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페미워커클럽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여성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만연한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사회에서 우리의 삶과 노동을 들여다보고 재해석하여 각자의 삶에서 발생한 다층적인 차별을 들여다 보고 나누며 외화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답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노동이력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느낀것, 공유하고 있는 것들을 짧은 토막후기로 남깁니다.
토막후기 작성자 : 한솔
긴장되고 들뜬 마음으로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더라면 얼굴이 새빨게지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페미워커클럽 가는 버스에서 ‘분명히 자기소개 시간을 있을텐데 이곳에서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는 어디에 사는 한솔이구요. 이런 시간을 불편해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자기소개를 위한 편안한 질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기소개 덕분에 사람들을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기소개 시간으로 3시간을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배진경 대표님이 한국 사회 성차별 급여 노동 지표를 강의해주셨다. 늘 이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였을까 하는 의문에 답이 되는 시간이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 남성의 급여 그래프를 보며 내 급여는 과연 적정한 수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노력해서, 열과 성을 다하는 노동인데 어떤 노동과 대상은 저평가 당하는 것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연령별 급여 수준의 현황 등 강의가 진행될수록 분노하고 또 다른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어, 레나님의 노동 이력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막막하기만 했던 2강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려지는 시간이었다. 나의 노동을 떠올리며 ‘여성’, ‘노동자’로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생각나 씁쓸했다. 노동은 왜 즐겁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레나님의 발표를 들으며 감정적으로 많은 공감과 이해를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이 짧고, 아쉬웠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되고 신이 났다. 살아가며 오랜만에 느끼는 들뜸이었다.
<3분 글쓰기>
현 : 여가시간들이 점점 더 초라해지는게 아쉽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생각해볼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좁은시간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시간이 많았으면 돌봄이 의미를 다르게 다가올텐데 좁은시간 동안 해야하다보니 일이 된다고 느껴질때가 많다. 우리가 업무시간을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세상이다보니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는, 않게 되는게 아닐까. 결국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에 있어서 선택권을 쥐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다보니 출/퇴근시간이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이 발생하고, 업무관련 연락이 퇴근 이후에도 올 때 컨트롤 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는데, 노동자 자신과 노동을 분리할 수있는 상황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혜리 : 내가 지금 나의 일을 좋아하고 있다는걸 느꼈는데, 노동시간이 유연한 편이라 저녁일정이 있을때도 있고 노동조합에서 일하다보니까 야간 농성 밤샘을 한 때도 있다. 현님이 이야기한것과 반대로 내가 내 시간을 조절 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회사노동이랑은 다른 성격이라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일을 좋아하는것과 별개로 지금 해왔던 일을 생각해보면 서비스 노동이 주를 이루는데, 조금 더 일찍와라, 좀 더 늦게 해달라, 좀더 일찍 가달라, 이런 유연한 점들이 있었는데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건 문제지만 시간만 놓고 봤을 때 조절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슬기 : 주40시간 일하면서도 근무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조별로 이야기 하면서 태주님 이야기 듣고 죄송한 마음이 올라왔다. (회사가 죄송해야할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30시간만 일하고 싶다.
사월 : 레나와 토리를 생각해봤다. 저번부터 간식을 맛있게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오늘은 딸기 꼭지도 따오셔서 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셨는데 이건 레나님의 업무일까 아닌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는 업무인것 같기도 하면서 선의인것 같기도 하기에. 이 업무와 선의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텔레그램과 같이 계속 연락을 받아야 하고, 업무이면서도 선의인 이 경계가 본인도 구분하기 힘들 수 있으니까.
