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식을 설명하고 글을 쓰며 학생별 피드백까지 제공하는 시대에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권정민 교수는 이 질문을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학생을 어떻게 자기 삶의 주체로 성장시킬 것인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습득만을 앞세운 정책은 당장의 산업 수요를 충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AI가 대신할 노동을 수행하는 인력을 길러내는 데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인재는 정해진 답을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을 깊이 탐구하고, 실패 속에서도 질문을 이어가며, 배운 것을 현실의 문제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권 교수는 젠슨 황, 페이페이 리, 노암 브라운 등의 성장 과정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이들은 학습을 즐겼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으며, 일찍부터 현실의 프로젝트와 접촉했다.
특히 노암 브라운은 당시에는 실용성이 낮아 보였던 외교 게임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축적한 인간의 전략과 추론에 관한 지식은 이후 AI 연구의 중요한 자원이 됐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모든 학생을 천재로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학생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탐구를 어른과 제도가 성급하게 막지 않는 교육 환경의 중요성이다.
현재의 학교는 평가와 입시를 중심으로 지식을 표준화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활동은 시간 낭비로 간주되고, 창의적인 시도는 대학 진학 이후로 유예된다. 학생이 온라인에서 물건을 기획하고 홍보하며 판매하는 과정에도 소통, 디자인, 비용 계산, 시장 이해라는 학습이 포함된다. 그러나 정규 교과의 언어로 인정되지 않으면 단순한 ‘딴짓’이 된다. 권 교수는 이러한 경험을 기업가정신 교육과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미래교육 정책은 학교 밖 경험을 학습으로 인정하고 다양한 교육과정과 학교 유형을 보장해야 한다.
AI 융합교육도 기존 교과에 AI 도구를 더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AI가 아니라 학생이 만나는 세계다. 농업 현장의 데이터를 수집해 스마트팜을 설계하거나 지역사회의 문제를 조사해 해결책을 만드는 수업에서 AI는 정답 제공자가 아니라 탐구와 생산을 지원하는 도구가 된다.
교사는 지식을 포장해 전달하는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학생이 현실과 마주하고 질문하도록 돕는 교육적 동반자가 된다. 모든 수업을 교실 밖에서 진행할 수는 없더라도, 학생이 배움과 삶의 연결을 경험할 기회는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학교 교육이 세상과 단절될수록 학생들은 지식을 시험을 위한 정보로만 받아들이고 타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거트 비에스타가 비판한 ‘학습화’와도 연결된다. 교육을 개인이 소비하는 상품으로 바라보면 학습자는 지식의 소비자가 되고, 성취와 실패의 책임도 개인에게 집중된다. ‘자기주도학습’이 문제집을 스스로 풀고 AI의 답을 능숙하게 가져오는 능력으로 축소될 때 사회적 조건과 공동체의 책임은 가려진다.
권 교수가 강조하는 대안은 ‘주체화’다. 주체화는 학생이 자신의 관심과 판단을 인식하고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자기 삶의 주인이자 어른이 되는 것이다. 교사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정책이 학교를 변화의 대상으로만 다루기보다 교사와 학교가 교육의 방향을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신뢰와 자율성을 제공해야 한다.
AI는 주체화를 돕는 동시에 약화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학생이 AI를 사용하면 사고를 외주화하고 결과를 복사하는 데 머물기 쉽다. 반대로 먼저 질문을 만들고 주제와 씨름한 학생에게 AI는 흩어진 지식을 연결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파트너가 된다. 따라서 AI 활용 교육의 출발점은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경험이어야 한다.
권 교수는 이를 위한 방법으로 ‘생각 저장소’를 제안한다. 학생이 교과의 정답이 아니라 일상에서 발견한 문제와 관찰, 의문, 판단을 장기간 기록하고 연결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협업 도구를 활용하면 개인의 생각을 추적하는 동시에 친구와 관점을 교환하고 공동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 AI 시대의 비판적 사고는 정보를 의심하는 기술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다시 검토하는 자기 성찰에서 완성된다.
AI 윤리도 별도의 규칙 교육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학생은 AI가 기업의 목적과 학습 데이터의 패턴에 따라 작동하며 언제든 편향과 오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정서 상담이나 관계 판단처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는 AI의 응답을 절대화하지 않도록 교사와 보호자의 안내가 필요하다.
핵심은 AI를 금지하거나 무조건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결과의 신뢰성과 의도를 검토하고 최종 판단의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하는 비판적 리터러시를 길러야 한다. AI로 답을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문과 결과물을 생산하도록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미래교육의 경쟁력은 더 많은 AI를 더 빨리 도입하는 데서 결정되지 않는다. 학생의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보호하고, 학교와 세계를 연결하며, 교사에게 교육과정을 해석할 신뢰와 여지를 제공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 정책과 학교는 학생을 관리와 지원의 대상으로만 볼 것인지,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만들어갈 주체로 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와 공존하는 교육의 방향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간의 성장을 지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