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편하게 살면 불편해
카페 직원의 머리가 점점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그녀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죄송하다며 서영에게 사죄했다. 강풍으로 틀어둔 에어컨 덕분에 이곳은 시베리아가 따로 없었지만, 서영의 등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 불편하다. 불편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카페 직원이 잘못한 것이라곤 서영이 주문한 아이스 라테를 핫으로 준 것밖에 없었다. 사실 잘못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만큼 아-주 사소한 실수일 뿐이었다.
오늘 온도는 30도를 넘는 무더위였다. 도로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는 두 눈이 뜨겁고, 건조했다. 서영은 살아야 한다는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머리가 띵 해질 만큼 차가운 커피를 들이켜야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한 계획과는 달리, 뜨거운 라테가 나왔다. 잠시 당황한 서영은 혹시 자신이 주문을 잘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영수증을 확인했다. 반전 없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ICE’. 도저히 이 날씨에 뜨거운 걸 마실 수 없었던 서영은, 조심스레 카운터로 향했다.
“저, 바쁘신데 죄송해요. 다름이 아니라 라테를 차가운 걸 시켰는데, 뜨거운 게 나왔어요.”
“네? 핫으로 안 시키셨나요?”
“네네. 아, 여기 영수증 보여드릴게요.”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서영을 바라보던 카페 직원은 영수증을 확인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모아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머리를 바닥으로 푹 숙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서영은 깜짝 놀랐다.
“너무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금방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차가운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서영의 작은 바람은, 순식간에 한 사람을 대역 죄인으로 만들었다.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의 카페 직원은 툭 치면 울 것 같았다. 서영은 절대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울리면서까지 아이스 라테를 마시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이 상황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 그냥 주세요! 어차피 가격도 똑같고, 카페가 생각보다 추워서 오히려 잘 됐어요.”
그제야 고개를 든 카페 직원은, 이제는 은인을 만난 듯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에 기가 다 빨린 서영은 카운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목이 타다 못해 입술까지 건조해진 서영은 뜨거운 라테를 단숨에 들이켰다. 식은 커피의 미묘한 뜨뜻함과 입안에 가득 맴도는 씁쓸함이 참 껄끄러웠다. 지금 먹은 이 커피는, 서영이 여태껏 먹었던 커피 중에서 가장 불편한 맛이었다. 등지고 있어 보이지도 않는 카페 직원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졌다. 당혹스럽고, 죄스러운 그 얼굴. 서영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얼굴이었다.
서영은 어릴 때부터 불편한 것들이 싫었다. 목뒤를 따갑게 하는 옷의 택, 눈에 들어간 작은 속눈썹, 신발 안에 들어간 돌멩이 등등. 바로바로 느껴지는 아픔과 불편함이 거북했다. 물론 이제는 손짓 한 번이면 사라지는 별것 아닌 일들이었다. 그러나, 두 손, 두 발을 다 써도 절대 지울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바로, 사람의 표정이었다. 서영은 유독 슬픔이나 분노가 서린 표정을 쉽게 잊지 못했다. 그 원인이 자신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서영은 남들에게 쉽게 화를 내지도, 불만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이 싫어하는 얼굴들을 불어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서영을 10년째 지켜본 친구 은지는 늘 답답했다.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내가 뭘 피곤하게 살아. 너는 나 만날 때마다 그 말 하더라.”
은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식당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식기를 차곡차곡 정리하던 서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한쪽 눈썹을 살짝 아래로 내려간 표정, 잔소리가 시작될 신호였다.
“이런 게 피곤하게 산다는 거야. 여기 직원만 세 명인데, 왜 손님인 네가 이걸 치우고 있어?”
“다들 바쁘신 것 같고, 이러면 나중에 치우기 편하잖아.”
“이런 거 안 해도 너 착한 거 내가 다 알아.”
“착하게 보이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거든?”
“그럼?”
“... 그냥 이게 편해.”
은지는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대화를 포기했다. 10년째 똑같은 행동, 똑같은 대답만 하는 자신의 단짝 친구가 꼴 보기 싫었다. 어차피 세상은 착하게 산다고 되돌려 주는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미련하게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지는 사회의 ‘기본’인 자신이 서영과 함께 있으면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은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영은 그릇 정리를 끝내고 테이블에 있는 휴지 뭉치들을 한데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은지는 밖에서 밥 한번 먹을 때도 이것저것 신경 쓰는 서영의 모습이 이상하게 편해 보였다.
