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
국어국문학전공
20201018 김성윤
#prologue 집. D
아파트의 한 가정집.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와 도마에서 식재료를 써는 소리. 흰색 앞치마를 맨 희연이 요리를 하며 어깨와 뺨 사이에 전화기를 낀 채, 친구와 통화를 한다.
친구 : 그 새끼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는지 동창회 같이 온 여자가 또 바뀌었대. 으휴.
희연 : (작게 미소 지으며) 이제 됐어. 이혼한 지 1년이야. 이제 그 사람 얘기 안 해도 돼.
친구 : 너는 속도 없니? 애도 혼자 키우는데?
희연 : (칼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잡는다.) 그래도 수아는 주님의 은혜지, 정말. 미운 일곱 살 이라는 말, 다 거짓말이야. 조용하고 착하고 얼마나 예쁜지 몰라.
부엌 옆의 흰 식탁 위에는 십자가 장식이 하나 놓여 있고, 거실의 책장에는 성경책과 여러 종류의 육아서가 꽂혀있다.
친구: 그래, 수아는 진짜 순하지. 사고 한번 안 치고 잘 클 것 같아.
거실에 있는 어린 수아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희연. 갑자기 어린 수아가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수아 : 가란 말이야!!!
희연 : (화들짝 놀라) 수아야, 왜 그래?
놀란 희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고. 수아에게 다가간다.
희연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왜 그래, 수아야.
수아 : (울먹이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킨다.) 나는 얘가 싫어서 나가라고 했는데, 얜 우리 집에서 나가기 싫대요. 우리집에서 평생 살 거래요. 여긴 우리집이야. 우리집이라구!
희연은 수아가 가리킨 곳을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수아가 들고 있던 책을 던지자, 책은 벽만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동시에 놀라 털썩 주저앉는 희연. 수아는 집이 떠나가라 울며 소리를 지른다. 부엌에 놓인 전화기에서 작게 목소리가 들린다.
친구 : 여보세요? 희연아?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희연아?
#1. 버스 정류장. 앉아 있는 수아. D
<주님의 교회>라고 적혀 있는 버스 정류장. 버스 정류장에 서서 희연이 친모에게 전화를 건다. 수아는 의자에 앉아 희연을 바라보며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흔들고 있다.
희연 : (기대감에 찬 목소리) 박 목사님께서 수아 안쓰럽다고 30분 내내 기도해 주셨어. 저 번에 기도해 주셨을 때부터 수아가 악몽을 안 꾼다고 하더라고. 이번에는 정말...
300번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선다.
희연 : 아, 버스 왔다. 이따 또 전화할게요, 엄마.
서둘러 수아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타는 희연. 버스에는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다. 희연은 빈자리에 수아를 앉히고 옷매무시를 다듬어준다.
희연 : 오늘 어땠어? 수아도 기도 잘했어?
수아 : (대답하기 망설이다가) 엄마, 나 이제 이상한 거 안 보여. 저번에 목사님이 기도해 주 셨을 때부터 하나도 안 보였어.
수아의 말에 희연은 크게 놀랐다가 수아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안긴 수아가 눈동자를 데굴 굴린다. 수아는 희연의 어깨에 매달린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지만, 고개를 휙 돌린다.
#2 교실. 문제집을 풀고 있는 수아. 1년 후, D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수아가 시끌벅적한 1학년 1반 교실로 들어온다. 수아의 손목에는 여전히 회색 십자가 팔찌가 끼워져 있다. 학생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학생1 : 우리 학교 귀신 많다며? 원래 정신병동이었다는 썰 있던데.
학생2 : (목소리를 줄이며) 재작년에 선배 하나 죽어서 말이 더 많아진 듯. 그래서 우리 학년 에 입학생 완전 줄었잖아.
학생3 : 헐. 미쳤다. (마찬가지로 소곤대며) 오하루 때문 아니야? 쟤 엄마 무당이라며.
학생2 : 전학 오고 누구랑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밤에 뭐 하는지, 수업 시간 내내 잠.
