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고 파동이 되어 나아갈 이야기
-『빛과 멜로디』-
국어국문학전공
20221005 김나경
서론
ⅰ. 호의가 계속된다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이는 2010년 개봉된 영화 <부당거래> 속 대사다. 이 영화를 모르는 이들도 이 대사만큼은 알고 있을 정도로 흔히 ‘명대사’라 꼽히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대사이다. 그런데 유독 개봉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 대사가 많은 사람들과 여러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패러디를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대사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호의’에 대하여 대다수가 부정적 인식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의 진리나 정답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대사가 주는 ‘지속적인 호의가 부정적인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호의를 발휘하고자 할 때 드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가 호의를 하고자 판단할 때 드는 생각은 이를 통해 받는 대상 또는 그가 속한 세상이 점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호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끔 하는 까닭은 이러한 생각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되었을 때다. 즉,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호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부당거래>의 대사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저 말에 동감하는 자들은 오로지 자신이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존재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이 살면서 ‘호의’를 단 한번이라도 받지 않은 존재일까? 이 질문을 던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 <부당거래>의 대사가 옳다고 하는 자들 역시 ‘아니’라고 전혀 고민을 하지 않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성숙한 존재로 태어나 처음 눈을 뜨고, 걷고, 말하고 등 지금의 모습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호의’를 받았는지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 중엔 직접적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존재를 명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스쳐지나가는 이들의 ‘호의’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사처럼 지속적인 호의가 받는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며 고맙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은 오히려 그것을 말하는 ‘우리’가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받았던 호의는 기억하지 못한 채 대사에 공감하며 호의를 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하며 오히려 누군가에게 호의를 보이는 마음을 우습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정말 ‘호의’를 받는 것을 ‘권리’로만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부당거래>의 대사가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이를 반대하며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가치를 제시하기도 한다. 어떠한 작가는 앞서 이야기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주장을 바꾸어서 오히려 “호의가 계속되면, 또 다른 호의로 이어진다.”를 주장하며 글을 썼다.
바로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다.
2024년에 발표된 『빛과 멜로디』는 2017년 발표한 소설집 『빛의 호위』 중 표제작인 「빛의 호위」를 장편소설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인물에게서 인물에게로 이어지는 ‘호위’의 서사를 엮어가면서,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란 것을, -258p-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호의는 또 다른 호의를 낳고 이는 서로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존재에게까지 퍼져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며 이것을 현재 누군가를 위한 호의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이 이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호의에 대한 믿음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 지 그리고 결국 작품을 통해 작가가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ⅰ. ‘빛’ 그리고 ‘멜로디’
‘빛’과 ‘멜로디’
이 두 단어는 작품의 제목인 것과 더불어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 점을 통해 ‘빛’, ‘멜로디’를 작품의 주요 키워드로 지정하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두 단어는 작품 속에서 크게 생각했을 때 같은 의미를 가진다.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 권은이 자주 말하는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라는 문장처럼 ‘빛’과 ‘멜로디’는 함께 태엽이 멈추는 순간 사라지는, 즉 같은 위치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ⅱ. ‘파동’의 두 존재들
‘빛’과 ‘멜로디’는 모두 ‘파동’과 관련된다. 파동이란 ‘공간의 한 점에 생긴 물리적인 상태의 변화가 차츰 둘레에 퍼져 가는 현상. 수면(水面)에 생기는 파문이나 음파, 빛 따위를 이른다.’는 뜻을 가진다. 또한 관념적인 의미로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이 퍼져 커다란 영향을 미침’이라는 뜻을 가진다. 작품 속에서 ‘빛’과 ‘멜로디’는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실제로 물리학적의 의미 그대로 퍼져나가는 것이기도 하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품 속 ‘빛’은 권은과 연관되는 단어다. 흔히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 속 권은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이 ‘빛’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권은의 사진은 주로 전쟁 난민과 같이 무자비한 사회적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권은 이를 통해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진을 찍어 그들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호의’를 보인다. 단순히 알리는 것을 넘어서 그녀는 레스보스섬에 있는 난민캠프에서 만난 살마를 영국에 사는 애나에게 부탁해 그녀가 난민자격으로 영국에 건너갈 수 있게 돕는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이 호의를 받은 살마는 권은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
“은이 나타났어. 은이 나를 애나에게 소개해준 것이 결과적으로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지만, 사실 은을 만나고부터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어. 은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은과 산책을 하고 은 앞에서 울고, 그 과정이 형벌 같기만 했던 내 삶을 미래로 뻗어가게 했어. 공허가 아닌 미래로......” -240p-
이처럼 권은의 ‘빛’이라는 호의는 살마를 삶을 ‘멈춤’이 아닌 ‘지속’으로 이어지게끔 했다. 그리고 권은의 호의의 결과로 삶을 지속하게 된 살마, 그녀는 오히려 반대로 권은에게 삶의 지속을 이끄는 ‘호의’로 되돌아왔다.
