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존재
인문학부
20241099 지하영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을 보는 버릇을 고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늘을 보고 비가 올지 안 올지에 대한 예상을 했었다. 주로 구름의 움직임이나 하늘의 색을 보며 판단했다. 마냥 운에 따른 예상은 아닌지라 틀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번 나의 예상이 어긋났던 일이 있었다. 그날은 오롯이 파란 하늘이었고, 한 톨의 구름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 예보처럼 비 안 올 거 같아, 엄마. 내 한마디에 나의 삶은 그날부로 크게 뒤집혔다. 이후 나는 더 이상 하늘을 보며 비를 떠올리지 않았다.
얼핏 하교할 시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 늘 우산을 들고 다녀선지 우산이 없어 큰일 났다는 같은 반 애들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날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교실 밖 풍경은 어둑해졌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마치 폭포 소리 같았다. 이윽고 쏟아지는 빗소리 사이로 학교 종소리가 울렸다. 종례로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나는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호기롭게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어갔지만, 그 사이에 체육복 바지 밑단이 흠뻑 젖었다. 신발은 이미 물에 담갔다 빼낸 듯 빗물이 흘러서 현관문 옆에 비스듬히 세워뒀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뭐가 어떻든 오늘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렇게 난 방 문고리를 돌렸을 뿐이었다.
“아, 안녕?”
문을 열자 내 침대에 걸터앉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퉁. 손에서 놓친 휴대폰이 바닥과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뭐지, 지금 이게.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라 머릿속 사고회로마저 멈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만 벙긋거렸다.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은 돼 보이는 모르는 여자아이, 안면조차 없는 모르는 어린아이가 내 침대에 앉아서 능청스럽게 날 반겼다.
“너, 너 누구야. 어떻게 들어왔어.”
지금 상황이 무단침입인 건 확실하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신고라도 해야겠다 싶어 조심스레 떨어진 휴대폰을 잡아 들었다. 내 모습에 양발을 앞뒤로 흔들던 여자아이의 행동이 멈추었다.
“어른들한테 알리려고? 소용없어.”
“왜?”
“난 너한테만 보이거든.”
누가 들어도 비웃을 만한 이야기에 가소롭게 웃어넘기려던 찰나, 방에 놓인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에 비친 방 안에는 침대 위에 앉은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나 혼자뿐이었다. 나 혼자. 전화를 걸려던 손가락에 절로 힘이 풀렸다. 뒤통수부터 등, 손가락 끝까지 차례대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방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그렇게 무서워하진 마. 나도 내가 귀신? 그런 건 아닌 거 같거든.”
그러면 대체 뭔데.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치 낮에 자다 꾼 꿈처럼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정말 꿈인가 싶었다. 그러나 방금 비까지 잔뜩 맞고 온 후라 그럴 일은 없었다. 아이는 어지간히 놀란 나와의 정적 사이에 무언가 고민을 하다가 내게 말했다.
“우리 친구 하자. 나 심심해.”
어딘가 섬찟했지만 심심하다며 떼를 쓰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일단 공포 영화 속 귀신처럼 기괴한 형상에 위협을 가하는 건 아니라서 나는 나 자신과의 사투 끝에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디서 온 건지, 본인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겠지. 기어이 아이 앞에 서니 아이의 동그란 눈이 나를 향했다. 그제야 아이의 겉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라가 달린 무지개색 원피스와 양발에 슬리퍼 한 짝. 왜였을까. 이런 아이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저 초등학생이 많이 입는 옷이니까 그런 건가. 왠지 모를 기이한 느낌을 뒤로하고 나는 말했다.
“너 이름이 뭐야?”
“음, 몰라. 그냥 엄마가 ‘내 새끼.’라고 불러주던 것만 기억나는데.”
아이는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대답했다. 내 새끼. 오랜만에 들어본 호칭이었다. 우리 엄마도 날 그렇게 불렀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잠시 생각이 튀려는 걸 붙잡았다. 재차 이름을 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고갤 내저었다.
