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 https://watching-rainbow.postype.com/ )
공룡은 처음으로 의심했다. 눈앞에 있는 차를, 충직한 신하였던 각별이 준 차를. 한 번 자란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의문을 해소할 때까지.
각별은 이 자리에서 정했다. 오늘은 에투왈 왕국, 공룡 왕이 재위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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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저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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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더 왕자님이 돌아오신 날이었다. 평소처럼 알현을 끝낸 각별은 근위병과 함께 복도를 걸었다.
'그 왕궁 별장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사소한 오차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은 왕궁에서 나와 왕궁 별장이 있는 지역까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할수록 점점 화려한 색의 건물은 사라지고 단조로운 색의 건물이 많아졌다. 그걸 스치듯이 쳐다본 각별의 머릿속에는 백성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앞으로 그런 이들을 위한 계획은 없었다. 대신 불순한 무리가 있다는 정보와 근위병에게 은밀하게 내릴 지시 밖에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열심히 움직이던 마차가 멈췄다. 이 근처에는 마차가 다닐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별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각별이 마차에서 내리자 그 뒤를 근위병이 따라갔다.
"왕자님께서 머무신 왕궁 별장은 샅샅이 조사해. 사소한 거라도 놓치지 마. 만약 사사로이 만난 이가 있다면 조용히 처리하고."
"네, 각별 대신님."
듣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며 각별은 최대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유유히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늘을 쳐다본 순간, 각별의 눈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죽음을 맞이한 공포에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디서 온 거지? 각별의 시선은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건너편 지붕에는 모자를 썼으며 새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괜찮으세요?"
"저... 저X 당장 잡아."
그 직후, 계획했다는 듯이 백성들이 각별과 근위병에게 달려들었다. 대신님, 피하셔야 합니다. 알겠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서 두 사람은 안전지대인 마차가 있는 곳까지 피했다. 각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근위병은 범인을 쫓아갔다. 각별은 마차 안에서 조용히 아까 상황을 곱씹었다.
'한 발자국만 더 갔다면 떨어지는 물건에—— 아니, 아니지. 좋은 기회야. 이를 이용한다면...'
각별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그렇게 답이 나오자 그는 입을 가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한참 뒤, 허무하게 범인을 놓친 근위병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대신님.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자인 것 같습니다."
"돌아가자."
"범인은..."
"폐하께 보고가 먼저다. 이 소식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걱정하시겠느냐."
"네, 대신님."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그 자리를 떠나 왕궁으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각별은 옷과 머리를 점검했다. 큰일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각별이 마차에 내려 왕이 있는 곳의 문을 열자마자—
"각별 대신, 별장으로 가는 길에 난폭한 불한당의 습격을 받았다고 들었소. 어디 다치신 곳은 없는 게요?"
폐하가 달려 나오셨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모습이었다.
"폐하, 이 한 몸 왕실을 위해 일하다 다친 것은 영광이오나 그들이 왕실까지 폐를 끼칠까 걱정이옵니다. 그 마을은 왕실의 사유지가 있는 곳 아닙니까? 더군다나 왕자께서 유년기를 보낸 별장이 있는 곳이지요. 그런 불손한 무리가 난동을 부리다니 더 큰 위험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합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여봐라. 당장 군사를 보내 불온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예, 폐하."
모든 것은 각별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군사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각별은 모두 집합하게 하여 자신을 공격한 자를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지붕에서 암살하려고 한 자의 인상착의를 상세히 적은 현상 수배까지 내렸다.
그렇게 비어있던 감옥에 불온한 일에 가담한 자들이 줄지어 들어왔지만 아직 각별을 암살하려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처음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각별은 감옥 병사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다들 입을 계속 다물고 있습니다."
"그렇군."
배후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이런 작전을 하려면...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오르자 각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덕에 같이 있던 병사도 놀랐다.
"대신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지금 알리면 안 된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갈 수 없도록 완벽하게 잡기 위해서는. 각별의 철벽 방어에 막혀 병사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게 가장 중요한 정보였는데도. 각별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덫을 놓을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흘리는 것은 당연하지.
