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9돌.
독립을 향한 불꽃이었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쟁취했고, 나라를 번영시켰습니다.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각고의 분투노력으로 국제사회의 모범사례로 거론될 정도로 찬란한 역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과 자유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창의적 성취가 있었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가운데 우리가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직 없습니다.
우리는 습득과 수용과 따라 하기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방법으로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이미 도달해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는 할 일을 다 해버린 민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각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만 살다 갈 수 있습니다.
이 이상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후손들에게 영광이 아니라 치욕을 물려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한계를 돌파해야 진정한 독립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이룬 번영은 종속적 단계에서의 번영입니다.
이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단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전술적 단계의 삶에서 전략적 단계의 삶으로 상승해야 합니다.
종속적인 문명에서 선도적 문명으로 나아가는 도전에 나서야 합니다.
대답하는 습관을 질문하는 습관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적 이익에 빠진 주체가 공적 책임성을 가진 시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념과 신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신념과 이념의 생산자로 나서야 합니다.
지식 수입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안전이 아니라 모험의 길을 나서야 합니다.
믿음을 벗어나 생각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믿음보다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자신에게 계속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계속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꿈이 있는지?”를 계속 물어야 합니다.
잡다한 쾌락을 끊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해 온 민족인데,
우리가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발전시킨 나라인데,
여기까지만 살다가도 괜찮은가?
좌우의 동선에서 왔다 갔다 하던 일을 끝내야 합니다.
이제는 상하의 수직선상에서 상승을 꿈꿔야 합니다.
몇 십 년 째 하던 주장을 계속 해대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면 안 됩니다.
진영 지키기에 빠진 우물안 개구리들은 역사의 열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오래된 문법을 지키는 투사들은 이제 필요 없습니다.
경쾌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무모함이 더 의미 있습니다.
성숙한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에 갇히지 않고, 부단한 반성으로 높은 수준의 각성에 이릅니다.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면서 치료에 나서는 도전을 합니다.
이렇게 소리쳐 봅니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정해진 모든 것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모든 언어들 모든 생각들
백설의 새 바탕에 새 이야기 새로 쓰세.
새 세상 여는 일 말고 그 무엇 무거우랴
새 말 새 몸짓으로 새 세상 열어보세.”
여기까지만 살다갈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