“그럼 어디서 왔는데.”
“몰라, 눈 떠보니까 여기던데.”
아이는 마치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듯이 전부 모르겠다며 일관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그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서 캐물어도 먼 곳을 보고 콧노래나 흥얼거릴 뿐, 더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분위기만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남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뭐가 중요할까. 가방을 놓고는 무작정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 나랑 안 놀아? 술래잡기 안 할래? 숨바꼭질은?”
아이는 내 질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듯 쉴 새 없이 말했다. 이 이상의 대화는 물론 얼굴을 마주 보기도 귀찮아져서 옷을 갈아입은 즉시 침대 위로 엎어졌다. 아이의 말들이 결국 투정이 됨과 동시에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나봐, 야아. 아빠 온 거 같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막을 때리는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이는 방방 뛰며 문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귀가 아플 만큼 큰 목소리보다 눈앞의 아이가 꿈이 아니란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얕은 숨을 내쉬었다. 왜 아빠가 온 걸로 방방 뛰는 건지. 대답 없이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말했다.
“아빠가 오면, 뭐.”
“인사해야지!”
인사를 왜 해야 하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벽을 향해 몸을 돌아누웠다.
“왜... 인사 안 해?”
“대화도 안 하는데 인사를 왜 해.”
“왜 대화도 안 하는데?”
“할 말이 없으니까.”
왜 없어? 너 학교 다녀왔잖아. 학교 얘기하면 되지. 아빠에게 이야기할 거린 많다며 아이는 대화 주제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마치 얘기하길 기다린 것처럼 들뜬 목소리에 덜컥 화가 치밀었다. 나에 관해 관심 없는 사람에게 내 얘길 떠벌릴 생각은 애초에 없고 자신도 없다. 내가 뱉은 말이 결국 남에겐 툭 하고 무시하면 끝날 거리 중 하나일 테니까. 분명 그럴 텐데 왜 이렇게 날 닦달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에게 그만하라며 털어내고픈 사정은 한가득이었지만 애써 눌러 담았다. 무심코 내 사정을 들춰내 봤자 좋을 거 없다. 나는 잠시 누워있다가 할 일이 떠올라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내가 숙제나, 공부라도 하는 듯싶으면 조용히 하고픈 일을 했다. 방 안을 말없이 둘러 보고, 가끔은 거실로도 나가는 듯 보였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의문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함부로 내칠 수는 없었다. 내 손길은 아이에게 닿지 않았고 아이의 손길도 내게 한기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내 의지로 아이를 내칠 수는 없다는 거다. 아빠가 온 이후로 아이와 나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자정이 지나서야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엄마! 귓가에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거실이 보였다. 그리고 어린 날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꿈이다. 언제부터 꿨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꿨던 꿈이었다. 근래에는 꾸지 않나 했더니 결국 다시 돌아오기 위해 멈추었던 거였나.
나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다. 투명한 창문에 고개를 들이밀곤 열심히 하늘을 들여다본다. 텔레비전에는 오늘 날씨에 대한 예보가 흘러나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날이라고 일기예보 진행자는 말했다. 엄마는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나의 예상만을 기다렸다. 그날의 하늘은 여태껏 본 하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파랬다. 나는 구름 없이 파란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나 알았어. 오늘 저기 예보처럼 비 안 올 거 같아, 엄마. 내 말에 엄마는 한껏 웃으며 볼을 쓰다듬었다. 그래? 내 새끼 덕에 엄마 오늘 우산 안 들고 가도 되겠네! 엄마는 곧장 나갈 준비를 했다. 옷을 걸치고 우산 없이 가방을 챙겼다. 마침내 다녀오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현관 밖을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꿈속에서 몇십 번이고 보았다.
