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 철학과에서 교수로 봉직하기 시작(1998년3월)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동양철학에 관한 국제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문제를 다루는 회의체 말석에 자리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기관에선가 지원을 받아서 한국에서의 철학, 특히 동양철학 연구 성과를 대내외에 보일 수 있는 학술대회를 조직해야 하는 일이다. 첫 번째 회의였던지라 우선 어떤 주제로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나는 여러 의견이 오간 후에 내 의견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대내외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철학 사상을 주제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동학’(東學)을 철학적으로 다룰 것을 제안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 두 분의 선배 학자들께서 “그건 철학이 아니잖아요.”라고 하면서 거부하였다. 결국 주자학을 주제로 결정하였다. 나는 이때의 충격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때의 그 충격을 삭이고 있다가 쓴 책이 최근에 펴 낸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다.
나에게는 조성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있다. 나는 그의 석박사 지도교수다. 내 곁에서 <주자학(朱子學)에서의 기(機)>(2001년)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준비를 하다가 여차여차하여 도교(道敎)를 연구할 목적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우선 성현영(成玄英)의 노자(老子) 해석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조성환은 와세다 대학 박사과정에서 도교를 착실히 연구하고, 나는 한국에서 도교(도가)를 착실히 연구하고 가르치던 시간이 몇 년 흘렀다. 그러던 와중에 몇 가지 사정이 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철학이라는 것이 “자신의 문제를 보편적(철학적)인 높이로 승화”해내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정해진 이념이나 이론을 내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 삶을 철학화 하는 것이 철학이지, 다른 사람이 철학해 놓은 결과를 수용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이런 문제는 특히 아직도 “독립”이라는 것이 완결되어 있지 않은 인상을 주는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는 더욱 시급하다.
(http://news.donga.com/3/all/20171216/87755620/1)
이런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르자, 나는 바로 조성환에게 와세다 대학에서의 박사학위를 중단하고 서강대학으로 돌아오기를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내 곁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한 근대의 전통적인 사상을 한국철학사 안에 집어넣을 수 있도록 정밀하고 높은 철학 이론으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몇 년의 고생 끝에 조성환은 <천학(天學)에서 천교(天敎)로 -- 퇴계(退溪)에서 동학(東學)으로 천관(天觀)의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비록 진척이 느리더라도 이런 문제의식을 놓치고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그는 몇 권의 책을 쓰고, 몇 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특히 일본에서 활동하던 김태창(金泰昌) 교수의 일을 도우면서 현실을 깊게 사유하는 훈련도 잘 받았다. 일본어에 능통하고, 중국어와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다. 그가 최근에 의미잇는 책을 한 권 번역했다. 일본인 학자가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 스스로를 유교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점에서 유교적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것에는 어려워한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는 않으면서 매우 도덕 지향적이기는 하다. 사태와 사람에 대해서 도덕적인 평가를 쉽게 하기도 한다. 이런 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주자학의 중심 개념인 이와 기를 연관시켜 설명해준다.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큰 책이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치이면서도 살아남아, 앞으로 멀지 않은 어느 날에, 조성환 박사는 스스로의 시선으로 쓴 책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그 날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우선 이 번역서부터 읽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