왔다. 염색한 머리 외에는 변함없이 겨울의 청녀靑女처럼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단아했다.
다애는 익숙한 일거리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악기를 꺼냈다. 그녀의 곁에는 남성 동료가 있었고, 스피커와 마이크를 설치하며 음량을 조절했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던 과거의 필름에서 우리의 꿈을 직접 공유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집에서 챙겨온 책을 펼쳤다. 좋아하는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검은 활자는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에 어떤 음색을 들려줄지, 기타의 음률이 경쾌할지 처절할지, 사소한 것조차 자꾸만 궁금해졌다. 같은 예술가로서 그 작품 속에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기대와 불안, 두 감정이 뒤엉킨 채로 기다림은 길게 이어졌다.
2
새벽부터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며 드라이기의 전원을 켰다. 연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카락은 천천히 말라갔다. 오늘은 여배우나 아이돌보다 예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버지가 나를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아니면 깔끔한 정장을 입고, 내 이름이 크게 새겨진 명함을 보여주는 것을 더 좋아하시려나.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나는 어머니, 남동생을 데리고 봉안당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공기는 싸늘했으며 정적이 흘렀다. 네모나고 규칙적인 유리장 안에서 차가운 광을 내는 작은 유골함, 생전의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가 우리를 반겼다. 남동생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맥없이 조화를 들어올렸다. 나는 그의 손에서 꽃을 빼앗아 아버지의 곁을 깔끔하게 꾸며주었다.
“여보가 준 꽃을 받기만 했었는데…” 어머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음 한편이 죄책감과 불쾌감으로 욱신거렸다.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면 매사에 신중하셨던 아버지가 급가속한 차량에 치이지 않았을 테다. 이렇게 냉혹하고 좁은 한 칸 안에 갇히게 만든 것 또한 미안했다.
빈자리를 채우는 감정은 슬픔과 절망이었다. 눈물을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남동생이 고등학교에 등교해야 했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가게로 출근해야 했다. 가족을 위해서 가족을 저버려야 하는 현실이 미웠다.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이었다.
그런 생각을 곱씹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렀다. 무정한 것 같지만 시간만큼 확실한 약은 없었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금요일이 찾아왔다. 일주일 중 가장 고대하는 날이.
“퇴근하기 직전에 말해서 미안한데 쓰레기봉투 좀 쓰레기장에 던져줄래? 오늘 홀, 주방이 둘 다 바빠서 한 번만 부탁할게. 그리고 이거 집에 가서 먹어.”
사장님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비닐봉투를 나긋하게 건넸다. 플라스틱 용기 안에 김치볶음밥과 된장국이 깔끔하게 포장돼있었다. 기분 좋게 재활용 봉투를 쥐고 뒷문으로 한식당을 나섰다.
아버지의 기타를 품에 안으면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 마음이 포근해졌다. 내게 선뜻 공연을 시작하고 부추긴 이는 남도호였다. 그는 나와 같은 대학교의 밴드 동아리에서 같이 작업했던 친한 오빠였다. 음색은 재능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다루기 어려운 기계 장비를 손수 맡아줬다.
그래서인지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활동키로 다짐했었다. 공연 중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개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기 바빴고, 오가면서 잠시 멈춰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가끔 술을 마시고 진상을 부리거나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주눅이 들 것 같으면 목소리 높여 있는 힘껏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분주한 인파 속에서 불현듯 시선이 한쪽에 머물렀다. 낯선 얼굴 사이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는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날 무렵까지 과묵히 자리를 지키다 목발을 짚고 뒤돌아 사라졌다.
나는 다 이해하려 애썼다. 그가 왜 다리를 다쳤고, 내가 보낸 메시지들을 무시했는지.
대략 이 년 전, 늦겨울의 재즈 카페였다. 너울은 입대를 앞두고 나와 원형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길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준비되었다는 듯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진심이고 오래 고민한 거야. 너에게 미리 털어놓지 못해 미안해.”
난로로 데워진 따뜻한 공기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사뭇 쌀쌀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지겨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입대라는 현실이 가져올 거리감과 기다림의 무게를 알면서도 내 마음은 영원할 것이라 잔인하게 거짓말했다. 그는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결심한 안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서로를 위해 잠시 놓아주는 거야. 이기적이지만 이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것은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어려운 문제야.”
그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너울은 더 이상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었다. 무슨 말을 해줘도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품에서 분홍색 편지봉투를 꺼내더니 내 손에 쥐어줬다.