학생3이 앞자리에서 엎드려 자는 하루를 흘겨본다. 하루는 마이도 없이 셔츠 위에 검은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다. 선생님이 들어와 교탁을 탁탁 내리친다.
선생님 : 조용! 거기 뒤에, 이상한 얘기 하지 말고, 집중해!
교실이 조용해진다.
선생님 : 오늘 아침 예배, 빠진 사람 손을 들어봐. (손을 든 학생들을 세다가 한숨을 내쉰다.) 수아처럼 매일 새벽기도까지 나오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는다, 응? 수아의 반만이라 도 따라가라 제발.
아이들이 야유하고, 수아는 몸을 움츠린다.
선생님 : 우우는 무슨 우우. 조례 끝. 공부 열심히 해라.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간다. 아이들의 시선이 조용히 오가다가 교실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학생1 : 아까 하던 얘기 다시 해봐.
학생2 : 그러니까 야자실에서...
#3. 기숙사. 학교의 귀신을 보는 수아. N
일과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수아. 피곤한 안색이지만 단정한 교복이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방. 책상에는 성경책과 문제집이 놓여 있고, 벽에는 엄마와 찍은 사진과 십자가 장식이 붙어있다. 그 옆으론 미나와 찍은 사진들이 반듯하게 붙어있다.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화면에 <엄마>라고 뜬다. 희연에게 온 전화다.
수아 : (전화를 받으며) 네, 엄마. 방금 기숙사 왔어요.
희연 :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 딸, 오늘 고생했어. 이제 뭐 할 거야?
수아 : (캐리어를 열며) 집에서 가져온 짐 좀 정리하려고요. (옷을 꺼내다가 먼지가 날려 콜 록거린다.
희연 : (잔소리하는 투로)기숙사가 아무리 1인실이라고 해도 좁아서 공기가 안 좋으니까 귀 찮더라도 꼭 창문 열어서 환기해.
수아 : 네. 지금 열게요. (창문으로 다가간다.)
수아가 창문을 열자 흠칫 놀란다. 창문 앞에는 교복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의 다리가 버둥거리고 있다.후다닥 창문을 다시 닫는 수아. 창문이 급하게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희연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수아 : (잠시 망설이다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바람 때문에요. 아직 쌀쌀하네요.
희연 : 그래, 아직 겨울이니까 감기 조심해야지. 우리 딸 수아 건강하게 해달라고 엄마가 늘 기도하는 거 알지?
수아 : 네. 알죠.
희연 : 아, 엄마 전화 들어온다. 이번 주 잘 지내고, 주일에 교회에서 보자.
전화가 끊어진다. 수아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덜덜 떨며 기도한다.
수아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팔찌에 달린 십자가가 흔들린다. 중얼중얼 기도하는 수아의 목소리 너머로 여자의 비명, 남자의 고함,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노인의 곡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수아가 기도하던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며 [아모리-만조상해원경]이 재생된다. 가사가 나올 때부터 목소리들이 줄어든다. 화면은 fade out.
#4 복도. 악몽을 꾸는 수아. N
계속해서 [아모리-만조상해원경]이 재생된다. 꽹과리 소리와 방울 소리가 들린다. 1인칭 시점. 어두운 복도를 걷는다. 야자실이 가까워지자, 방울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야자실 문틈으로 인영이 보인다. 야자실 내부를 훔쳐본다. 교실에서 누군가 벽을 보며 방울과 부채를 흔들며 중얼거리고 있다.
사람과 벽 사이에는 두 개의 책상이 붙여져 있고, 그 위에 작은 촛불 두 개와 작은 불상들, 원색의 깃발들이 놓여 있다. 벽에는 보살과 장군, 옥황상제가 그려져 있는 족자가 걸려있다.
방울과 부채를 흔들던 사람은 교복 차림의 검은색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학생이다. 마이도 없이 셔츠 위에 검은색 후드 집업을 입고 있고, 손목에는 검은색 팔찌를 차고 있는데, 팔찌에도 작은 방울이 두 개 달려있다. 그 사람이 뒤를 천천히 돌아본다. 하루다. 짤랑- 방울 소리와 함께 노래가 뚝 끊긴다. 곧바로 [환(幻)_방준석&최유미]이 재생된다.
