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인문학부
20241001 강서영
마을에서 사람이 한 명씩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결코 소문이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는 불유쾌한 낭설도 아니었다. 정확히 한 달 전, 17세 학생을 시작으로 나이 성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온 마을이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는 제법 적극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는데, 변주도 그중 한 명이었다. 변주는 이 상황을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사람 찾기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대단스럽진 않은 사유로부터 시작되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들이 엄청난 결의를 다지고 발을 들이는 것처럼 보여, 변주에게 굉장한 멋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변주에게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승부욕을 키웠다. 결국 일 주 이 주 하고 삼 주가 지나갈 무렵 변주도 실종자 수색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하면서 변주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는 만족감을 느낀 것이다.
오늘은 첫 활동 개시일이었다. 남들과는 달리 초짜나 다름없는 변주는 다행히 특기인 곁눈질하기로 수색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대강 터득할 수 있었다. 먼저 수색원들이 마을 중앙운동장에 집결하면, 한 명이 대표로 출석을 부르고, 어떤 기준 없이 팀을 나눈 후 각각 맡은 장소로 나가 수색을 진행한 뒤에 모이기로 한 시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결과를 공유하는 식이었다. 변주는 출석을 부를 때 제 이름 석 자가 불리자마자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제 정말 이 무리에 소속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어서는 팀을 나눴는데, 변주나 다른 사람들은 발언권이 없고 평소에 팀을 나누던 사람이 익숙한 듯 사람들을 분리시켰다. 변주는 출석 때 이후로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지시에만 따랐다. 원래는 좀 더 의지 가득한 태도로 밀고나가려고 했으나 그래도 될 만큼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각자 챙길 거 챙기고, 조심해서 다녀오자구요.”
운이 좋은 건지 변주네 팀 대표는 전체 무리의 초창기 멤버 쯤 되는 사람이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과거를 추억하며 그때는 이랬니 저랬니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아무쪼록 경험도 정보도 제일 많을 테니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수월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마을 바깥은 경계선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접근 가능한 구역인지 구별이 쉽다고 했다. 변주는 나고 자란 마을의 밖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된다는 기대감에 큰 숨을 들이쉬었다. 마음만은 어디 먼 정글이라도 탐험하러 가는 듯한 기분으로 발을 옮기는데 곧 두 쌍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바라보자 그들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친근하게 굴었다. 말하기를 두 사람은 결혼한 지 15년 되어가는 부부인데, 요근래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사라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으니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다가 한 가지 다짐하기를, 남은 시간 동안 절대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꼭 붙어 다니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게 실종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결부되어 이렇게 둘이서 수색을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실 좋은 부부의 수다를 받아주기만 해도 시간은 훅훅 지나갔다. 그동안 변주가 열심히 둘러본 그 어디에도 사람은커녕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하면 변주에게 말을 건 사람들은 꽤 많았는데,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실상 새로운 팀원과의 인사 자리였다. 그러니까 여기는 겸사겸사 사라진 사람들도 찾아보고 그러면서도 혹여나 이번에는 자신이 표적이 될까 차라리 공개적으로 활동하면서 뭉쳐 다니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의 모임이나 다름없었다. 변주가 허울 좋은 때깔에 눈이 멀어 겉멋만을 보고 따라들어온 것에 반해 숭고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었다. 다만 변주는 자신에게 말을 거느라고 한창 바빴던 이들이 제대로 수색은 하고 다녔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해가 지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먹물 같은 어둠이 하늘에 번질 때쯤 돌아온 이들이 하나둘씩 오늘도 허탕이라는 둥 불평하는 시간이 지나면 각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변주가 보기에 이런 것은 너무도 실속없는 흐름이었다. 거창한 포부에 맞지 않는 지루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활동이었다.
“그렇게 많은 곳에 나뉘어서 갔는데도 얻은 게 이 정도로 없는 겁니까? 차라리 다같이 한 곳을 집중적으로 파보지 않고.”
“아직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정 만족 못하겠거든 혼자서라도 다녀오시지 그래.”
대표는 그렇게 변주의 내면에 있는 승부욕을 건드렸다. 건드리려고 건드린 것은 아니고 가뜩이나 부실한 성과에 실망한 채였던 그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었지만 그만큼도 변주에게는 기폭제가 되었다. 약이 바짝 올라서, 당장 내일에라도 채비를 해야지 다짐하며 변주는 발을 돌렸다.