한 발 더 다가온 살마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며 다치지마, 라고 말했다
“다시는 절대로......”
그 말은 단순한 당부가 아니라 그녀의 시간을 호위하는 주문이 되리란 걸, 그 순간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241p-
이는 앞서 말했던 <부당거래>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의 반례를 보여준다. 호의라는 것이 한 쪽의 일방통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순환됨을, 즉 호의는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누군가에게 도달하고 또는 누군가에게로 떠나가는, 즉 파동된다는 것을 작가는 호의가 무너진 세계에 시사점을 던지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은 ‘멜로디’다. 멜로디 역시 ‘빛’과 같이 호의의 존재이다. 다만 작품 속 ‘빛’은 권은의 호의였다면 ‘멜로디’는 장 베른의 호의라고 볼 수 있다.
장 베른은 알마 마이어와 같이 브리쉘 필하모닉에서 호른을 연주하던 연주가였다. 당시 둘은 연인관계이기도 했는데 1940년 벨기에에 유대인 등록령이 내려지며 끌려갈 위기에 처한 그녀를 그는 은신시켜주었고 이후에 미국으로 이민까지 도왔다. 장은 알마가 국가에 의해 위협을 받던 상황에서 그녀를 위해 많은 것을 행동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행위 말고도 그녀를 진짜 구한 것은 그의 ‘멜로디’였다.
그는 매번 그녀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러 갈 때 꼭 그가 작곡한 악보를 한 장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은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게 악보를 보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척을 했다. 이에 대하여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장이 작곡한 그 악보들은 지하 창고에서 날마다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준 빛이었어요. 그러니 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악보들이 날 살렸다고 말이에요.”-127p-
장의 호의인 ‘멜로디’로 인해 알마의 물리적 삶이 아닌 정신적 삶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호의는 그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또 다른 호의로 이어졌다. 앞서 말한 권은과 살마의 호의가 서로에게 나누어진 것과는 또 다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호의로 이어진 것이다. 알마는 장 덕분에 미국으로 떠나오며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평생 알리지 않고 아들, 노먼을 키웠다. 노먼은 성장한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가 행한 호의로 가득한 삶을 재현하고자 했다.
“몇 년 전 장 베른의 죽음을 전해들은 이후 나는 다짐했어요. 그가 인생에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내 삶에서 재현해보고자는 다짐이었죠. 쓰레기 같은 전쟁에서 죽을 뻔했던 한 여성을 살린 그 일을 말이에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나는 믿어요.”-128p-
장의 호의는 그의 전 애인을 거쳐 그가 존재도 알지 못하는 아들에게로 뻗어나갔고 그 호의를 받은 아들은 또 다른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구해주는 일을 함으로 ‘멜로디’를 통해 나온 자신만의 호의를 만들어냈다. 이는 노먼만이 아니었다. 권은의 ‘빛’을 받은 살마는 또 다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 나스차를 영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왔고, 그녀의 동생과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호의는 이어졌다. 물론 권은 역시 이 호의의 시작임과 동시에 수혜자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항상 홀로였던 권은을 항상 찾아와 살펴주던 승준, 그리고 그가 건네준 후지사의 반자동 필름카메라 덕분에 ‘빛’을 발견했고 그것이 좋아서 사진작가의 길로 나아갔고 잔인한 폭력의 희생자들을 ‘빛의 예술’로 호위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승준 역시 그랬다. 그가 이후에 성인이 된 은이를 만나 그녀의 행보를 통해서 여러 감정을 받았고, 그것이 자신의 아내에게로 가 아내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의 위로로. 또 자신의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은이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호의가 이루어질 예정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누군가에서 누군가로. 처음에는 이동경로가 눈에 보였으나 나중에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누군가에게 가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이 호의는 어떠한 이유인지, 의도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채로 ‘호의’만이 ‘빛’과 ‘멜로디’가 되어 그들을 따뜻하고 생기가 있게 만들뿐이다.
