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존 (@_O3ZONE)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는 봄의 초입.
"하나, 둘, 셋! 둘, 둘, 셋!"
따스한 낮볕이 쏟아지는 무도회장의 한가운데, 백사장에 치는 파도와 같은 은청색의 드레스가 일정한 리듬을 따라 우아하게 물결쳤다.
탁—.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얇고 가느다란 구두 굽이 바닥과 맞붙으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왈츠의 마지막 동작인 몸을 기울인 채 손을 뻗는 피니시를 취하던 잠뜰은 무도 선생님의 신호가 닿은 후에야, 서서히 동작을 거둬들였다.
“아주 잘하셨어요! 매끄럽게 도는 턴 하며, 밟는 스텝 하며 모든 게 완벽하네요.”
“감사합니다.”
여유롭고 고아한 태도로 잠뜰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18세.
모든 명문가의 아가씨들은 18살이 되는 해, 다같이 모여 데뷔탕트를 치른다.
장소는 대게 가장 격이 높은 가문의 저택에서 진행되며, 데뷔탕트를 개최하기로 한 가문의 아가씨는 모두의 관심 속에서 첫 왈츠를 추어야 했다.
그리고 대망의 18세가 되는 올해.
이번 해의 데뷔탕트는 빡가에서 개최되기로 결정되었다. 신분제가 서서히 사라지고 부유함만이 부각되는 세계에서 이와 같은 결정은 어쩌면 당연했다. 빡가는 사교계에 진입한 상업 가문 중 가장 성공한 가문이었으니까.
따라서 잠뜰은 올해 데뷔탕트에서 첫 춤을 추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교계에 나아갈 아가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잠뜰의 부모님은 성공적인 사교계 데뷔를 위해 그녀의 무도 특훈에 들어갔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다던 선생을 섭외하고, 몇 달 내내 저택에 가두다시피하며 왈츠 연습만 시킨 것이 그 반증이었다.
“아후, 힘들어.”
수업이 끝난 후 무도 선생님이 거대한 무도회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잠뜰은 지금까지의 체통을 모두 내다버린 채 회장 중간에 털썩 드러누웠다.
몇 달 동안 쿵짝짝 쿵짝짝거리는 왈츠 반주만 듣고 있자니, 정말이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화려한 변주도 없는 단조로운 곡조는 지루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라더 집사랑 덕개 아저씨는 오늘 어디 갔다던데······.
눈 속에 파묻힌 듯이 팔다리를 위아래로 마구 휘저으며 사색하던 그녀는 시선을 올려 고요한 홀 위에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를 응시했다.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에 달린 커다란 나무와 덩굴이 엉킨 듯한 형상의 유리 몸체 위로, 환한 불빛이 유리 끝을 오밀조밀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을 망연히 응시하던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저기,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눈부시게 내리꽂히는 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시야의 선명도를 높인 잠뜰은 이내 그것이 보라색의 작은 빛덩이임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그때였다.
쿠르릉—.
작은 보라색 빛덩이가 거칠게 꿈틀하더니 점차 부피를 늘려갔다. 뒤이어 거대한 태풍처럼 부풀며 주위의 빛을 하나둘 잡아먹기 시작했다.
무도회장이 어둠에 휩싸인 건 거의 순식간이었다. 잠뜰은 무어라 조치하지도 못한 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짙게 깔린 암흑 속에서, 30번째 정도 가만히 눈을 깜빡인 그때였다.
“으아악!”
누군가의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천지가 강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사그라들었던 빛이 환하게 뿜어져나오며 깜깜했던 어둠이 빠르게 밀려나갔다.
깜빡깜빡 명멸하는 시야 위로, 누군가의 인영이 툭툭 떨어져내렸다. 잠뜰은 한순간 동그래진 눈으로 그 인영을 유심히 주시했다.
“······공룡?”
쩡공룡. 마법 명문가 쩡가의 도련님이자, 그녀의 소꿉친구.
근데 왜 쟤가 저기 있지?
의문을 떠올리기도 찰나,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희미한 산들바람처럼 멀리서 휘몰아치던 비명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며 점처럼 작았던 인영이 빠르게 커져갔다.