둘째날은 활동하지 않는 날이었다. 그들은 매일매일 팀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색은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을의 구성원으로서 일상을 보내는 게 보통이었다. 사람을 찾기에 일주일이란 굴레가 충분히 철저한가 싶기도 했다. 원래도 마을에 안주하던 사람들인데 수색을 시작하고서 다시금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이야말로 변주는 무언가 눈에 띄는 결과를 보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수색에 건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실태를 보고 좀 과하게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뿐일 터였다. 부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나태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변주는 괜히 화살을 그들에게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집을 나서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을 정경이 펼쳐졌다. 이대로만 있는다면 외부의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졌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할 것 같았다.
변주는 어제보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 바깥 경계선을 넘었다.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보폭에 맞출 필요가 없었다. 성큼성큼 언덕길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며 매의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지반이 단단한 언덕 아래로는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숲이 바깥 경계선을 따라 공간 전체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마을은 그 너머를 알 수 없이 완전히 격리된 채였다. 어느 순간 변주는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달았다. 명확한 선이 그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마을은 무척 보수적인 편이었고 분명히 넘어서는 안 될 구역이 존재했다. 그 경계를 지금 침범해버린 것이었다. 변주는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언덕 아래로 미끄러질 뻔했다. 은근하게 느껴오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에 묵직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다음 변주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몇 걸음인가 떨어진 곳, 숲의 초입에 우뚝 선 수백 그루의 참나무. 그중 가장 작은 나무의 뒤편에 조그맣게 삐져나온 샛노란 옷자락. 변주는 그것이 사람의 것임을 확인하기 무섭게 홀린 듯 다가갔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변주는 쿵쾅대며 가슴께를 두드리는 커다란 이 소리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목울대가 꿀렁 움직였다. 앞으로 마을의 규칙을 어겨서 좋을 것은 단 하나도 없겠거니, 때늦은 후회를 한 그가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기이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기우뚱, 고꾸라졌다. 동시에 나무 뒤에 숨어있던 의문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둘은 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형편없이 넘어졌다. 고요한 경계의 숲에 자그마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변주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찧은 손바닥 아랫부분이 찡하고 아팠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벌겋게 부어올라있을 것이 틀림없어 변주는 바닥에 널브러진 와중에 앓는 소리를 냈다. 뒤늦게 고개를 올려 보니 아래에 깔려 더 심하게 나뒹굴었을 이는 어느새 빠져나와 멀쩡한 듯 일어나 있는 것이다. 변주는 아까 보았던 개나리색이 옷이 아니라 손목에 두른 헝겊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고꾸라질 줄 알았으면 진즉 피해 도망갔을 텐데. 하여간에 마을 사람은...”
손목에 병아리 그림이 프린트된 헝겊을 질끈 묶은 여자는 변주더러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손을 내민다거나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일도 일절 없었다. 그것은 차가워 보일 정도로 무심한 눈이었다. 변주의 모든 것을 열정 가득히 바라보는 눈과는 달랐다. 그래선지 변주의 목은 무언가에 턱 막힌 듯 말을 뱉어내기 힘들어졌다.
“뭘 멍하니 벙쪄있는 겁니까? 정신 차렸으면 썩 마을로 돌아가기나 하시지.”
“수색대에서 왔는데요. 혹시 마을에서 며칠 전에 실종된 분 아닙니까?”
