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야구선수가 꿈이었다.
국어국문학전공
20191093 정원화
Ⅰ. 서론
영화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의 2011년 개봉한 첫 작품이자 독립영화이다. 독립영화의 신화라고 불리는 영화다. 저예산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촬영했음에도 입소문을 타며 영화 팬들에게 퍼져나갔다.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이제훈과 박정민의 신인 시절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관객 수는 높지 않았지만, 평론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제훈 배우는 청룡영화제와 대종상영화제의 신인남우상을 받았고, 윤성현 감독도 신인감독상을 받는 등, 영화 개봉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 중 하나이다.
영화의 시작은 파격적이다. 주인공 기태(이제훈)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태는 고등학교에서 우두머리이다. 친구들은 기태를 따르고 기태는 이점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른다. 이런 기태가 어느 날 죽게 되고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의 이유를 알고자 친구들을 찾아간다. 기태의 특별한 친구들은 희준(박정민)과 동윤(서준영)이 있다. 기태의 부하와는 다른 진짜 친구들이었다. 둘은 기태가 우두머리임을 알지만, 기태의 권력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오해가 쌓이기 시작하고 거짓말을 하며 관계와 틀어지기 시작한다. 갈등은 점차 심해지며 기태는 친구들의 태도에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우리는 가장 단단할 것 같았지만 가장 위태로웠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파수꾼> 영화의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댓글이다. 영화를 함축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누구보다 강한 척 어른들 앞에서도 으스대고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겁도 없이 기찻길에서 야구하며 논다. 그러나 가장 위태롭게 철도를 건너고 있는 시기인 소년들은 쉽게 휘청인다. 기태는 철도에 서 있는 너무 위태로운 존재였다.
비평문을 통해 영화가 소년 기태의 죽음이라는 소재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중점으로 분석해 보았다. 영화는 전형적이지 않다. 권선징악을 보여주지도, 훌륭한 변화를 보여주는 성장영화도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흔히 말하는 찝찝하고 불편한 감정만 남긴다. 언제부턴가 혐오, 개인주의가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남을 미워하고 상처입히는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영화 <파수꾼> 역시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에 지금의 시대와 닮은 점도 느껴 영화를 선정하였다.
Ⅱ. 본론
1. 상처 가득한 결말의 설정
반면 희준과 동윤에게 완전 잘못이 없다고 하긴 어렵다. 이들 역시 가해자이다. 엄마가 없다는 자신의 가정사를 큰 결심에 고백하던 기태에게 아이들은 무심했다. 자존심 강한 기태가 치부를 드러냈음에도 별말 없이 지나 보냈다. 기태 역시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주고받고 흔들리는 세 명의 고등학생에게 남은 건 서로를 공격했다는 비난 섞인 결말이다.
결국 기태가 죽게 된 이유는 친구들이라는 식의 마무리다. 가진 건 친구와 자존심뿐이던 기태가 이것들을 뺏겼을 때 기태는 죽음을 택했다는 마치 기태의 탓, 기태의 친구들 탓으로 끝을 맺는다. 이 지점에서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기존 성장영화와는 대비되는 측면이기도 하다. 배우 정우 주연 영화 <바람>(2009)은 주인공 ‘짱구’의 성장기를 담는다. 짱구는 고등학교 입학 이후 일진을 동경해 방황을 거듭한다. 일진이 되어 폭행을 저지르고 부모님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고 성실한 학생으로 변한다. 대부분 성장영화, 불량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영화는 성찰을 통한 변화를 주제로 한다. 파수꾼은 이 점을 뒤집었다. 반성과 성찰 같은 정형화된 결론이 아닌 왜 기태가 죽었는지를 담담하게 나열한다. 아이러니는 관객들은 기태가 죽게 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해하기도 한다. 기태가 불쌍하다는 평도 있다. 분명 폭력을 행사하고 희준을 전학 가게 만들며, 동윤과 그의 여자친구에겐 도 넘은 발언까지 일삼는 기태가 왜 불쌍해질까. 기태는 폭력을 당하지도 않았다. 기태의 여자친구를 누군가 험담하지도 않았다. 기태는 단지 친구를 잃었을 뿐이다. 사실 이렇기에 영화의 본질이 흐려지기도 하며, 이 자체가 영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파수꾼>은 다른 성장영화처럼 아름다운 해답이 아닌 모두 상처를 깊게 가진 무책임한 결말을 가진다. 상처와 아픔은 성장의 재료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영화에선 상처는 그냥 상처일 뿐이고, 상처에 상처가 더해지면 더 깊은 상처가 남는다는 것으로 끝난다. 왜 기태를 내버려 뒀을까. 상처투성이인 채로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은 걸까.
