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경
남유경
지하철은 언젠가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게 된다. 문이 열리면 새로운 공간의 냄새와 공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지하철의 이런 모습이 인생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시간과 공간이 흘러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그 모습 말이다. 그림 속에서 지하철 밖은 바다이다. 바닷 속의 많은 종류의 물고기와 생물들, 먹이사슬, 또 바다가 주는 웅장함이 우리가 사는 사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바닷 속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곧 우리가 성인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면서 사회라는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며 그 속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표현하였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올 때 두렵겠지만 지하철에 있는 동안에 바다를 맞을 준비를 하며 꿈을 키우길 원한다. 그 후 바다에 나가서는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길 소망한다.
고래 물고기 바다 지하철 산호 저번 여름에 바다에 갔을 때는 돌을 밟고 미끄러져 종아리에 상처가 생겼다. 인간에게 산호는 예쁜 장애물일 뿐이지만 물고기에게는 포식자에게서 지켜주는 방패막일 것이다. 사람은 지하철이 큰 물에 잠기면 숨이 막혀 죽겠지만 물고기로 변한 유경이는 노을지는 하굣길의 붐비는 지하철에서 벗어나 숨막혀 꼬르륵 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 큰 물로 나가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먼저 글을 시작하기 전에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작은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고 우연한 기회가 생겨 여러분이 볼 이 자리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 일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제 고객과의 평범한 상담기록입니다만, 꽤나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20xx년 xx월 xx일
오늘은 H양과의 상담이 잡혀있다. H양은 다른 고객들과는 다르게 주로 시간보다 일찍 오기에 나도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오늘의 H양의 기분은 매우 들떠 보인다. 이유를 들어보니 매우 즐거운 꿈을 꾸었다는 것이었다. H양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하다.
“어제 잠을 잤는데 제 친구인 Y가 나왔어요! 요새 Y가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는데 꿈에 나온 Y는 몇 년 전처럼 밝더라고요. 그래서 지켜보았는데 아무래도 꿈이니깐 전부 뒤죽박죽이었는데 Y는 그렇지 않고 그렇게나 뒤죽박죽인 꿈들 사이를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치 Y가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Y가 하교를 하는데 가끔 지하철로 다니나 보더라고요? 지하철에 앉아있고 저는 걔한테로 가서 앞에 서 있으려고 했어요. 지하철은 사람이 많아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제가 지하철을 자주 타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 한참을 쉬지 않고 말하던 H양은 숨을 고르더니 저도 말이 많았던 것을 알았던지 조금 겸연쩍어 하더니 이어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Y앞에 서 있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지하철이 거대한 그림자로 뒤덮이며 하늘이 시커매지기에 위를 봤더니 고래가 나는 거에요! 아냐, 정확히 말하자면 지하철이 물로 잠겼어요. 아냐 이것도 아니라 갑자기 지하철이 바다에 잠긴 거죠. 놀라며 뭍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강구하려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창틀이 들썩거리더니 유리가 지하철의 그 튼튼한 창문이 깨지며 물이 들어차는 게 아니겠어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어요. 소화기를 인공호흡기로 쓰려다가 분말을 들이마시고 콜록거리는 아저씨와 창문으로 나가려다가 고래에게 잡혀간 중학생 아이, 그러다가 점점 물이 차니 오히려 완전히 조용해져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저도 점점 숨이 막혀 왔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서 완전한 사람이면서도 완전히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걸으며 헤엄치는 Y가 보였어요! 그 Y의 표정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어요. 완전히 행복에 가득 찬 사람의 표정. 그렇게 행복한 Y는 처음 봤어요. Y는 바다에서 고래와 물고기와 빛나는 산호로 만든 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어요.”
그러면서 H양은 오히려 자신이 춤을 춘 것인 양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H양에게
“그래서 H양은 그 꿈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라고 물었고, H양은 꿈 이야기를 할 때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전부 잊어버린 듯 횡설수설하며
“그냥 그런 Y의 웃는 표정이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오랜만에 꿈을 꾼 것이 기억에 남았던 것일까요? 어 그게 그러니깐, 별로 아무 의미 없었던 것 같아요. 괜히 시간을 빼앗았네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하고는 두려운 듯 비굴한 웃음을 띠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다음의 상담시간에 만나면 H양의 말끝을 흐리는 습관을 교정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해보아야겠다.
-상담사 나박의 일기 중 일부
-김하영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