마을의 모든 사람을 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사람을 찾아도 이 사람이 실종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영부영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여기 이렇게 숨어있는 이들이 더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는 뻐근하기까지 한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변주와 여자의 눈이 허공에서 부닥쳤다. 이상하게도 여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변주는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뭐요, 수색대? 얼씨구. 말하는 게 영 어리바리한데, 본인이 무슨 일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어요?”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우선 가장 거슬리는 부분을 꼽자면 꼭 변주를 불쌍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이었다. 알을 깨지 못한 이를 바라보는, 그 측은한 눈빛이 계속해서 내리쬐고 있던 것이다. 변주는 막연한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의문을 해소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질문이라도 마구 던지겠노라 결심하는 것이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철면피와도 같아서, 자신이 어떤 회유와 권유와, 지금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필두로 무엇이 변했고 왜 그랬는지까지 술술 털어놓아도, 결코 끄떡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마침내 변주가 고르고 고른 질문 예순다섯 가지 중 첫 번째를 입밖에 내놓았을 때, 여자는 변주의 모든 예상을 비껴가듯 입도 뻥긋하지 않았더랬다. 난생 처음 겪는 지속적인 무시에 변주는 기가 바짝 눌리고 말았다. 마을 안에서는 자신을 옥죄는 규율이 조금 답답하기는 해도, 모두가 서로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그리하여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이 그 갑갑한 마음을 달래주어 괜찮았다. 허나 지금 자신에게 말로 하기도 애매한 모든 언행을 일삼는 이 여자에게서는 마을에서 느꼈던 안정이나 따스함을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여자에게서는 남의 눈치를 본다던가 기분을 살피는 등의 어떤 사소한 행동 하나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즉각 반응을 보이고 입을 종알거렸다. 변주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더 움츠렸지만 여자에겐 그마저도 관심 밖이었는지 변주의 소소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허리를 숙여 눈을 바라보았다. 시선으로 꿰뚫릴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 터였다.
“하루빨리 깨닫는 게 좋을 겁니다. 그곳에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걸.”
냉철하고도 담담한 목소리는 변주의 척추를 따라 흐르고, 다시 거꾸로 솟아 변주의 뇌에 침입해 깃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변주는 혼자였다. 인기척이라곤 없는 고요한 숲의 경계에는 형편없는 모양으로 널브러진 남자만이 있었다.
“그럼 오늘도 힘내보십시다. 어서 찾아서 무사히 데려와야 할 텐데 말이에요.”
이제는 조금 허울 좋은 말로 들리는 수색 시작 구호를 필두로 변주네 일행은 일주일만의 탐사 작업을 시작했다. 변주는 부지런히 앞사람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것과는 별개로 시선은 저의 발끝에만 머물고 있는 참이었다. 그건 꼭 크게 절망해서 풀이 죽은 사람 같기도 했고 무언가 아주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러면 다른 일행들은 그런 변주를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오랜 상념의 시간 앞에 시시콜콜한 농담 하나 못 던지고 입을 닫는 것이었다. 그런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이날이었다.
실제로 변주는 무엇을 아주 깊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얼마 전 일어났던 변주의 바운더리 침범(탈출)과 그것보다도 그 뒤에 만났던 정체불명의 거동이 특이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여자의 이상하리만치 대범하고 시원스러운 태도에 대해서였다. 어쩌다 경계선을 넘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가물한데 여자의 말씨와 언동만큼은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거지... 그날의 상황을 몇 번이고 반복 재생시키며 변주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 치가 마을에서 바깥으로 탈출을 한 바로 그 사람들 중 하나인지는 알 수 없으니, 그자가 원래부터 그렇게 별종이었는지 아니면 원랜 안 그랬는데 나가 돌아다니고서부터 성격이 바뀐 건지 확신하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사실 변주는 내심 그날의 기억을 제법 중요하게 붙들고 지내고 있었다. 다른 거라기보단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처음 보기도 했고 바깥에 나가버린 기억이 놀란 가슴으로 아직도 뛰고 있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하나의 ‘일탈’ 행위에 발끝을 담가버린 것이라는 자각에 대한 감출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흥분감이 원인이었다. 어쨌거나 변주는 삶이 지루한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지금 이 수색대에도 뛰어들었던 것이므로-앞서 기존 창단 멤버들이 멋드러져보였다곤 했지만 그럼에도 활동에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도록 했던 것은 해묵은 권태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날의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앞사람 등이 확 가까워지는 바람에 그만 코를 박을 뻔하고 가까스로 멈춰선 변주가 영문모를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이 수색을 시작해야 할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변주는 우선 상념을 끊어내고 작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실상 그때의 짜릿함과 흥분은 아무리 곱씹어봐야 다시는 주어질 수 없는 불변의 과거의 기억에 불과했기도 하니 괜한 망상일랑 집어치우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쯤 변주도 그즈음엔 깨닫고 있었다.
