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이 아닌, 낮은 조도의 스탠드만 몇 개 켜져 있었다.
빛은 붉고 따뜻했다.
태민은 헤드셋을 걸치고 문제를 직면한 것처럼 이마에는 주름이 생겨있고 키보드를 빠르게 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새끼손가락에 남은 의문의 흉터까지 은경이 가지고 있던 약간의 의심을 조금 증폭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
루카가 태민을 불렀다.
그제서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김은경입니다."
"안녕하세요."
눈빛은 차분했지만, 어딘가 계산된 거리감이 있었다.
은경을 보자 상대를 스캔하듯 아주 짧게 눈을 끄는 버릇이 보였다.
그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곧장 핵심으로 향했다.
"태민입니다. 여기서 퍼즐형 엔진을 아카이브에 제공해서 기록을 미로적 구조로 바꾸고 있습니다."
태민은 이 말을 끝으로 다시 문제가 생긴 듯 코드를 미친듯이 치기 시작했다.
루카가 살짝 웃으며 말을 돌렸다.
"은경 님이 남긴 기록물들… 감각 기반의 데이터죠. 그런 건 보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밀하게 분류해야 하고, 흔히 말하는 ‘손실’을 막기 위해선 구조가 중요해요.”
루카가 은경을 향해 돌아섰다.
“그래서 함께하자고 말씀드린 겁니다.
은경님은 감각을 채집하는 사람으로 아카이브를 감각적 층위로 확장 시켜주세요.
그럼 저는 그걸 보존하는 사람으로서 이 죽어가는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잠시 조용했다.
은경은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경계구역에서 처음 냄새를 맡았던 것 같은 느낌
설명할 수 없지만 정확한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 직전에 오는 기류.
루카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은경은 자신의 목을 조이던 갈증을 해소하는 것만 같았다.
(스토리텔러: 오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