무책임한 결말의 설정, 기존 영화의 정형화된 결말을 따르지 않은 이유. 이는 상처가 가득한 기태를 감싸 안아주기 위해서라 생각했다. 처음 영화를 본 후에든 생각은 “기태가 자신이 지은 죄를 돌려받았구나”였다. 그럼에도 어딘가 기태에 마음이 쓰였다. 결말이라는 장치는 결국 ‘기태’가 아닌 사회 시스템, 부모, 학교에 화살이 가게끔 유도했다. 어찌 보면 기태라는 소년에게 너의 삶을 보고 나니 “너의 잘못이 아니지 않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상처 많은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며, 관객은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찾아간다. 기태가 죄인이 아니라는, 정확하게는 기태만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 이점이 상처 가득한 결말을 설정한 이유이다.
2. 결핍의 편견에 정면으로 대응
영화는 결핍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기태는 결핍을 표출한다. 기태는 담담하게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꾹꾹 눌러 고백한다. “넌 집에 가면 엄마가 밥 차려주고, 공부하라고 말해주지? 난 내가 밥 차려 먹어. 난 없잖아, 엄마가. 집에 아무도 없다고, 아버지 들어오면 잠깐 인사만 하고.” 이 대사에서 기태가 얼마나 큰 결핍을 지졌는지 알 수 있다. 기태는 언제나 강하고 두려울 게 없는 아이다. 거칠게 폭력을 행사해도 기태에게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싸움이 일어나면 친구들이 달려와 자신을 지켜준다. 그럼에도 기태는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던 동윤과 희준에게 비밀을 고백했다. 작은 애정과 위로를 원했지만, 서툰 소년들, 혹은 이미 기태에게 상처를 받은 동윤과 희준에게 그 고백은 크게 와닿지 못했다. 이렇게 관객들은 기태가 결핍이 가득한 아이임을 알게 되고 관객들에게도 편견을 심어준다.
그럼에도 기태가 아픔을 겪는 이유를 결핍 때문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유도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기태의 성장 과정을 알 수는 없다. 영화상 제공되는 정보는 어머니의 부재와 기태 아버지가 기태에게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 정도다. 기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이후에야 사진첩을 뒤져가며 기태의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만, 기태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기태의 아버지가 그간 아들에게 무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이다. 영화를 보며 기태의 성격, 결핍, 콤플렉스를 모두 가족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무리가 있으며 지나친 편견이라 생각한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장치라 생각한다. 부모가 없거나 보살핌이 부족한 가정의 아동이 결핍을 가지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은 무리한 유도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기태를 편견의 정점에 세운다. 기태는 결핍이 가득하여 폭력적이라는 주홍 글씨를 새긴다. 관객은 이를 그대로 읽을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결말이라는 장치와 비슷하게 해석해 보았다. 감독은 사실 관객에게 “나는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다.”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한 것이라 느껴졌다.
우리는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을 지우라는 교육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영화라는 매체는 이를 적극 활용한다. 2~3시간 동안 일평생을 보여주기도 하고, 단 하루 혹은 한 시간의 일을 그려내기도 한다. 영화는 약 1년간의 일이 담겨있다. 긴 시간, 그리고 적어도 3명의 인생을 2시간 동안 모두 그려낼 수는 없다. 다 이해할 수도 없다. 결국 감독은 연출에 관객이 가진 고정관념과 편견을 적극 활용한다. 그렇기에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오르기도 한다. 영화 <황해>(2010)와 <범죄도시>(2017), <차이나타운>(2015)의 공통점은 모두 조선족이 등장하는 점이고, 조선족이 모두 범죄자 역할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출은 사회적으로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러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파수꾼> 역시 편견을 유도한다. 그러나 편견이라는 장치는 단순하게 보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기태는 “폭력적이고 애정결핍을 가진 아이로 자라겠구나”에서 끝낸다. 그러나 이것이 유도한 것임을 알아챈 순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폭력적인 게 아닌 기태가 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친구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겠다고 생각하면 연출을 통해 관객의 편견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편견을 기태에게 가두어버려 빈틈없어 보이지만 결국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기태가 도움이 필요했다는, 아픔을 가진 이유를 알아달라는 관객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임을 알아챌 수 있다. 결핍의 편견에 정면 대응하며 기태를 관객 앞에 세운다.