하루 : (차가운 목소리로) 누구야?
수아 : (화들짝 놀란 숨소리)
수아가 교실에서 고개를 돌려 걸어왔던 방향으로 뛴다. 계속해서 1인칭 시점.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헉헉거리는 수아의 숨소리가 들린다. 다시 귀신들의 속삭임이 시작된다. 바닥만 보며 달리던 시야에 갑자기 누군가의 두 발이 보인다. 암전과 동시에 노래도 끊긴다. 까만 화면, 멀리서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짧게 들린다. fade in 수아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 벌떡 일어난다. 수아의 귓가에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수아가 귀를 막고 웅크리며 벌벌 떤다.
#5 교실. 야자를 하는 수아. N
조용한 교실. 창밖이 어둑어둑하다. 학생 몇 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중에는 하루도 있는데, 여전히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자고 있다. 하루의 가방은 뭐가 많이 들었는지 울룩불룩하다. 뒷자리에 앉은 수아에게 몸을 돌리고 속삭이는 친구.
미나 : (투덜거리며) 야자실 귀신 소문 때문에 야자하는 애들이 진짜 많이 줄었네. 왜 기숙 사 사는 애들만 야자가 필수인 거야? 진짜 이 학교 이상해.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는 데! 저번에 복도에서 이상한 여자 울음소리 듣고서 요즘 계속 악몽 꾼단 말이야.
수아 : (걱정되는 말투로) 그런 거 다 믿지 마. 요즘 피곤해서 그럴 거야.
미나 : (눈을 반짝이며) 넌 진짜 겁이 없는 것 같아.
수아는 미나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귀신을 보고 흠칫하지만 금세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손목의 팔찌를 만진다. 한 친구가 수아에게 다가온다.
학생2 : (우물쭈물하며) 수아야... 있잖아. 나 오늘 야자실 열쇠 담당이거든. 너무 무서워서 그 러는데, 혹시 대신 문단속 해줄 수 있을까? 너 귀신도 안 믿고... (수아 가까이 다가 와 귓가에 속삭이며) 저번에 오하루가 자기가 잠근대서 열쇠 줬다가 잃어버려서 나만 혼났거든. (다시 수아를 바라보며) 해줄 수 있을까?
하루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수아는 어젯밤 꾼 꿈속 하루를 떠올린다.
수아 : (조금 망설이다가 하루를 힐끗 보고) 그, 그래. 내가 대신 잠그고 갈게. 먼저 가.
학생2 : (감동한 목소리로) 수아야, 내가 내일 매점 한정판 초코빵 사줄게. 고마워 진짜.
친구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수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시계의 바늘이 11시 30분을 가리킨다. 시계가 빠르게 돌아간다.
#6 교실. 문단속을 하는 수아. N
교실 앞에 달린 시곗바늘이 11시 50분을 가리킨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나가는 아이들. 교실에는 하루만 남아있다. 수아가 하루를 검지 손가락으로 쿡쿡 밀며 깨운다.
수아 : (조금 쌀쌀맞게) 이제... 문 잠그려고.
하루 :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후, 수아를 바라보더니 손을 내민다.) 내가 잠글게.
수아 : 부탁받은 거라... 내가 잠글게.
하루가 수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간다. cut to 모두가 사라진 교실에서 가방을 챙기는 수아. 수아가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11시 55분이다. 주변을 둘러보는 수아. 불을 끄자 어두컴컴해진 교실. 오싹한 비명이 아주 짧고 작게 들린다. 교실 가운데 여학생의 형상이 아른거리다가 사라진다. 수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잠근 후 복도로 향한다. 최소한으로 켜져 있는 복도의 불이 아른거린다. 긴장한 표정으로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복도를 걷는 수아.
