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별 (@hahastars)
※글에 앞서,
-이 글은 픽션이며, 본편인 잠뜰님의 [수상한 이웃집]을 먼저 보고 와주세요
-사망 소재 포함
나에게 다가와준 너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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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어때, 나 보고 싶었어? 이건 좀 그런가···. 그래도 반갑긴 하지? 내가 좀 늦게 왔으니까···."
먹을 것들과 잡동사니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놓고서 갈색 머릿결을 가진 여자는 익숙한 듯이, 어쩌면 어색한 듯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살며시 부는 바람에 짧은 머리를 대충 묶고서, 작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들을 따라 흥얼거리며 우뚝 서있는 돌을 열심히 청소했다. 얼마 후, 바삐 움직이던 손놀림을 멈추더니 청소도구를 두고 바구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과자 몇 개를 적당히 꺼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꺼내 든 것은 초록빛을 띠는 게임기였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꺼내든 그녀는 돌에게 보란 듯이 그것을 들이밀며 누군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봐, 네가 그렇게나 노래하던 게임기다? 나 이제 이 정도는 쉽게 살 수 있게 됐거든. 특별히 사준 거니까, 아껴서 간직해야 한다?"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그녀는 게임기까지 앞에 두고서는 환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래, 눈치챘듯이 여긴 묘지다. 5개의 작은 언덕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으며 그중 게임기가 놓인 묘지는 중간에 위치한 묘지였다. 그녀, 잠뜰은 이곳엔 볼 일이 끝났다는 듯 일어나더니 남은 4개의 묘지도 청소를 하고 각기 다른 물건들과 음식들을 소개하듯이 하나하나 말하며 놔두었다. 얼마 안 가 바구니의 내용물이 모두 없어지자, 잠뜰은 묘지들을 바라보며 적당한 곳에 앉았다. 바람은 어느샌가 멈춰있었고 작게 울리던 새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울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구름조차 없는, 뚫려버린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잠뜰은 조금씩 바래고 있는 추억에 잠겼다.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전인 지도 기억이 안 나는 그날, 지금 같이 맑고 푸른 하늘이던 그날,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그날. 내 영역이라고만 생각하던 이곳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장소가 아니게 되었었던 날이었다. 주변.. 그래, 인프라도 좋지 않은 이런 외진 곳에 인간 5명이 갑자기 이사를 오게 되었다는 게 솔직히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는다. 청약이란 그렇게 쉬운 뽑기인가 싶어, 넣어보고는 있지만 도저히 뽑히지 않던데. 어떻게 그렇게 5명이 딱 맞추어 왔는지는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그런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래, 이상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귀가 되게 뾰족하시네···.'
'자, 잠깐... 그래요! 제가 그, 코스프레 알바 중이라···. 매일 이러고 있거든···요.'
'컨셉 끈질기시네···.'
예상치 못했던 인간이 나타나 당황했었는데, 심지어 이웃이라니. 그때는 혹시 죽는 건 아닐까, 인체 실험으로 잡혀가면 어쩌지 하고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새삼 자신의 상상력이 웃기기도 하다. 그렇듯 적대감이 가득했었는데, 새로 생긴 5명의 이웃들과 이상했던 만남만큼 더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이상하게도 점점 친해져갔었다. 인간과 엘프, 그딴 겉치레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그 사람들에게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잠뜰아, 활 쏴서 불 끄는 건 안되냐?'
언제나 태평하게 이상한 일만 시켜보는 어르신도,
'야 잠뜰! 활 빌린다!'
말은 안 들어도 뒤에서는 가장 날 위해주던 소년도,
'잠뜰씨! 잠은 자면서 하시는 거 맞죠?'
이상한 구석에서 걱정해 주는 문학가도,
'아, 너 기차 타본 적 없지? 타볼래?'
기차라면 졸린 눈을 반짝이던 기관사도,
'어렸을 적이랑 취급이 너무 다르잖아!'
가장 오래 보아 가족 같았던 공무원도,
그저 좋았다. 그들이 무엇을 한다 해도, 그들과 함께 지내던 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오래 살았다 하면 오래 살았고, 아니라 하면 아닌 인생 동안 그렇게 즐거웠던 순간은 없었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웃느라 배가 아팠고, 화내느라 머리도 아팠지만 그만큼 하루하루가 눈부실 정도로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지 일상 속에 자리 잡아, 어느샌가 당연하다고도 여겼다. 너네가 내 곁에 있는 게, 이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그 무렵 그들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제야 잠뜰은 깨달았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뛰어놀 수 없는 몸이었음을, 멀리 있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곧 모두가 자신을 떠날 거라는 것을. 웃음이 끊겼다. 더 이상 맑은 날이 아니었다. 구름이 걷히자 모두가 사라졌다. 이제 이곳은 잠뜰의 영역이었다.
그들을 산에 재워둔 뒤에 잠뜰은 빛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그저 집 구석에 박혀서 그때 더 잘해줄걸,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걸... 끊임없이 말하며, 흘리고 흘리며 후회는 점점 길어져가기 시작했다. 한 달, 세 달, 1년... 얼마나 지났을까 잠뜰은 가위를 들고 더 이상 흐르지도 않아 굳어버린 후회를 잘라냈다. 바닥에 난잡하게 떨어진 후회들을 주워서 버린 후 그녀는 산을 올라, 묘지에 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매일 그곳을 향했다. 다음 한 달은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여 일을 구하기 위해 가는 횟수가 줄어들 게 되었고, 그다음 몇 달은 선물을 들고 가끔씩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6개월 만에 들른 이곳. 이제는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이곳이... 그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눈치채고 있었던 것,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이 전부 엎어졌다.
"웃기지 않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불멸과 필멸이라니, 흔해 빠진 이야기잖아. 그래서 이제는 나답게 살아가려고 해. 왜, 너네가 그랬잖아.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게 인생이라고. 나 믿을 거야, 계속 나아갈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내가 멋진 애가 되었을 때 찾아와 주기다? 깜짝 놀라게 해줄 테니까···."
입 밖으로 내뱉은 말들은 치우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마음이라, 도저히 예쁘게 정돈하지를 못해서. 오래 생각해 왔던 말, 뱉어버리면 정말 끝날까 봐 뱉지 못하였던 말. 지금 표정이 어떤지 상상조차 가지도 않는다. 그저 눈이 아플 뿐이었다. 있지, 너네는 어떤 반응을 할까? 오글거린다면서 웃어 보일까, 아님 그게 무슨 소리냐며 비웃을까. 옷을 털며 일어선다. 짐을 챙기고, 그들과 마주 보며 선다.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텅 빈 바구니를 애써 만지작거리다 잠뜰은 결심한 듯 숨을 들이쉰다.
사실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한심하겠지. 추억이란 건 보이지도 않는데도 내 눈을 붙잡아둬서,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게 만든다. 그래서 난 눈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추억 뒤에 있는 미래를 바라보기로 했다. 그게 힘든 일이고, 조금 더 아프더라도 말이다. 그래, 진짜 끝인 거다.
울진 않는다. 웃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까, 힘껏 웃어본다. 웃으면서 흘려보내자. 어려우면 담아라도 놓자. 한 마디로는 정의하지 못할 당신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일 거다.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언젠가 다시 만날지. 그렇게 된다면, 그땐 이야기를 많이 할까. 게임도 하고 디저트도 먹을까. 그리고 웃어보자. 하지만 그것도 먼 미래의 일일 테니까 지금은···
"그럼 다들 잘 있어요. 우리 수상한 이웃들."
인사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