“전역하고… 그때도 애정이 남아있다면 다시 만나줘. 이 편지는 나중에 외로워질 때 읽어봐. 못 다한 말들이 들어있을 거야. 넌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고, 자유롭게 살아야 너다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마음속에서는 붙잡고 싶다는 열망과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뒤엉켜 서로를 갉아먹었다. 그와의 미래는 헤아릴 수 없는 안개 속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손을 단단히 붙잡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두는 사이 알게 모르게 서로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날의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지 불투명한 미래와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으려는 배려가 우리를 갈라놓았을 뿐이었다.
이별한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이었다. 소파에 앉아 부모님이 틀어둔 텔레비전을 생각 없이 시청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기자가 임진강 인근 갈대밭에 서서 한 달 전 벌어진 무장 공비 사건을 보도했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군의 위상이 올랐다며 기뻐하셨다. 나는 헤어진 애인의 얼굴을 뉴스로 처음 보았다.
총알이 오른 다리를 관통 당했지만 임무를 끝까지 책임진 자랑스러운 병사로 짤막하게 소개된 것이었다. 정너울, 이름 석 자가 뇌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문자를 남겼다. 처음 몇 개월은 짧지만 세심한 답장이 돌아왔다.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만나자는 말부터 응답이 단절되었다.
얼마 안 되어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매달릴 데가 없었다.
나는 그제야 너울의 편지를 뜯어 읽었다.
팬들의 말 없는 응원에 힘입어 길거리 공연을 이어가다 보니 하나둘 우리와 협업하고 싶다는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도호였고, 작업실에서 머리를 맞대는 날이 많았다.
서로 고생한 만큼 의지했고, 오래 함께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산 내역이 내가 아는 금액과 달랐다.
애써 담담히 물었지만 도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네가 모르는 비용이 좀 있어서 그래.”
“그럼 미리 얘기라도 했어야죠. 우리 다 투명하게 하자고 했잖아요.”
“너, 나 못 믿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달랐다.
“아니, 믿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냥 정리하자는 거죠.”
“정리?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나 혼자 여기까지 온 줄 알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불안, 분노, 그리고 묘한 서운함이 뒤섞여 있었다. 잠깐 망설였다.
그가 얼마나 이 팀에 진심이었는지 알기에.
“오빠, 나도 감사해요. 근데 이건 일 문제잖아요. 서로 선은 지켜야죠.”
“선? 너한텐 이제 선만 남은 거야?”
그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그게 뭐가 그렇게 서운했을까. 말이 꼬이고,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그가 다가와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힘이 세진 걸 그때서야 느꼈다.
“그만해요. 진짜 이건 아니잖아요.”
“나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순간, 그의 손이 한층 세게 조여 왔다. 살이 타들어가는 듯 아팠다.
그제야 이게 더 이상 말다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놔요.”
숨이 막히는 사이, 머릿속이 하얘졌다. 믿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분노와 욕망이 섞인 그의 얼굴은 낯설고, 칼날처럼 차가웠다. 놀란 나는 몸을 비틀어 그를 뿌리쳤다.
찰나의 틈을 타 숨 가쁘게 작업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계단 아래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던 순간, 이미 문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너울과 한명이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도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너울에게 미리 연락해둔 상태였다.
그날도 작업실 근처에서 기다려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했었다.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놀람과 분노, 그리고 결의가 동시에 비쳤다.
너울이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손의 온기 덕분에 겨우 정신을 붙들 수 있었다.
“너희 뭐야?” 도호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훑었다.
“그만하세요.”
너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더 이상 선은 넘지 맙시다.”
“절름발이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도호는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맞섰지만, 오히려 주눅이 든 건 그쪽이었다.
그때 한명이 차분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화면엔 녹화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미 다 찍고 있습니다. 허튼 수작 말아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호의 표정이 굳더니 곧 골목길 쪽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제 괜찮아. 끝났어.”
너울의 말이 들리자 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왼쪽에서도 똑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나와 다르지 않게 너울 역시 두려움을 억누르며 버티고 있었다.
3
수색조는 두 갈래로 나뉘어 철조망을 따라 은밀하게 기동했다. 바람은 솜털을 간지럽히는데 그쳤고, 늪지에서 개구리와 귀뚜라미가 음악회를 열 듯 울음소리를 뽐냈다. 강을 끼고 남북으로 갈라진 지역은 지오피와 견주면 느슨한 편이었다. 나와 선임은 총구를 내리고, 여단본부와 통신 연결에 집중했다.