#7 교실. 긴장한 채 복도를 걷는 수아. N
수아의 발이 천천히 지나간다. 그리고 들리는 여자의 울음소리. 수아의 발이 잠시 멈칫한다. 계속해서 들리는 여자의 울음소리에 수아는 귀를 막고 복도를 달린다. 그러다가 복도에서 한 여자와 부딪힌다. 하루다. 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숨을 삼킨다. 하루는 아까의 모습처럼 교복 셔츠에 검은색 후드티는 그대로지만 오색 깃발과 부채, 신장대를 들고 있다.
하루 : (날카로운 말투로) 너, 이 목소리들 들리지?
수아 : (대답을 망설이다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기숙사로 돌아갈 거야. 너도 이 상한 짓 하지 말고...
그 때, 갑자기 수아에게 한 학생이 달려들어 수아의 목을 조른다.
수아 : (괴로워하며) 컥...! 컥컥.
학생의 눈이 위로 뒤집혀 있다. 학생이 수아를 바닥에 쓰러트린 후 말을 중얼거린다.
학생4 : (아주 작은 음산한 목소리로) 나가...지마... 같이 있어...
하루는 놀란 기색도 없이 서둘러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주문을 왼다.
하루 : (중얼거리며)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무상심심미묘법...
수아 : 살려...살려...컥..! (버둥거리다가 눈에 힘이 풀려간다)
하루가 다가가자, 학생이 비명을 크게 지르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손이 풀리자, 수아가 숨을 들이키며 기침한다. 침착하게 학생을 안전하게 눕히고 손을 주무르는 하루. 수아는 겁에 질려 몸을 돌려 하루와 학생을 내버려둔 채, 기숙사로 뛰어 들어가 방문을 벌컥 연다.
#8 기숙사. 문제점을 찾은 하루. N
기숙사 문이 열리고 하루가 방으로 들어온다. 수아의 방과 똑같은 구조의 방. 책상에는 굿에 쓰이는 방울과 깃발, 부채 등의 온갖 주술 도구가 놓여 있다. 벽에는 각종 신이 그려진 족자와 액막이 그림이 걸려있다. 침대에 털썩 쓰러지는 하루.
하루 : (침대를 팡팡 치며) 오늘도 실패야!! (배개에 머리를 박는다) 걔를 이용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았는데... (멈칫 하더니) 그냥 걔한테 부탁해볼까? (옆을 돌아보며) 살아있는 열일곱살 여자애한테는 어떻게 다가가야하지?
하루의 침대 옆에 소년 모습의 한 귀신이 어깨를 으쓱한다.
#9 복도. 하루에게 부탁받는 수아. D
쉬는 시간, 교실이 시끄럽다.
학생1 : 야, 어제 김민정 야자하다가 쓰러졌대.
학생3 : 엥? 갑자기? 설마, 귀신 봤대?
학생1 : 그건 모르겠고, (목소리를 줄이며) 오하루가 발견해서 사감한테 데려갔대.
학생3 : (덩달아 목소리를 줄이며) 오하루가? 미친. 진짜 귀신 때문인가?
자습하고 있는 수아. 교복 안에 목티를 입고 있고, 넥타이가 흐트러져 있다. 목이 아픈지 작게 콜록거린다. 그런 수아에게 다가온 하루. 웅성거림이 조금 잦아들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하루 : (뻣뻣한 말투) 저기. 잠깐 얘기해도 돼?
수아 : (당황해하며) 아, 이 문제 알려달라고? 복도에서 알려줄게. 따라와.
하루가 수아에게 끌려 복도로 나온다.
수아 : (손을 탁 떼며) 할 말이 뭐야.
하루 : (당당한 말투로) 어제 다 기억하지? 나 좀 도와줘. 네가 가진 음기가 좀 필요해.
수아 : (잠시 침묵하다가 하루를 노려보며) 나 어제 정말 죽을 뻔했어. 누가 목을 조르고 있 으면 보통 말리는 게 정상 아니니? 그리고 난 음기 같은 것도 없고, 이상한 일에 휘 말리고 싶지도 않아. (차갑게 돌아선다)
하루 : (시무룩해하면서 허공에 중얼거린다) 것 봐, 안될 거라고 했잖아...
cut to 교실에 들어온 수아에게 다가온 미나.
