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나는 멋진 공간, 잘 디자인된 건축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2024년도 도공디공과 함께 (또 개인적으로) 많은 공간을 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건 공간에 깃든 시간과 흔적임을 알게 되었다.
2월 남원 랄라의집
2월에는 남원에 있는 도공디공의 멤버의 랄라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했다. 랄라는 건축가로 직접 설계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집 뒷편에는 낮은 언덕이, 앞으로는 평지가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땅 위에 자리 잡은 선택이 용기있고 멋져보였다. 랄라는 최초의 건축 의도를 소개하며 살다보니 현재의 용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해주었다. 건축물은 생활과 유리될 수 없으며 사람과 함께 자라고 변화하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원에서 현재 살고 있는 집 뿐만 아니라 그동안 지역에서 해온 건축 작업들을 (건축주의 협조를 얻어)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함께 남원이라는 도시를 둘러보며 실상자라는 멋진 절을 알게 되었고 아주 맛있는 표고 버섯전도 먹었다. 좋은 시간이었고 1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10월 핀란드 알바알토의 집
알바알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알바알토의 빈티지 가구, 디자인에 대해서는 되려 무덤덤한 편이었다. 핀란드를 방문하게 되었고 머무는 동안 가볼만한 곳을 찾다 알게된 스팟이다.
처음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나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 방문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새로 지어진 건축물에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알바알토는 38세가 되던 해 이 집을 지었고 남은 생을 모두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 공간은 가족이 머무는 집이자, 한때 직원들과 함께 일을 했던 사무실이었고, 고객에게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였으며, 건축적 상상을 펼쳐놓는 실험실이었다. 그 모든 시간이 공간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12월 스리랑카 제프리바와의 집
최근 관심을 두고 찾아본 건축가 제프리바와. 사진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어 스리링카 콜롬보로 갔다. 접근 가능한 그의 건축물들은 최대한 둘러보았지만 역시 그 정점은 no. 11. 오랫동안 살면서 고치고 증축하며 살았던 그의 집이다. 이 집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4개의 집을 연결해서 완성한 집이라는 것이다. 그가 최초에 구입한 주택은 골목 끝에 위치한 한 집이었지만 그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인접한 주택을 사들이며 공간을 연결하고 늘려갔다. 실과 바느질로 옷감을 연결하듯 다른 역사를 가진 집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나간 것이다. 도면을 보지 않고는 내 위치를 짐작하기 힘든 미로같은 구조가 메력적이었다. 백미는 침실과 부엌, 응접실과 서재가 십자가 형태로 이어진 중심부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놓여진 책들, 그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다양한 층고, 다양한 건축재료의 활용, 오랫동안 모아온 것이 분명한 가구과 조명 소품들.. 대단한 스펙타클이었지만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나오자마자 노트를 펴서 스케치를 했는데 그 덕분에 구석구석이 머릿속에 더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한달에 한 번, 열 두 번을 만나면 어느새 한 해가 지나버린다. 이 만남의 루틴이 벌써 여섯번을 돌았는데 신기하다. 이렇게 느슨하게 모여도 되나 싶지만, 그것 또한 쌓이니 역사가 되었다.
올해는 건축을 주제로 잡았다. 꼭 모임이 아니라도 내가 사는 곳의 건물도 다르게 보게 된다.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상상해보고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새로이 알게 되는 세상이 참 많다.
6월 온라인으로 들었던 가드닝을 위한 건축수업에서 DIT 개념을 알고 난 후 12월 개인적으로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실제 DIT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시모노세키 부동산업 재일교포를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고령화, 지방소멸 이슈에서 시간차로 우리의 지금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 많이 배웠다. 브런치에 일본 여행 일기에 자세히 담아놓았다.
11월은 내 고향 울산을 투어했다. 가이드가 되어 보니 내가 몰랐던 울산을 많이 알게 되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은 자동차의 도시였다. 1962년 공업 도시로 선정되고 난 후 자동차, 조선소, 정유 화학이라는 3대 제조업을 이끄는 공장들을 구경하면서 산업 도시의 위용을 처음으로 느끼면서도 앞으로 울산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 걱정으로 양승훈 교수가 쓴 <울산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라는 책을 읽었다. 암울한 데이터로 풀이 죽어가다가 산업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여성 청년 일자리 대안 이야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부디 그럴 수 있다면 새로운 제조업의 미래를 울산이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진짜로!