“야아아아!”
쿵!
시끄럽게 이어지던 공룡의 비명이 뚝 멎었다.
뒤늦게 정신이 든 잠뜰은 황급히 거친 먼지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야, 야 공룡! 괜찮냐?!”
고요한 정적이 떠돌았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회색빛 먼지를 뚫고 잠뜰은 그에게로 빠르게 다가섰다.
“아후 죽는 줄 알았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떨어진 높이에 비하면 싱거운 말을 중얼거리는 공룡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해 보였다. 그녀는 그것이 매우 의아했지만, 궁금증은 주위에 나풀거리는 마법을 통해 단번에 해소되었다.
덩굴의 모습을 한 마력이 그를 떠받치며 완충 효과를 내주고 있었다. 그물망처럼 이리저리 얽힌 덩굴들이 환한 초록빛을 내뿜었다.
잠뜰은 그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위를 휩싸고 있던 먼지가 서서히 걷혀나가기 전까지는.
서서히 걷혀가는 시꺼먼 안개 속에서 그를 받치던 덩굴 마법이 무도회장을 박살낸 것을 발견한 잠뜰은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뜨끈하게 감도는 혈압을 느끼며 말을 짓씹듯 크게 내뱉었다.
“아니, 대체 이게 뭔 일이야, 갑자기 왜 천장에서 떨어진 건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시원하게 공기를 찢으며 쭉 뻗어나갔다. 거대한 신의 분노처럼 노기 어린 목소리가 공간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그 천재지변 같은 울림을 느끼며, 공룡은 옅어져가는 먼지 속에서 과오를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공간 이동을 연습했을 뿐이었다. 아직은 많이 미숙했기에 거의 기계마냥 마력을 남발하며 연습실 곳곳을 누볐다.
문제는 문득 떠오른 잠뜰의 행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역으로 대성한 명문가 빡가의 아가씨, 잠뜰.
공룡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던 그녀는 항상 진보적이고 당돌한 면모가 있었다. 사교계에 참여할 정도로 지체 높은 신분이었지만, 부모님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던 것이 영향인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공룡이 그때까지 경험했던 고지식하고 따분한 명문가의 자제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기에, 잠뜰은 그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느낌을 주는 존재였다.
그렇게 장난감 쟁탈전, 사교회, 열기구, 놀이공원, 연말 파티, 심지어는 감옥 잠입까지······.
온갖 사건을 같이 겪고 헤쳐나가며 서로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된 둘은 한 몸이 된 것처럼 옆에 딱 붙어다니며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데뷔탕트 개최지가 빡가로 낙점되기 전까지는.
본래부터 후계자 수업을 비롯한 수많은 과제물에 치여 저택 안에 상주하듯이 살던 잠뜰이었지만, 그 소식이 공공연하게 퍼진 이후로부터는 외부 활동을 완전히 끊었다.
어떻게든 소식을 캐내던 공룡조차 학을 뗄 정도였으니, 빡가 가주 부부가 얼마나 보안에 치밀했는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물며 마력도 통하지 않았다. 수현 가정교사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면서 사용했던 은신 마법도 먹히지 않았다. 빡가의 저택에 진입하자마자 풀려버린 은신으로 인해 머리를 꿰뚫을 뻔 했던 덕개 경호원의 총알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했다.
훗날 들었지만, 그건 빡가의 가주가 쩡가의 가주, 공룡의 아버지에게 요청한 사항이라고 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술식을 만들어 달라했다고. 딱 봐도 공룡을 겨냥한 접근 금지 선언이었다.
그래서 공룡 또한 완전히 손을 뗐다. 괜히 쩡가와 빡가 사이에 분란을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분란을 만들어버리다니.
덩굴이 내리꽂힌 자리에서부터 뾰족한 모양으로 번져나간 균열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꽉 내리감았다.
단순히 공간 이동 연습했던 것 뿐인데, 내가 이럴 줄 알았겠냐고!
공룡이 지금 배우고 있는 공간 이동은 불규칙한 이동이 아닌, 특정 공간으로의 이동이었다.
