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of Abraham's Life -73x116.5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과 하나님과의 언약,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까지의 그의 믿음을 성경적인 상상의 풍경에 담아 화면에 표현해 보았습니다.
•오른 쪽 하단 - 기도하는 아브라함
•왼쪽 하단-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
• 화면의 중앙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하나님과의 언약 등을 표현
• 화면의 상단-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이삭의 삶의 여정과 하나님과의 축복의 언약, 그의 몸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기 까지의 그의 순종을 성경적인 상상의 풍경에 담아 화면에 표현해 보았습니다.
•왼쪽 하단- 아내 될 리브가를 광야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이삭.
• 화면 하단 - 아브라함은 돌로 단을 쌓았고 이삭은 우물을 팜. 그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빼았으면 다시 우물을 판 이삭. 그때마다 광야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화면의 중앙 오른쪽- 말씀과 고난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이삭
• 화면의 상단-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의 색(빨강)으로 빛나는 산. 이삭의 자손으로 축복할 것이다 라는 언약
등을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삶에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은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태 속에서 부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축복, 그리고 험난했던 그의 삶의 여정을 환하고 밝은 색조의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왼쪽 하단- 형인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아 젖히고 먼저 세상 나오려는 야곱
• 화면의 언덕들- 가나안의 아버지 이삭의 집을 나와 하란으로 도망가던 중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외삼촌 라반의 밑에서 많은 고생 속의 종살이 20년만에 큰 재산과 이스라엘의 각 지파의 조상이 된 12명 아들과 가족을 데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험난한 여정 등을 많은 언덕과 길로 표현함.
• 곳곳에 보이는 건물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함.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의 탄생이 십자가 형태로 묘사됨.
• 욕심 많고, 거짓되고, 야비하기까지 한 그의 됨됨이를 하나씩 고쳐나가시며 한 없는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란색으로 표현 , 오른쪽 중앙 위로 솟은 하얀 기둥은 야곱의 사다리. 왼쪽 돌기둥은 세겜에 세워진 약속의 단 . 이러한 성경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
야곱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 총리라는 영광의 자리에 까지 오릅니다. 후에 다시 만난 그의 형제들을 용서하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의 생을 닮은 요셉의 생을 성경적인 풍경에 담아보았습니다.
• 화면 하단 중앙- 영광의 자리에 앉은 요셉. 요셉의 꿈에 보인 해와 달과 별의 절함과 요셉으로 인해 구원받는 그의 부모와 형제들. 짙은 청색은 요셉의 고난.
• 중앙우측- 꿈에 나타난 살찐 7마리의 소. 그리고 이스라엘에 베풀어진 고센 땅에서의 하나님의 풍요로운 축복으로 큰 민족으로 자라는 이스라엘. 그리고 산의 뒷쪽으로 보이는 400년 뒤에 약속의 땅. 은혜와 축복과 생명의 땅. 가나안이 오렌지색으로 빛나 보입니다.
•고난과 축복과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나간 요셉의 일생을 밝고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하였습니다.
• 저의 작품에서는 빨강( 생명, 구원), 노랑(축복, 은혜), 녹색(믿음), 청색(세상의 고난), 흰색(성스러움) 등으로 정의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곱의가족이 이집트의 고센 땅에 자리 잡고 400여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민족은 200만명이 넘는 큰 민족으로 자라납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파라오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로 부립니다. 가혹한 탄압을 견디기 어려웠던 이스라엘 민족의 애끊는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사는 모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이집트로 부터 자기백성이스라엘민족을이끌어약속의땅인가나안으로향합니다. ● 위대한 믿음의 영웅인 모세의 인생여정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 니다. • 화면 왼쪽 하단에는 이집트의 10가지 재앙과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는 모세와 아론 • 화면 오른쪽 하단은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민족 • 중앙쪽으로 가면서 두 팔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아말렉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모세, 모세를 기다리다 금송아지를 만들어우상에 절하는 백성들. 돌판을 던지는 모세,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선포하는 모세,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힘든 40년간의 긴 여정은 하나님의 이스라엘백성에 대한 구원(빨강)과 선택된 민족으로의 언약(주황),끝없는 보호하심과 은혜(노랑)로 이어집니다. • 화면의 상단은 결국 모세와 이집트를 탈출한 1세대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느보산 정상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요단강 건너의 구원의 땅을 보여주시며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십니다. 파란만장 모세의 여정을 서사적으로 작품의 화면에 표현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민족은 12지파로 나누어 이방민족과의 갈등속에 400여년을 보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켜나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사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왕정을 여는 선지자였습니다. ● 그의 삶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 좌측하단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어린 사무엘의 부름에 응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 하단 중앙에는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와 법궤에 의해 무너진 바알신상의 모습입니다.