한편, 홀로이 감시 초소에 올라가 조명을 비추던 소대장은 사납게 발을 굴렸다. 일직선의 빛줄기가 흔들리는 수풀을 훑었다.
어둠 속에서 갈대가 꺾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모두의 심장은 요동쳤다. 나는 사슴처럼 주위를 경계하며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꾀했다. 초소에서 숨죽인 목소리가 내려왔다.
“소리 내지 마라. 전방 3시 방향에 적이 출현했다. 실탄 장전해.”
엄중한 소대장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한 번 더 반복되었다. 침이 메마르고 노리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전투화가 질질 끌리는 소리마저 거슬려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한 차례 세차게 우리와 갈대밭을 핥고 갔다.
그 순간, 살기 도는 적군의 안광이 드러났다.
“사격 개시!”
소대장의 침착한 외침을 처음 듣고 괴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방아쇠를 느지막하게 당긴 결과를 맞이했을 때 하찮은 감각이었음을 깊이 깨우쳤다. 강변에서 순식간에 날아든 총알이 종아리와 허벅지를 관통했었다. 군복이 무언가에 젖어 피부에 딱 달라붙는 감촉이 꺼림칙했다. 당시에는 교전이 한창이었던지라 맞은 지도 모르고 지휘관의 명령에 귀를 기울였다.
무장 공비들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겁도 없이 날뛰었다. 화력의 우세를 점하지 못했더라면 송장이 되는 건 우리 진영이었을 터였다.
“지혈대 꺼내. 박종현 하사, 얼른 상부에 보고해!”
소대장이 그토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나는 내 몸 상태를 인지하기도 전에 힘이 풀려 기절해버렸다. 눈을 떴을 때,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심각한 발언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깨어난 줄도 모르고 냉정하게 상황을 논했다.
“다리를 자르는 편이 나을 거야.”
“그래도 지켜보죠. 아직 젊으니까 금방 나을 겁니다.”
“너도 잘 알잖아. 수술실에 손 빈 인력도 없는 데다 어차피 불구가 될 거야.”
그제야 꿈이 아님을 실감했다. 포상휴가도, 포상금도, 훈장도 없었고, 그저 불행히 총에 맞아 잃어버린 다리만 남았다. 같은 작전에 투입됐던 전우들이 멀쩡히 걸어서 병문안 왔을 때,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게 더 서러웠다. 그들의 발소리가 병실 문턱을 넘을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깎여 나갔다.
남아 있던 영광과 명예는 정치인들의 입놀림 속에 금세 잊혔다.
그토록 목숨을 걸었던 일이 뉴스 한 줄로 끝났다.
밤이면 병실 불이 꺼지고, 남은 다리 한쪽이 허공을 더듬을 때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잘려나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휴대폰 속에 쌓여 있던 문자였다.
‘괜찮아?’, ‘다친 데는 좀 어때?’
그 속에 다애의 이름도 있었다.
다시 보자는 그녀의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절름발이인 나를 드러내는 일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답장은 쓰지 못했다. 화면 위에 깜빡이던 바만이 끝내 내 마음을 대신해 떨고 있었다.
나는 회상을 끝내고,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키로 계획했다. 작년, 한명의 차가 지나갔던 도로를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눈발이 흩날리고 논밭은 생기가 없었다. 얼어붙은 고드름이 형형색색의 처마 아래에 누이고치처럼 매달려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면 그 고드름을 뽑아 칼싸움을 하곤 했었다. 동심은 마음속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모퉁이에서 한 할머니가 균형을 잃어 빙판 위로 미끄러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언덕인지라 한참 미끄러지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할머니? 비탈길은 되도록 오르내리지 마셔요.” 나는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저번 주에도 똑같이 넘어지신 주민 분께서는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어디 다치신 데 있는지 확인해 봐요.”
“아유, 나는 괜찮아. 괜히 부끄럽기만 하구만.”
“저도 이 근방에서 자주 넘어져요. 목발에 송곳이라도 끼워야지, 원.”
“젊은이는 어쩌다 다리가 그렇게 됐어?”
“그냥 크게 넘어졌어요. 금방 나을 거예요.”
“집이 어디여?”
“저기 언덕 위에 덩그러니 놓인 집이요.”
“그러면 그 용사 맞지? 공산당 놈들 쏴 죽인 군인 아니야? 내가 이래봬도 기억력은 이 동네에서 최고여.”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기쁘네요. 어떤 사람들은 덕분에 훈련도 안 받고 편하게 생활 했을 거라고 떠들어요. 저도 꽤 고생했거든요.”