3월 22일 금 18:00~
건대 건축과 특강 수도권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 중소도시포럼 이장환
2024년 활동으로 건축 관련 강의들을 들어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서치하던 중 발견한 중소도시포럼의 특강. (이 계획은 많이 실현되지 못했군요 하핫;;;) 주제가 너무 끌려서 건대 학생은 아니지만 특강을 들을 수 있는지 문의까지 하고 참석했다. (아라, 쌩유~) 그리고 비까지 오는 평일 저녁, 서울 건대까지 가서 들은 강의는 매우 좋았다.
중소도시포럼은 수도권 밖에서 일어나는 건축과 도시의 변화를 깊이 관찰하고 그 변화의 특징을 정리하여 유형화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를 유도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예시로 주요하게 보여준 곳이 남원이라 더 와닿았고, 대학원 때 내 연구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더 이해가 쉬웠다. ‘도시천공, 소거계획, 덧대기 건축...’ 등 용어를 정리하진 못했지만 통일신라시대 때 계획도시인 남원 구도심의 도시조직이 빈 장소들로 인해 어떻게 헐거워지는지 1년 동안 살펴봤던 내 부족한 연구도 다시 상기시켜볼 수 있었다.
나중에 중소도시포럼 인스타를 팔로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수도권 밖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서울건축학교’였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원 때 서울이 아닌 남원을 연구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던 계기가 고 이종호 교수님 연구실에 남아있던 ‘서울건축학교의 여름 워크숍’ 결과 책자였는데 그 워크숍은 모두 수도권 밖 목포, 통영, 순천 등의 중소도시가 주제였고 그 워크숍 과정들을 내가 살고있는 남원에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 싶었었다. 수도권 밖을 살펴보게 된 계기가 통한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서울건축학교가 활발히 진행됐던 당시 건축가들의 노력이 다시한번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중소도시포럼의 연구내용은 SPACE에 연재되고 있어 계속 체크하고 있다.
좀더 수도권이 아닌 중소도시들을 살펴보고 중소도시포럼도 참여하고 싶지만 지금은 건축사 합격이 먼저라 잠시 미뤄두고... 나중에 자세히 들여다 볼 계획이다.
6월 7일 금 19:00~ 온라인
가드닝을 위한 건축수업 – 충남대 건축과 윤주선 교수
가드닝을 위한 건축수업이지만 가드닝 보다는 DIT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신청한 강의이다. 윤주선 교수님도 반갑고 ^^ 좀 분주한 느낌의 강의였지만 개인적으로 내용은 매우 알찼다고 생각한다. 더 깊이 알고 싶은 것들도 있었고...
코로나 이후 전세계적으로 오픈 스페이스가 각광받고 있는데, 일본은 PIP법을 통해 공공공원을 민간이 설계 및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여 잘 활용되는 오픈 스페이스의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단다. (시부야 츠타야, 블루보틀 등. 가보고 싶다.) 오픈 스페이스,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간, 공공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이것만으로 오픈 스페이스는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옷차림으로, 나이로, 성별로, 피부색으로, 정치성향으로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다.
DIT(Do It Together)는 자기 주도적 공간 만들기 방법론으로 도시의 공공공간에서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에 대한 테스트를 해 본 후 공간을 계획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공공공간이 제 역할을 하려면 사람들을 편하게 모아야 하는데 어떤 공간이 사람들을 모으는지 프로젝트를 통해 테스트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테스트 되면서 그 성패가 드러나고 성공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는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강의가 마무리 된 것 같다. (비법정 계획이 법정 계획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시유지를 어떤 민간기업이 그 기업의 카페를 운영하면서 일부를 공원으로 오픈 한다는 소문이 돌면 당장 왜 공공공간을 민간이 운영하는지, 왜 저 기업에 혜택을 주는지 따지는게 일반적인거 같다. 하지만 이게 DIT를 통해 성공한 프로젝트라면 좀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본도 법제화가 20년 걸렸다고 한다. 쉽진 않겠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지역의 공공공간에서도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우리도 언젠가...?!)