실제로 엄마는 그렇게 밖을 나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엄마를 보내고 아빠와 할머니의 대화를 엿듣다가 사고 경위를 알게 되었다.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이 가게 밑에 비를 피해 있던 엄마를 쳤다고 했다. 결국 그 트럭 운전자도, 우리 엄마도 죽음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 나는 그날의 아침을 떠올렸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 단언했던 내가 엄마에게 혹시 비가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면, 작은 우산이라도 챙겨가라고 손에 쥐여줬다면, 그곳에 엄마가 서 있을 이유는 없지 않았을까.
꿈을 꿀수록 확실해졌다. 엄마를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꿈속 엄마의 얼굴은 그날 하늘보다도 환했다. 그 얼굴은 꿈을 꾸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선명해졌다. 선명해지는 얼굴과 함께 죄책감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 날 짓누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위로 미칠듯한 그리움도 함께 쌓였다. 그렇게 매일 밤을 괴로워하다 엄마를 꿈에서 보았을 땐, 엉엉 울며 날 보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미안해, 엄마. 잘못했어. 뭘 해도 꿈의 끝자락에 희망은 없었다.
이번 꿈도 같을 걸 알고 있어서 특별한 행동 없이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다정한 손길과 밝은 얼굴. 마침내 현관 밖을 나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나의 두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잊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메꿨다.
“너 왜 울고 있어? 어디 아파?”
허. 눈을 떠도 여전히 비현실적인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축축한 눈가를 비비고 몸을 일으켰다. 본인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다.
“어디 아프냐고!”
“안 아파.”
“근데 왜 울었어? 응?”
나는 대답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마침 식탁 위로 누가 두었을지 뻔한 반찬 통들이 놓여 있었다. 따로 아침을 먹을만한 시간은 안돼서 물만 마시고 냉장고에 다시 넣어놓았다. 와중에 나를 향한 온갖 불평불만이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매번 아무도 없는 아침을 마주했었는데. 오랜만에 시끄러운 아침이었다.
그렇게 학교 갈 채비를 모두 마쳤을 때, 아이는 현관문으로 향하는 내 걸음을 막아섰다.
“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뭔데.”
“같이 학교 가도 돼?”
아이는 의외인 구석이 있었다. 제멋대로 굴면서도 어쩔 땐 나의 의견을 존중하기도 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나를 따라오겠다는 아이가 마냥 싫지는 않았다. 답은 이미 정했지만, 고민하는 척을 했다. 턱을 긁적이며 먼 곳을 보다 아이를 내려보았다. 기대에 찬 동그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재미없을 텐데, 마음대로 해.”
오예! 온갖 환호성이 들려왔다. 고작 학교에 가는 것뿐인데 왜 저렇게 신이 날까. 나의 머리로는 도무지 납득을 할 수 없는 아이와 나는 등굣길을 함께했다. 늘 같은 하루 중의 하나였지만 오늘은 조금 기분이 색달랐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침치곤 환한 햇볕이 피부를 따갑게 내리쬈다. 나는 햇볕이 세든 말든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조례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남았던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서너 명을 앞지르다 아이가 따라오나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주한 아이는 고개를 치켜들고 해가 내리쬐는 하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내 기억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라 확신했다. 생김새나 옷차림보다는 그저 단순한 분위기만으로. 하지만 아주 가끔 아이를 볼 때마다 데자뷔가 일어나듯 익숙함이 머리를 스쳤다. 마치 지금과 같은 순간. 쏟아지는 해를 온몸으로 받으며 하늘을 보는 아이를 언뜻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의구심에 아이를 계속 바라보니,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저 행동은 나에게도 익숙했던 행동이라서.
의도적으로 하늘을 보지 않기 시작한 건, 엄마의 사고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후부터였다. 약 7년 정도 된 일이었다. 이유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먼저였고, 다음으로 내가 별거 아닌 자신감으로 날씨를 확신하는 것 자체가 덧없이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또래 친구들에게 날씨를 잘 맞힌다고 자랑하며 나의 특별함을 스스로 상기시켰다. 그러나 사고 후 10살 때, 날씨를 제대로 맞히는 것도 아니면서 특별한 게 맞을까 의구심을 품었다. 이후 사람을 만나고, 열정적인 행동을 해도 내가 하면 다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나에게 모든 일이 무미건조해졌고, 의미가 없어졌다.