3. 섬세한 행동 묘사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의 섬세한 묘사이다. 10대 소년들의 불안정함과 돌발성을 아주 잘 표현했다. 주인공 기태와 동윤, 희준은 모두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사춘기 소년들의 예민함 속에 숨겨진 고민을 친구들이 건드렸을 때 폭발하고 만다.
주인공들은 서열 속에 각기 다른 위치에 있다. 10대 남학생들의 집단. 게다가 남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주인공은 서열을 사수한다. 기태는 서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기태를 따르는 친구들도 있다. 흔히 말하는 “꼬붕”을 두고 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희준은 기태와 친구지만 낮은 서열에 속한다. 섬세한 행동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기태는 희준의 머리를 자주 만진다. 기태가 머리를 만질 때마다 희준은 짜증을 내며 손을 밀어낸다. 그럼에도 화를 내어 거부하지는 못한다. 또 친구들과 놀 때 놀리기도 한다. 희준은 역시 투덜대는 게 전부이다. 반면 동윤은 기태와 비슷한 서열에 있다. 기태와 다르게 힘을 내비치지는 않지만, 기태의 행동에서 관계를 알아챌 수 있다. 기태는 희준의 머리를 만지지도 놀리지도 않는다. 반대로 동윤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따로 세 친구의 서열을 언급하는 장치를 두지 않는다. 제삼자가 나와 상황을 설명하지도, 세 친구가 어떻게 무리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과거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관객들은 그저 세 명이 한 장면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통해, 어떤 대사를 주고받는지를 통해 알아챈다.
친구 간의 미묘한 차이를 가지는 서열을 묘사함을 통해 영화는 한층 더 관객의 이해를 높인다. 등장인물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의 감정과 관계를 암시한다. 예를 들어, 기태가 희준의 머리를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기태가 희준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무의식적 시도이자,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다. 희준이 기태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강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장면은 그가 기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내면의 불만을 억누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반면, 동윤에게는 이러한 신체적 접촉이 없다는 점에서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보다 평등한 위치에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세 친구가 함께 있을 때의 미묘한 행동 변화와 대화의 뉘앙스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섬세한 행동 묘사는 단순한 대사나 서사적 설명 없이도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이처럼 세세한 행동의 디테일을 통해,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내면의 감정과 긴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런 요소를 통해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상처를 주고받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대사보다는 행동과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좋은 연기력을 가진다는 배우, 영화의 장면을 보면 말보다는 몸짓과 얼굴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파수꾼>에서도 미묘한 청소년들의 감정 상태를 외적인 행동을 통해 묘사했기에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인물들 간의 관계가 중요한 영화이기에 섬세한 행동 묘사는 주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4. 핸드헬드 촬영기법과 플래시백 연출
인물들의 불안정한 감정과 혼란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사용하였다. 핸드헬드 촬영기법이란 카메라를 손에 들고 직접 촬영하여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저예산 영화이자 신인 감독의 데뷔작인 파수꾼에서 기술적 제약을 창의적으로 극복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는데, 때로는 초점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틀어진 상태의 영상으로 촬영된다. 이러한 화면의 불안정함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내면과 관계의 위태로움을 상징하며, 관객이 사건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특히, 기태와 희준 사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교실 장면에서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희준은 기태에게 실망하고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려 하지만, 기태는 이를 장난으로 여기며 여전히 친구라고 생각한다. 이 갈등이 폭발하면서 기태가 교실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카메라가 흔들리며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촬영기법은 관객이 마치 교실 안에 있는 다른 학생의 시선으로 폭력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유도하며, 사건을 방관하고 있는 듯한 불안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히 사건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혼란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영화는 또한 플래시백 연출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플래시백 장면들은 기태, 희준, 동윤 세 친구의 과거 관계와 현재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플래시백 장면에서 세 친구가 함께 즐겁게 지내던 기차역 장면은 그들의 우정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 사이에 깃든 불안정함을 암시한다. 기차역은 세 친구가 과거에 함께 야구하며 장난을 치던 장소로, 이 장면들은 그들의 우정이 한때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지만, 현재의 기차역 장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한 관계와 감정의 거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대비를 통해 장소의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었다.
플래시백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인물들이 겪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특히, 기태가 동윤과 희준에게 거짓말을 하고, 오해가 쌓이면서 우정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삽입된 플래시백을 통해 서서히 밝혀진다. 이러한 연출은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건들이 인물들의 현재 심리에 어떤 상처와 변화를 불러왔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플래시백 장면에서 기태가 처음으로 희준에게 자신의 결핍과 외로움을 고백하는 순간들은, 과거에 그가 느꼈던 고립감과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을 더욱 절절하게 연결해 준다.