이단아 : 지금까지 돌봄 노동에 대해서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었다. 근데 현재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이번 주제가 돌봄 노동, 이주 여성의 돌봄, 돌봄노동을 하기 위해서 이주화하는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는것과는 별개로 나의 돌봄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사월님하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나는 굉장한 돌봄노동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노동력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인것을 다른 사람, 타인 입을 빌어서 들으니까 이제야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써본 글은 “여성에게는 당연하게 지어진 돌봄의 짐이라는 문화가 있다. 임금 노동으로 인정받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늘 그 자리에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일해왔고 성공시켜 왔다. 우리 모두는 그 여성의 희생과 노고에 빚을 지고 있다.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았던 얼굴 없는 노동자를 타인만이 아닌, 그것은 내 자신이 되기도 한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돌보는 것은 정확히 환산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고차원적인 노동이다. 이제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고 한다. 앞으로의 미래는 이 돌봄노동 대가의 경제적 가치 이상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
거북이 : 노동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하는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동시에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임금노동이던 무임금노동이던 안하게 되면 세상이 다 멈출거 같다. 오늘 다른사람들의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을 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는 아직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건가, 일이 끝나고도 자기계발을 해야하는가, 자기계발 안하고 살 수 없나, 언제까지 자기계발을 해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솔: 마지막에 사월님이 하신 얘기들이 많이 인상 깊어서 이야기를 듣고 바로 썼다다. ” 어릴 때 나는 엄마가 나와 있는 시간이 적어서 슬프고 힘들어했다. 나에게 혼자라는 시간을 준 엄마에게, 늦은 시간 동안 동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자라고 나니 무엇보다 일하는 와중에도 나의 식사를 늘 빼놓지 않았던 점, 다 크고 나니 새삼 너무나 고맙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출퇴근시간이 줄어들어도 임금이 줄어들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트레스 받는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곳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태주 : 모든 생활공간에는 일이 필요하고, 그 일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생각보다 많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그 어디에나 있는 노동자들이 어디에도 없없다는 것을 느껴서 사회분위기가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다음소희>에서 나온 ‘힘든일을 하면 더 고마워 해야하는데 힘든일을 한다고 더 무시해’라고 말한 배두나 배우의 대사가 생각났다.
서서희 : 다른 분들보다 노동시간이 짧은편인데, 나는 왜 여유를 가진적이 없지? 지금은 임금을 벌어다 주지는 못하지만 자기계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에 항상 쫓겼고, 집안일 같은 일을 빼고 정말 여가라는 시간을 유튜브에 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데… 여가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3분이 됐다.
토리 : 노동자면 손들라고 했을때 주춤했다. 노동단체에서 일하지만 아직 노동에 대해서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각자 얘기를 나누면서 진짜 삶의 형태나 노동의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더더욱 남의 삶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까 프로그램을 통해 본 영상도 되게 인상 깊었는데,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를 또 착취하고 있을 수도 있고 우리 엄마를 또 착취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런 반성도 좀 들었다.
토막후기 작성자 : 지안
나는 일한 시간보다 일하지 못한 시간이 많다. 20대 중반에 일을 시작하고 20대 후반 들어 가족들의 질병으로 돌봄과 일을 병행하다 30대 초반에 일을 놓고 돌봄에 전념했다. 하지만, 이것이 희생도 박탈도 노동도 아닌 나만의 일, 과제로 가져가고 싶었다. 불가피한 상황, 그러나 모든 상황에는 무엇이든 재료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 성장에 쓸 수 있는 것을 걸러내 수렴하고 싶었다. 원망이나 분노처럼 비주체적인 감정에게 아까운 나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가족은 결핍이었고 관계는 상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어머니와의 관계를 만지는 작업은 나를 만지는 작업이었다. 이것도 기회였다. 상황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좁은 식견으로는 그렇게 돌봄한 상대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열패감에 멘탈이 무너졌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한 해에 앞서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남동생은 여전히 투병 중이었다. 어느 절 방에 들어가 대자로 누워 힘껏 아파봤으면 했다. 폭 아프고 싹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시공간이 절실했다. 아플 자유가 고팠다.