각별은 왕궁 집무실에 들어갔다. 아직 폐하께서 오시지 않았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룡이 들어와 상석에 앉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왕의 첫 마디는...
"각별 대신을 습격한 자는 전부 잡아들였느냐?"
자신이 아끼는 신하를 공격한 자를 잡아들였는지 확인할 뿐, 민심을 위한 것은 없었다.
"예, 폐하. 허나 지붕 위에서 각별 대신을 공격한 자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조사하여 사는 곳은 알아냈지만 이미 마을을 떠난 후였습니다."
"궁전에 근위병이 몇인데, 사람 하나 찾지 못한다 말인가. 반드시 잡아내서 그 죄를 묻도록 하라!"
"예, 폐하."
"폐하. 죄를 지은 자는 국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각별은 자신도 지금 알았다는 것을 어필하면서 왕의 근심을 덜었다. 공룡은 그걸 의심조차 하지 않고 넘겼다. 늘 그래왔듯 오늘도 각별이 회의를 주도하였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예전에 불었던 피바람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왕실의 새로운 별장은 순조롭게 지어지고 있겠지요? 착공에 들어간 지 꽤 된 것으로 아는데 소식이 없군요."
"그것이 왕실 뿐 아니라 왕국 전체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하여 공사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뭐, 뭐라? 국고에 왕실에서 중요하게 쓸 돈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오?"
"네, 맞습니다. 이미 수차례 세금을 올려서 더 이상 백성들에게 세금을 세금으로 받을 돈이 남아있지 않을 지경입니다. 폐하, 긴축을 단행하셔야 합니다."
왕실의 새로운 별장이 지어졌다는 소식이 아니라 국고가 비어있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치와 향락을 하느라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았으니까. 재정부 장관의 의견에 공룡은 잠깐 고민했다. 아니, 각별의 말을 기다렸다. 늘 문제를 해결한 이는 자신이 아니라 충직한 신하인 각별이었으니까.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각별은 가져왔다.
"그러고 보니 누이트 공국이 제후국 주제에 독립국을 자처하며 오만방자한 언행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어본 적 있소?"
"그건 갑자기 왜..."
"폐하, 누이트 왕국을 치시지요."
"어찌 소문만 가지고..."
소문만 가지고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군사 장관의 의견을 묵살한 해답을.
"각별 대신의 말을 믿겠소. 다들 전쟁을 준비하시오."
공룡은 흔쾌히 그 답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각별의 설계한 대로 전쟁 준비가 시작되었다. 왕실 군사들은 전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공룡은 각별의 도움을 받아 며칠 후에 있을 연설을 준비했다.
연설 당일, 공룡 왕과 라더 왕자는 연설장에 있었다. 원래라면 각별도 거기에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할 이유를 폐하께 미리 서신을 보내놓고—
"대신님, 말씀하신 대로 스파이를 찾았습니다. 폐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그래. 약점은?"
"네, 가족이 있습니다."
집의 비밀 공간에서 보고를 들었다. 드디어 완벽하게 뿌리까지 뽑을 수 있겠구나. 스파이의 인상착의까지 들은 그는 조사한 사람을 돌아가게 한 뒤 숨죽여 웃었다. 자신이 위험하다면 이 패를 꺼낼 생각에. 얼마 안 가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연설장에서 저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폐하와 왕자님께서는?"
"두 분 모두 다치신 곳이 없이 무사히 대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각별은 서둘러 왕궁으로 달려가 알현을 청했다. 설마 자신이 왕을 꼭두각시로 만든 것을 들키지 않았는지 조마조마했다. 왕을 만나자 각별은 자신이 엄청 걱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행동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폐하. 감히 왕자님과 폐하를 시해하려고 하다니. 이것들이 도를 넘는군."
"우리의 주둔지인 수도에서까지 대담하게 나와 왕자의 목숨을 노렸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단 말이오."
"이 일은 제게 맡기시지요. 폐하와 왕자님의 목숨을 노린 자들 아니 그 일당까지 제가 당장 처리하겠습니다."
"각별 대신, 그대를 믿겠소."