이와 같은 핸드헬드 촬영기법과 플래시백 연출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닌, 청소년기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와 그들 간의 관계 변화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관객은 불안정한 카메라 움직임과 과거의 반복적 회귀를 통해, 기태와 그의 친구들이 겪는 내면의 혼란과 상처를 더욱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영화 파수꾼은 이 두 가지 연출 기법을 통해 인물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상처받은 청소년기의 위태로운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5.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
영화 <파수꾼>에서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들은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을 깊이 있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기태와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는 단순한 의사소통 넘어, 내면적 상처를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태가 자신의 꿈에 관해 이야기할 때의 대사는 영화의 핵심 주제를 잘 전달한다. "나는 반드시 야구선수가 될 거야."라는 결말에 등장하는 문구는 상징적이다. 사실 기태는 이 말을 할 때 죽음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야구선수가 되기엔 늦은 나이고 어려운 상황이다. 무모한 꿈을 드러낸다. 기태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무모하면서도 겁 없는 성격. 결국 기태에게 꿈은 상처를 숨길 수 있는 수단이다. 친구들과 야구할 때 즐겁고, 무리에서는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는 허황한 꿈이다. 상처가 느껴지는 대사이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는 기태가 동윤에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라고 묻는 장면이다. 이에 동윤이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고 말한다. 기태가 죽음을 결심한, 상처가 가장 깊어진 대사이기도 하다. 무너진 관계가 자신 때문임을 알게 되었을 때 기태는 완벽하게 몰락한다. 가진 건 친구들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상처를 감싸준 건 결국 친구들이었는데, 친구들에게 상처를 입힌 게 본인임을 직시한 대사이다.
<파수꾼>에서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하며, 관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의 대사를 하나하나 돌아보면 깊은 상처가 묻어난다.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어떤 대사들은 기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다른 친구들 역시 기태에게 말로 공격한다.
Ⅲ. 결론
영화 <파수꾼>은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감정과 이로 인한 복잡한 관계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기태의 죽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닌 상처와 결핍, 그로 인한 갈등, 오해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기태는 자신의 외로움과 상처를 숨기기 위해 누구보다 강해졌고, 강한 척을 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고립시킨 행위였다.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기에 강한 척을 해야 한 것이다.
특히 영화는 청소년기 학생들의 서열과 권력관계를 세심하게 묘사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오해와 상처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를 핸드헬드 촬영기법이나 플래시백 연출법을 통해 자세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 매우 현실감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청소년기라는 가장 위태롭고 민감한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단순한 교훈을 넘어서서 상처의 의미와 그로 인한 아픔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기태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정한 관계와 감정적 방황이 어떻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꿈을 가진 소년을 너무 차갑고 잔인하게 마무리하여 마음이 쓰린 영화다. 어떻게 보면 주제지만 잔인할 정도로 영화는 기태를 내팽개친다. 결핍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 역시 잔인하다. 관객들을 편견에 가두어 기태는 불쌍하고, 불안정한 소년으로 결정짓는다. 모든 폭력적인 행동과 애정결핍의 원인이 만들어졌다. 왜 기태를 버렸을까. 많이 고민했다. 영화는 상처를 가진 소년의 결말을 보이며 시작한다. 관객은 그저 이 아이가 왜 죽었는지 해답을 찾아가며 영화를 본다. 감독이 연출을 통해 의도한 바는 맞지만, 정말 하고 싶던 말, 주제는 무얼까 고민해 보았다. 영화는 절대 기태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를 해소하는 영화가 아니다. 미스터리 스릴러영화가 아닌 지극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린 소년의 영화이다. 영화는 결국 상처를 피하는 방법도, 상처를 치료하는 법도 모르는 위태로운 소년이 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기태의 결핍과 친구들의 빈자리가 불러온 결과를 통해, 우리가 청소년들의 내면적 고통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묻고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 기태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청소년기의 위태로움을 보여주며, 그들의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어딘가 있을 기태를 응원한다고 생각했다.
기태의 꿈은 야구선수였다. 친구들과 야구를 즐기며 야구공을 정말 아낀다. 기태는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동윤은 친구들 세 명이 모여 놀던 기찻길에서 기태를 회상한다. 기태는 훗날 야구선수가 되어 모두의 박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누가 최고냐고 계속해서 묻는 과거의 기태에게 동윤은 나지막이 "그래, 네가 최고다. 친구야."라고 말한다. 그저 인정받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은 기태였다. 그도 역시 꿈 많은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