미나 : (궁금증 어린 얼굴로 수아의 팔을 툭툭 건드린다.) 쟤랑 무슨 얘기 했어? 문제 물어 본 거 아니지?
수아 : (어렵게 미소를 지으며) 아니야, 문제 물어본 거 맞아. 그런데 미나야,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야자 빠져야겠어. (목소리가 조금 쉬어있다)
미나 : 너 오늘 몸이 진짜 안 좋아 보여... 어쩔 수 없지.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수아 : (넥타이를 고쳐 맨다) 고마워 미나야.
fade out 어두운 화면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쿵. 하고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10 교실. 미나의 소식을 듣는 수아. D
아침, 교실에 들어서서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는 수아. 교실이 시끄럽다. 미나가 읽지 않고 있는 카톡들을 내리며 교실에 들어서려던 수아. 아이들의 속닥임이 들려온다.
학생1 : 오늘은 이미나가 쓰러졌다며?
학생3 :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또? 걔 귀신 진짜 무서워하던데...
학생1 : (킥킥 웃으며) 아, 근데, 걘 진짜 쫄보라서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그냥 기절한 걸 수도.
학생3 : (같이 키득거리며) 그게 더 그럴싸하다. 걔가 공부하다 쓰러졌을리도 없잖아.
학생2 : (꾸짖는 말투로) 야, 애가 기절했다는데 웃음이 나오냐?
몸이 굳은 채로 책상 앞에 서 있는 수아. 수아의 시선이 미나의 자리로 향한다. 미나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교탁을 탕탕 친다.
선생님 : 조용, 조용! 귀신 그런 거 아니고, 미리미리 공부 안 하다가 벼락치기 해서 그런 거 야. 진작에 공부했으면 이럴 일도 없지! (혀를 쯧쯧 찬다)
수업 종이 울린다. 수아는 멍하게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교실을 뛰쳐나간다.
#11 양호실. 누워있는 미나를 발견한 수아. D
양호실이 써진 표지판. 안으로 들어간 수아가 침대 커튼을 젖히니 미나가 교복 셔츠 차림으로 수액을 맞으며 잠들어 있다. 뒤척이며 식은땀을 흘리는 미나. 안절부절못하며 팔찌만 매만지는 수아의 뒤로 하루가 다가온다. 미나의 손가락에 노란색 종이를 감는 하루. 수아의 표정이 구겨지고, 입을 떼려는 순간.
하루 : 액땜이야. 완전히 때우려면 원귀를 해치워야해. 이틀 내로 제령을 안 하면 영원히 악 몽 속을 헤매게 될걸?
하루의 말에 수아가 두리번거리다가 하루의 손목을 끌고 옆 침대로 가 커튼을 친다.
수아 : (작은 목소리로) 네가 말한 악령, 그거 때문에 미나가 쓰러진 거지? (잠시 침묵하다 가) 어제 네가 말한 거... 도와줄게. 내가 뭘 하면 되는데?
#12 기숙사. 하루와 제령을 준비하는 수아. N
하루의 기숙사에 들어온 수아. 방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는데, 하루가 그 입을 막는다.
하루 : (침대를 툭툭 두드리며) 여기 앉아. 이제부터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네가 해야 할 일 을 알려줄게.
수아가 침을 꼴깍 삼키며 침대에 앉는다. 의자를 끌고 와 마주 앉는 하루.
하루 : 너는 무속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
수아 : (고개를 끄덕이며) 응. 나는 모태신앙이거든.
하루 : 그렇게 말하자면 나도 모태신앙이거든? 우리 엄마 무당이야.
수아 : 아... (멋쩍은 표정)
하루 : 농담이야. (어깨를 으쓱하고) 그럼, 처음부터 알려줄게. (종이와 펜을 꺼내 그림을 그 리며 설명한다) 사람은 영과 혼, 넋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이 죽으면 영은 하늘로 승천하고, 혼은 저승으로 가. 마지막에 남은 넋은 땅으로 흩어지지. 그런데 자리걷이 를 하지 않으면 넋이 그 자리를 맴돌게 돼. 남는 넋에 따라 다르지만, 한이 짙거나 안 좋은 기운과 운 나쁘게 합쳐지면 악귀가 되는 거야. 나는 그런 것들을 없애.