결과는 늘 그렇듯 허탕이었다. 아무리 온 신경을 기울여서 주변과 그 일대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사람은커녕 지나가는 고라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쯤 되니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의욕으로 불타오르던 변주라고 해도 수색 첫날보다는 진력나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렇다고 저 멀리 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광인처럼 온 숲속을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변주의 잔뜩 부풀었던 기대감은 조금씩 그 크기를 달리하며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각고의 노력이라 해봤자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들여다보는 것밖엔 못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변주에게 이 일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기약없는 행위인지를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변주는 고개를 내린 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전의 사건을 생각하느라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게 아니었다. 변주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발단과 의의와 정말로 마을을 빠져나간 사람들이 납치라거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을 잃어버렸다거나 하는 등의 불미스런 일로 자취를 감춘 것은 맞는지에 대해 고찰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변주는 이 집단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채 추리를 계속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와서 더 생각할 거리도 없다지만 변주는 그렇게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가 마을이 좀 소란스럽길래 무슨 일이 있나 밖을 좀 내다보았다가 상황을 알게 되고 그 봉사 집단을 표상하고 있는 듯한 단체에 막연한 동경이 생긴 것뿐이라, 이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구체적인 방침은 무언지 그런 게 존재한다면 왜 아직까지도 나머지 멤버들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여지껏 일을 할 때도 특정한 목표 의식 없이 같은 행동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알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미약한 흔들림은 희미할지언정 멈추지 않고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욱이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다음날부터였다. 아니 어쩌면 변주가 어제를 기점으로 마을의 동태나 주변 일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니기 시작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실한 것은 마을은 늘 이상하리만치 집단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마을이라 함은 원래가 군중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생각이 들다가도, 생각해보면 그것에서 나아가 어딘지 기이할 정도로 맹목적인 구석이 있던 마을이었다. 이를테면 마을 대표(겸 탐색대 회장)가 이번 달 배급량은 사정상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하고서는 그 사정이란 것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반발이나 불평 없이 수긍하는 점이 그러했고, 주민 다수가 비슷한 의견으로 고개를 기울일 때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음에도 금방 꼬리를 내리고 한 무리로 합쳐지듯 동조해버리는 점 등이 그러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한 번 꼬리를 물기 시작한 미심쩍음과 의구심이 금세 몸집을 불려 커지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또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은 생겨난 이래 자세를 달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한결같이 정적이었고 소리 없이 대동단결해왔다는 의미였다. 변주는 오히려 일상에 무관심해 다른 이들의 그 조용한 약삭빠름을 잡아내지 못하고 스스로만큼은 그 흐름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임을 천천히 알아차렸다. 그쯤 되었다면 변주는 이제 자신이 그렇게나 우러러본 수색대의 존재 자체가 의뭉스러지고 말았다. 특히나 그 대표란 사람의 주도 하에 탄생한 단체라니 더더욱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이 꼭 이 커다란 마을이라는 하나의 퍼즐에 맞지 않는 별종 피스가 된 것 같았다.
변주는 그날 오후 복잡한 기분에 휩싸여 다시 한 번 마을 뒤편으로 가 경계를 넘었다가 또다시 그녀를 만났다. 이번에는 풀밭 위에 뒹굴지 않았다. 멀끔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한 두 남녀는 한참동안이나 오가는 말 없이 서로의 눈만을 꿰뚫어보았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여자 쪽이었다. 그 내용은 뜻밖의 것이었다. 동시에 아주 예견할 만한 말이기도 했다.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가려진 막을 벗겨내고 진실을 보는 건 식은죽먹기죠. 그때 당신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어요. 내 통찰이 미흡했던 게 아니라, 당신의 내면에 담긴 게 일절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 그 눈을 보니 이제는 진실을 바라는 올곧음이 보란 듯이 자리잡고 있군요.”
여자는 그길로 대단하고도 초라한, 그리고 동시에 아주 추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을의 내력에 대해서였다. 앞서 그녀는 자신이 당신이 짐작했던 것처럼 원래는 그 마을의 주민이었다는 사실을 가볍게 밝혀버렸는데, 그 사실을 듣고서도 당신이 찾던 보물마냥 자기를 데리고 돌아가겠다고 설치지 않으리라는-바로 그 미심쩍음 덕분에-믿음이 있다는 것만 같은 태도였다.
