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프롤로그 : 고장난 시계
책상 위 작은 나무 상자 안엔, 흔들릴 때마다 딸랑이는 소리를 내는 진주 펜던트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빛바랜 끈, 몇 번이나 엉켜 풀린 흔적,
그리고 바래지 않은 은주의 체온.
나는 그 목걸이를 손에 쥐며 눈을 감았다.
냄새, 소리, 목소리,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열네 살 그해 봄, 은주는 지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안아 엄마가 피를 흘려...”
“나 너무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 뚝뚝 끊기는 신음.
그리고 이어진,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다음 날 은주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 얼마나 가볍게 오르는지.
친구들은 나에게도 물었다.
“너 은주랑 계속 놀 거야? 범죄자 딸인데?”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죄는 한 사람이 지었지만, 벌은 한 가족이 나눠 받는다는 것을.
또렷한 기억
은주를 처음 본 건, 복도 끝 창가 자리였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발끝은 조심스럽게 바닥을 훑듯 움직였다. 마치 어디에 닿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듯한 걸음이었다. 눈빛은 매번 엷었고, 말투는 들릴 듯 말 듯 낮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틈을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처음에는 작은 귓속말이었다.
“쟤 이상하지 않아?”
“말 진짜 없지?”
교실은 떠들썩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나누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은주는 언제나 비켜나 있었다.
곧장 별명 하나가 붙었고, 빈자리에 앉으면 다른 아이가 벌떡 일어났으며,
도시락을 먹을 때면 앞자리에서 히죽거리는 낯선 눈길이 이어졌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눈으로, 입으로, 그리고 점점 더 무심한 손으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전염된다.
누군가가 은주에게 돌을 던지면, 곧장 다른 누군가도 던졌다.
그 돌이 얼마나 뾰족한지도, 얼마나 깊게 가라앉히는지도 모른 채.
연못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용히 버티고 있는 그 자체
은주는 그런 개구리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심심했기 때문에, 그저 모두가 하니까, 그리고 그것이 조금은 재밌었기 때문에, 손에 쥔 돌을 연못을 향해 내던졌다.
돌은 파문을 만들었고, 파문은 또 다른 아이들의 손을 끌어당겼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큰 물살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는 작지만 완고한 사회였다.
선생님도, 어른들도 이 안에선 자주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는지,
얼마나 쉽게 죄의식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외면한 채.
나는 문득, 한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성악설이란, 사람이 원래 악하다는 믿음.
그것을 증명하려면 어쩌면 교실 하나면 족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따돌린다’라는 말 대신 ‘같이 안 놀뿐’이라 하고,
‘괴롭힌다’라는 말 대신 ‘장난’이라고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던져진 돌에, 어떤 아이는 조용히 가라앉는다.
“야, 너 왜 자꾸 은주랑 말 섞어?”
나는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윤이었다. 반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아이들의 중심에 있는 애.
“친구잖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정윤은 눈을 찌푸리며 코웃음을 쳤다.
“조 바꿔달라고 할 건데? 솔직히 걔네 집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다 알잖아.
뉴스에도 나왔었고. 범죄자 딸이랑 엮이고 싶냐?”
“야 너네 은주한테 왜 그래?”
그날 이후로, 은주의 실내화는 매일 어딘가로 던져졌다.
어떤 날은 화장실 칸에 들어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뒤뜰 쓰레기통에 빠져 있었다.
말라붙은 흰 우유 자국은 그녀의 책상 아래에서, 가방 위에서, 마르지 않았다.
은주는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닦았다. 다시 썼다. 다시 걸쳤다.
그리고 조용히, 책상에 앉았다.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었지만,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뉴스는 저녁 9시에 나왔다.
“○○시, 흉기로 아내 살해한 40대 남성 긴급 체포….”
화면에는 아파트 단지 앞, 노란 경찰 통제선이 쳐진 현장이 떴고, 수척한 얼굴로 연신 “몰랐다”를 반복하는 이웃 주민의 음성이 자막과 함께 흘렀다.
다음 날 아침, 학교 복도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낯설 정도로 무겁고, 차가웠다.
은주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숨소리마저 낯설게 울렸다.
“야, 쟤래. 뉴스에 나온 사람 딸.”
“진짜야? 와… 아내를 죽였대.”
“어쩐지 평소에도 좀 이상했어.”
입으로는 속삭이는 척했지만, 모두가 들으라는 듯, 은주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날 은주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그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고, 체육 시간에도 같은 조가 되길 꺼렸다.
은주는 칠판만 바라본 채 하루를 조용히 넘겼지만,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책상에 가까워졌고, 낄낄대는 숨죽인 웃음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살인자의 딸이래도, 딱 보면 알겠더라.”
“무서워서 말도 못 걸겠어.”
“엄마를 죽였으면, 쟤도 언젠간….”
은주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가방끈을 꼭 쥐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그 뉴스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는 것과
엄마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났다는 걸,
자신의 아버지가 이제 두 번 다시 자신을 불러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은주에게 "괜찮니?"라고 묻지 않았다.
아무도, 은주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지 않았다.
죄는 은주의 아빠가 지었지만, 벌은 은주가 살았다.
무기징역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선과 속삭임과 외로움의 날들.
누구도 은주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살인자의 딸”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어느새 은주의 진짜 이름처럼 굳어갔다.
“지안아 나 할 말 있어”
비가 오던 오후, 은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람의 촉이라는 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회색빛이 물든 골목을 걸어 은주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은주는 우산을 들고 앉아 있었다. 마당도 아닌, 현관도 아닌, 그저 문 앞 계단에.