수아 : (손을 들어 질문한다) 그럼 내가 평소에 보는 것들은 악귀가 아니야?
하루 : 내가 아니라 우리. 그리고 네 말이 맞아, 평소 눈에 띄는 것들은 보통 잡귀야. 이 런 애들은 약해서 곧 흩어지거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어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 사실 이들도 남고 싶어서 남은 게 아니거든.
수아 : 그렇구나...
하루 : 하지만 야자실 귀신은 다르지. 걘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거든. 목매달아 죽어서 그 런지 자꾸 애들 목을 조르더라.
수아 : (흠칫 놀랐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해?
하루 : 음. 네가 할 일은 미끼 역할이야. 나는 영력이 강해서 귀신을 불러내기가 어려워. 그 래서 네가 겁먹은 척 귀신을 불러내서 잡아두는 동안 내가 제령을 준비하는 거지. (책상에서 부적을 한 장을 꺼내 내민다) 내가 준비한 부적이야. 이걸 귀신의 이마에 붙여. 넌 이것만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수아 : (부적을 받아 들고 침을 꿀꺽 삼킨다)
하루 : 중요한 건 무서워하지 않는 거야. 귀신은 사람이 공포심을 가질수록 강해지거든. 존 재라는 건 인식하는 사람의 몫이야. 그게 무엇이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상상하 면 정말 존재하게 돼. 심지어 강해지기도 하고. (수아의 어깨를 잡고) 그러니까 너 무 무서우면 하나도 안 무섭다고 외쳐야 해. 괜히 센 척하란 말이야. 알겠지?
수아 :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
하루 : 좋아. 그러면 내일 바로 해보자.
#13 복도. 제령을 시도하는 수아와 하루. N
수아만 남은 야자실. 그제와 마찬가지로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수아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복도로 나선다. cut to 그 옆 교실. 하루가 불을 꺼둔 채 주문을 외우며 제령을 준비한다. 책상에 늘어뜨려 놓은 무구. 방울이 달린 채, 신들이 그려진 그림과 오색 깃발. 제물처럼 쌓아둔 초코파이. cut to 다시 수아의 시점. 수아가 복도를 걷자,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손을 덜덜 떠는 수아의 뒤에 한 학생이 나타난다. 몸을 돌려 주머니에 넣어둔 부적을 꺼내려던 수아. 놀라 몸을 멈춘다. 수아의 뒤에 서 있던 학생은 다름 아닌 미나.
수아 : 미나야, 너 왜 여기에 있어?
미나 : 수아야. 흐윽... 나 너무 무서워.
미나가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표정은 웃고 있다.
수아 : (미나를 토닥이려는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미나의 몸을 떼어낸다) 너 오늘 기숙 사에서 쉬기로 하지 않았어?
미나 : (표정이 굳었지만 여전히 흐느끼는듯한 소리를 낸다) 나 너무 무서워. 수아야. (미나 와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마. 나랑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미나가 수아의 손목을 꽉 잡는다. 미나의 손톱이 수아의 손목 살갗을 파고든다. 수아가 비명을 지르며 미나의 손을 뿌리치던 중에 수아의 팔찌가 끊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수아에게 달려드는 미나를 밀치고 수아는 바깥으로 도망친다.
#14 운동장. 두려움에 떠는 수아. N
운동장 구령대 앞,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쪼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수아. 손목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빈 손목을 불안하게 매만진다. 멀리서 달려오는 하루.
하루 : (숨을 고르며) 너 괜찮아?
수아 : (하루의 목소리에 울음을 터트린다) 못하겠어! 어떡해... 어떡해...
하루 : (한숨을 쉬며) 내가 얘기했지. 악귀가 강해지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라고. 언제까지 무 서워하고 살 수는 없잖아!