그런 나와 달리, 저리 열심히 하늘을 보는 아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느낌이 마냥 반갑지는 않아서 나는 되려 고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행동을 멈추고 나를 따라왔다. 아이는 곁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 재미있겠다고 기대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고등학교는 그런 거 안 해.”
왜? 왜 안 해! 고등학교에서도 정말 술래잡기와도 같은 놀이를 할 줄 알았는지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반복되는 투정이 거의 극한으로 향하자 아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학교에서는 대화 못해. 넌 남들한테는 안 보인다며, 이상한 애 취급받기 싫어.”
대화를 못한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아이의 입술이 튀어나왔다. 마침내 학교 교문 앞에 다다랐다. 조례까지 5분 남짓한 시간이 남았지만, 교문에는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애들 사이를 비집고 가 1학년 3반 교실 앞에 도착했다. 왁자지껄한 반 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바로 보이는 뒷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걸고 책과 필기구를 꺼냈다. 아이는 고등학교의 교실이 신기한지 벌써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 조례를 위해 들어오셨다. 교탁 위에 놓여있던 출석부를 꺼내곤 인원을 세셨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는 게 담임 선생님에게는 꽤 귀찮은 일이셨는지 그저 교실 인원을 세곤 안 온 사람의 이름만 확인하는 방법을 쓰셨다. 나 또한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다 손을 들며 대답을 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그렇게 5분도 되지 않아 조례가 끝났다. 유유히 교실 밖을 향하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본 아이가 내 귀에 속삭였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다 저렇게 졸려 보여?”
입 밖으로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담임 선생님 상태 제일 좋아 보였는데. 고등학교를 처음 온 아이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의 시선 차이가 조금은 어이없어 웃음을 작게 머금었다.
지난주에는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수업 없이 서술형 확인만을 하고 끝내는 선생님분들이 종종 계셨다. 오늘도 1교시부터 수업이 없었다. 나는 서술형 점수 확인을 끝내고 잠을 자거나 학원 숙제를 했다. 그동안 아이는 옆자리 애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대화를 하는 애들 옆에 기웃거렸다. 어린아이가 저런 식으로 곁에 맴도는 데도 아무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반을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다 보니 또 현실감각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4교시의 끝자락이었다. 바로 다음이 점심시간이라 잠을 자는 애들은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애들을 구경했다. 무언가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서인지 본인 흥밋거리에 맞는 일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다가갔다. 잠시 볼 때마다 그런 끈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다들 우르르 급식실로 향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모두 반을 나갔고 넓은 교실 안에 나 혼자만이 남았다. 아니, 아이와 내가 남았다.
“왜 급식 안 먹어?”
“가끔 먹어. 자주는 안 먹고.”
“왜? 배고프잖아. 친구들 따라가서 먹어.”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친구. 1학기 때 잠시 얘기 나눈 것 말고 대화조차 안 해본 애들을 친구라 할 수 있나. 지금 나의 상황을 아이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나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없었다. 잠시 인사를 나눌만한 사람은 있어도 그들에겐 각자의 무리가 존재했다. 1학년 1학기 당시에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작게나마 노력을 했다. 남들처럼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하게끔. 그러나 그 노력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했다. 나만이 그들을 찾는 일방적인 관계였고, 나의 말수는 절로 줄었다. 또 모든 게 의미 없어져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나의 행동은 덧없는 일이 되었다.
사실 한 번만 있던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다녔을 때도 친구들과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다 생각했을 무렵 일이 터졌다. 혼자 화장실을 다녀왔을 뿐이었는데 교실로 돌아오던 길에 내 뒷담을 들었다. 소문의 근원은 함께 다니던 애들이었다. 뒤늦게 나만이 원하는 관계였음을 알았고 거리를 두었다. 그러고 나니 그 애들은 나의 앞에서도 내 이야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야깃거리 중 단 하나의 사실은 없었는데도.