오랜 시간 수면이 박탈된 몸은 원인 없는 질병을 달고 살았다. 그래도 일을 해야 한다는 억압에 시달렸고 좀 나을 만 하면 일을 시작했다가 울면서 퇴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게 30대의 대부분은 일하지 못 하는 시간으로 누워 지냈다. 아픈 몸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정상성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건강이 기본 값인 사회. 그러나 둘러보면 모두 어딘가 늘 아프다. 그러나 사회가 요구하는 건강성과 정상성을 흉내내며 살아가고 있다. 오기가 들었다. 아픈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이 상태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30대 후반, 청년 연령제한에 간신히 들어 마을활동가 일을 시작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성취와 번 아웃을 골고루 경험했다. 그대로 40대가 되기에는 억울했지만 그 시간도 무사히 통과하고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반성폭력운동 활동을 하며 날로 갱신되는 자기효능감과 소속감, 연대의 힘 속에 있다.
그리고 페미워커클럽을 만났다. 임금이 없는 노동도 노동으로 알아주고 듣겠다는 곳. 그렇다면 가서 이야기해야 했다. 누워 일하지 못하고 수많은 낮과 밤을 지새우는 언젠가의 수많은 나들에게 당신 그대로 괜찮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시간이 된 것이다. 아무도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는 어두운 바다, 그 절대의 시간 속에서도 이렇게 당신 안의 힘을 믿는 언젠가의 내가 있다고.
한솔, 레나, 영은 과거에 그토록 기다리던 나의 귀다. 시간을 건너 이제 도착한 말들이 깊은 곳에서 공명하고 나는 이제 울음 없이 그저 반길 수 있다. 나의 동료 없었음을 알아봐준 한솔, 끄덕임으로 한숨으로 알아봐준 레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응원을 건네는 영. 한 때 어둠 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동료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있다. 이 곳은 아직 바다, 그러나 각자의 고독을 항해해 본 자들의 장소. 페미워커클럽은 총알도 뚫지 못하는 이 구역 최고 빛나는 존재들에게 장소가 되고 있다.
토막후기 작성자 : 서서희
4강은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별로 각자의 노동 이력과 자신의 노동이력에서 발견한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조원들과 나눴습니다. 듣는 사람은 조언하지 않고 지지자가 되어서 질문하거나 응원의 말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조별로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공유했고, 거기에서 예전에는 육아와 나의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면,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밥벌이 사이에서의 고민으로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는 노동이력을 돌아보면서 우울한 감정에 빠져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런 감정에 공감을 받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토막후기 작성자 : 사월
나는 어줍잖은 취재 경험이 있다. 인터뷰이를 앞에 두고 나는 내가 이 사람에게 질문할 자격이 있는가를 매번 걱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보다 나은 게 없고,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나에게 인터뷰이는 나에게 답해줄 의무가 없지만 그저 선의로 대답해주는 사람이었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나는 인터뷰이에게 큰 빚을 지는 느낌이었다. 미안했다. 그래서 조금은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렇게 취재를 하며 나를 소모하고 나를 깎아 내렸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함께 있는 시간. 기록노동자 희정은 인터뷰를 그렇게 말한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는 각자의 목적이 있고 각자의 시각이 있다. 그래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만나면 어긋남과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조차 함께 견디는 시간 속에서부터 ‘기록’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다음에 누군가를 취재한다면 가볍게 내 이야기부터 꺼내보고싶다. 당신이 처한 문제에 나는 어떤 공감과 연결을 갖고 있는지 짧고 가볍고 솔직하게 이야기 꺼내야겠다. 나에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겉치레 인사 대신에. 이해가지않는 부분에 억지로 고개 끄덕이는 대신에 그와 나 사이에 드러난 균열을 인정해봐야겠다.
당신과 나로부터 비롯된 이 인터뷰를 우리.의 시간으로 거듭내보고 싶다.
이게 기록노동자 희정을 만나고 생긴 나의 작은 결심이다.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 연재 기사]
페미워커가 만난 사람
한국여성노동자회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은 2023년 한 해 동안 자신의 노동이력을 살펴보고, 서로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페미니스트 노동자로 만나 기록자와 인터뷰이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노동경험을 나누고 기록하는 작업을 거쳐 각자가 경유하는 노동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알려내고자 합니다.
매주 1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를 통해 기사를 연재하오니 많은 관심과 공유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