수아 : (화내듯) 겁이 나는 걸 어떡해! 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평생 이런 거 모르고 살았 단 말이야. 이렇게 태어나기도 싫었다고!
하루 : (덩달아 화를 내며 수아를 밀친다.) 나라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었겠어?!
수아 : (엉덩방아를 찧고 놀라 울음을 그친다) 뭐?
하루 : 나도 무서워! 징그럽고, 끔찍하고! 날 찾아와서 죽일 것 같다고. 그런데 쫄아버리면 정말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처음에는 화난 듯 말하지만, 점점 중얼거린다)
잠시 정적. 놀라서 하루를 올려다보는 수아의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하루가 쪼그려 앉고는 훌쩍이는 수아에게 손을 내민다.
하루 : (진심을 담아) 화내서 미안.
수아 : (조금 진정한다) 아냐... 내가 잘못했는걸.
하루 : 무서워하는 건 잘못이 아니야. 이렇게 태어난 게 너의 잘못은 아니잖아.
수아 : (울음을 그치고 하루의 손을 잡는다.) 내가 아니라 우리.
하루 : (피식 웃는다) 맞네. 네 말이 맞아.
수아가 코를 훌쩍이다가 일어난다. 손을 잡고 있던 하루도 덩달아 일어난다.
수아 : 나... 미나를 구하고 싶어. 그런데 무서워.
하루 : 너무 무서우면 나만 믿어. 미나를 구해야지. (수아의 빈 손목을 보더니 자신의 손목 에 감겨있던 방울이 달린 끈을 풀어 수아의 손목에 걸어준다) 이건 내가 처음 퇴마를 나갔을 때 날 지켜줬던 거야.
수아 : (팔찌가 걸린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고마워.
수아가 하루의 손을 잡고 먼저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하루가 처음에는 그 뒤를 따르다가 이내 같은 속도로 함께 학교로 걸어간다.
#15 기숙사. 다시 학교로 돌아온 수아. N
한층 더 어두워진 복도. 수아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뚜벅뚜벅 망설이지 않고 걸어가는 수아.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고, 수아는 손목에 묶인 끈을 한번 보고는 다시 걷는다. 수아 앞에 다시 나타난 미나. 수아의 공포를 먹고 미나의 몸 주변에 어두운 기운이 스멀스멀 드러난다.
미나 : (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흐느낌 소리를 내며) 다시 와줬구나. 기다렸어. 기다렸어.
수아 : (떨리는 목소리로) 너 만나러 온 거 아니야. 너를 없애고 미나를 구할 거야. 난 너같 은 거 이제 안 무서워.
미나 : 거짓말. (수아에게 다가와 희연의 목소리로) 우리 수아가 이상해요. 흑흑.
수아 : (놀라서 몸이 경직된다) 엄마..?
미나 : (여전히 희연의 목소리로) 아버지 하나님, 믿사오며 당신의 능력을, 여김을 거룩한, 받으시옵고, 사탄의 간계에 당신의 어린양을 고통받는, 보호하소서. 저희의 모든 악에 대해, 보호자가 되소서. 간청하오니, 하나님께 불쌍한, 굽어보시어 영혼을, 은총을 내 려주시옵소서. 이름으로 주님의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미나가 수아의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른다. 수아의 머릿속에 자신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flash back
희연 : (화난 목소리로) 언제부터 숨겼던 거야? 이게 다 신앙심이 부족해서..
목사님: (간절하게) 주여, 이 어린양을 구하시옵고...
미나 :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귀신 본다고? 너 정신병 있는 거 아니야?
학생1 : 모범생인 척하더니.. 재수 없게.
하루 : 너 진짜 겁쟁이다. 할 수 있는 게 뭐야?
수아 : 넌 영원히 그대로일 거야!!
희연, 미나, 목사님의, 친구들, 하루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지막으로 수아 자신의 목소리가 섞인 비명이 들린다.
미나 : (다시 음산한 목소리) 넌 여기서 못 벗어나. 영원히 여기 있을 거야. 우리랑 같이. 네 엄마한테 경멸받으면서. 네 친구들한테 무시당하면서!