“그래, 고생했다. 조심히 들어가. 도움이 필요하면 저기 보이는 빨간 지붕으로 찾아오고.”
“감사합니다. 어르신도 발아래 살피면서 들어가셔요.”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화를 나눈 것 같아 가슴이 정겨워졌다. 숨을 내쉬면 김이 새어나오는 기온에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집 안에 들어가 다시 원고 작업에 몰두했다.
해가 저물 무렵, 침대에서 낮잠을 자던 로보가 귀를 쫑긋 세우며 깨어났다.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발바닥을 내뻗으며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그가 물어온 우편물을 보고 나서야 집배원이 다녀갔음을 깨달았다.
“너도 개는 개로구나.”
로보의 몸을 아낌없이 쓰다듬어 주고 봉투를 확인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연예기획사에서 송부했었는데 콘서트 입장권 한 장이 첨부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찬찬히 읽어보니 다애가 나를 초대한 모양이었다. 로보는 내게 설명을 듣고 싶은 듯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벅벅 문지르고, 다른 한손으로 머그컵을 쥐었다.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편집자의 마감일 경고를 뒤로 한 채 대형 돔 공연장의 초입에 들어섰다. 양옆으로 늘어선 천막 아래 매점에서는 간식거리와 음료가 분주하게 팔리고, 컬러풀한 현수막과 LED 전광판이 햇살을 받아 두드러졌다.
입구 게이트 근처에는 보안 요원들이 줄지어 서서 입장권과 관객을 검문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기대감이 공기 중에 묻어났다. 먼발치에서는 무대 위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드럼이 고막을 찢을 듯 무섭게 휘몰아쳤다. 공연장 안으로 한 발 들이는 순간, 바깥과는 다른 긴장감과 설렘이 공존하는 공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미 사람들의 열정과 함성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다애의 밴드는 또래로 이루어진 4인조 그룹이었다. 조명은 교묘하게 그림자를 만들어내 그들을 덮었다. 관객들은 얼굴을 알 수 없는 가수의 출현에 흥미를 느껴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훌륭하게 성장한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오디세우스도 참지 못했던 세이렌의 음색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한 음 한 음이 선명하게 울려 퍼지면서도 부드럽게 흘러 듣는 이를 단숨에 몰입시키는 황홀한 음빛깔이었다.
다리와 귀가 아픈 관계로 그녀의 공연이 끝나는 대로 관중석을 잔잔히 빠져나왔다.
그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가까운 한강공원에 들렀다.
모두 공연장으로 몰려서인지 한적하여 혼자 걷기 좋았다.
목발을 나무에 세워두고 두 발로 걸어보기를 시험했다. 의사가 이르길, 환자의 의지가 제일 크다고 했었다. 간혹 자신감이 솟는 날이면 종종 이런 시도를 하곤 했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 스트레스만 받았었다. 다섯 걸음 정도 나아가니 발목을 접질릴까 염려스러워 멈췄다.
“혼자하기 무서우면 내가 도와줄까?”
등 뒤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기타 가방을 멘 다애가 웃으며 서있었다.
나는 다급히 목발을 향해 걸으려다 고꾸라지고 말았다.
“괜찮아? 내 손 잡아.”
그녀가 내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셋에 일어나는 거야.”
심장 깊은 곳까지 스며있던 긴장과 불안이 손끝에서 전해진 따뜻함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녀의 제안대로 가까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공연은 벌써 끝난 거야?”
“원래는 남아서 선배들 공연도 봐야 하는데, 사정을 말했더니 보내주셨어. 네가 갔던 방향도 친절히 알려주시더라.”
“무슨 사정?”
“자, 이거 받아. 이게 그 이유야.”
리본이 매달린 밀크초콜릿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이유도 없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웃곤 했다.
그 단순한 달콤함이 우리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온기였다.
“그날, 너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났잖아. 이건 그때의 답장이야.”
“됐어, 난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래도 받아줘. 이제부터는 내가 갚을 차례니까. 예전처럼 옆에 있어줄 거지?”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무거운 가방을 대신 멨다.
그녀는 나의 균형을 잡아주듯 팔을 내밀어 목발보다 더 단단히 나를 붙잡았다.
눈이 하얗게 세상을 덮어가던 스물네 번째 겨울,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동안 그 공원을 거닐었다.
그때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의 기도처럼 잔잔하고, 또렷하게.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이 겨울의 끝에서 그녀를 마주한 건 꿈이 아니라 잊지 못한 마음이 데려온 현실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다시, 그날처럼 돌아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