“은주야.”
나는 조심스럽게 불렀다.
고개를 든 은주의 얼굴은 낯설 만큼 말라 있었다.
눈가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입꼬리에는 말라붙은 피가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은주는 웃었다.
바보처럼, 해맑게.
“왔구나.”
“너 괜찮아?”
“괜찮진 않아. 근데 너 오니까 좀 괜찮아.”
은주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건넸다.
“이게 뭐야?”
나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투명한 지퍼백 안에는 작은 진주 펜던트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단정하게 접힌 연분홍색 천 위에, 조심히 눕혀진 상태였다.
“이건 뭐야?”
“내가 제일 아끼는 거야.”
“왜 나한테 줘?”
“그러니까… 너만은 진짜였잖아.”
그 말에 나는 목이 콱 막혀왔다. 말없이 은주를 안았다.
은주는 조금 놀라는 듯하다가 조용히 나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지안아, 나 이제 누가 날 데려갈지도 몰라. 삼촌도, 고모도 싫대. 어차피 다들 나 피하잖아. 나만 없어지면… 다 괜찮아질지도 몰라.”
“그런 말 하지 마. 나, 네 옆에 있을 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는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그날 밤, 은주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아파트 주차장 아래에서 싸늘한 채로 발견됐다.
작고 젖은 쪽지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내가 없어지면, 다 괜찮아지겠지.’
은주가 세상을 떠난 그다음 날, 학교는 마치 어제와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복도에는 갑작스레 '추모'라는 단어가 붙은 리본이 나부꼈고, 교문 앞엔 수십 개의 화환이 줄지어 놓였다.
“어린애가 무슨 일이래…”
출근길을 지나던 어른들은 고개를 젓고 혀를 찼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처음 듣는 일인 것처럼.
은주의 책상은 그전까지만 해도 조롱과 낙서, 누군가가 일부러 튀긴 주스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무리 지우려 애써도 불특정 다수가 남긴 문장들이 수시로 바뀌며 덧씌워지던 자리.
그런데 오늘, 그 위에 국화꽃이 한 송이씩 놓이기 시작했다.
하얗고 깨끗한, 너무도 낯선 분위기 속에서 은주의 책상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고,
선생님은 눈물을 닦으며 방송 인터뷰에 등장했다.
“은주는 참 착한 아이였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울음이 카메라 앞에서 더 커졌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담임 선생님의 울음소리였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옆 반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걔 무서워.. 학부모 면담은 어떻게 해 정말.”
은주가 괴롭힘 당하던 걸 알면서도, 그저 회피로 일관하던 사람.
복도에서 내가 눈을 마주쳐도 고개를 피하던 사람.
그녀가 지금, 은주의 책상 앞에서 목을 떨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증스럽다. 정말, 화가 난다.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세울 때는 언제고 지역 시장까지 찾아와 조문하였다.
교장 선생님은 대강당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아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은주는 이미 없다. 모두의 외면 속에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옷 속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목걸이는 은주가 마지막으로 내 손에 쥐어주었던 자신의 가장 아끼는 물건이자 유품이였다
나는 그것을 손에 꽉 쥐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더는 은주의 이야기를 꾸며서 말할 수 없도록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범죄자의 딸’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저주인지 알게 되었다.
분명한 건 은주는 죄를 짓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도 벌을 내렸다.
지금도 나는 그 목걸이를 품에 넣고 다닌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상담이 끝난 후 조용히 꺼내어 바라볼 뿐이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다시는, 누구도 그런 이유로 혼자가 되게 하지 않겠다’라고.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왜 아무도 은주를 붙잡지 않았을까.
왜 위탁가정은 그녀를 모두 거절했을까.
왜 가족의 죄는 자녀의 낙인이 되었을까.
왜.
나는 수많은 ‘왜’를 지우기 위해 사회복지를 전공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게 많았고, 공부는 어려웠다. 모르는 게 많았고, 공부는 어려웠다.
사회복지 실천론 수업,
오전부터 이어진 이론 강의에 학생들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을 무렵, 교수는 마커펜을 들고 칠판에 커다랗게 글자를 써 내려갔다.
‘사례 관리(Case Management)’
“사회복지 현장에서 클라이언트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자원을 연결하고, 개입 계획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교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펜을 들고 그 단어를 따라 적었다.
클라이언트의 욕구와 개입, 자원 연계.
모든 것이 어딘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을 찔러오는 말들이었다.
“이번 주 과제는 2인 1조로 사례 관리 계획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설정해서요.”
교수의 말에 강의실은 작은 술렁임으로 가득 찼다.
클라이언트(Client)는 사회복지 실천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 이해된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사회복지사들은 이들이 자원과 강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사들은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를 존중하고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짝을 찾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고개를 떨궜다.
어둠 속 너머 빛을 머금은 목걸이가 눈앞에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은주가 생각난다”
법의 테두리에 휘말려 억울하게 범죄자가 되거나 피해받은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진학한 학과였다. 웬만한 수업들이 다 조별 과제의 연속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친해지는 것이 꽤 어려웠다.
보통은 교수님께서 무작위로 편성해주신 시간이 익숙해졌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라져야 했다.
누군가의 삶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함께’라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수업이 끝나기 20분 전, 뜻밖의 질문이 나왔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클라이언트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교수님의 질문에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피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무서워요.”
“좀 찝찝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는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강의실이 정적에 잠겼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가 시작 아닐까요?”
교수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