• 하단 오른 쪽에는 순종치 않는 사울왕을 꾸짖는 사무엘의 모습과,
• 하단 중앙우측부터 상단까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12지파를 미스바에 모이게 한 뒤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사를 올리는 사무엘의 모습 • 좌측 중앙에는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사무엘
• 상단 우측중앙으로 이룩되는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성
• 우측 하단부터 상단까지 평생을 나실인으로 살았던 사무엘의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총
● 사무엘의 삶은 나실인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 씌여졌음을 알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데 그의 모든 삶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초기의 가장 위대한 왕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은 이웃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넘어 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됩니다(화면 좌측 상단). 이를 시기한 사울이 그를 죽이려 하자 사울의 곁을 떠나 피신생활을 합니다. 그 힘든 중에도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주를 찬양합니다. (화면 중앙의 녹색의 광야로 표현).마침내 사울이 죽고 난 뒤에 왕에 오른 다윗은 시온성을 탈환하고 법궤를 옮겨옵니다(화면의 우측 상단). 고난의 시절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굳었던 그도 계속되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권력을 가진 왕의 지위를 가지고 죄에 빠지는 행동을 합니다.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남편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합니다(화면 우측). 이 엄청난 죄로 그의 집안에는 가족간의 살륙이 그치질 않고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기까지 이르릅니다. 비참하기까지 한 인생의 영욕을 겪은 그가 늙어 깨달은 것은 여호와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다윗은 평생을 통해 하나님을 기도로 의지하고 그의 영광을 찬양한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화면 우측 하단). ● 화면의 좌측하단에 영욕의 세월을 겪은 다윗의 여러 시절의 얼굴들을 그려 다윗의 생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리야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가장 혼돈한 시기를 보낼 때,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아합과 이세벨에 대항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선지자였습니다. 갈멜산에서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은 모두가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그를 잡으려는 이세벨을 피해 그릿시냇가에서의 생활, 호렙산에서의 하나님과의 조우 등.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평생을 바친 그는 제자 엘리사에게 외투를 건네고 불의 마차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영광스런 생을 살게 됩니다.
● 살아서 승천한 선지자 엘리야의 삶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 화면 중앙 좌측으로 이스라엘에 닥친 7년간의 가뭄. • 화면의 우측하단에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와 대결하는 엘리야선지자의 모습. 우측중앙하단에 이세벨의 살해위협으로 부터 피신하여 그릿시냇가에서 숨어 지내는 엘리야, 그에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 양식을보내심. • 그 위에 이세벨의 죽음과 이세벨의 피를 핥는 개들. • 화면좌측하단으로 사르밧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 좌측상단에호렙산에서 하나님과의 만나는 엘리야 • 화면중앙상단에 엘리사에게 외투를 떨어뜨리고 불꽃처럼 하늘로 승천하는 엘리야
● 가장 강한 능력의 선지자였지만 인간의 나약함도 지녔던 선지자 엘리야의 하나님을 경외한 삶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물위를 걷게 해 달라고 물에 뛰어 들 만큼의 격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 갈릴리어부 였던 그는 예수님을 따랐던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고 예수님의칭찬과 심한 꾸중도 들었습니다.
● 제자로서 베드로의 삶을 화폭에 담아보았습니다.
• 좌측 하단에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베드로는 큰 죄책감을 갖고 심히 통곡하였으나, 회심하여 순교할 때 까지 초기 기독교의 설립에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 중앙하단에는 오순절날 5,000명의 무리 앞에서 설교를 하고 3,000명에게 세례를 받게 한 일을 그렸고• 화면중앙으로 회당 앞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일, 죽은 다비다를 살린 일등 많은 사역을 표현하였습니다. • 우측하단으로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로마에서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피해 도망하는 길에서 베드로는 로마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는 베드로에게 네가 떠난 로마로 들어간다. 고 하십니다. 가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베드로는. • 우측중앙에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으로 그의 제자로서의 삶을 마친 베드로의 순교장면을 그렸습니다.
