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천문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전통 천문학은 삼국,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은 수많은 천문 유산을 남겼다.
▲ 표1. 천문과학 문화유산의 종류(시대별)1
천문과학 문화유산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천문현상을 관측하고 기록하며 사용한 도구와 지식, 그리고 기록물을 포함하는 유산
유네스코 등에서 인류의 유형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보존하며, 한국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문화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2만 5,000개 이상의 방대한 관측 기록은 현대 천문학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
▲ 그림1. 함안 도항리 도동 고인돌 암각화2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천문 활동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남아 있는 한반도의 일부 고인돌 덮개돌에는 "성혈(星穴, Cup-Mark)"이라 불리는 작은 홈이 새겨져 있다.
이 성혈은 전통적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한 흔적으로 해석되었으나, 최근 연구에서는 별자리 형태와 유사한 배열이 확인되면서 고대 별자리 그림으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 남한의 300기 이상의 고인돌에서 성혈이 발견되었으며, 그 중에는 북두칠성, 남두육성, 묘수 등의 별자리 모양이 포함되어 있다.
성혈이 만들어진 정확한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유럽과 북한 학계에서도 고인돌 성혈에서 다양한 별자리를 찾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돌 덮개돌의 별그림은 한반도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천문 기록으로, 우리 민족의 천문 관측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청동기 시대 이후 고구려와 고려의 무덤에서도 별 그림이 전해지고 있어, 무덤에 별자리를 새기는 전통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뿐만 아니라 천문 암각화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 참성단 역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소중한 천문 자산이다.
▲그림2.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3
▲ 그림3. 국보 경주 첨성대4
삼국시대의 천문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로는 신라의 첨성대와 고구려 무덤 벽화 속 별그림이 있다.
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2년(633년)에 건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높이 약 9m의 호리병 모양 구조물이다. 첨성대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동양의 우주관을 담고 있으며, 28수 별자리와 24절기, 1년 365일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천체관을 보여준다. 25기의 무덤 천장과 벽면에서 해와 달, 별자리, 사신(四神) 그림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진파리 4호분과 덕화리 2호분에는 28수 별자리 전체가 그려져 있다. 별자리 배치는 중국과 달리 북두칠성을 북쪽, 남두육성을 남쪽에 두어 사신 방위에 따라 구성하는 독창적인 특징을 보인다. 또한 별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한 점은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우리 고유의 별그림 전통을 보여준다. 고구려 별그림과 청동기 고인돌 성혈의 유사성은 우리 고유한 천문 지식과 체계가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시대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일식, 월식, 행성의 운동, 혜성 출현, 유성과 유성우, 오로라 등 240여 건의 천문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현대 천체역학 계산 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중국이나 일본의 기록에 없는 독자적인 관측 사례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체계적인 기록과 관측 시설, 다양한 천문 유산은 삼국시대 천문학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그림4. 고구려 고분 덕화리 2호분5 ▶
상단 왼쪽은 북쪽 천정 벽화로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은 동쪽 천정 벽화로 두꺼비와 토끼가 있는 달이 그려져 있다. 하단 왼쪽은 남쪽 천정 벽화로 남두육성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은 서쪽 천정 벽화로 삼족오(三足烏)가 있는 해와 그 아래 한자로 이름을 쓴 28수가 그려져 있다.
▲그림5. 개성 첨성대6
고려시대의 천문학을 보여주는 유물은 많지 않지만, 개성 첨성대와 『고려사』,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통해 그 수준을 엿볼 수 있다. 개성의 첨성대는 다섯 개의 사각 돌기둥 위에 돌판을 올린 구조로, 현재는 계단과 상부 구조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비록 신라 첨성대보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고려 왕실 역시 꾸준히 천문 관측을 이어갔음을 보여준다.