오픈 스페이스가 각광받는다는 근거로 planetizen(도시계획 관련 저널인듯)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contemporary urbanist 100명(매년 발표)을 들었는데 1위가 Urbanized 다큐에서 봤던 얀겔, 4위가 파리 중심부에서 자동차를 치운 파리 시장인 앤 이달고, 5위가 Walkabel City 저자 제프 스펙, 14위 엔리케 페날로사 전 보고타 시장, 23위 택티컬 어바니즘의 마이크 라이든 이라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매우 고무적이라 생각했다. 아직 우리 도시들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 흐름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은... 또 도공디공에서 함께 공부하고 봤던 인물들이라 더 반갑기도 했다. (선견지명??)
7월 15일 월 21:00~ (줌)
책 :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 - 박정현
뭔가 같이 읽어볼 자료가 있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도통 관심 주제가 모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라 망설이고 있던 차에 노들섬에 가는 기차 안에서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책이었다. 고 박철수 선생님과도 인연이 있는 마티의 박정현 편집장이 쓴 책이라 관심이 갔고, 진짜 발전국가 시기 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간만에 하는 발제라 목차를 보고 관심가는 대로 발제 순서를 정하고 우여곡절 끝에 날짜를 정하고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줌을 통해 발제를 진행했다. 그런데 책이 너무 어려웠다.;;;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전공자가 아니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았을거라 이 책을 같이 읽자고 한게 좀 미안해서 나는 책을 다 읽고 얘길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7,8장은 대강 훑었던거 같다.)
「산업도, 지식과 직능도, 미학도 부족했던 시절. 한국에서 건축은 주어져있는 개념이나 대상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신기루에 가까웠다.」
해방과 전쟁 이후 도시를 복원하고 주요 건축물을 짓고 발전하던 시기, 건축가는 기술의 발전이나 자본의 축적, 철학적 고민 등을 할 새 없이 건축을 해야 했고, 도시를 만들어야 했고 한국성을 규정해야 했다. 건축가는 개발의 부역자였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역할이라는 자부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야 했다. 이 책에 나온 건축물을 레퍼런스로 내가 받았던 건축 교육이 떠올랐다. 민주운동은 건축과는 거리가 멀었고 공공을 위한, 도시를 위한 건축가의 역할을 자연스레 멀어져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대는 망했고 해비타트는... 모르겠고) 나는 쓸데없는 어깨뽕만 키워서 사회에 나온거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건축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만 남았다.
2024년 9월 7일 건축사 시험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건축사 시험은 꼭 치러야할 관문 아닐까? 대학원 졸업한 후 독립(?)을 하고 몇몇 프로젝트를 하면서 건축사를 빨리 따야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먹고살기 바빠 매년 ‘내년’으로 미뤄왔던 일을 2024년에는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대학원 졸업 후 둘째를 낳고 이때다 싶어 인강을 듣고 시험을 한번 보기는 했다. 근데 건축사시험은 제도력(?)을 갖추는게 우선이라 처음 공부하면서 학원의 노하우 없이 제도력을 키우기란 역부족이었다. 당연히 완도(도면을 다 완성하는 것) 실패! 그래서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학원에 등록을 했다. 첫 수업을 듣고 혼자 인강 듣고 시험 본 내가 바보였구나 싶었다.
2027년에 건축사 시험 제도가 바뀔 예정인데, 나는 4년제를 나왔고 (지금 건축 설계 전공은 5년제) 경력 5년 이상에 필기시험이라 볼 수 있는 건축사 예비시험을 합격해둔 사람인데 (현재 예비시험 제도는 없다.) 27년이 되면 나 같은 전형은 시험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한다. (물론 구제할 다른 대안을 마련할 거다, 아마. 현재 대안은 건축전문대학원을 가는 거란다. 내가 나온 대학원은 인정이 안된다. 참나) 그래서 진짜 발등에 불 떨어졌다. 무조건 1년 안에 붙어야 한다는 각오로 4월 학원 첫날부터 열심히 하려 했으나.... 왜 5월부터 달리지 않았는지...
건축사 시험은 총 3교시로 진행된다. 각 교시는 3시간씩이다. 그러니까 시험은 점심시간, 쉬는 시간 포함해서 11시간 정도 본다. 체력도 매우 중요하다. 3교시 땐 진짜 너무 지친다.