● 예수님의 12제자 중. 반석이라고 불리우는 베드로의 믿음의 삶을 화면에 담아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사건은 스데반의 순교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을 돌로 때려 죽이는 유대인들의 옷을 지키던 자였습니다. 그 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 위에서 강한 빛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수일 후 아나니야에게 안수를 받고 자신의 이전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이방에 전합니다(좌측중앙).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곳을 돌며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합니다(하단좌측, 중앙) . 때로는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광주리를 타고 성밖으로 도망하기도 하고(좌측상단), 광풍 유리굴라를 피해 도착한 섬에서 독사에 물리는 일도 벌어집니다. 독사에 물린 그가 죽지 않는 것을 본 원주민들은 바울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란 사실을 믿고 그가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됩니다(우측중앙). 이방전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이익을 버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던 사도바울은 결국 로마에서 참수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소아시아의 각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에게 썼던 편지들은 신약성경의 정경으로 자리잡아 우리 신앙생활에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우측하단 )
●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는 사도바울의 삶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신약성경의 나오는 광야는 유대광야를 말합니다. 가시덩쿨과 돌로 만 가득한 그 곳에서 예수님은 40일동안 금식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그 곳으로 사탄이 찾아옵니다. 허기진 예수에게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 합니다. 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절하면 온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40일의 금식으로 가장 약한 인간의 상태에 이른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이 세가지의 시험을 모두 이겨냅니다. 지친 예수님(좌측 중앙) 을 찾아 온 사탄(중앙하단). 온 세상의 권력과 높은 전망대(좌측 중앙), 사탄의 시험을 모두 이기고 공생애를 시작함으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핑크빛의 언덕과 노란색의 언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이 사이의 길과 평지를 생명과 숸릐 상징인 붉은 색으로, 성도의 믿음을 녹색으로, 예수님의 삶의 여정을 닮아가려는 성도의 소망을 흰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을 갈릴리지역에서 사역하였습니다. 베드로 등의 제자들을 만난 것도 갈릴리 바닷가였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여 주신 것도 갈릴리가 보이는 벳세다의 빈 들에서 였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 갈릴리바다의 물위를 걸어 반대편으로 가신 예수님을 따라와서 만나와 같은 양식을 내리는 능력을 보여 달라는 무리들에게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말씀하신 가버나움도 갈릴리 바닷가의 도시였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눈 먼 소경의 눈을 밝게 하신 일, 귀신을 쫓으신 일, 나병환자를 고치신 일,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쳐 주신 일,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난 곳도 갈릴리 바닷가였습니다. 그 만큼 갈릴리바다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 갈릴리바다를 성경적인 풍경을 중심으로, 말씀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행적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청색의 바다는 예수님을 그릇되게 이해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녹색의 바다는 예수님에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하늘로 부터 쏟아지는 노란색의 빛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점점히 퍼져 나가는 빨간색의 형태들은 생명의 구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복음의 말씀들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닷가의 도시로 당시에 로마의 새로운 문물이 많이 들어온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타락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가버나움에서 행한 많은 이적 가운데에서도 회심치 않는 사람들을 보고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 끝까지 높아지려느냐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치유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사역에도 회개치 않고 화려함과 향락을 가득 찬 가버나움... 그러나 예수님은 타락한 그들을 향해 치유와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십니다. 마치 거센 향락의 풍파 속에 외롭게 떠있는 구원의 작은 빨간 배 한 척 처럼....