고구려에 이어 고려의 무덤에서도 별 그림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안동 서삼동 무덤 천장에는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원형을 배열된 28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정종, 문종, 신종 등 고려 왕릉에서도 별자리 그림이 확인되어 청동기 고인돌에서 시작된 전통이 고구려를 거쳐 고려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5,000여 건의 천문 관측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이전 시대보다 관측 수와 내용 면에서 훨씬 풍부하고 정밀하다. 이러한 기록은 현대 천문학 연구에도 큰 의미를 지닌다. 고려시대의 흑점과 오로라 기록을 분석한 결과, 11.3년 주기의 태양 단주기 활동뿐 아니라 약 100년 주기의 장주기 활동까지 확인되었다.
고려시대의 천문 기록은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현대 천체물리학 연구에서 사실 검증 자료로도 활용된다. 이는 고려시대의 천문학이 지닌 학문적 가치와 의미를 잘 보여준다.
그림6. 고려 안동 서삼동 고분 천장 별그림5 ▶
12세기 초 고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서삼동 고분 천장의 별 그림으로, 고분 천장의 안쪽에 푸른색으로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붉은색으로 별을 그려 넣었다. 원의 한가운데에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28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그림7. 서울 관상감 관천대(소간의대)7
▲그림8. 소간의 (세종대왕릉 기념관 소장, 복원품)8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천문 기록과 유물이 남아있는 시기이다. 왕실 천문대인 '대간의대(大簡儀臺)'를 비롯하여 여러 관천대가 세워져 정밀한 관측이 이루어졌다. 세종 시대에는 혼의, 혼상, 간의, 규표 등 다양한 천문의기를 제작해 사용했고, 점차 독창적인 일성정시의와 소간의를 만들어 활용했다. 측우기, 앙부일구, 자격루 역시 이 시기에 제작된 대표적 과학 문화유산이다.
관측 기기의 발달은 정밀한 천문 연구로 이어졌다. 세종은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 역법인 '칠정산(七政算)'을 완성했으며, 이순지·김담·이천·장영실 등 걸출한 학자와 기술자들이 활약하며 조선 전기 천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천문류초』, 『제가역상집』, 『성변측후단자』, 『성변등록』 등 다양한 기록은 활발한 관측 활동을 보여준다. 비록 많은 기록이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증보문헌비고』에는 2만여 건의 천문 현상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천문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4년(1395)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전통 천문학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 석각 천문도에는 1,467개의 별이 새겨져 있으며, 별의 크기는 실제 겉보기 등급을 반영하였다. 연구 결과, 고구려 시대의 별자리와 조선 초기의 별자리가 함께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오랜 천문 전통이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소주천문도와 함께 동양 전통 천문도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중국을 거쳐 들어온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게 된다. 혼천전도, 황도남북총성도, 남병길의 『성경』, 송이영의 혼천시계 등은 서양 천문학과 전통이 결합된 성과이다.
▲그림9. 송이영의 혼천시계(1669)9
< 참고 문헌 >
박창범,《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 김영사, 2002.
네이버 블로그. 함안 도항리 암각화/말이산 고분군 중 35호분 앞쪽에 자리한 도항리 암각화/동심원과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별자리 고인돌로 유명한 함안 도항리 암각화(2023.04.27). https://m.blog.naver.com/bogirang/223090313918
위키백과. 강화 참성단. https://ko.wikipedia.org/wiki/강화_참성단
위키백과. 첨성대. https://ko.wikipedia.org/wiki/첨성대
우리역사넷. 역대 천문도의 역사.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15_0030_0030_0010
우리역사넷 자료마당. 고려의 첨성대 (경기 개성). https://contents.history.go.kr/eh_kk/teach/notebook/data/50_d01.htm
위키백과. 서울 관상감 관천대. https://ko.wikipedia.org/wiki/서울_관상감_관천대
우리역사넷. 천문 의기, 의상과 구루.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15_0030_0020_0020
국가유산포털. 국보 혼천의 및 혼천시계 (渾天儀 및 渾天時計).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300000,11&pageNo=1_1_1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