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펭귄 ( https://tonightrestaurant1218.postype.com/ )
"믿고 있었어"
ㅡㅡㅡㅡ
라더가 살짝 웃어보이며 말했다
어쩌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하는 말도 자신을 위하는 모습에
눈물이 새어나왔다
사실 이기적인 친구였다면 그랬다면
욕심을 내서라도 살아있었을텐데
라더는 여전히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앞에 놓인 찻잔과 잠뜰을 번갈아바라보며,
현실을 부정하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말을 반복했다
"믿고 있어 떠나도 괜찮아"
"정말 마지막까지 그렇게 멍청하게 굴꺼야?
진짜로 친구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냐고!"
이제는 분노보다 울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잠뜰이 라더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도
답답한 친구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어디 하나 반박도 하지 않아 슬프게.
사실 이 화는 자신에게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라더는 다 알고 있었다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는 내 모습에
아니 그 모습을 말리지 못 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자신을 어떻게 말해도 들을 준비가 되었다
곁에 못 있어주는 건 내 잘못이니까
언제든지 화내고 탓 해도 돼
라더의 말에 잠뜰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잠뜰이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영양가 없는 대화 속 현실감이 밀려왔다
-타다닥
편안한 분위기를 깨는 듯한 발소리와
총성들에 덕개가 뛰어나갔다
마지막까지 본인의 소임을 다 하기 위해
검을 빼들고 총과 맞서는 무모한 싸움을 나섰다
사실 이 둘을 끌고서라도 나갔으면 됬는데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일부로라도 살려놨어야 했는데
자신을 어떻게 탓 해도
친구의 모습을 간직해야 했는데
이 결말을 바꾸고 모두를 지킬 수 있었는데
소중한 가족도 잃었던 땅에서
코 앞에서 친구를 잃으라고?
누구라도 하지 못할 결심이었다
하지만 살려놓으면 내가 더 슬플 것 같아서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내가 너무
야비한 친구 같아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퐁당
하지만 이대로 슬퍼만 할 수 없었다
마지막이라도 제대로 된 티타임을 가지고 싶었다
너무 많은 욕심인 줄 알면서도
이 끝을 맺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잠뜰은 묵묵히
힘 없는 손을 움직여 마지막 티파티일지도 모르는
이 시간을 위해서
각설탕을 섞어 건네었다
그리고 친구가 찻잔을 집어들고
마시기도 직전에 말을 이었다
"네 차에 독을 탔어"
라더는 그대로 멈추어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배신을 하여도 놀랍지 않았다
잠뜰을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프지 않은 독인지 묻고 싶었다
마지막을 이 방에서 보낸다면
백성들의 자유를 지킬 수 있고
이 잘못된 정권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귀족들에게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니까 독을 타도 상관 없었다
그저 정말 아프지 않은 독인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눈동자는 평안했고
그 평안함에 잠뜰이 눈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탓 해주면 안될까?
네가 죽어도 버리고 떠난 나를 탓하지 않도록
나를 악당으로 만들어도 좋아"
눈에서 눈물이 맺혀 떨어지기 시작하자
라더가 고개를 이리저리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건 다 내 탓이니까
너는 이 땅을 떠나서 나를 잊어주면 좋겠어"
그리고 너라면 내 마지막을 아프지 않게
보내게 해주는거라고 난 믿어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끝맺은
라더는 눈물을 맺은채 차를 들이켰고
내려놓은 찻잔은 메마른 바닥만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독이 퍼지는 시간도
혁명군이 들어올 그 순간도
덕개가 온 몸을 내어 막더라도
최대 10분이었다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
아버지와 신하까지 자신의 곁에서 죽었는데
자신도 그들의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야한다니
-와락
잠뜰이 라더를 안아주었다
피가 여기저기 묻은 코트가 닿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정말 마지막인 이 만남을 좋은 순간으로,
그렇게 기억에 남겨 주고 싶어서
라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망 가서 자책하지 말고 살아"
그리고 잠뜰을 창가쪽으로 밀어주었다
열린 창문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라더는 함께 나가지 못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독을 마신 탓인지 몸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친구를 위해
의자에 기대어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억 속에 이 순간이 영원히 남기를 바래
잠뜰이 뒤에까지 쫒아온 소란에
뒤를 돌아보았다
라더는 눈을 감고 미소 지은 채 죽어있었다
-멈칫
아름답고 할 정도로 평안한 죽음에
잠뜰이 몸을 멈추었다
이제 정말 혼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모두 죽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뒤까지 쫒아와 문을 두드리는 현실에
잠뜰은 어릴적의 추억에서
그 비극의 땅에서 빛으로 뛰어내렸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끼며
고요함 밖에 없는 이 나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정오의 티타임은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고
왕자의 죽음과 다른 희생들은
단순한 혁명 성공의 기쁨 속에 포장되어 사라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친구가 왕자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예정된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슬퍼하기도 전에 이성적인 생각이 떠올랐고
친구의 마지막을 마무리 지어주려
그래서 지갑을 털어서 독을 샀다
아픔도 고통도 없이 마지막을 보내기를 바라며
내 재산을 모두 보내어 죽음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혁명이 2번 3번 일어나도
이 나라가 그대로 무너져 사라져도
친구는 언제나 기억 속에서 나를 바라봐줄테니까
그게 내 바람이었다
이루어질지도 이루지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목표와 희망이 있다는게 중요한거니까
이루지 못해도 나는 괜찮아
라더야 부디 그곳에서는 권위의 짓눌리지 않고
너라는 그 이름으로 행복하면 좋겠어
훗날 시신도 찾지 못한 잠뜰이 전하는
진심 어린 한 마디에 바람이 불어왔다
파랗고 자유로운 바람이었다
어릴적 둘이 함께 맺었던 따스한 바람이
혼자 남은 친구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짓다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온기에 몸을 비켜섰다
아 벌써 여름이다
네가 죽은지 3년 되는 시간이 흘러가
벌써 4번째 여름이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잠뜰만이
여름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전히 개구진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가
예전보다 성숙해진 발걸음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