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워커의 마주보기
페미워커클럽 4기의 시작은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읽고 싶은 책 혹은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소개하고 의견을 모아 6권의 책을 선정했어요. 책을 읽고 나누는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느슨하면서도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페미워커클럽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를 탐색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만큼, 원하는 만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잘 담아,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이 후기기사를 써주었어요. 모임 후기기사는 [페미워커의 마주보기]라는 이름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습니다. (보라색 버튼을 클릭하면, 기사를 볼 수 있어요!)
짧 은 후 기
저는 여고를 다녔고 여대를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남성사회 속에서 여성성을 강요받거나 혹은 여성성을 완전히 버릴 것을 강요받은 경험이 많지 않아서 다른 분들의 경험을 들을 때에는 약간은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옛날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아직도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제가 살고 있는, 저를 구성하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좁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지만, 저도 언젠가는 혐오가 만연한 사회로 나아가야 할 테고, 그곳에서 혐오를 내뱉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겠죠? 그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지, 또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세상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힘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어요.
모임 마지막 즈음에 저의 감상을 나누면서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의 한 부분을 인용했어요. “내가 차별받은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퀴어인 걸 사람들이 모르니까. 그런데 바로 그게 차별이라는 생각이 든다.(혜민)”라는 부분이었어요. 이 인터뷰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공간은 우리에게 완전히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을 거예요.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은 우리에게 편안한 공간이겠지요? 저는 오늘 여러분 앞에서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꺼낼 수 있었고, 그건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제게는 커다란 용기였어요. 앞으로도 더 많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우리가 드러내고 싶었지만 드러낼 수 없었던 정체성들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욕을 감내하는 것이 하나의 자기계발이 되었다는 저자의 표현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취준을 하면서 압박면접 스터디라는 것 까지 있다는 걸 알았을 땐 사회가 나에게 도덕성에 무뎌지는 것이 이성적인 자세라고 가르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스스로도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에 끼워맞추려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자신도 모욕을 감내하는 법을 학습하려는 건 아닐지 성찰하게 되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정상성을 타파하는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늘 너무 감사했고 다양한 분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각자가 나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투쟁은 거창하게 부딪히고 대립하고 이런 의미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과의 투쟁이지 않을까해요.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범주에 나를 규정짓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요. 시작은 나부터, 그리고 타인에게까지 이어지고, 그것이 모여 사회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모여 사는 얘기도 나누고 책 이야기에 대한 생각들도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날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정말 뭘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구나 싶었고. 그렇게 보이지 않은 경계를 계속해서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을 페미워커클럽에서 앞으로 해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했습니다😎
‘훈육되지 않은 몸은 자본주의 세계관에 없다’라는 문장이 인상깊게 남았어요. 그때의 몸이란 이성애 규범을 전제로 성별화된 몸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어요. 책 속의 다양한 경험들로 이것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매순간 경험하는 통제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성별에 따라 위계가 만들어지며 차별이 정당화되는 흐름, 그리고 단지 그 성별로 보이는 꾸밈을 요구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노동의 내용까지 성별에 따라 규정지어지는 일 등 생각해 볼 거리가 너무나 많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비’퀴어일까, 라는 질문이 책의 서문에 있는데, 그 질문을 계속 의식하며 책을 읽었고 다 읽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남아있었어요. 구조가 이런 모양이고 이런 방식의 통제를 하며 나 또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구나 하는 순간들이 책을 읽으면서도, 모임에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연대의 가능성은 이런 ‘나 또한’의 순간에 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계에 서있는 몸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들은 항상 경계에 서있고, '정상'과 '비정상'의 간극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구나, 요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어떤점에서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말하고 듣는 난장이 더 많아졌으면 해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닿아있는지를 더 많이 느끼고 싶어요. 그래야 '너는 정상이 아니야' 따위의 말을 쉽게 뱉지 않을테고, 각자의 삶에 놓인 경계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을거 같아요.
'내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모임이었어요! 다들 늦은시간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이중 수치라는 좋은 표현을 오늘 하나 건져갑니다! 모임 정말 즐거웠어요 :) 몸에 대한 통제가 여성에게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강요되는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막판에 덕밍아웃 한거 말고는 왜.. 생각이 안날까요..? (껄껄) 어떤 억압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 만큼 내게 가해진 억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도 중요한거 같아요. 그러면서 '이중수치'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ㅎㅎ 이번모임을 통해 요리조리 이모저모 움직이고 관계 맺어보며 나의 '윤리적인 페미니즘 모먼트'는 무엇일까 고민해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욤 :)
나는 오늘도 심히 흔들리는 중이다.
91p. “버틸 수 있는 힘이요? 그거 같아요. 여기가 결혼하고 첫 직장인데요. 팀장님들이 누구누구 씨라고 안 부르고, 가끔 이름만 부를 때가 있거든요. ‘해선아’ 하고 부를 때가 있어요. 결혼하고서는 저를 그렇게 불러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남편이 ‘누구 엄마’라고는 안 해요. 이름을 가끔 부르는데 그거랑 이건 또 다르잖아요. 그때 너무 좋았어요.”
100p. “이기려면 자본보다 하루 더 버티면 된다.” 이 알 수 없는 답을 믿고 산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해선아” 하고 불리던 순간 느꼈던 마음을.
당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나의 이야기로 경험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어요. 특히 같은 여성 노동자로서 겪을 수 있은 차별이 무엇인지, 연대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답은 나오지 않지만 계속 고민해야 하는 질문들을 던져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책에서 나오는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많은 힘을 얻어가는 시간이었어요!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러면서도 경계해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던 모임의 순간들을 잘 담아두고 싶어요. 연대하고 공감하되 투사하지 않고, '나'의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타자화 하는 것을 경계하되 이를 마주했을 때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들이 오간 순간순간들.
그리고 과거에 불안정노동을 하며 짜그러졌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어요! "내가 하는 일을 폄하하는 말을 믿지 말자! 내가 하는 일로 '나'를 얕잡아 본다면 되갚아주자!(?)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을 애써서 긍정할 필요 없다! 불안정/저임금노동은 x같고 문제적이니까!" 라고!
평소에 고민하고 있던 지점들에 대한 의문을 다시 뼈아프게 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나와 어떻게 같을 수 있고 또 어떻게 다른가?"라는, 두려워서 피하거나 어딘가에 숨겨뒀던 질문들을 꺼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D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던 지점이 있다면 제가 저 투쟁들을, 혹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많은 싸움들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재현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입니다. 부족한 글로 이것저것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목소리의 주체를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을지,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할지가 고민입니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기서의 논의를 통해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되었습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도 아닐 거라는 말에 동감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제가 힘들었던 걸 되돌이켰을 때 그때 뭐가 그렇게 힘들었지? 하면서 제 자신을 이해 못할때가 더 많거든요 그만큼 아픈 세계와 아프지 않은 세계는 아예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 참 와닿았네요. 그만큼 100퍼센트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돌본다는 건 가능하지 않는 것이고 기대하면 그 관계가 위태로워지는 것 같아요. 이렇기 때문에 개인이나 가족에게 돌봄을 맡기는 것이 해결책이어선 안되겠죠. 너무 요원한 주제라 결론을 내리긴 힘들었지만 함께 얘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느꼈고 이것도 돌봄받는 기분이라는 걸 랜선 너머에서도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