소화도 시킬 겸 함께 공원을 걷던 두 사람은, 밤이 되어도 푹푹 찌는 날씨에 금세 기운이 빠졌다. 그때 우연히 마주친 아이크림 할인점. 두 사람은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동시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한껏 만끽하고, 서로 아이크림을 골라주며 깔깔거렸다.
“와, 이거 아직도 파네? 너 이거 먹다가 이빨 빠진 거 기억해?”
“야, 당연히 기억하지. 나 그때 피 많이 나서 네가 나 죽는 거 아니냐고 막 울었잖아.”
오랜만에 마주한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추억이 술술 나오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 리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먼저 고른 서영은 키오스크 앞으로 갔다. 그런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서영은 키오스크 화면을 슬쩍 바라봤다. 아무래도 교통카드에 있던 돈이 모자랐던 것 같았다. 서영은 망설임 없이 남자아이의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것과 함께 계산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인사도 잘하네요. 하나는 누구 거예요?”
“동생 줄려고요.”
“우와, 동생은 좋겠다~ 오빠가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고. 이거 가지고 먼저 가요. 누나는 아직 친구가 고르고 있어서.”
“잘 먹겠습니다!”
서영은 멀어지는 남자아이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서영이 마주한 것은 탐탁지 않은 표정의 은지였다. 눈치를 보던 서영은 은지의 아이스크림을 가져가, 계산을 해줬다. 정성스럽게 비닐도 까서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그녀의 어색한 미소에 은지가 인상을 풀었다.
“내가 사달라고 째려본 줄 알아? 네가 쟤 아이스크림을 왜 사줘? 엄마한테 전화해서 돈 좀 더 달라고 하면 되지.”
“돈은 없지, 아이스크림은 녹지, 동생은 기다리지! 어린 게 얼마나 당황했으면 땀을 흘리겠어.”
“야! 땀 안 나는 게 이상한 날씨야!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려. 괜히 너 손해만 보고.”
“내가 편하려고 했어, 편하려고. 저 표정 계속 생각나서 불편하단 말이야. 그거 안 떠올리면 아이스크림 두 개 값은 손해도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이름도 모르는 애 아이스크림 사주는 건 오지랖이 맞다고 본다, 난.”
“어차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회라면, 모두가 조금이라도 행복한 편이 나아. 그게 오지랖이라면 어쩔 수 없지, 뭐.”
은지는 조금 녹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손에 흐린 아이스크림이 그녀의 마음처럼 찜찜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세상 물정을 몰랐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받을까 걱정됐다. 그리고 그런 은지의 걱정은 서영에게 현실로 돌아왔다. 역시 착한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것은, 전래동화에서만 이뤄지는 허상에 불과했다.
평소처럼 아무 일 없던 평범한 하루였다. 강의실에 앉아 노트북을 펼친 서영은, 갑자기 울린 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핸드폰 화면에 뜬 ‘서열 1위’. 서영의 엄마였다. 서영이 장난삼아 저장해둔 그 이름이 오늘따라 묘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 나 지금 강의 듣는 거 알잖...”
“서영아, 미안해. 엄마가 지금 할아버지 때문에 병원에 왔거든? 학교 끝나면 근처 편의점에서 세면도구 좀 사다 줄래?”
서영의 할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직접 가구를 고치고, 혼자서 5킬로짜리 쌀 포대를 들고 3층을 올라갈 만큼 정정했다. 할아버지는 늘 골골대는 서영에게 젊은 놈이 빌빌거린다며 혀를 찼다. 그래서 서영은 더더욱 ‘병원’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사고야, 사고. K 남자 고등학교 알지? 거기 학생이 할아버지 뒷머리를 우산으로 치고 도망갔어.”
“뭐? 그래서, 그 새끼 잡았어?”
“아니, 걔가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있어서 못 잡았대. 더 속상한 건, 할아버지가 아무리 정정하셔도 그렇지, 어떻게 노인이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니.”
서영은 앞선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뒤에 오는 말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동네는 늘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발 디딜 틈이 없는데, 그 많고 많은 이들 중 단 한 명도 쓰러진 노인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니.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눈앞에 쓰러진 노인 한 번 바라볼 시간조차 없었을까? 서영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당한 사고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이 서영에게 처음으로 던진 배신이자 시험이었다.
서영은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딱 하나 남은 좌석에 힘없이 앉은 서영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시 후, 다음 정류장에서 커다란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올라탔다. 노약자석을 비롯해 좌석은 모두 차 있었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평소의 서영이라면 주저 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몸은 나른하게 늘어지고,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만약 자리를 양보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편안함이었다. 그때, 꽉 막힌 귓속으로 얼핏 할머니와 버스 기사 아저씨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자리 없으시면 다음 버스 타실래요?”
