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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휴가 도중, 자신과 같은 수사반 소속 사람을 만날 일은 어느 정도 되는가? 그것도 매우 짜증이 나는 ― 재수 없는 ― 제 사수를 만날 일은 어느 정도 되는가? 내 질문에 내가 대답하는 꼴이 꽤 웃기기는 하다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면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 넓은 대한민국 영토에서 저 인간을, 거기에 모자라 귀한 휴가 기간에 만날 수가 있냐는 말인가.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라도 하는지 정공룡이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언제나처럼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에도 꿋꿋이 무시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수가 오늘따라 왜인지 어딘가 좀 이상해 보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전혀 이 인간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불안하다고 해야 하나. 뭐, 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볼만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될 거라도 있는 건가? 평소 같았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머릿속 방대한 도서관께서 저 한낱 직장 상사한테 관심이 생겼다고? 참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박덕개처럼 자신 또한 이상해진 것만 같았다.
"휴가 기간인데도 밖에 나오신 걸 보아하니⋯⋯ 어디, 일이라도 생기셨나 봐요?"
조심스레 내뱉은 한마디에도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 개인적으로 느끼는 거지만 저 시선, 굉장히 불쾌하다. ―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방금 나, 무시당한 거야? 습관적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려다 이내 꾹 참았다. 제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이 상황을 피할 만한 최적의 방법을 생각하던 도중, 딱히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런 셈이지. 그런데 정공룡 경사도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밖에 다 나오고 말이야."
"⋯⋯저는 경위님과 달리 평소에도 자주 밖에 나오고는 합니다만."
네가? 라는 듯한 표정에 정공룡이 이를 으득였다. 하, 하하. 살며시 두 눈을 감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그가 어색하게 웃어보았다. 휴가니까 참자. 참아, 정공룡. 넌 저딴 새끼와 달리 관대하니까, 나이 많은 내가 참아야지. 진정이라도 하려는지 천천히 심호흡을 내쉬던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각자 갈 길 갈까요? 지금은 휴가 기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 불편한 관계인데 굳이 여기서 더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나요? 애써 뒷말을 삼킨 채로 정공룡이 또다시 웃어보았다. 아시잖아요, 애매하게 끝마쳐진 그의 말에 이번에는 박덕개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공룡은 마치 박덕개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재빠르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세요. 방금 전 대화할 때보다 ― 아주 약간 ― 미세하게 높은 톤이 나왔나 보다.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는 제 사수에 괜히 또 말이 길어질까 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 씨발.
평화로운 휴가 도중, 자신과 같은 수사반 소속 사람을 만날 일은 어느 정도 되는가? 그것도 매우 짜증이 나는 ― 재수 없는 ― 제 사수를 만날 일은 어느 정도 되는가? 심지어 이런 말 같지도 않는 상황에서 똑같이 매우 짜증이 나는 ― 재수 없는 ― 제 수사반 막내를 만날 일은 더더욱 어느 정도 되는가? 이건 분명 꿈일 것이다. 아니, 꿈이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딴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리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공룡은 실성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입 밖으로 끔찍한 웃음소리를 낼 수가 없어 힘겹게 정신을 차린 그가 탄식을 내뱉었다. 젠장. 흘끗, 시선을 옮겨 자신을 올려다보는 박잠뜰에 정공룡이 입을 열었다.
"할 말이라도 있어요?"
최대한 머릿속으로 필터링을 걸쳐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생각이라도 잠긴 모양인가 보지, 이렇게 고요하기나 하고 말이야. 아~ 정말, 어쩜 이렇게 사수 새끼와 똑 닮았는지. 불쾌하기 짝이 없어. 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르고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붓고 있으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딱히 없습니다."
그러시겠죠. 슬슬 참는 것도 한계가 온다. 내 앞뒤로 직장 동료가 있다니. 최악이다. 이건 최악의 휴가야. 이젠 말하는 것도, 피하는 것도 지쳤어. 머리가 어지럽다. 두 눈을 감으며,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은 이미 아픈 미간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한숨이 나온다. 아, 제발 누가 이게 현실이 아니라고 말 좀 해봐. 난생 부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해볼게. 거짓말이라고 해줘⋯⋯. 대체 누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건지. 남이 본다면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룡 경사님, 정공룡 경사님."
제 이름이 불리자 정신이 번뜩 든 기분이 들었다. 뭐지? 나 설마, 방금까지 말로 내뱉고 있었나? 그럴 리가. 이 뛰어난 정공룡께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뒤로하고, 방금 막 미간에서 손을 뗀 그가 입을 열었다.