단순한 불규칙한 이동보다 곱절 그 이상으로 복잡한 술식이기에,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모토를 지닌 수현 가정교사의 지시 하에 범위를 연습실로 제한하며 공간 이동 마법을 남발했다.
그러던 와중 문득 딴 생각을 하다 빡가의 저택 생각을 했고, 이내 해맑음 내지 가혹한 성정을 지닌 마법은 주인의 의견을 충실하게 반응하여 빡가의 저택으로 단숨에 옮겨주었다.
예전의 공룡이었다면 마법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공간 이동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공룡의 마력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졌고, 아버지의 낡아빠진 술식 따위는 가볍게 깨부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덩굴 마법을 쓴 것은······ 쩡가의 외동아들이자 거의 유일하게 남은 마법 가문 후계자의 목숨에 관한 일이니 어느정도는 정상참작을 해주어야 했다.
사실 경량 마법을 쓰면 됐지만, 밀려오는 하강감에 혼란해진 의식은 그런 합리적인 사고를 할 위인이 못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던 덩굴 마법이 빛을 발했던 것이고.
그렇지만 아주 미친 짓이었다. 데뷔탕트의 시일이 거의 다가온 지금, 그 파티가 개최될 빡가의 무도회장을 박살내다니.
수현 가정교사의 정제되고 공격적인 꾸짖음을 상상한 공룡은 진절머리를 쳤다. 공포의 주둥아리가 내뱉는, 귓가에 제대로 내리꽂히는 어조는 논리가 탄탄하기 그지 없었고 아주 합당한 이유만을 들어 급소를 찔러 왔으니까.
그리고 생생하게 그 고통을 떠올린 그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훗날을 두려워 한 뇌가 불협화음을 낸 결과였다.
바로, 무도회장 박살보다 더욱 큰 사고를 치는 것.
“이게 무슨······!”
빡가의 외동딸, 잠뜰의 납치였다.
*
“아니,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졸지에 드넓은 들판에 달랑 놓이게 된 잠뜰이 실소하며 소리쳤다.
그제서야 번쩍 정신이 든 그는 망연히 눈을 깜빡였다. 뒤이어 급작스레 튀어나온 듯한 어조와 몸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벼, 별!”
“······뭐?”
“별 보고 싶다면서!”
별 보러 가는 거. 그게 지금 내 소원이야.
예전에 들었던 그녀의 말을 인용한, 정말 말도 안되는 변명이었다. 하필 한다는 변명도 이딴 것이라니.
나는 이제 진짜 죽었구나······.
공룡은 자조적으로 속으로 웃으며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곧 이어질 잠뜰의 타박을 기다리면서.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고요한 지척에, 공룡은 슬그머니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그러자, 까맣게 물든 밤의 풍경 사이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잠뜰의 모습이 시야 위로 덧씌워졌다.
“······예쁘네.”
감각을 빼곡히 채우던 적막감이 조그마한 말조각으로 단번에 흐트러졌다.
그런 그녀를 잠시간 놀란 얼굴로 바라보던 공룡은, 시선을 천천히 올려붙여 위를 쳐다보았다.
새까맣게 물든 팔레트 위로 흰 붓을 털어낸 듯한 세세하고 반짝이는 하얀 별들.
그리고 흰 줄을 내리그은 듯한 선명하고 아득한 유성우들이 그 별들 사이로 아스라이 쏟아져내렸다.
가히 신이 빚어냈다고 해도 믿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특히나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별이 하늘에 점차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에, 비교적 시골에 사는 공룡 또한 별은 본 적은 손에 꼽았다.
털썩—.
그 순간, 잠뜰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여느 또래의 아가씨와는 다른, 매우 털털한 태도였다.
슬슬 다리가 아파오던 공룡 또한, 천천히 다가붙어 거리를 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부신 빛이 망막에 빼곡히 맺혔다. 빛이 따가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오랜만이야.”
모든 감각이 황홀함에 잠긴 그때, 잠뜰이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뭐가?”
“이렇게 바깥에서 한가하게 누워있는 거.”