“아뇨, 아니에요. 내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대신에, 조금만 천천히 운전해 줘요.”
“네, 제가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겠습니다. 그래도 손잡이는 꽉 잡으세요.”
서영의 명치가 서서히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알사탕 하나를 잘못 삼킨 것처럼 아팠다. 아픔을 애써 무시한 서영은 ‘어차피 알사탕 따위 녹으면 그만이야.’라는 마음으로 있는 힘껏 침을 모아서 꿀꺽 삼켰다.
버스에서 내린 서영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꽤 긴 신호에 지루해질 무렵, 빨간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그때, 앞서 걷던 한 회사원의 쇼핑백 밑이 터졌다. 안에 있던 물건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졌다, 당황한 회사원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물건을 주워 담았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웠는지 옆에 있던 커플이 깔깔대며 웃었다.
“아니, 저게 갑자기 왜 터져?”
“하하하! 저 사람 어떡해. 얼른 주워야겠다.”
“우리도 뛰어야 해. 그만 보고 빨리 와.”
“아, 잠깐만 발에 걸린 거 하나만 주워주고.”
신호는 이제 고작 20초 남짓 남아 있었다. 서영은 뻗어 나가려던 손을 애써 누르며, 빠르게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서영이 딱 도착하고 나니, 신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빨간색이 됐다. 사방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사원은 아직도 홀로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허공을 맴도는 것 같은 시선과 벌벌 떠는 손이 안쓰러웠다. 그런 회사원을 보다 못한 운전자들은 크게 화를 냈다.
“야! 지금 초록 불인 거 안 보여? 나중에 줍고, 저리 비켜!”
“비키라고, 지금 다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서영은 다행이라고 느꼈다. 만약 저 회사원을 도왔다면, 자신은 시간 안에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전자들의 원망도, 시끄러운 경적의 주인공도 되지 않았다. 서영은 또 한 번 커다란 알사탕을 꿀꺽 삼켰다.
병원 근처의 편의점은 매장도 넓고, 신제품도 자주 들어왔다. 서영은 필요한 세면도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간단한 간식도 사려던 그녀의 눈에, 요즘 인기 있는 캐릭터 스티커가 들어있는 빵이 들어왔다. 신나는 마음으로 딱 하나 남은 빵을 장바구니에 넣는 순간, 누군가 서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저기, 학생. 정말 미안한데, 그 빵 내가 사면 안 될까? 우리 애 사다 주려고 이 근방 편의점을 다 돌아다녔는데, 눈에 보여야 말이지.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만 없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야.”
솔직히, 서영이 그렇게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발견하기 힘든 보물을 찾았다는 기쁨에 취한 것이지, 꼭 이 빵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영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어쩌죠? 저도 이 캐릭터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것 같아요.”
서영은 스스로도 매몰차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아이한테 주려고 이 편의점 저 편의점 돌아다녀서 축축하게 젖은 아저씨의 셔츠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했다. 아저씨는 아쉬운 마음에 빵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반짝이며 지갑에서 오만 원권을 꺼내, 서영에게 건넸다.
“그럼 나한테 파는 건 어때? 부족하면 한 장 더 줄게. 정말 어떻게 안 될까?”
아빠라는 자리란, 자신보다 한참 어린 학생에게까지 돈을 내밀며 애원하게 만드는 치사한 자리였다. 서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오만 원권 두 장 중,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장바구니 속 빵을 조심스레 아저씨에게 건네자, 아저씨는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학생 정말 고마워. 학생은 착하니까, 또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땐 두 개였으면 좋겠네.”
아저씨는 서영에게 원래 가격의 열 배를 주고, 행운까지 빌어줬다. 서영은 제 손에 들린 오만 원권이 너무 무거웠다. 그녀는 커다란 알사탕을 전보다 두 배는 더 힘을 내서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사탕이 내려가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계속 이러다가 숨이 막혀 질식하는 것이 아닐까, 서영은 조금 두려워졌다. 불편했다. 불편해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서영은 제 명치에 쌓인 알사탕들이 곧 녹아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녹기는커녕 개수만 늘어갔다. 그녀는 다들 이 불편함을 어떻게 참고 사는 건지, 그 비법이 궁금할 정도였다.
“506... 506... 아, 여기다”
병실 앞에 도착한 서영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할아버지를 봤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학생이 할아버지 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영이 황급히 병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엄마가 서영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 로비로 향했다. 서영은 모르는 남학생과 할아버지를 같이 있게 해도 괜찮은지 걱정되어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엄마는 그런 서영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혔다.