예수님의 가버나움에서의 행적을 성경적인 상상을 담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베다니마을은 잘익은 무화과의 동네란 뜻으로 감람산 동쪽의 산기슭에 있는 마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등장하는 베다니마을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이 많이 일어난 곳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 사는 나사로와 친구관계 였는 데 나사로가 병으로 죽었을 때 그에게 가시면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화면 중앙). 그리고 이미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중앙 우측) 놀라운 이적을 행하십니다. 나사로의 집에 초대받아 가셨을 때는 편히 쉬시며 마리아에게 성경 말씀을 해주시기도 합니다(중앙 가운데). 또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로 부터 향유옥합의 기름부음의 영광을 받으십니다(중앙 좌측). 베다니마을은 예수님의 사역기간 중 육신이 피곤하실 때, 비교적 편하게 쉬시고 안식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영광과 안식이 있었던 베다니 마을을 청색과 노랑, 빨강, 녹색등의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평온한 기쁨이 가득 찬 마을로 묘사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던 장소이기도 하고, 예수님 부활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가 모여 기도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무리에게 성령의 불꽃이 임하셨던 최초의 교회공동체로서의 장소로도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들은 성경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마가의 다락방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펼쳐진 곳이며 성령께서 역사하신 곳이라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멀리 감람산이 보이는 곳인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오순절 성령을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과 주변의 풍경인 산과 언덕, 들판 등을 담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보호하심 속에(노란색의 들판) 세상의 박해와 고난을 이기고(검푸른 색의 산과 언덕) 작은 믿음의 싹을 키워나가는 (녹색의 조각들)성도들의 모습을 밝은 색채로 표현하여 마가의 다락방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편119편 105절의 말씀을 모티브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이 작품 역시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제목을 명명하였습니다. 시편119편의 저자는 미상이기는 하지만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485년경 바벨론의 포로시대를 마치고 이스라엘로 돌아오던 중에 학사 에스라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시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기 위해 먼 길을 헤쳐 하나님의 약속하신 거룩한 땅으로 가는 그들의 발길은 어떤 험한 길도 장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에스라에게는 새로이 세워지는 나라를 하나님의 율법으로 굳게 할 사명도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는 믿음으로 그들 모두는 그 길고, 험한 여정을 견디어 냈을 것입니다. 작품의 하단에 군청색과 파란색으로, 여정의 험난함을 표현하고, 이를 견디어 끝내 새 이스라엘을 세우는 이스라엘민족의 굳은 믿음을 녹색과 연두색으로, 점점이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노란색의 길로, 그리고, 약속의땅. 소망의 땅이 흰회색으로 그려져 이들의 앞에 희망으로, 설레임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에스라와 귀환하는 이스라엘백성의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믿음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땅을 지나시다 수가라하는 곳에 이르러, 피곤하셔서 야곱의 우물가에 쉬셨습니다. 제자들은 마을로 양식을 사러 가고, 쉬고 계시는 예수님께로 물을 길러 한 사마리아여인이 옵니다. 목이 마르신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에게 유대인이 어찌 이방여인에게 물을 달라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주는 물은 다시 목이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에게 자기에게도 그 영생의 물을 달라고 합니다.
● 피곤하셔서 우물가 돌에 비스듬히 걸터 앉아계신 예수님과 영생의 물을 달라고 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대비하여 전체의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들고 계신 육신의 물(파랑)과 예수님의 복음으로 영생의 물(노랑)로 변한 우물 안의 물을 대비하여 표현하였고, 여인이 앉아있는 땅은 믿음(녹색)의 공간으로, 화면의 가운데로 펼쳐진 사마리아 땅은 생명(빨강)의 공간으로, 하늘은 하나님의 은혜(노랑)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자들과 수가성의 사람들의 무리들은 화면의 위쪽에서 자리하며 예수님의 구원의 말씀을 감사하며경건하게 듣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1~36]의 말씀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으시고 비통한 심정을 안고 황량한 벌판인 벳세다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거친 광야로 몰려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어느듯 해가 질 때가 되어 저녁식사를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식사를 주라라고 하십니다. 이백데나리온이 있어야 한다는 빌립의 말에 양식을 가진 것이 있으면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한 어린아이가 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축사하시고 5,000명의 무리에게 나누어 먹이십니다. 장정만 5,000명이나 되는 그 많은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음식이 12바구니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오병이어의 이적을 중심으로 작업을 전개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그림의 주제이다 보니 인물의 표현에 더욱 중점을 두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인물 표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은 모두 직선으로 표현하고, 눈동자도 직선으로, 옷자락도 직선으로, 인체의 다른 부분도 직선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풍경을 이루는 화면을 선과 색채로 나누어 표현했듯이 인체도 선으로 나누어 표현함으로 직선이라는 일관된 작품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벳세다의 빈 들에서 행하신오병이어의 이적을 새로운 경향의 작품에 담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야이로 회당장의 병든 딸을 고쳐주시러 길을 떠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도 그 길에 함께 합니다. 12년 동안 혈우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이 길 중도에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습니다. 