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사고가 나던 봄에서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날의 공기와 엄마의 목소리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는 아프긴 했지만 지금은 뭐 아무런 문제도 없다.
선생님이 학원을 떠나신 뒤로 미술학원은 그만뒀다.
내가 아팠던 것으로 계기가 더해진 것도 있지만 선생님과 수업을 듣고 난 후 색도,종이 냄새도, 선을 긋는 감각도 모두 어딘가 말라버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수업이 불필요한 감각 실험이라고 이야기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첫 감각 수업 이후
빛이 달라 보였다.
필름은 여전히 가방에 있었다. 빛을 담지 못할 만큼 긁히고 닳았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어떤 것의 자리였다.
"야, 너 E.K 작품 봄?"
“E.K 가 누군데”
“그 있잖아. 얼굴 없는 작가. 경계 기반 예술이라나? 그거 하시는 분인데 요즘에 인기많은 작가잖아."
중학생 누나들이 하는 이야기에 조금 귀를 귀울리면서 괜히, 닳아 버린 필름 조각을 꺼내 보았다.
기스가 많아 더는 빛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필름.
하지만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온기인지, 빛인지, 혹은 오래전에 선생님이 보여줬던 '다른 세계의 결'인지 모르겠지만
그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천천히 퍼져왔다.
익숙하고도 그리운 감각이었다.
나는 그 감각을 따라 달렸다.
학교를 지나, 횡단보도를 지나,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제천뜰근린공원이었다.
(스토리텔러: 오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