“엄마, 저 남학생은 누구야? 쟤 설마 그 가해자 새끼야? 맞지? 아까 보니까 K 남고 교복 맞던데!”
“아니야. 저 학생은 할아버지 은인이야, 은인.”
“은인...?”
할아버지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 서영은 엄마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본 학생의 교복은 가해자와 똑같은 K 남자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서영에게 엄마는 두유가 찍힌 사진을 보여줬다.
“저 학생이 이거 사서 할아버지 병문안 왔어. 할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 불렀는데도 아무도 안 도와주더래. 근데, 저 멀리서 누가 뛰어오더니 막 어디에 전화를 하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옆에 계속 있어 줬다고 하더라고.”
“그런 사람 드문데, 너무 고맙다. 기특하기도 하고.”
“그러게. 요즘에는 남 도와주기도 쉽지 않은데.”
“근데, 아무리 바쁘게 산다고들 해도 사람이 쓰러졌는데 좀 너무한 것 같아.”
“... 바빠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서영은 엄마의 허벅지를 살짝 때렸다. 다친 할아버지를 지나친 나쁜 사람들을 옹호하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서영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좀 전과는 다른 착잡한 표정이었다.
“저 학생이 할아버지 도와줬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아?”
“착한 일 하는 거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지 않았을까?”
“아냐, 무서웠데.”
지금까지 나름의 선의의 삶을 살아온 서영은 한 번도 무섭다는 감정을 가지고 남을 돕지 않았다. 뭔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뿌듯함과 마음의 편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섭다? 선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었다.
“왜 무서웠다는데?”
“도와주다가, 납치당하는 건 아닐까 했데.”
“아.”
서영의 입 밖으로 짧은 탄식이 튀어나왔다. 사실 그것까지는 배려하지 못했다. 서영은 할아버지를 지나친 사람들도, 무정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길을 지나간 사람들도 자신처럼 커다란 알사탕을 애써 삼키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영은 SNS에서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도와주지 말라는 경고문을 본 적이 있었다. 모두가 품고 있는 선한 마음을 시험하고, 약점으로 삼아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허다했다. 서영은 그걸 보며 ‘아, 나도 조심해야지’ 했지만, 막상 자신의 가족이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자 사람들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서영은 개인의 양심과 선함이 보호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문득, 병실에서 스치듯이 봤던 은인을 떠올렸다. 그 어린 학생에게 느껴지는 기특함과는 별개로 어른으로서 두려움을 품고 선행을 해야 하는 사회를 물려준 것이 미안했다.
“그래... 무서웠을 수도 있었겠다.”
“너 근데, 좀 피곤해 보인다.”
서영은 이곳에 오는 과정에 마주했던 보따리 할머니, 터진 종이 백 회사원, 캐릭터 빵 아저씨의 표정들이 하나씩 그려졌다. 명치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알사탕들이 그 표정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엄마, 나 오늘 엄청 편하게 왔다? 버스 자리에도 앉고, 신호등도 딱 시간 맞춰서 건너고, 돈도 벌었어.”
“오, 진짜 운이 좋았네.”
“근데, 몸은 엄청 편한데, 마음이 불편하더라. 불편해서 살 수가 없어.”
“원래 편하게 살려면, 다른 거 필요 없이 마음이 편해야 해. 너 죄책감, 양심. 뭐 그런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니?”
엄마의 그 한 마디에 명치를 괴롭히던 알사탕들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졌다. 죄책감. 양심. 서영이 삼켰던 커다란 알사탕은 그런 것이었다. 서영은 바랐다. 그 알사탕들이 완전히 녹아, 자신의 자양분이 되기를.
한참 대화를 나누던 서영과 엄마는 슬슬 할아버지의 병실로 돌아갔다. 때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은인을 마주한 서영은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인상 한 번 쓰지 않은 듯한 인자한 얼굴과 반듯한 차림새가 ‘나는 착한 사람’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명찰에는 ‘이석준’ 이름 석 자가 가지런하게 박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괜찮으신 거 봤으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어, 그래요. 조심히 가요. 석준 학생.”
키링이 가득 달린 가방을 달랑거리며 멀어지는 석준을 바라보던 서영은, 왠지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병원 안에서 뛸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서둘러서 석준을 따라갔다. 다행히 병원 정문을 나서려던 석준을 발견한 서영은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 석준 학생!”
“네?”
서영은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을 모조리 꺼내서 석준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 안에는 캐릭터 빵 아저씨에게 받았던 오만 원권도 있었다. 양심적이지 않게 받은 돈이라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맞았다. 약 십오 만원 정도 되는 금액을 받은 석준은 눈이 커졌다.
