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더 이상 교실 밖 이야기가 아니다. 일정 관리, 여행 예약, 보고서 작성, 수업 자료 정리까지 대신해 주는 에이전트 AI는 이미 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묻는다. 이 속도, 이 방향, 과연 괜찮은가.
함영기 교수는 AI 발전 단계를 설명하며 지금이 단순한 LLM 시대가 아니라 ‘에이전트 AI’ 시대로 진입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용자의 컴퓨터를 뒤지고, 일정을 수정하고, 판단을 제안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경계하는 것은 ‘인지의 외주화’다. 편리함은 곧 의존으로, 의존은 곧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교육이 사고력을 기르는 장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결과물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AI 활용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교사를 위한 AI 도구를 직접 개발하고, 심지어 루브릭 자동화 도구도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명확한 설계 원칙이 있다. AI가 교사의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루브릭 생성기를 만들 때에도 일부러 ‘완성형’으로 만들지 않았다. 일부를 비워 둔다.
교사가 직접 판단하고 채워 넣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술이 판단을 완성해 버리면 교사의 전문성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린 연령대로까지 빠르게 AI의 사용이 확산되는 흐름을 두고 그는 숨을 고르자고 말한다.
“문제점에 대해서 충분히 밝혀내고 이거 하기도 전에 초등부터 쓴다는 저는 이해가 안 가요.”
발달 단계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AI의 활용은 성인과 대학, 고등학교에서 충분히 실험하고, 윤리와 리터러시를 정비한 뒤 내려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AI는 강력하다. 그러나 강력한 도구일수록 더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함영기 교수는 학교가 실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역할은 어떨까?
AI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정책과 사업들. 현장은 과연 숨 쉴 여유가 있는가.
그는 스스로 쓴 표현을 꺼낸다.
“정책 과잉의 시대 학교의 위기 이렇게 썼습니다.”
정책은 선의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책이 많아질수록 학교의 자율성은 줄어들고, 교사의 업무는 늘어난다.
AI를 도입하겠다며 또 하나의 보고서와 연수를 추가하는 방식은 결국 본질을 비켜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본청은 슬림화하고, 지원청은 현장 밀착형으로 재구성하며, 학교는 단위 학교 운영 체제를 강화하라는 것. AI 시대일수록 행정이 가벼워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AI 시대, 교육의 목표는 달라져야 할까. 함영기 교수의 답은 분명하다.
“자유 의지를 가진 발달하는 주체 더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OECD의 에이전시 개념을 언급하면서도, 결국 인간 중심성을 강조한다.
학생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하는 주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발달에 있다.
스마트폰과 AI를 둘러싼 갈등을 법과 통제로만 해결하려는 흐름에 대해서도 그는 경계한다.
“아무리 바빠도 그런 부분들을 담론화시키면서 주체들의 토론의 결과로 만들어져서 학교에서의 어떤 교육적인 일종의 규칙 이런 식으로 가는 게 중요하지 이거를 법으로 딱 만들면 그냥 사법화는 잘 되겠지만 교육적 해결은 안 되겠죠.”
학교는 통제의 공간이 아니라 토론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다.
함영기 교수의 강연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AI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는 AI를 철저히 “충직한 비서”로 위치 짓는다.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라고 명령하고, 판단은 인간에게 남겨 둔다. 기술은 강력하지만, 통제권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학교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향을 정하는 힘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교사와 학생의 주도성이 살아 있는 한, AI는 도구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교육은 길을 잃는다.
AI를 마치 만능상자처럼 여기는 현 상황에서 함영기 교수의 지적은 학교와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