여자가 말하길 본래 아무것도 없던 광활한 목초를 밀고 마을의 기반을 다진 것은 바로 지금의 마을 대표였다고 했다. 애초부터 그 가족 무리가 와서 세운 곳이 지금의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따라들어온 이들도 합쳐져서 자그마한 집단이 되고, 그 뒤로 사람이 점점 늘면서 하나의 군집을 이루었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이해가 가질 않아 바깥에 소란스런 도시의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데 왜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것이냐고 묻자 그것은 그 대표가 가진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대표란 사람은 도시라는 것은 규칙 속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무질서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고 자주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안에서 혁명과도 같은 불꽃이 튀어 비로소 질서와 규칙 안에 살아가는 새로운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말인즉슨 나중에 소문을 듣고 꽁무니 좇아 들어온 이들을 포함해서까지 그자는 마을의 방향성과 그 모든 것들을 계산해두고 있었다는 뜻이겠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혼돈보다는 일목요연한 규율 아래 하나의 공동체로서 성장해나가겠다는 그 다짐과 같은 방침은 나무랄 데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표는 사람이었다. 보기 좋게 번창한 마을의 모습과 활기를 띠는 주민들의 생동을 보며 만족한 것도 잠깐뿐, 이다음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보다 더욱 정돈된 마을로 가꾸고 싶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생각을 계획했고, 계획을 실천에 부쳤으며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언질을 하지 않고 시설을 고쳤다. 이전보다 편리함은 늘어났지만, 위에서 본 마을은 마치 하나의 사육장과 다름없이 변한 꼴이었다. 그 속에서도 이전 삶을 영위하던 이들의 적지 않은 반발이 이어지자 대표는 그때 처음으로 늘상 비추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웠다. 그날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으므로 마을에 남아있는 유일한 목격자가 있다면 바로 대표 그 자신일 것이었다. 무언의 협박을 했든 실질적 고통을 가해 두려움을 심었든 무슨 불미스런 일을 감행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태도가 싹 바뀌어버린 그들 청년에게선 그 뒤로도 어떤 일말의 반항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을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받들듯 모시는 공간이 되어 있었고, 그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훌륭한 본보기를 두 눈으로 목격한 뒤라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을은 그로부터 몇 년간 죽은 듯이 고요하게 흘러갔다. 각자의 평탄한 일상을 여느 날과 다를 것도 없이 흘려보내면서 고저없는 기류를 형성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을은 대표가 꿈꾸던 그곳처럼 고요한 질서 속에 규율을 지켜내는 낙원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기이하고 충격적인 실종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어린 나이의 학생이었다는 점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라졌다는 소식이 돌고 나서 근 며칠간은 물론 걱정스럽고 두려운 기색을 내비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학생이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냉소적인 몇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한 사람을 망각해버린 듯이 굴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실종자에 대해 말을 얹으려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대표가 있었든지 없었든지간에 그 대화합의 침묵이 그들 안의 새로운 암묵적인 규칙으로 뿌리내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표가 아닌 저들 자신의 의지로 입술을 붙이고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행사라도 되듯이 불규칙적으로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의 연속이었다. 하더라도 마을에 타격을 줄 정도도 아니었고, 오히려 남은 이들의 체계적인 역할 분배를 돋보이게 할 뿐인 것처럼, 그들의 실종은 하다못해 실종 그 자체의 의미마저 갖지 못한 채 흐려져갔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날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대표는 몇 번이고 결의를 다진 얼굴로 비장하고도 엄숙하게 지난날 사라진 우리 이웃들의 행적을 그리며 애도하다가 마침내 그 세심하고 광범위한 염려의 뜻을 펼치기로 한 것이었다. 수색대의 탄생은 그런 연유에서 발생한 이벤트였다. 주민들은 꼭 이전에도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걱정의 마음을 들춰내고 근심에 휩싸였다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그 사려깊은 결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중 몇몇은 의지를 불태우며 수색대에 자원해 들어가기도 했다. 변주와 비슷해보이지만 뿌리부터 다른 부류였다.