각별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근위병 한 사람을 지목해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들어가. 같이 온 근위병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는 자신에게 왜 그러느냐고 반항했다. 찔리는 것이 있어도 이유도 모른 채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각별 대신 말고도 감옥을 지키는 병사 두 명이 더 있었다.
"왕실의 일을 외부에 알린 스파이."
"아닙―"
"가족까지 문초를 해야 그때 인정하겠느냐?"
"......"
각별이 스파이의 약점을 꺼내자 스파이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쯧쯧, 잃을 것이 많은 자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기다니... 안 봐도 그들의 수준이 엄청 낮다고 각별은 판단했다. 조직원과 그들의 본부 위치까지 모두 들은 그는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화약을 준비해라, 아주 많이."
그날 밤, 레지스탕스의 지하 기지에서 무언가 펑- 하고 터지며 지반이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조직원들이 머무는 건물에 불이 났다. 점점 커지던 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건물을 삼켜버리고 태울 것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뻐했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자는 없다며.
누군가는 울부짖었다.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에.
누군가는 복수를 다짐했다. 우리가 추구하던 혁명을 위해서.
누군가는 슬퍼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누군가는 안타까워했다. 이 일을 그냥 묻혀서는 안 된다며.
이 왕국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조직들 중 하나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먼저, 백성들에게 그날 밤의 화재 사건부터 소문을 퍼뜨렸다. 그다음으로 귀족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종이를 붙였다. 이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각별의 귀에 들어갔다.
"무슨 일이지?"
"대신님, 백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소문이지?"
"연쇄 화재 및 붕괴 사건의 배후가 왕실이라는... 그리고 이것도 붙어 있었습니다."
여러 정보를 품고 있는 방문자가 양 끝이 부자연스럽게 잘려져 있는 종이를 각별에게 내밀었다. 하하하... 각별은 그 종이를 구기며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 없는 소문. 폭도들이 노리는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내 자리, 아니 내 목숨이 위험했다. 그는 일단 알겠다며 방문자를 보내고는 은밀하게 지시했다.
"이 집에 있는 값진 물건을 정리해서 왕실 별궁으로 보내거라. 이건 극비로 해야 한다."
왕실의 군사가 누이트 왕국으로 빠져나간 이상, 지금 도망칠 곳은 거기 뿐이었다.
"백성을 학살하는 사악한 왕실 물러가라!"
"왕족과 귀족들은 굶주린 백성들을 더 이상 착취하지 말라!"
백성들이 왕궁 앞에서 직접 목소리를 낼 때, 에투왈 왕국의 왕에게 이곳저곳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랴부랴 공룡이 명을 내렸지만 너무 늦어도 한참 늦었다. 참을 만큼 참았던 백성들의 분노는 너무나 컸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부터 사람이 왕래하는 길거리까지 총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나날이 벌어지는 전투에서 왕을 수호하는 병력은 계속 패배했다. 그렇게 왕궁까지 침범당하자 공룡이 분노했다.
"폭도들이 궁전 안으로 쳐들어오고 있는데, 왕실의 군사들은 무얼 하고 있단 말이냐? 어서 군사들을 부르거라."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실 군사들은 누이트 왕국으로 원정을 떠나 왕실의 병력은 근위대 뿐이옵니다."
"이럴 수가. 대신, 각별 대신은 어디 있느냐?"
"각별 대신께서는 이미 궁전을 떠나셨습니다."
"국왕인 나를 버리고 먼저 떠났단 말이냐... 왕자, 왕자는 피신하였느냐?"
"왕궁 대부분 점거당해 왕자님 처소와 소식이 닿지 않습니다."
신하는 도망가고 왕자는 소식을 알 수 없다. 절망으로 떨어진 공룡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근위대장을 따라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그를 지키는 사람이 한 명씩 쓰러졌다. 연기가 나는 총구는 지금 공룡 앞에 있었다. 주변을 살펴봐도 도망칠 곳은 더 없었다.
"에투왈 왕국의 국왕, 공룡. 아니, 악덕한 각별의 꼭두각시."