능력이 갑짜기 빠져나감을 느끼신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혈우병 여인이 두려움에 떨며 말합니다. 주여! 내가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내 병이 날 줄 알고 그리하였나이다. 이 여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이 병 고치는 데 다 소진하고 이제는 절망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소망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매달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몹쓸 병을 꼭 고쳐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께 다가가 병을 고쳐달라고 청하는 것은, 병들어 약한 여인의 몸으로 힘에 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한 믿음을 갖고 힘을 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습니다. 그 몸에서 병의 근원이 빠져 나가는 큰 치유의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하신 말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혈우병 여인의 절박한 믿음과 예수님의 온유하신 큰 사랑을 화면에 담아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겪어왔던 큰 고통의 세월을 암청색의 바위로, 아픈 몸과 비통한 마음을 청회색의 옷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녹색의 들과 하늘로, 빨간색으로 표현된 구원의 자리에 꿇어 앉아 간절함으로 구원을 바라는 여인, 노란 은혜의 길 위에 무리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누가복음 8:40-48]의 말씀을 작품에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율법학자들이 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려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과 용서의 가르침을 대중 앞에서 번복케 하여 믿음성이 없는 존재로 인식케 하려는 음모였습니다. 이 여인은 계율을 어기고 간음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 간음한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 계율대로 돌을 던져 처형하라고 하면, 당신의 사랑과 자비는 어디로 갔소 라고 반박할 것이고, 용서하라고 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로다 하고 비난할 작정이었습니다. 의기양양해서 온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바닥에 글을 쓰시다 일어나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은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물러갑니다. 주님께서는 영인에게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하시며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무심한 듯 서 계신 예수님의 옷자락에서 직선 하나가 내려와 여인의 왼쪽 팔을 지탱해 줍니다. 여인의 머리카락은 아래로 흘러 예수님의 발을 덮어 이미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에 감사를 드리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꿇어 앉아 공포와 죄책감에 떨고 있는 간음한 여인과 자신의 죄를 생각해 보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으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예수님과 여인이 있는 공간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새로운 구원의 생명이 충만한 밝은 공간으로, 여인의 의상과 화면윗쪽의 들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의 공간으로 채웠습니다. 율법학자들의 공간은 불확실하고 약간은 부정적인 공간으로 표현하여 화면에 서로 대비되는 긴장을 두었습니다. 화면을 계속해서 직선으로 분할하여 공간을 나누고, 형상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통해 신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의 하나인 요한복음 8:1-11의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다니마을 인근에 살고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갑니다. 그 곳에 한 여인이 옵니다. 죄많은 여인이라고도 하며,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라고도 합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라고도 합니다. 그 여인이 값비싼 나드향유가 가득 들어있는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더러워진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드립니다. 쓸데없는 낭비라며 힐난하는 제자를 만류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일을 기억하리라 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머리카락을 내려 예수님의 더러워진 발을 씻는 여인, 영광 받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발 아래로 흐르는 향유. 누워있는 향유병, 이런 상황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제자들이 자리 하고 있는 공간은 사랑과 생명과 구원으로 가득 찬 곳이며, 그 윗쪽으로 벋어나간 믿음의 공간, 그리고 하늘을 가득 채운 하나님의 은혜로 화면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하였습니다. 군상을 선으로 묶어, 굳고 단단한 구성적 안정감을 주었고 색채의 대비를 통해 전체의 화면을 밝고 빛나게 처리하였습니다. [ 마가복음 14:3~9 ] 의 말씀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유월절 전 날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에 의해 잡혀가십니다. 제사장 앞에, 헤롯 앞에,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갖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형장인 골고다언덕으로 걸어 가십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곳 까지의 길을 수난의 길(Via Dolorosa)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려 기도하셨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시고 육신의 처절한 수치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고통의 상황을 그림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화면의 하단으로 연결되는 고난의 상징들이 언덕으로 표현되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은 사각형의 작은 공간으로 하나씩 연결되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그의 사랑에는 구원의 생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무겁고 슬픔에 찬 상황이지만 오히려 밝고 환하게 표현된 것은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한 구원의 빛이 인류에게 주어진 그 기쁨의 숨겨진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자신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십니다. 그의 몸은 채찍으로 찢어져 피로 물들고 힘은 다해 쓰러지기를 반복하십니다. 결국 구레네사람 시몬의 도움으로 골고다언덕에 이르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십니다. 안식일 전 날 구시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크게 말씀하시고 숨지십니다.
