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시대의에세이스트상> 선정이유서

작가: 최진석

작품집: 경계에 흐르다

위 작가는 현재의 대학이 인재양성의 시스템으로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상아탑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중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많은 저서와 TV 강연 등으로 한국사회의 변혁을 외쳐왔으며, 주체적, 모험적, 책임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합니다. 위 책은 진정한 사상가로서 시대와 사회에 가장 갈급한 문제를 이슈화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열어주려는 치열성이 돋보이며, 미적 장치를 차용하지 않고 직설의 감성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면서 수필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에 제2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구중서, 임헌영, 엄정식, 나종영

에세이스트 발행인 김종완


수상소감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고향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고향은 너무 빈궁했고 남루했습니다. 게다가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하릴없이 마루에 누워 시간을 파먹다 보면, 모든 것이 지쳐 늘어져 있는 와중에 살아있는 것이라곤 매미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매미 울음소리는 지루함을 더 지루하게 합니다. 하얀색을 더 하얗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파란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리거나, 단 맛을 더 달게 하기 위해서 소금을 조금 넣는 일처럼 매미가 내는 소리는 고요를 더 고요한 곳으로 내려놓습니다.

나는 고향의 남루함과 지루함을 이겨내려 도시를 떠돌고 국경도 넘나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 부모님은 나에게 좋은 뼈와 살을 주셨습니다. 쉽게 지치지 않았고, 남 앞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타향은 아득한 것, 아무리 걸어도 닿지 않았으며, 눈을 비비고 살펴도 안개 속이었습니다. 고향에서 타향까지의 그 종잡을 수 없는 거리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썼습니다.

나의 문자들은 고향과 타향 사이의 울퉁불퉁한 거리에서 삽니다. 이제는 압니다. 소리와 고요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폭의 크기와 지루함의 깊이가 정비례한다는 것을. 고향과 타향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나의 문자들은 울퉁불퉁한 거리에서 항상 나와 함께했습니다. 어찌 모를 리 있겠습니까. 문자는 완전히 그 소유자의 몸입니다. 무학이셨던 제 어머니는 가끔 이렇게 나무라셨습니다. “배운 사람이 글먼 쓴다냐?” 고향에서 어머니로부터 문자의 책임성을 내내 배웠습니다.

이제는 문장들 사이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문자들 속에 심어진 혈관과 힘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장도 문자도 결국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문장의 주인입니다. 사람처럼만 살다보면, 내 문장에도 문자에도 피가 흐르고 그럴싸한 소리가 나리라 믿습니다. 그 피와 소리가 고향도 살리고 시대도 살릴 것입니다. 금방 죽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제2회 시대의 에세이스트 상으로 사람처럼 사는 일에서 지치지 않도록 채찍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진석(건명원 원장,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