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앉아서 햇볕을 쬐며

어릴 적, 어느 봄 날,

집 주변 밭에서

들깨 새싹들이 흙덩이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을 본 적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 새싹들이 짊어진

흙덩이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치워준

기억이 난다.


그림은 언제부터 왜 그렸을까?

야외로 나가는 것이 좋아서

화구를 들고 다녔다.

유일한 설렘과 즐거움 이었다.

나들이와 풍경화는 궁합이 자연스레 맞았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으며 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 왔고, 칙칙한 실내에서만 그리는 뎃생과

정물화에 가슴 뛰는 설레임이 차츰 사라져갔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수 있을까?

어떤 게 좋은 작품일까?

기교만 늘어갈 뿐이었다.

인내의 노동으로 고통의 연속이며,

더욱 싫은 것은 남과 경쟁이었다.

왜 스스로 마음의 짐을 버리지 못했을까?

무거운 흙덩이를 이겨내고 자라면

들깨들이 강하게 자랐을까?


그럼 왜 ?

지금껏 작품 활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좋은 그림은 무엇이며,

예술이란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로 부터 저항하며,

성큼 성큼 나아갈 때,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흥분되는 매력을 발견한다.



무의미한 사물들


우리는 무의미한,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가치가 아니라,

진실의 떨림이

온 몸으로 전해온다.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난 부산으로 간다


아버지는

술 한 잔 걸치시고

어린 나에게

인생을 얘기하셨다


담임 국어선생님은

꿈 많은 문학소년 같았고

사랑이 뭐냐?

"눈물의 씨앗" 요

그는 부산을 동경하셨다


천재 화가는

백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내가 꼭 그 한 명인 양...

교탁 앞에서 무안한 연설을 하셨다

아껴주심에 정물화를 선물로 드렸다


그 후 사모님은 빛 보증을 서

선생님 가족은 야반도주하셨다

어디로 가셨을까



미술책 포스터에

"꿈과 낭만의 도시 부산" 을 동경했다

“사회과 부도” 책

부산시 지도를 찢어

영주역에서 경북선 하행

비둘기호 열차를 탔다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렸다

부전역에 어둠과 함께 도착했다


군 휴가 나온 박종대 후배를 만나

소조 학원을 소개 받았다


지금은 목사님인 웃고 있는

이현철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미술과 연결된 가냘픈

끈을 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게 해 달라고

차가운 해운대 백사장에서 기도했다


다시 시작이다!


아모르 파티!



일제강점기 추운겨울 (1941년 11월 20일)

윤동주 시인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에 서시[序詩]를 남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십대에 윤동주의 서시를 만났다

부끄럼과 사랑과 주어진 길을 노래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살 애는 추위의 현실 속 운명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누구나 즐겁게 예술을 할 수 있는

맑은 영혼과 따뜻한 감성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기도할 것이다



어머니

다섯 살 6,25사변 직전 부모님 돌아가시고

큰어머니(외할머니)로부터 모진 학대 속에

사셨던 불쌍하고 불쌍한 어머니


며느릿감 보러 오신 다기에

결혼 예단이 걱정되었고

예비 시어머니(할머니)는 걱정말라 하셨죠

큰어머니로부터 벗어나서

시어머니의 인자하심에

결혼은 곧 자유며 행복이었다 하셨죠


어머니 손잡고

10리 길 걸어 외삼촌 집 가는 길

빨간 찔레 열매를 보시며

회상에 잠기시던 모습


동네 찾아다니며

밥 먹으라 부르시던 목소리


코가 오뚝하고 잘 생겼다고

자랑했던 남동생을

병원에서 떠나보내고

서글피 우시던 모습


미술 상장 받아왔다고

빨래하시다 일어나셔서

손뼉치며 기뻐하시던 모습


졸업식 전날 얇은 색종이로 정성스레

꽃다발을 만들고 계시던 모습


5월 5일 어린이날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며

사생실기대회에 갔다 온 걸 안 후

응원해 주지 못 해 안쓰러워하시던 모습


무거운 장바구니와 함께

팔레트, 이젤, 화구박스를 사 오셔서

저를 기쁘게 부르시던 모습


어머니

생각나는 실기대회가 있어요

날이 흐리더니 소나기가 왔어요

아이들은 서둘러 피했지요

저는 비를 맞고

그 자리에서 계속 그렸어요

물감은 젖은 종이에서

빗물을 타고 내렸죠

마감 시간에

흥건히 젖은 그림을 들고 갔어요

아이들은 제 그림과 포개지 않으려

서로들 피했죠

그날 밤 열병으로 앓아누웠고

젖은 수건 이마에 얹어 주시며

마음 아파하셨죠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어요


여러 번 대학에 떨어졌고

크나큰 실망을 드렸어요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군대 간 아들 얼굴 보려고

먼 길 좋아하는 음식을

보따리에 싸서 오셨죠

짧은 만남 뒤 위병소 앞에서

안타까워 하시던 모습

군가는 씩씩하고 용감하게 불러야 하는데

"어머님이 하신 말씀 "

이 대목에서 항상 목이 메어 부를 수 없었어요


어머니

제가 절망적일 때

누구를 찾았는지 아시나요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어머니였어요

저보다 더 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셨죠


어렵고 힘들어도

너희들 키울 때 가

제일 행복했다 하셨죠

어머니 앞에선 언제나

어린아이로 있고 싶어요


어머님께서 인도하신 길은

무엇보다 고귀한 길이라 생각해요

삶의 진실된 소중함을 느끼게 해요

어머니는 먼 곳을 보셨고

저는 눈앞을 보며 투정 부렸죠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제가 애써 작품이라며 전시를 해도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표현이나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