"뭐―"
"부패한 신하인 각별에게 권력과 믿음을 준 죄, 백성을 돌보지 못할 망정 오히려 착취한 죄― "
꼭두각시? 그 말을 시작으로 나열된 죄목은 공룡의 눈과 귀를 막고 있던 벽을 무너뜨렸다. 그게 있었다는 흔적까지 완벽하게 치워버렸다.
"에투왈 왕국의 왕, 공룡은 백성들의 지엄한 심판을 받으시오."
찰칵. 방아쇠가 당겨졌다. 여기까지구나. 코 앞으로 죽음이 다가오자 공룡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안 돼!"
그 소리에 공룡은 눈을 떴다. 후다닥 달려온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이 자는 총을 쏘려는 자와 잘 아는 것처럼 대화했다. 그 속에서 아직 자신을 믿는 백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공룡은 다짐했다.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각별부터 막으리라.
이미 그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었다. 이제 둘의 대화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했을 때, 탕! 하는 총 소리가 나더니 자신을 쏘려던 사람이 쓰러졌다. 공룡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 근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왕자, 라더가 총을 들고 있었고 빠르게 달려온 호위 기사인 덕개가 칼로 공룡을 호위했다.
"폐하, 가셔야 합니다."
"라더?"
"잠뜰이, 네가 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공룡의 머릿속은 백지로 변했다. 그는 라더와 호위 기사, 두 사람과 그곳에서 탈출해 안전한 곳으로 갈 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폐하. 아바마마? 이 소리가 100번 넘어갈 때쯤, 공룡이 정신을 차렸다.
"나는 괜찮다. 왕자."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공룡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걱정하는 두 사람을 다른 방으로 보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호위 기사인 덕개에게 왕자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조용해진 공간에서 공룡은 만족할 만큼 생각에 잠기지 못했다.
"폐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자신과 왕자를 버리고 도망갔던 신하가 직접 차를 들고 왔으니까. 신하는 근위대장은 뭐 했는지 따지면서 차를 따라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옛날이었다면 흔쾌히 마셨을 거다.
지금의 공룡은 처음으로 의심했다. 눈앞에 있는 차를, 충직한 신하였던 각별이 준 차를. 한 번 자란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의문을 해소할 때까지.
"뭐라 하지 마시오. 근위대장은 본분을 다했으니."
"알겠습니다. 곧 있으면 군사들이 도착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수도를 찾겠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폐하?"
"하지 말라고 했소."
공룡은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그런 태도를 처음 본 각별은 놀랐다. 항상 자신을 믿어주던 이가 달라졌다. 이건 신뢰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각별 대신, 자네의 말을 믿고 이렇게 되었으니. 그 말을 들을 필요가 있소?"
각별은 이 자리에서 정했다. 오늘은 에투왈 왕국, 공룡 왕이 재위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서 자신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받아치지 않고 차만 마셨다. 조금 안심한 공룡의 손이 찻잔으로 향하는 순간.
"폐하, 제가 이 차에 독이라도 탔을까 걱정되십니까?"
질문이 들어왔다.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각별은 태연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각별 대신! 지금 차에 독을 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니오.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그럼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제가 어찌 폐하의 목숨을 노릴 수 있겠습니까?"
아까의 안도감은 사라지고 불안함만 남았다. 찻잔 대신 주먹을 쥔 공룡의 손은 책상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를 드실 기분이 아니신 것 같군요. 저는 가볼 테니,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 다음은 영원히 없겠지만. 각별은 부들거리는 공룡에게 흠 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인사를 하고 나서 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그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을 불렀다. 이 자리에 오를 때까지 배신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던 이들이었다.
"폐하께 새로운 차를 가져다드려라. 그걸 다 드실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도록. 만약 안 드신다면 강제로 드려라."
"네."
그 말을 끝으로 각별은 유유히 그곳에서 벗어났다. 뒤에서는—
"그건 왜 가져 왔느냐?"
"대신님이 부탁하셨습니다."
"치워라!"
크나큰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러 가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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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라더야. 안 좋은 나라 상황을 떠넘기고 왔구나.
호위 기사 덕개. 왕자를 부탁하마.
왕비, 미안하오. 약속을 지키지 못했소.
이날, 한 나라의 태양이 저물었다.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태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