"뭐, 갑자기 할 말이 생기셨어요?"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왜요, 뭔데요. ⋯⋯안 아프세요? 예? 아프다니요?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그제야 정공룡은 자신의 이마가 꽤 붉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아,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나. 이제는 머리가 스트레스로 인해 어지러운 게 아니라 자신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아파지는 것만 같았다. 한숨을 내쉬려다 만 그가 박잠뜰을 훑어보았다. 이상하다, 이 녀석도 분명 내 뒤에 있는 새끼처럼 밖에 안 나갈 것 같아 보이는데. 좀,
"의외네."
"네?"
"어?"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말했다고? 속이 아니라, 입 바깥으로 내뱉었다고? 하, 씨⋯⋯. 오늘따라 왜 이래. 정공룡은 이 상황이 싫었다. 그저 빠져나오고만 싶었다. 하지만 이건 해결해야 할 거 아니야. 난생 ― 부탁처럼 ― 신께 기도라는 걸 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해봅니다. 신이시여, 제발 이 불쌍하고도 어린 양을 구원해 주소서. 아멘. 이제 눈을 감았다 떼면 밖이 아니라 집 안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지만 막상 눈을 뜨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박잠뜰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기도하면 이뤄질 줄 알았는데, 거짓말이었네.'
세상은 날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신도 날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 신님, 제게 어찌 이런 시련을 내려주시는 겁니까. 이 어린 양은 아직 부족하기에 이 시련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아무리 기도를 해보아도 어차피 신께서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텐데. 정공룡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더 이상 기도 따위 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하면 안 될 말이라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의외라고 한 것뿐이잖아? 뭐가 의외인지는 이 녀석이 알 리가 없는 거잖아? 하, 참. 내가 왜 신한테 기도를 했지? 이딴 게 뭐가 시련이야, 내 똑똑한 두뇌로 해결하면 되는 일인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이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잖아. 정말 쉬운 일이잖아. 난제도 아니고 말이야. 살며시 웃어 보이는 정공룡의 모습에 박잠뜰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걸 드셨나⋯⋯라고 말이다.
*
한편, 묵묵히 정공룡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 애초에 키가 비슷해서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 박덕개는 애꿎은 제 입술을 괴롭혔다. 잘근 씹으며 어딘가 초조하기라도 하는지 점점 행동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박덕개는 지금 그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S.O.S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이 주변에 콘서트장이 있는데 바로 앞에 제 부사수인 정공룡과 수사반 막내, 박잠뜰이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고작 몇 걸음만 더 가면 매일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리버 씨를 볼 수 있을 텐데, 이 어찌 불행한 일인가. 박덕개는 지금, 신에게 빌고 싶었다. 제발 이 두 명이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달라고, 하지만 의미 없는 발악인가 보다. 전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덕개가 한숨을 내쉬었다.
'리버 씨가 많이 보고 싶군.'
그것도 아주, 많이 보고 싶군. 그는 지금 내적 갈등을 하고 있다. 그냥 제 앞에 있는 둘을 무시하고 자신의 최애를 보러 콘서트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것인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콘서트장으로 향해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렇게 한다면 100% 자신의 부사수가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뻔하기에 꾹 참을 뿐이었다. 물론 정공룡은 박덕개를 귀찮아하니 그럴 일은 없어 보이겠지만, 이걸로 어떻게든 들먹이겠지. 그런 미래를 생각하자니 골치가 아프군. 또다시 한숨이 나오려고 했으나, 애써 관자놀이를 누르며 참았다.
문득, 이 둘은 대체 왜 여기 있는지가 조금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게 여기는 보통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이 아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정공룡과 박잠뜰은 밖에 잘 나오지도 않을 텐데 왜 밖에 나왔는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뭐, 남에게 관심이 없어 곧바로 생각을 그만두었지만 말이다. 흘끗, 시선을 내려 제 손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시작하겠군.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콘서트장에 늦을 테니. 천천히 숨을 내쉰 박덕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일이 없나 보지?"
그의 한마디에 정공룡이 뒤를 돌아보았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비를 건 것만 같은 박덕개의 말투에 정공룡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오늘따라 더 재수 없게 구네. ⋯⋯얘 진짜 오늘 뭐 있나?'
정공룡이 사색에 잠겼다. 이딴 쓸데없는 걸로 사색에 잠긴 내 모습이 어이가 없다마는 이제는 궁금할 지경에 다다르었기에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에 불안해 보였었지. 왜? 불안할 게 뭐가 있다고. 근처에 약점이라도 될만한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던 중,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쾌한 노이즈 소리와 함께 말이다.
"아."
세명이 탄식을 내뱉었다. 분명 오늘은 휴가인데, 휴가였는데, 이제는 휴가였던 것이 되어버렸다. 사건이라고? 진짜로? 거짓말 아니고?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연속으로 발생하는가. 그저 무전기에서 매일 들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뿐인데 한 명은 헛웃음을 짓고, 한 명은 한숨을 내쉬고, 또 다른 한 명은 현실을 부정하는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절망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박덕개의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공룡은 사건 현장에 가면서 생각했다. 역시, 이건 악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