새롭게 시작한 고등학교도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일이 생기자 그저 내가 안 되는 건가 싶었다. 의미 없는 행동에 힘을 쏟기 싫어져서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포기한 결과는 고립이었다.
“밥 먹기 싫어.”
“왜? 배고플 거 같은데.”
“그냥 먹기 싫다고.”
“그냥은 뭐야. 왜, 왜애.”
덜컹.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책상이 심하게 흔들렸다. 표정이, 마음이 제멋대로 구겨졌다.
“제발 그만 물어보면 안 돼? 일일이 대답하기 싫다고.”
나는 아이를 두고 곧장 교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쿵쾅거리는 나의 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텅 빈 화장실 거울 앞에 마주 섰다. 거울 속 나의 모습은 거친 숨 때문에 뺨과 목이 붉었다. 후우. 세면대 앞 거울에 닿을 정도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라 단정했으면서 누구에게나 분명한 사실을, 내가 이런 상태라는 걸 들키기 싫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고, 이상할 뿐이라서. 모두 내가 이상했기에 만들어진 일들이라서.
또 아이를 마주했을 때 화를 낼까 봐, 텅 빈 화장실에서 꼬인 감정들과 생각을 잠재웠다. 조심스레 반으로 돌아갔을 때는 밥을 먹고 돌아온 반 애들만 있을 뿐,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내 행동에 기분이라도 상해서 달아난 걸까. 잠시 노심초사하다가 스스로 귀신인지 뭔지 모를 존재에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없어 작게 조소했다. 다음 교시를 위해 책을 꺼내려던 찰나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애들이 소리쳤다.
“야, 비 오는데?”
애들의 시선을 따라 창문을 보니 어느샌가 어둑해진 하늘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진 않았지만,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이 내리쫴서 지금의 날씨는 생각도 못 했다. 혹시나 휴대폰을 꺼내 예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예보도 예상하지 못한 빗줄기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비라, 왠지 모를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다급히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다음 교시 책을 꺼냈다.
점심시간 이후 2개의 수업을 듣는 동안 아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옆자리 애가 게임을 해도, 애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어도 안보였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시간이 지난 끝에 종례시간이 왔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도 전에 애들은 벌써 학교를 떠날 준비를 했다. 오늘 수고 했다. 내일 보자. 중요히 전할 말이 없으셨는지 선생님 또한 빠르게 교실을 들렀다 가셨다. 반마다 우르르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교 밖으로 향하는 애들의 입으로 온갖 비에 대한 걱정이 터져 나왔다. 학교 건물 문 앞에서는 각양각색의 우산을 지닌 애들이 우산을 펼치고 나아갔다. 그리고 옆에 쏟아지는 빗방울 사이에 있어도 머리칼 하나 젖지 않는 아이가 서 있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반응 없이 우산을 펼치고 빗줄기를 가로지르며 아이를 지나쳤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교문을 지나 아이들이 붐비지 않는 거리까지 다다랐을 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알았다. 아이는 날 따라 이 길을 오고 있었다. 굵은 비가 와 거리에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길 위엔 나 혼자였고, 아이는 빗방울 사이로 내게 말했다.
“나 있잖아. 다 보고 있었어. 네가 오늘 어떻게 보냈는지.”
아이의 말에 절로 내 걸음이 멈추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줄줄이 늘어놓은 말이 아니었지만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대화를 안 나누잖아. 누구랑도. 외롭지 않아?”
우산을 쥔 손에 세게 힘이 들어갔다. 마주하기 싫었지만, 항상 마주하고 있던 진실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외로움. 가장 떨쳐내고 싶었음에도 그것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자꾸만 증식했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서 흔한 감정 중 하나니까 누구든 이렇게 사는 건가 싶어 둘러봐도 아무도 나처럼은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 속에서 나는 또 평범하지 못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듯 옷에 물기조차 묻지 않은 아이가 보였다. 나는 우산 손잡이를 든 주먹을 그러쥐고 말했다.
