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8>(Global HR Forum)에 참여하여 발제를 했습니다. 제 발제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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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문화(文化)적 존재다 무엇인가를 만들어(文) 변화를 야기(化)한다. 윤리도 평등한 사회도 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힘은 호기심, 질문, 공감 등에서 비롯된 자각 능력이 자발적으로 발휘되면서 온다. 자각은 자신을 소유적 차원이 아니라 존재적 차원으로 확장하도록 인도하는데, 존재적 차원의 ‘확장’이 바로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실현시킨다. ‘공감’, ‘배려’ 등과 같이 모든 윤리 행위의 근간이 되는 것들도 다 이 인간의 원초적 희망인 ‘확장’의 한 형태다. 그것들은 개별자인 나의 존재가 나를 넘어서서 타인 혹은 공동체로 확장되도록 하는 중요한 매개자들이다. 윤리도 인간의 이 문화적 확장력이 질적인 건강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인간이 원초적으로 문화적 존재라면, 무엇인가를 만들어 변화를 확장하려는 의지를 발휘하려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이다. 변화를 야기하여 확장하려는 의지가 인간적이지, 야기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다. 여기서 자유와 종속이 갈린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나에게만 있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인 호기심을 발휘하여 세계를 응시한 후, 나만의 고유한 각성을 이끌어 내고, 그 관조적 각성으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일을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각되지 않은 자는 문화 발전의 결과를 수용하는 자이지 확장하는 자가 아니다. 자각되지 않은 자는 윤리 규정의 수호자 이상이 되기 힘들다. 문화적 창의는 윤리적 창의와 심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윤리적 창의자는 윤리를 수용하는 자가 아니라 윤리를 세우는 자다. 윤리적 입법자라고도 할 수 있다.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도 이미 정해진 내용 자체로 당위를 가질 수는 없다. ‘평등’과 ‘불평등’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거나 정하는 자가 문화적 차원에서의 윤리적 입법자다. 윤리는 정치 행위와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다만, 정치 행위와 구별될 정도로 인간적 의미에 가깝거나 수준이 높을 뿐이다. 그래서 정치적 판단이 이념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판단을 넘지 못하듯이 많은 윤리적 내용들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미 있는 윤리적 태도로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의 문명을 담을 수 있는가이다.
시대에 따라 윤리적 태도나 윤리적 규정이나 윤리적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회에는 계급적 기득권만 존재하지 않는다. 윤리적 기득권도 존재한다. 위험한 것은 계급적 기득권에 갇혀서 새로운 세상을 열지 못하듯이, 윤리적 기득권에 갇혀서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열지 못할 수도 있다. 변화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으로 문명적 내용을 채우고 있는 우리는 윤리적 사유의 결과도 수용하고 있다. 이 질긴 습속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윤리적 기득권에 갇혔다고도 할 수 있다.
문화적 존재, 창의적 존재, 자유로운 존재, 윤리적 존재는 다 각도만 달리해서 말하는 것들일 뿐이다. 여기서 근본은 자각(각성)의 원초적 활동성을 어떻게 갖게 하는가가 핵심이다. 자각(각성)으로만 자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윤리도 이 자발성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윤리 규정의 수용자가 아니라 입법자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윤리적 자발성이 다른 각도에서 출현하면 창의적인 활동으로 나타난다. 자각(각성)을 통한 자는 새로운 문명이 출현할 때 과거의 윤리 관념으로 그것을 마주하지 않고, 새로운 윤리를 건설하려는 입법자로 우뚝 설 수 있다. 입법자는 변화의 결과를 수용하는 자가 아니라 변화를 감행하는 자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자다. 이런 자가 윤리적으로 각성할 수 있으며 자발적인 윤리 행위자가 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려하기 보다는 자각 능력을 갖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자각은 “나는 누구인가?”를 부단히 묻는 일과 깊이 관련된다. 좀 더 나아가서 보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로 나타난다. 이 두 질문을 통하면, 인간성이 기능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근본에 접촉한다. 여기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다. 윤리도 이미 있는 윤리적 규정이나 담론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문명을 여는 일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