1교시는 배치계획과 대지분석·주차 계획으로 2과제이고 2교시는 평면설계 1과제, 3교시는 단면설계·설비계획과 구조계획으로 2과제이다. 총 5과제이니 5개의 도면을 그린다는 거다. 각 과제의 문제는 주어진 대지와 계획조건 및 고려사항, 도면작성 기준이 8절지 2페이지에 적혀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그 내용을 파악해서 계획을 하고 도면을 그려야 한다.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시대에 손도면을 그려야 한다는게 가장 큰 난관이다. 그리다 보면 매번 현타가 온다. 계획하고 남는 1시간 정도의 시간 안에 도면을 완성하려면 (긴 시간 같지만 절대 아니다.) 한 눈 팔 새가 없다. 지우개를 쓴다? 말도 안된다. 3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고 시험보는 날엔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이 고생을 하고있는 수험생분들 모두 파이팅!)
한달 남겨놓고는 정말 매일 10시간씩 도면을 그렸던거 같다. 나름 열심히 했다 생각하고 자신있게 시험을 봤는데 1교시는 자신있었고 2교시는 애매하고 3교시는 완도를 못했다. 결과는 1교시만 합격! 2교시도 기대하긴 했지만 이번 시험은 합격자를 좀 적게 뽑았다고... (총 7,412명이 응시하고 합격예정자는 589명) 암튼 건축사 시험은 정답이 없고 사람이 도면을 하나하나 채점하기에 결과만도 2개월 후에 나온다. 합격예정자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 등을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여야 하고 만에 하나 부족한게 있다면 합격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안되기 때문에 수험 초반에 경력정리와 서류 확인을 꼭 해놓으라고들 한다.
건축사 시험은 기능을 평가하는 시험인 것 같다. 관련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작도 스킬을 숙달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설계능력은 사실 평가하기 어려운거라 문제에 주어진 조건만 해결하면 되는 시험이다. 이런 시험으로 건축 인허가와 감리를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뭔가가 부족한 듯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사 시험이 예상 밖의 시험 범위를 갖는 건 지금 곤란하다. 나는 어떤 건축을 할 것인가는 늘 하는 고민이니... 이걸 논술로 평가할 생각은 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나는 지금 2교시와 3교시를 공부하는 중이다.
2024는 개인적으로 무척 바빴다. 일도 많았고, 철없이 저지르고 수습하느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한 해였다. 그 와중에도 도공디공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훌쩍 떠날 수 있는 허락된 기회니까, 떠났다 돌아오면 나는 또 조금 자라있는 것 같으니까.
2024년 첫모임으로 남원 등구재 황토방에서 건강한 식사를 하고 운봉 랄라의 집과 산내 지역의 랄라가 설계한 집도 보고 실상사에서 젊은 부처님도 만났다.
소도시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는 직접 기획한 집에서 살아보는 로망이 있다. 그런 집은 재산으로 가치가 없다고들 하지만 인생의 기록장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훌륭한 일인 것 같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가 만든 가족들과 삶을 일구어 가는 것을 꿈꿔왔는데 랄라가 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4월에는 전주에 건축관련책을 큐레이션하는 책방똑똑이 생겼다는 소식에 방문했다. 80년대에 지어진 인후동 주택을 개조한 책방이었다. 경사진 곳에 지어 1층이 지하가 되어버린 주택이다. 책방의 주인은 도시재생 일을 하는 건축학도 시리였다. 시리가 책방을 설립하게 된 스토리를 듣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멤버로 함께하게 되었다. 와우
서울에서 5월 모임을 하게 되어 막내와 함께 나섰다. 용산에서 노들섬으로 ~ 한강에 있는 여러 섬 중 하나인 노들섬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험대에 오르다 현재는 공연장, 서점, 음식점, 카페등이 운영되고 있다.(이용객이 많지는 않은 듯…) 행촌동으로 이동, 1923년 지어진 외국인 사업가 엘버트 타일러의 서양식 2층 주택 딜쿠샤- 수령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옆에 마을의 공동 우물터와 성황당이었던 자리에 지어졌다고 하고 테일러 가족이 떠난 후 한 국회의원이 매수하여 살다가 정부에 소유권이 넘어가고 방치되다가 1995년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50년 역사를 가진 대셩맨숀(재개발 가능성으로 매물이 없음)을 둘러보았는데 무척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어 놀라웠다.