수아 : 아니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고 손을 든다)
cut to 하루가 책상으로 만들어 둔 임시 제단 앞에서 기도를 하고있다.
하루 : (손을 비비며) 천지신명이시여...
순간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들린다. 하루가 몸을 멈췄다가 다시 빌기 시작한다.
하루 : 조금만 버텨봐, 김수아...!
cut to
수아 : 나는 갈 거야. 영원히 여기 있는 건 너야! (미나를 강하게 뿌리친다)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음산한 소리가 멈춘다.
미나 : (주춤하더니) 이딴 건 아무 쓸모 없어! 나랑 같이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수아 : (소리를 지르며) 이런 거 언제까지 무서워할 거야, 김수아!!
#16 교실. 하루를 믿는 수아. N
목소리들이 점점 사그라든다.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미나의 이마에 붙이는 수아. 미나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미나 : 안돼...!!!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섞인 것 같았던 미나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섞이길 반복한다. 붙잡힌 목덜미에 숨이 막혀 연신 기침을 하는 수아. 얼굴이 붉어진다. 수아가 쓰러지기 직전, 멀리서 하루가 달려와 수아를 떼어내곤 미나의 몸에 올라탄다.
하루 :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중얼중얼 주문을 왼다)
하루가 미나의 머리를 붙잡고 방울을 흔들자, 미나의 몸이 격렬하게 요동친다. 하루가 부채를 부치며 주문을 중얼거리다가 부채를 접어 미나의 머리를 툭. 내려친다. 이내 정신을 잃는 미나. 미나의 이마에 붙어 있던 부적이 재가 되며 사라진다. 미나의 몸 위에서 일어나는 하루. 하루가 일어나자 수아가 미나에게 기어가 상태를 확인한다.
수아 : (미나를 작게 흔들며) 미나야, 정신 차려봐.
하루 : 걔 정신 차리면 너 해명해야 될 게 많을걸?
수아 : 어...?
하루 : (피식 웃으며) 농담이야. 바로 깨우면 몸에 안 좋으니까 그냥 둬.
하루가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찾는다. 교실 벽 틈 사이에서 머리카락 한 뭉치를 발견한다. 미나의 몸 앞에 서서 부적과 함께 머리카락을 태우는 하루. 하루가 무릎을 꿇고 미나 옆에 주저앉은 수아에게 손을 내민다.
하루 : 잘했어.
수아 : 이제 다 끝난 거지...?
하루 : (미소 지으며) 응. 다 끝났어.
힘 빠진 수아가 하루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이자, 하루가 팔을 당겨 수아를 일으킨다.
#epilogue 1. 사건이 마무리되다.
며칠 후, 아침. 교실. 여전히 시끄럽다. 수아는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고, 하루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학생1 : 야, 어젯밤에는 별일 없었대?
학생2 : 옆 반에 기절했던 걔? 어제 그냥 꿀잠 잤다는데?
학생1 : (실망한 어투로) 아 뭐야. 재미없어.
학생3 : (핀잔을 주며) 야, 너는 맨날 친구의 불행이 재밋거리냐?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
학생1 : (괜히 짜증 내며) 아, 뭐. 어쩌라고. 그런데 3반에 괴담 또 생겼다며.
학생2 : 헐 맞아. 이번에는 과학실이라는데? 새벽에 누가 과학실에 서 있는 거 봤다고.
학생3 : 우리 학교는 무슨 괴담이 이렇게 많냐... (한숨을 쉰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수아가 하루와 눈이 마주친다. 수아는 하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른 친구들과 복도에서 환하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미나를 한 번 보더니, 다시 하루에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epilogue 2. 다른 귀신을 퇴마하다.
한밤중의 어두운 복도. 하루의 가득 차 있는 백팩에 오색 깃발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하루 오른편에서 신장대를 들고 있는 수아. 수아는 방울끈이 묶여 있는 손으로 하루의 손목을 잡고 있다.
하루 : 가볼까?
수아 : 좋아. 가자.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어두운 복도를 향해 걸어간다.
천천히 멀어지는 두 사람.
화면이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