“내가 외로우면, 뭐가 달라져? 나는 늘 혼자였어. 뭘 해도 계속 혼자였다고.”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제 비밀이 들킨 아이처럼.
“학교, 학원, 집 모든 곳에서 마음 터놓을 사람 한 명 없어. 나만 이렇게 살아, 특별하지도 못해, 평범하지도 못해. 이런 내가 외로워도 뭐가 달라지는데.”
아무렇지 않게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려 했지만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미간은 세게 찌푸려졌고, 말을 내뱉는 입술은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눈 밑이 뜨거웠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한껏 눈을 부라린 채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시야 속에서 선명해지는 아이의 눈동자가 덜컥 나의 마음을 도려내는 듯했다.
휘익. 순간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의도치 않게 우산이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우산은 저 멀리 굴러떨어졌다.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내 머리카락과 옷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스며드는 것이 서서히 피부에 느껴졌다. 끝내 턱 끝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걸친 옷마저 잔뜩 젖어버리자 나는 이 모든 게 서러워졌다. 비가 내 전신에 스며드는 것마저 극도로 불행해 보였다.
아이를 향한 눈동자를 내리고 축축하게 젖은 내 운동화를 보았다. 물을 머금은 운동화는 색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타닥타닥 빗소리가 그제야 귓가에 들려올 무렵, 내린 시야로 슬리퍼 한 짝을 신은 발이 들어왔다.
“혼자라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아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날 보고도?”
순식간이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어깨가, 옷이 나처럼 점점 빗물에 젖어들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이. 빗물이 아이의 뺨을 타고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평생을 열지 못한 상자를 드디어 열게 된 듯 해방감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깊이 묻어놓았던 기억 하나가 나의 세상 위로 드러났다. 이제껏 느꼈던 익숙함이 허상에서 온 것이 아님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할머니와 아빠의 대화에서 엄마의 사고를 들었다. 사고 날 비가 왔고, 엄마는 고작 비를 피해 서 있었을 뿐이라고. 이야기에 멍해진 머리를 붙잡고 침대에 누웠다. 현관을 나서던 뒷모습이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눈을 감을수록 선명해져서 뜬 눈으로 전등이 달린 천장을 뚫어져라 보았다. 비가 와서, 비를 피해 있었다고. 근데 비가 오는 걸 알고 있었으면. 번뜩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내가 비가 오는 걸 알고 있었으면.
이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꿈 하나를 꿨다. 사고 당일 아침이었다. 엄마가 있었고, 그 옆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거란 내 말이 전해지고 가방을 챙긴 엄마가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붙잡으려 무작정 손을 뻗었다. 하지만 무력하게도 나의 손은 엄마의 손 위에서 흩어졌다. 마치 아무 선택권도 없는 지금처럼. 달칵. 문이 닫힘과 동시에 꿈에서 깼다. 내가 첫 그 꿈을 꾼 날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정신없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곤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허겁지겁 슬리퍼를 주워 신었다. 방금 잠에서 깬 나는 꿈이란 자각도 없이 엄마가 방금 이곳을 나갔다며 멋대로 착각하고 말았다. 엄마, 엄마를 찾아야 해. 공동현관과 아파트 앞 놀이터를 지나고 앞으로 쭉 펼쳐진 거리를 달렸다. 하나하나 지나가는 어른들의 얼굴을 확인해도 모두 낯선 얼굴들뿐이었다. 결국 다급한 걸음에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하지만 벗겨진 신발을 주워 신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오로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엄마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종일 흐릿하던 하늘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적시고, 무지개색 원피스를 적셔도 나의 목적은 여전했다.
온몸이 비에 젖어 한기가 느껴졌다. 소름이 돋은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던 찰나 허공으로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빗소리에 먹힌 목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예원아!”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몸을 돌려 남자를 보았다. 나와 같이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남자는 다급히 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나는 비에 젖은 남자에게 말했다. 아빠. 덜덜 떨리는 내 목소리에 아빠는 몸을 숙여 나를 끌어안았다. 비에 젖은 옷이 어깨에, 팔에, 뺨에 닿았다.