“저,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
“아니에요. 이걸로 교통비도 하고, 간식도 사 먹고, 문제집도 사요.”
“그래도, 너무 많은데요.”
“고마워서 그래요. 정말 고마워서. 지금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게, 이 현금밖에 없어요. 좋은 일 해서 받는 거니까, 기쁜 마음으로 받아줘요.”
‘좋은 일’이라는 말에 석준은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사코 거절하던 그 돈은 석준의 안주머니에 잘 담겼다. 서영이 준 돈은 할아버지를 도와준 답례도 맞지만, 증명이기도 했다. 착한 일을 하면 꼭 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석준이 오늘 받은 이 돈을 떠올리며 또 다른 누군가를 돕길 바랐다. 설령 그것이 대가를 바란 위선일지라도, 그 위선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든다면 그건 결코, 불완전한 선은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퇴원하고, 서영의 일상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여전히 고단한 1교시와 휘몰아치는 과제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쪄 죽을 듯 뜨겁던 날들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왔다. 새로 산 카디건을 자랑하는 은지와 달리, 서영은 여전히 반 팔이었다. 차가워진 팔을 교차해서 문질러대던 서영은 한시라도 빨리 몸을 따뜻하게 하고 싶었다.
“은지야. 우리 저기 카페에서 따뜻한 것 좀 마시고 가자.”
“좋지. 너 옷이 좀 추워 보이긴 했어.”
“아, 오늘 날씨 눈치 게임 완전 실패야.”
아직 히터를 틀지 않은 카페에는 냉기가 살짝 돌았다. 자리를 먼저 잡은 은지는 밤샘 과제로 지쳤는지, 카드를 건네며 아무거나를 요구했다. 서영은 은지를 위한 따뜻한 유자차와 자신의 핫초코를 주문했다.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주말에 함께 본 히어로 영화의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CG가 대박이야. 돈 많이 썼겠지?”
“응, 돈 냄새나더라.”
“근데, 난 솔직히 좀 별로였어.”
“왜? 주인공 잘 생겼던데.”
“어려서 좀... 보기 그랬어.”
은지는 어제 본 영화 주인공을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배우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지만, 작중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한국에서 그 나이면 아직 교복 입고 떡볶이나 먹을 나이였다. 은지는 괜히 어린 주인공이 뭘 안다고 지구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지 궁금했다.
“난 항상 히어로 영화 보면 궁금했던 건데, 히어로들은 왜 지구를 지켜야 할까?”
“선택받은 능력이 있어서?”
“본인이 바라지도 않은 능력 주고서 지구도 지켜라? 너무 하네 돈도 안 주면서.”
“남을 도와줄 힘이 있는데, 안 도와주면 마음이 불편해서 아닐까?”
“남인데도 그런 감정이 쉽게 생길까?”
“너 길 가다가 네 옆에 누가 넘어지면 안 도와줄 거야?”
“아, 그렇게 말하니까 또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네. 일으켜 세워주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힘든 건 아니니까.”
서영은 은지와의 대화에서 선은 참 어렵다고 느껴졌다. 악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단순하고 확실한 존재다. 반면, 선은 잘 보이지도 않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 어려운 선을 해내는 히어로들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깊은 생각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진동벨이었다. 음료를 가지러 간 서영은 순감 멈칫했다. 은지의 유자차는 따뜻하게 잘 나왔지만, 자신의 핫초코는 아이스로 변해 있었다. 실소가 터진 서영은 그대로 쟁반을 들어, 자리로 돌아왔다. 은지는 춥다고 징징거리던 친구가 차가운 음료를 입에 대자, 어깨를 짝 소리 나도록 때렸다.
“야! 그냥 바꿔 달라고 한마디만 하라고!”
“아, 몰라! 난 이게 편해. 하하하!”
“미친 것 같아 진짜!”
“난 평생 편하게 살래! 별것도 아닌 일이잖아. 나중에 내가 진짜 원하면 바꿀게. 근데, 지금은 이게 좋아.”
꼭 고귀하거나 숭고할 필요 없다. 일상에서 속 사소한 선의를 하나씩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영은 잘못 나온 아이스 초코가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무조건 손해를 보면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무모한 희생도 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자신들의 몸 안에서 굴러다니는 커다란 알사탕들이 불편하길 바란다. 녹지도 않고 식도와 명치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불편한 느낌. 그 불편함을 알아채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른다. 거기서 새로운 알사탕을 더 삼킬지, 녹여서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더 각박해져만 가는 이 세상에서 모두의 불편한 양심과 용감한 선의가 보호받을 수 있기를.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