ⅲ. 결국 파동의 매질은 ‘사람’
알마를 살린 장 베른의 악보와 권은을 방에서 나오게 한 카메라는 결국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둘은 다른 사랑이지만 같은 사랑이기도 하다고, 한 사람에게 수렴되지 않고 마치 프리즘이나 영사기처럼 그 한 사람을 통과해 더 멀리 뻗어나가는 형질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223~224p-
이 말처럼 작품 속 ‘빛’과 ‘멜로디’는 다른 존재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인에 대하여 좋게 생각해주는 마음, ‘호의’라는 점에서 같은 존재다. 그리고 이것들은 ‘파동’으로 또 다른 이들을 통과해 계속해서 나아간다. ‘한 사람에게 수렴되지 않고 마치 프리즘이나 영사기처럼 그 한 사람을 통과해 더 멀리 뻗어나가는 형질의 사랑’ 이 문장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다. 앞서 말한 여러 호의의 모습을 통해 호의는 계속되어 파동의 형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작가는 작품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파동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질’이 필요하다. 매질이란 ‘어떤 파동 또는 물리적 작용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매개물’이라는 뜻을 가진다. 예를 들어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는 것은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파동이 나아가서 우리에게 들린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파동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매질’이라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작가는 ‘호의’가 파동의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라는 매질이 필요함을 말한다는 사실을 앞서 말한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배경을 보면 그들의 비극은 결과적으로 ‘사람’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은의 홀로인 어린시절은 부모의 무책임함에 의한 결과이자 주변 어른들의 무관심에 의한 결과였다. 또한 승준의 부인인 민영의 좋은 가정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역시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에 의한 결과이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알마 역시 유대인을 탄압하는 권력집단에 의한 결과였다. 이외에도 난민인 살마와 나스차 역시 권력집단의 욕심에 의한 무고한 전쟁의 피해자다. 이들의 비극은 ‘사람’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사람’이라는 존재에 회의감을 가지지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그 악몽같은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를 끝으로 모는 자가 있다면 반대로 그곳에서 나를 구원하는 ‘호의’를 건네주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을 더 퇴보되거나 아니면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호의가 파장되어 나아가는 가기 위한 매질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Ⅲ. 결론
ⅰ. ‘호위’에서 ‘호의’로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빛과 멜로디』는 「빛의 호위」라는 작품에서 온 것이다. 호위는 따라다니며 곁에서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쓰인다. 제목은 빛이 곁에서 보호하며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왜 호위에서 ‘빛과 멜로디’ 즉 두 단어의 의미인 ‘호위’로 이어진 것일까?
작가는 더 큰 세상으로 ‘빛의 호위’가 나아갔으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호위는 앞서 말했듯이 곁에서 보호한다는 의미로 범위가 주변으로 제한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빛’이라는 존재는 공간의 제약과는 거리가 멀지만 호위의 뜻은 이와 달리 거리상 가까운 경우로 제한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빛의 호위」 역시 단편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편에서 장편으로 나아가며 바뀐 ‘빛과 멜로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동의 이미지를 준다는 점과 또 작품에서 두 단어가 ‘호의’의 의미로 쓰였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리 공간에 제약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호위’ 역시 누군가를 곁에서 지키고 보호한다는 점에서 ‘호의’의 의미인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이유로 호위가 더 큰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목을 ‘빛과 멜로디’로. 그리고 그 두 단어가 작품 속에서 ‘호의’를 의미하도록 서술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호의에 인색한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호의가 사람과 사람을 거쳐 곁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호의를 겪은 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호의가 퍼져나가기를 우리나라를 넘어 작품 속 한국, 영국, 우크라이나 등의 여러 지역의 인물들이 호의를 펼쳐나간 것처럼 ‘호의의 세계화’를 희망하고 있음을 제목의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ⅱ. 빛은 어디에나 있다.
발자국 안에 빛이 들어 있어. 빛을 가득 실은 작은 조각배 같지 않아? 어, 그런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다니......뭐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휘 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그런게 있어? 어디에서 온 빛인데? -229~230p_
이 장면은 권은이 승준에게 어린시절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볼 부분은 ‘빛’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당연시하게 여기며 그 자체로만 진실임을 믿는다. 그리고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은이 말처럼 실제로 우리가 보았을 때 보이지 않던 빛이 ‘카메라’라는 어쩌면 우리의 눈보다 정확하고 과학의 산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당장 보지 못한다 해도 실제로 우리의 곁에는 ‘빛’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절망적이고 그것을 놓고 싶을지라도 곁에 ‘빛’이라는 ‘호의’가 존재하고 있으며 언젠간 마찬가지로 삶을 놓고 싶었던 은이가 그것을 발견했듯이 우리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한 희망을 타인과 나의 구별이 확실해 서로를 위해 마음을 쓴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회 속에서 실은 외로울 우리에게 그 희망을 놓지 말라는 이야기를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놓지 않으면 찾을 수 있는 ‘호의’를 누군가에게 파동 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은이의 말을 듣고 그 빛이 어디에서 온 빛인지 궁금해 하는 승준처럼 누군가의 호의를 보았을 때 그 호의를 준 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준 이가 또 다른 호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마음을 작가는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위한 작고 섬세한 관심 그자체가 ‘호의’이며 그것이 한 사람을 넘어 전 지구적인 희망의 흐름이 되어 파동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가의 바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말하는 작가의 바람과 더불어 과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요.”라는 말은 여전히 사회에서 진리가 되는 말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