10월 광주 .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광주는 축제였다. 전일빌딩은 대형 현수막을 걸고 한강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빌딩 9-10층은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며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여전히 광주는 울부짖고 있는 것 같다. (갈때마다 묘하게 느껴지는 광주분들의 시니컬함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 ACC 광주에서 비엔날레 전시 관람하고 광주 일정은 마무리.
2025년은 사라질 위기의 소도시 한 곳을 정해서 깊이 있는 관찰을 해보기로 했다.(맞죠? ^^)
나는 충청도에 관심이 있는데, 아주 예전에 전북과 경계에 있던 지역들을 충남으로 합병시켰다고 한다. (60년대에 전북의 일부 면 단위 경계지역을 충남에 행정구역을 합병시킨 사실이 있음. 연무읍 = 구자곡면+익산시 황화면 )
어렸을 때 지역 어른들이 “박정희 때 김종필이 전북 땅을 충청도로 많이 뺏어갔당게“ 라며 충청도 방언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가까운 지역이면서도 자주 들여다 본 적이 없던 논산시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3월: 새로운 인연
‘공간을 읽는 책방, 똑똑'을 연 지 일주일 만에, 도공디공으로부터 DM을 받았다. 건축을 주제로 한 시민 공부모임인 도공디공이 전주에 생긴 우리 책방을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매우 기뻤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난 일이겠다 싶었다.
4월: 도공디공과의 첫 만남, 책방 똑똑에서
4월, 드디어 도공디공 모임의 멤버들이 책방 똑똑에 찾아왔다. 처음 만나는 멤버들과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에 대해서, 공간에 대해서, 건축에 대해서 서로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비슷함과 다름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기뻤다. 그 기쁨에 들떠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용기 내어 말했다. ‘건축문화의 부흥을 꿈꾸며, 모든 일을 꾸려간다’고 말하면서도 무척 부끄러워했다. 도공디공 멤버들 덕분에 어렵지만 입 밖으로 꺼내었고, 그 순간이 특별하고 고마웠다. 도공디공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서로의 다양한 관점을 듣고, 내가 가진 건축에 대한 열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였다.
5월: 노들섬 & 딜쿠샤
도공디공 모임은 월 1회 만나고, 매번 다른 장소를 찾아간다. 온라인 모임일 때도 있었다. 5월, 첫 오프라인 모임에 함께 했다. 5월의 주제는 노들섬이었다. 그 당시에 노들섬 글로벌 예술섬 설계공모로 매우 핫했기에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노들섬에서 만나, 가져간 C3 잡지의 노들섬 편을 돌려보기도 하고, 노들섬 공모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노들섬은 토머스 헤더윅의 설계안이 확정됐다.) 첫 만남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학생 때, 건축물 답사하듯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감상을 공유했다. 딜쿠샤에 가는 길에는 우연히 요땅부동산에서도 소개된 대성맨션을 찾았다. 경비원 아저씨 몰래 옥상까지 올라가는 나쁜 어른들이 되고, 처음 보는 구석구석의 오래된 맨션의 모습에 무척 재밌었다. 이어 1924년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거주했던 서양식 주택, 딜쿠샤에 갔다.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 당시에 테일러 부부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장소만으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곳이었다.
노들섬과 대성맨션, 딜쿠샤 방문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6월: 온라인, 가드너를 위한 건축수업
6월의 온라인 만남은 ‘서울 가드닝 클럽’ 에서 진행하는 ‘Shared Space: DIT 프로젝트, 궁동활동’을 들었다. 대전 궁동에서의 대학 생활을 회상하며, 도심 속 작은 정원을 통해 커뮤니티를 어떻게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생활 공간에서 자연을 어우르는 방법을 고민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작은 변화까지 상상해보는 시간이었다. 생활 공간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탐색하는 것은 매우 큰 영감을 주는 경험이다.
7월은 해외 체류로 불참 8-9월 휴식 10월은 불모지장 당일이라 불참 11월은 로컬브랜딩랩에 선배로서 참여 하느라 불참
12월 해외 체류로 불참
도공디공과 함께한 2024년의 여정은 나에게 깊은 영감과 새로운 관계를 선사했다. 건축과 공간에 대한 지식과 감각을 확장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전주의 작은 책방에서 시작된 이 인연들이 앞으로도 계속 깊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