● 예수님의 그 처참한 십자가 책형을 화면에 표현하여 보았습니다. 골고다에서손과발에못박히시면서십자가에 달려 세워지는 예수님의 고통에 찬 모습을 순차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화면에 표현.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손과 발에 큰 못으로 십자가에 박아 매달리실 때 그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육신의 몸으로 어떻게 견디셨을까? 왼쪽 하단에는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에 절규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예수님 곁을 떠난 제자들의 무리는 숨어서 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환한 대낮이었지만 해가 빛을 잃은 듯한 음산한 분위기의색조로화면을구성하여슬픔과고통이배어 나오게 표현했습니다.
[누가복음 23:26~49]의 말씀을 화폭에 담아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두 7점을 연작형식으로 작업하였습니다. 그 중 1점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불꽃같이 내리셨다고 성경은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제자들을 중심을 예수님께서 명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나를 증언하라 하신 말씀을 전파합니다. 다메색으로 가다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과 함께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나라 곳곳에 예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믿음의 공동체(초대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초대교회를 중심을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불같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멀리 로마에 이르까지.세상의 박해속에서 고통 받는 초대교회의 제자들의 모습과 구원의 약속이 점점 세상을 덮어, 세상이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 찬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곁에 두 명의 사형수도 같이 매달립니다. 그 중 한 명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를 이 자리에서 구원해 보아라. 그러자 오른 편에 있던 죄인이 그를 꾸짖으며, 랍비여! 오늘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자신의 죄된 삶을 회개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말씀하시며 그를 구원해 주십니다. 비 정상적으로 긴 예수님의 오른 팔이 회개하는 죄인의 손을 잡아 올려 구원하는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화면 하단에 예수님의 처형을 슬퍼하며 기도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화면 중앙 예수님쪽으로 마리아란 이름의 세 여인이 처형 당하는 예수님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을, 멀리 회개치 아니한 또 한 명의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사람의 비참한 모습을 화면에 그려 넣었습니다. [ 누가복음 23:39~43 ]의 말씀을 쇠락해 가는 예루살렘성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 후의 복음이 전파된 온 세상의 모습을 밝은 화면속에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식탁에 앉으신 후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이는 내 몸이라. 나를 기념하라. 또 잔을 들어 축사하시고 이는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으로 나를 팔 자가 있으리라 예고 하십니다. 누구오니까 묻는 제자에게 나와 함께 떡바구니에 손을 담근 자니라 하고 가롯유다가 배반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에 제자들이 삼삼오오 수근대며 불안해 하며, 당황한 모습들을 보입니다. 공관복음에 기술된 마지막 만찬을 화면에 담아 보았습니다. 두 달 정도 작업한 대작이기도 합니다. 화면 중앙에 잔을 들고 축사하시는 예수님의 뒷 모습을 배치하였고 삼각형 모양의 식탁을 둘러싸고 제자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예수님과 떡바구니에 손을 넣고 있는 가롯유다. 모든 제자들은 오른 손에 잔을 들고 있는 데, 가롯유다만이 왼손에 잔을 들어 예수님을 배반 할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열 한제자의 옷주름에는 십자가 형태의 선이 그려져 주님의 말씀에 생명을 다해 충성할 것을 표현하였으나, 가롯유다에게는 십자가 형태의 주름이 없어 그가 구원받지 못할 영혼임을 표현하였습니다. 삼각형의 구도로 식탁을 중심으로 자리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좌우 대칭적으로 자리했으며, 직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체의 아름다운 형태와 다양한 표정, 동작을 그려 넣었으며, 노랑과, 빨강, 하양, 청색, 녹색, 진노랑 등을 통하여 화면에서 색채의 조화와 의미를 적절하게 고려하여 화면을 구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모습으로 변모하셨던 산은 나사렛동네의 언덕에서 보이는 곳이 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그 곳에 이른 예수님께 홀연히 광채로 둘러 싸이며 영광에 찬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그 곁을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하며, 하늘에서 말씀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 이 엄청나고 놀라운 광경에 제자들은, '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겠나이다' 하는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변화산의 영광을 화폭에 담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왜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께 보내셨을까?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말을 했을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광스러움으로 초대하신 뜻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지고 산 위에 세 분이 말씀을 나누십니다. 변화산은 성스러운 붉은 빛의 광채를 띠고 주변을 존귀한 연보라빛 하늘이 감싸고 있습니다. 성스러움으로 가득 찬 광경을 보는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과 놀라움으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누가복음 9:28~36 ]의 말씀을 내용으로 하여 성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영광에 찬 모습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직선으로 표현되는 인체의 모습, 면으로 구분되어 표현되는 기하학적인 산과 들 하늘, 조화되어 구성되는 화면을 채우는 색깔 등의 요소들로 새로운 작품의 문을 엽니다. 