“아빠. 엄마, 엄마가...”
나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맞닿은 품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순간 물이 가득 들어있던 풍선이 팡 터져버린 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느껴진 모든 감각이 이제 곁에 엄마가 없다는 걸 알려줬다. 주체할 수 없이 치미는 울음에 숨이 막혀왔다.
“내가 비 온다고 말했으면, 엄마가아.”
내가 우산을 챙기라고 말했으면 달랐을 텐데. 처음 후회를 했다. 하늘을 조금 더 자세히 볼 걸, 날씨는 변덕이 심하니까 작은 우산이라도 가져가라 할 걸. 거듭 생각해도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심한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울음 때문에 제대로 발음조차 하지 못한 내 말에 아빠는 고개를 세게 내저었다.
“아니야, 제발 예원이는 그런 생각 하지 마. ”
내 어깨를 감싼 손이 옅게 떨렸다. 여기에 예원이 잘못이 뭐가 있어. 중얼거린 말보다 목소리에 묻은 떨림이 나와 똑같이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로 아빠의 죄책감을 알았다. 그때를 나만 후회한 것이 아니란 걸. 모두 본인만의 구실을 만들어 죄책감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간신히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자 어리숙하게도 하필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대체 왜 우리가.
안긴 채로 한없이 울음을 쏟아냈다. 차라리 모든 울음이 쏟아지는 빗속에 잡아먹히도록.
아빠는 나의 울음이 이어지는 내내 말없이 등을 토닥였다. 격한 감정에 두근대는 심장 소리에 맞추는 듯이. 손길이 무척이나 다정해서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잦아들었다. 기꺼이 울음까지 멎자 아빠는 어깨를 감싼 팔에 다시 힘을 주어 나를 안았다.
“우리 집에 가자, 예원아. 그래도 아빠랑 같이 살아내자. 어떻게든 살아내자.”
그 말은 내게 하는 위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는 기도문 같았다. 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끝에서 하는 기도.
내가 왜 이 기억을 전부 잊고 있었는지. 이후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그랬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을 떠올린 머리를 붙잡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보았다. 무어라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아이는 그때 내 모습 그대로였다. 나의 말 못 할 감정은 물이 가득 든 컵처럼 넘실거렸지만, 날 본 아이의 표정은 한껏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집에 아빠 오셨어. 가 봐.”
아이는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나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 몸을 틀곤 곧장 빗속을 달렸다. 옷은 빗물에 차갑게 젖어드는데도 얼굴은 계속해서 뜨거워졌다. 혼자라고 멋대로 단언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날의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날 찾았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하지만 무거웠다. 나도 잃기 싫었을 거다. 우린 가족이니까. 살아내자. 떠올린 기억 속 목소리가 선명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평소보다 느리게 문을 열자 아이가 말했듯 아빠의 신발이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 옆으로 운동화를 벗어 놓고 말없이 거실로 향했다. 내딛는 걸음마다 빗방울이 떨어졌다. 마침내 거실에 다다랐다. 조용히 물을 마시던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문득 바라본 아빠의 눈동자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날 찾은 아빠의 눈동자와 겹쳐 보였다. 긴 시간이 지나 같은 거라곤 아빠와 비에 잔뜩 맞은 나밖에 없었는데도.
“아빠.”
단 한마디 했을 뿐인데, 덜컥 울음이 터졌다. 빗속을 뛰어다니던 10살의 나처럼. 여전히 말보다 감정이 앞서서 계속 눈물을 훔쳐도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텔레비전조차 틀지 않아 적막한 거실에는 나의 울음소리만이 채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흐릿한 시야로 다가오는 발이 보였다. 7년 전보다 작아진 듯 착각이 드는 팔이 축축하게 젖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내 온몸이 비에 젖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안긴 품이 낯설 정도로 지나치게 따듯했다. 울며 안겼던 어린 날 여전히,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