“나는 일곱 번째로 마을을 빠져나온 사람이에요. 우리들은 서로 순서를 기억하며 그날의 기억과 우리들의 연대를 확인하죠. 이제는 짐작이 가겠지만, 처음 마을에서 나온 아이부터 지금까지 사라져간 사람들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어요. 몇은 도시로, 또 몇은 더 깊은 숲속으로 갔고, 또 몇은 나처럼 이 근방을 맴돌며 다음에 알을 깨고 나올 사람을 위해 대기하고 있어요. 우리들의 실종, 아니 탈출의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깨닫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 마을은 때깔 좋은 양식장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선 주인 내외를 비롯한 모두가 저들의 생활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충만한 것이라고 여기죠. 바깥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요. 대표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데아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꾼 마을은 실상 공동체의 의미를 파괴한 마을이나 다름없어요. 규율 속에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지도자의 뜻에만 맹목적으로 쏠려 몰려다닐 뿐이죠. 제가 그 대표란 사람의 허울 좋은 신념을 알아요. 그는 자신의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의 명령대로 따르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하진 않았지만, 작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내다보는 위치였고,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권리였으리까요. 하지만 구태여 입으로 말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힘은 너무 노골적이고 없어보인다고 생각한 걸 테죠. 뜻하지 않아도 눈치빠르게 저들끼리 알아서 갖다바쳐주는 그런 자격을 갈망하는 게 배는 못나보이는 걸 모르고. 이전에 우리의 자연스러운 웃음이 만발하던 시절을 저는 기억하고 있어요. 서로 실수하면 격려해주고, 조금 시끄러워도 하나씩 양보하고 살고,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아량이 넓었기에 시간을 가지고 차곡차곡 화합해나갈 수 있었어요. 눈이 마주치면 기분을 묻고, 기분이 상해 싸우고 주변 사람 의견을 듣기도 하던 시절 말이에요. 그런 시절이 분명히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제 마을에 남은 건 무한한 복종과 감시와,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검열밖엔 없어요. 처음엔 이 모든 게 마을을 대표하는 자가 바람잡이를 해서라고 생각해 화살을 그쪽으로 돌렸죠. 그런데 주변을 보니 이 마을 전체가 스스로 그러길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 거예요. 이제는 권력자의 개입이 없이도 알아서들 서로를 무시하고 배제하고 그러면서도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쉼없이 눈치를 보고... 그런 양상이 가장 두드러진 게 바로 실종자 수색이었어요. 당신은 명색이 수색인 활동에서 고작 몇맥 미터 나가서는 근방을 훑어보고 하릴없이 돌아오는 행위를 얼마나 무의미하다고 여겼나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마치 산책이라도 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이 얼마나 기이한지 느꼈나요. 변변한 결과물이라곤 없이 매번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일에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그들은 자신들이 못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겁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기엔 일찌감치 서로를 지켜봐오던 그들 서로가 있지 않은가요. 실종자를 찾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노력과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이웃의 존재를 매정하게 망각하고 살 위인들이 아니다. 그러니 설령 실종자를 찾지 못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죠. 표면으로 드러나는 자신들의 노력과 염려를, 사람다운 도리를 알고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들 서로가 목격하고, 또 목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실종자 수색 활동은 실종자를 찾지 않는 그들이 다만 실종에서 비롯한 마을의 질서의 위태로움, 달리 말해 저들이 느끼기에 불안한 빈 구멍을 안전하게 채워 얻는 그들 스스로만의 자기 위안과 합리화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이 확립된 검열의 감옥 안에서 빠져나온 것입니다. 마을에 속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숨다운 숨을 쉴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미약하던 진동은 점점 그 강도를 세게 하여 결국에는 알을 부수고 흩어졌다. 그것은 안쪽에서 두드려 금을 만들던 것을 바깥쪽에서도 도와 이루어낸 지극히 당연한 연대의 결과였다. 며칠이 지나고 수색 작업이 또다시 시작되었을 때 변주라는 이름의 청년의 공석은 그들의 걱정어린 염려로 몇 번 입에 오르내렸다. 팀의 리더들은 한눈팔다가 경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그 근방 녹색지대의 예측불가의 불안정성을 주의시켰다. 한편 새로 들어온 열의 가득한 신입 부원이 호기심에 마지막 실종자의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친목을 다질 때쯤에 사람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