그림을 좀 더 관람하기 쉽게 직접적인 내용을 담아, 보는 사람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 갈 수 있도록 하여, 더욱 강한 메세지를 받을 수 있게 작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0세가 되시던 해에 요단강가에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세례요한 한테 나아가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공생애의 3년동안의 기간 중 처음 하신 일이셨습 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짐을 지고 가 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고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고, 또 증언하기를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그의 위 에 머물렀다라고 요한복음 1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는 이 때 하늘 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요단강 물 속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머리위로 성령이 비둘기같 이 환한 빛을 내며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세례요한은 그 모든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듯 팔로 몸을 감싸 안고 예수님의 뒤쪽에 서있습니다. 요단강 가의 많 은 무리들이 그 광경에 놀라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앞 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고난을 생각하며 경건한 모습으로 아버지께 기도를 올리고 있습 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이적을 보이신 일은 가나라는 지역에 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하여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적이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가나지역의 한 결혼식장에 가셨습니다. 마침 그 잔치집에 준비한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를 만들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도 마당에 놓여진 6개의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시고 이를 좋은 포도주로 바꾸어 주십니다. 화면의 중앙에 놓인 6개의 물동이에 물을 길어다 채우는 시동들과 화면의 중앙에는 예수님께 부탁하시는 성모마리아님, 그리고 손을 벋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키는 물동이부터 물이 포도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인물의 뒤쪽배경으로 예수님의 사랑(빨강), 하나님의 은총(노랑), 그리고우리들의믿음(녹색)의공간이자리잡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의 말씀을 작품으로 표현하여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인 나사로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고 나사로에게 가십니다.
길을 가시는 동안 나사로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나사로의 집에 동생인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슬픔을 위로하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지 사흘이나 지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비통해 하시며, 그 무덤을 가린 돌문을 열라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기도 하신 후, 큰 소리로 죽은 나사로를 향해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 말씀과 함께 무덤에서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 걸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화면의 오른쪽에 나사로를 부르는 예수님의 모습과, 왼쪽에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나사로, 화면의 아래쪽으로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 뒤로 이 모든 광경에 놀라워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작게 그려 넣었습니다. 사망의 무덤은 짙은 청색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는 노란색으로, 주변은 온통 예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의 공간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채워져 있고 하늘은 새 생명의 붉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경의에 찬 영광된 순간을 신학적인 의미의 공간에 담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자신의 딸이 ‘위중한 병에 걸려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구원하여 주소서’하는 청을 들으시고, 그와 함께 가십니다. 그러나 길을 가시는 도중에 이미 그 딸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하는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고 말씀 하시며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여 우는 사람들을 보시고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고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 쿰!’하시니 소녀가 일어나 걸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의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이적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화면 중앙 오른쪽으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난 소녀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계시며, 다시 살아난 소녀는 예수님께 손을 맡긴 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화면의 아래쪽으로 이 놀라운 광경에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야이로 회당장과, 딸이 살아난 기적이 너무 놀랍고 기뻐 살아난 딸을 끌어 안으려는 회당장의 아내, 그리고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본 제자들의 경의에 찬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야이로 회당장의 굳은 믿음이 죽은 딸을 소생케 하는 놀라운 기적으로 이어진 성경의 말씀을 작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 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예수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이 나음을 받았음을 보고 그 중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하니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외는 다른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의 말씀을 그려 보았습니다.
