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밀렸다.
아이들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교실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처음엔 어색했다.
필름을 들고 어디에 서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모습. 빛을 드는 게 뭔지 몰라 멈칫거리는 손끝.
하지만 곧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창가에 선 아이의 필름에는 희고 따뜻한 햇빛이 얇게 스며들었다.
프로젝터 아래 서 있는 아이의 필름에는 조금 푸르고 차가운 색이 번졌다.
교실 뒤 어둠 속에 선 아이의 필름에는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빛이, 그러나 작은 먼지 입자들과 함께 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냥 멈춰 서 있다가 몇 초 뒤,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낯선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조용한 집중. 아이들은 필름을 조금 들어보기도 하고, 각도를 틀어보기도 했다.
은경은 그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때요? 다 똑같나요?”
은경의 질문에 고개들이 거의 동시에 좌우로 흔들렸다.
“여기는...조금 따뜻해요.”
창가에 있던 아이가 가장 먼저 말했다.
“여긴 약간 차가운 느낌 나요.”
프로젝터 밑의 아이가 자기 필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뒤쪽에 서 있던 아이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약간 먼지 냄새 나는 것 같아요. 빛인데, 냄새 나는 것 같아요.”
교실에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은경은 천천히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떼어 벽 쪽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자, 이제 그 빛을 벽에 함께 걸어볼게요.”
흩어졌던 아이들이 벽으로 오고 아이들은 형형색색의 필름을 은경에게 줬다. 그녀는 테이프를 뜯어 필름을 천천히 붙였다.
각도를 바꿀 때마다 필름이 겹쳐지고 색이 겹쳤다.
어느 부분은 옅은 살구빛, 어느 부분은 푸른 기운, 그리고 약간은 차갑고, 약간은 탁한 회색 덩어리들이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다.
이 모든게 층층이 쌓이기 시작하자 빛이 겹쳐지고, 색이 바뀌고, 공기가 흔들렸다.
교실 벽은 서서히 살아 있는 색의 집합이 되어갔다.
아이들은 그 앞에 서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빛이 움직이는 속도를, 색이 섞이는 모양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선생님,”
가장 조용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우리가 그린 건 아닌데... 그림 같아요.”
은경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맞아요.
우리가 그린 게 아니라 우리가 지나간 흔적이 남은 거예요.”
그녀는 조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같은 도시에서도, 같은 빛은 없어요. 방금 여러분이 들고 섰던 자리, 그 순간의 빛은 다시 오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남겨둔 거예요. 감각은 늘, 조금씩 다르게 남으니까요.”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벽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자기 필름이 어디쯤에 있는지 찾으려 눈을 좁혔고, 또 누군가는 전체가 섞인 색의 느낌만을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은경은 그 모습들을 하나씩 눈에 새겼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나가자 그녀는 조용히 노트를를 열어 짧게 한 문장을 적었다.
오늘의 빛 , 아이들의 손에서 빛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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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덮은 그녀는 잠시 고개를 들어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칠판 가장자리에 걸어둔 유리병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은경은 알 수 있었다. 오늘 교실을 스쳐 간 빛의 일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결로 남아 있다는 것을.
교실에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와 빛의 흔들림만 남아 있었다.
기록 저장 : L-07 / 감각층_빛_세종특별자치시 도움1로 152-3(세종특별시 종촌초등학교 주변) / 기록자: 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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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오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