공룡은 잠뜰을 휙 돌아보았다. 잠뜰은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우리 놀러갔을 때 있었잖아. 아니지, 정확히는 네가 우리 별장에 놀러왔을 때.”
4살, 5살 때 일이었던가? 작은 웃음이 말꼬리에 붙어 잘게 흩어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었거든. 그 이후에도 하루종일 하늘만 쳐다봤을만큼.”
“······.”
“그런데 우리 저택 주변엔 인공빛이 많아서 그런지 별들이 거의 없더라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가서, 너랑 같이 별을 보자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내가 행해야 할 책무가 생기고, 사교계에 점차 발을 들여놓으니까 그럴 여유가 나지 않더라.”
“······우리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렇지, 나이가······ 들었지.”
고요하 적막하게 주위를 떠돌았다. 공룡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올려 잠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힘껏 젖혀 올라가 있던 고개가 한순간 힘을 받더니 그 쪽으로 휙 돌아섰다.
“아무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과정이 어땠든, 별을 보여줬으니까.”
그를 마주본 잠뜰이 살포시 얼굴 위로 미소를 밀어올렸다. 깜깜한 어둠에 잡아먹힌 얼굴이었지만 그 위로 떠오른 미소는 환한 빛을 내뿜는 듯 했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화답하듯 미소지었다.
“왜, 데뷔탕트 이후에 가면 되지.”
“그냥, 그렇다고. 데뷔탕트 끝나려면 사흘은 남았잖아.”
“그건 그렇지.”
“······아 맞다. 야, 너 우리 무도회장 부순 거 어떡할거야?”
“······크흠.”
단숨에 살기 어린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본 공룡은 슬그머니 뒤꽁무니를 빼 확 몸을 일으키며 빠르게 노란 프리지아가 만발한 들판을 달려나갔다.
오래간만에 이루어진, 즐거운 술래잡기였다.
*
그 후로 이틀이 지났다.
공룡은 커다란 문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휘황찬란한 금으로 도금된 문이 반짝, 빛을 발했다.
잠뜰과 목숨을 건 술래잡기를 한 이후, 두 사람은 그들을 찾아온 수현 가정교사에 의해 각각의 저택으로 안전하게 이송되었다.
그 이후 빡가와 쩡가의 가주는 잠뜰의 납치와 무도회장 파손에 대해 신중한 논의를 거쳤고, 결과적으로는 납치에는 아무런 죄를 묻지 않는 대신, 무도회장 파손은 쩡가가 책임지기로 했다.
다행히도 자신 휘하의 마법사들 몇을 불러낸 쩡가의 가주는 단숨에 무도회장을 원 상태로 복구해냈고, 그는 가정교사 수현에게 데뷔탕트 시작일까지의 아들의 혹독한 훈련을 명령했다. 모든 죄의 대가였다.
그렇게 공룡은 아버지의 명을 받은 수현으로부터 지옥같은 시간을 하사받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지겹게 이어지는 훈련은 시간을 없는 것처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데뷔탕트 당일.
“뭐야,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익숙하게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에, 공룡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갖 장신구와 화려한 드레스를 착용한 빡가의 아가씨, 잠뜰이었다.
“······풉.”
그러나 인위적으로 짜맞춘 듯한 그녀의 차림새가 어울리면서도 우스꽝스러웠기에, 그는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뿜었다.
“뭐야, 왜 웃어? 뭐 붙었어?”
“······아무것도, 크흡, 아닌데.”
“······.”
“됐어, 가기나 하자.”
웃음을 닦아내듯 소매로 입가를 문지른 그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뜰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결국 그의 손을 붙잡았다.
"열어주세요, 문."
잠뜰의 지시를 받은 하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명을 이행했다.
뒤이어 문이 열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오늘의 데뷔탕트 주인공인 잠뜰을 향한 시선 또한 뒤섞인 채였다.
그러나, 부담스럽게 내리쬐는 시선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지 그녀는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가자.”
뒤이어 가벼이 말을 뱉은 그녀는 결연한 미소를 떠밀어올리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찬연하게 빛나는 두 개의 별로서, 서로의 미래가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