화면의 중앙에 나음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드리며 있고 아홉의 행방을 묻는 예수님의 모습이 화면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화면의 왼쪽으로 나음을 받은 아홉 명의 나병 환자들이 기뻐하며 환호하고 뛰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곳은 예수님과는 점점 멀어지는 곳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주님께 감사하며 있는 자리인가요?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자리인가요?
나음을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무리를 보시고 산으로 오르시어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입을 열어 하늘나라의 복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에 대한 하늘나라의 복에 대해 말씀하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이야기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소금이라, 율법과 복음의 관계, 십계명에 대한 심층적인 말씀, 또한 하늘나라에 대한 비밀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고 권위있음에 놀라워 합니다. 마태복음 5장,6장,7장의 말씀, 산상수훈의 장면을 작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하고 계신 곳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고 말씀을 듣는 무리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널리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무리들과 제자들은 놀라운 말씀에 예수님을 경외하며 그 권위에 믿음과 기도,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산위에서 들려주신 생명의 말씀은 따르는 무리들과 제자들을 통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 나가, 이 세상을 주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가득 채울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의 빈 들에서 말씀을 전하시고는 산에 기도하러 오르시며 제자들에게는 갈릴리바다 건너편의 가버나움으로 가라 하십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 중간 쯤 이르렀을 때, 저 멀리에서 어두운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제자들이 모두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할 때 베드로가 용감하게 나서서 ‘주여 나도 물 위를 걷게 하소서’라고 청합니다. ‘오라’ 하시는 말씀에 바다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던, 베드로에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몸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 밀어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원하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다는 풍랑이 일어 사납게 일렁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흔들리는 뱃머리를 잡고 일어난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베드로의 손이 구원의 힘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검푸른 파도는 세상의 모든 고난을 상징하고 그 고난을 이기고 세워진 교회의 상징인 십자가가 반석처럼 보이는 파도 안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사망의 세상에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에게 위험과 고난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제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마태복음 14장의 말씀을 그려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 가십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안 뜰에서는 당시에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관리 아래 많은 상인들이 성전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파는 행위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환전해 주는 사람들, 비둘기를 사고 파는 사람들, 어린 양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 등 성전 안은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과 거룩함으로 기도드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제사장들의 이익을 위해 시장으로 변모하게 된 것에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화면의 중앙에는 분노하시는 예수님께서 손에 채찍을 들고 성전을 장터로 만든 상인들을 쫓아 내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그 와중에서도 환전통과 돈이 든 광주리는 감싸고 있습니다. 넘어진 상과 의자들, 떨어져 흩어진 물건들이 널부러져 주님의 분노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화면의 뒤쪽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둥과 지붕이 위엄과 영광을 드러낸 채 보이고 있습니다. 성전 안 뜰 한쪽 구석에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여인의 모습도 표현되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란 말씀을 더욱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제자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일과 살아나셨다고 들리는 이상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너희가 주고 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물으십니다. 두 사람은 길을 멈추고, 슬픈 빛을 띠며 예수님께 예루살렘에서 지난 사흘간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의 글과 자신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들을 이야기 해주십니다. 그들이 엠마오에 도착하여 예수님과 함께 식사할 때에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는 것을 보고 그가 예수님인 줄 알고, 발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갑니다. 성경에서 가장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를 그려보았습니다. 슬픈 표정을 띠고 걷는 두 제자의 사이에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제자들의 절망적인 앞 길을 만류하며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전파할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자애로움과 진실된 표정을 담아 표현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은총으로 가득 차 있고 제자들의 믿음의 들판은 예루살렘성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쪽으로 제자들이 잠시 가졌던 절망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두워지는 하늘은 오히려 복음의 말씀,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여, 제 발은 씻지 못합니다.’라고 거부하니 예수님께서‘내가 너를씻어주지못하면너는나와상관이 없느니라’ 말씀하시고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시고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내가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화면의 중앙 하단 왼쪽으로 베드로의 발을 씻는 예수님과 오른쪽에 예수님의 손길을 극구 만류하는 베드로의 모습, 은혜의 식탁을 중앙에 두고 예수님의 행동에 영문을 몰라하는 제자들의 수근거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식탁에는 만찬에 쓰여진 포도주 잔과 빵 등이 놓여져 있고, 화면의 아래쪽에 물병과 물이 담긴 대야가 놓여져 있습니다. 화면의 위에는 생명의 말씀이 화면의 아래쪽은 주님에 대한 굳은 믿음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