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

220102 눈사람의 사인

차디찬 눈으로 만들었다지만 따뜻하다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보다도

쉽게 녹아버리는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빚은 사람의 정성에

신난 아이들 목소리에

사진을 남기며 짓는 미소에

눈사람은 녹아내린다

마음에 온기를 품은 채로

그래서 이해가 가는 것이다

눈사람 함부로 발로 차는 저 누군가도

그도 부러웠으랴

본인에게 없는 것을 가진 눈사람이

- 220102, <눈사람의 사인>

211123 안부의 핑계

첫눈에 대한 그럴듯한 감상은 이미 글 좀 썼던 사람들이 다 가져가서 없다 이제와서 늘어놓기에는 진부한 이야기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눈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래도 첫눈만큼 좋은 핑계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 수만큼 본 첫눈인데도 쌓이지도 못하는 곧 녹아버리는 얼음조각에 무심코 낭만적이게 되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나는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온사람이 지겨운 첫눈에 잠겨있는 틈을 타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혹시 하늘을 봤냐고 첫눈이 왔다고 그러고보니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 211123, <안부의 핑계>

211111 군대 후기

2021년 9월 10일, 나는 18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민간인이 되었다. 물론 집에 온 건 그보다 몇 주 전이었다. 코로나 덕분에 나가지 못한 휴가가 꽤 쌓였고, 그렇게 쌓인 휴가만큼 먼저 집에 갈 수 있게 해주는 조기전역 덕분이었다. 그렇게 대충 집에 온지 두 달 가량이 지났다. 후기를 적기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몇 자 끄적이게 된 이유는 그동안 정말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노느라 바빴다. 내가 경남 고성에 두고 온 18개월에 대한 보상심리다. 따지고 보면 18개월을 뒤처진 만큼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느라 바빴고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려보고자 이렇게 오랜만에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꿈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내 18개월의 기록을 조금이라도 선명할 때 기록해놓기 위해...

0. 입대 후기

군대는 숙제같은 존재였다. 그것도 댑따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군대 내 부조리나 열악한 처우에 관한 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페북이나 인스타 같은 SNS에 올라왔고 내 또래들이 그랬듯 나도 겁을 잔뜩 먹었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 나라에서는 군대에 가거나, 깜빵에 가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경점에서 검사한 시력을 보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빠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망상도 했었지만, 당연히 그게 될리가 없었다. 내 주변에는 왠지 몰라도 기상천외한 사유로 공익이나 면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였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건강했다. 그렇게 애매한 3급이 신검 결과표에 찍히고 영장이 나왔다. 어떻게든 이 숙제를 미루고 싶던 나는 대충 2학년은 마치고 가야지 생각에 최대한 미루고 미뤄서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난 후에 입대 신청을 했다. 그리고는 쉽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재밌는 게임을 하다가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다가도, 기다리던 영화를 보다가도 이 즐거움이 몇 개월 내로 끝날 거라는 생각이 스치면 떨쳐낼 수 없는 우울함이 날 짓누르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거기 간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사회에 있을 때보다야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다가오는 입대의 두려움에는 그렇게 벌벌 떨었으면서도 전역한 후의 내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를 못했다. 전역이라는 글자는 그때부터 까마득하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벌벌 떨어도 시간은 간다. 3월 초, 나는 기다리던 동물의 숲을 플레이해보지 못하고 입대했다. 39사단. 함안군. 여기가 대체 어디야.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곳에 가기 위해 전날 머리를 빡빡 밀었다. 친구에게 머리 사진을 찍어 보내며 유쾌한 듯 ㅋㅋㅋ를 쳐서 보냈고 집에 와서는 부모님과 좋아하는 치킨을 먹었다. 방에 들어와서 언차티드를 조금 하는데 집중이 잘 되지가 않았다. 침대에 누웠는데 짧게 밀린 머리가 이불에 닿는 것이 까슬까슬해서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충 두시 반쯤에 잠이 들었다. 생각만큼 밤잠을 설치진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곯아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약 삼심 분에서 한 시간 가량을 뒤척였다. 뒤척일 때마다 머리의 까슬까슬함이 느껴졌고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내일은 왔다. 그것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과 신교대는 거의 끝과 끝이라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다. 아빠는 나를 데려다주기 위해 연차를 쓰셨다. 엄마는 출근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엄마 직장까지는 함께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냥 형식적인 이야기를 했다. 군대도 다 경험이고, 그걸 마치고 나면 어려운 일들도 잘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길거고, 기왕 가는 거 가서 잘 지내다 오고.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의 직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차에서 내렸고 나도 내려서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았다. 엄마는 우셨다. 나도 울었다. 눈물을 흘렸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데... 거의 울기 직전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애써 참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군부대 앞에 도착했고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부대 앞 음식점이 그렇듯 맛은 그냥 그랬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내가 입대하기 딱 일주일 전에 코로나가 터졌었다. 그냥 매년 연례행사처럼 흘러가는 전염병인줄 알았던 코로나가 판데믹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바로 그 사건이 터졌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둘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했고 바깥 세상이 조금씩 멈춰가기 시작할 때쯤 입대한 것이다. 그것은 군부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는 수료식도 없이 예정보다 빨리 부대로 들어가야 했다. 예정된 입소 시간이 한 시간쯤 남아서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엄마한테 전화도 하고 아빠랑 이야기도 하고 입소하려고 했는데, 조교가 와서 여기 있지 말고 지금 바로 입소해야 된다고 했다. 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또 울었다. 일 분 가량 짧은 전화를 마친 후 나는 조교 손에 이끌려 바로 입소했다. 아빠는 멀어지는 나를, 멀리서 그냥 바라보셨다. 아빠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멀어서였는지, 아니면 눈물이 차서 흐려진 시야 때문이었는지.

1. 훈련병 후기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우리는 2주 가량 격리 생활관에서 지내야 했다. 격리 중이므로 딱히 일정이 없었다. 와 2주를 아무것도 안 하면 완전 좋은 거 아닌가?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 생활관에 4명만 들어갔다. 그것도 각 모퉁이에 한 명씩. 가뜩이나 초면이라 어색한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첫 날과 그 다음 날은 정말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격리 생활관에는 시계가 없다. 게다가 나도 급하게 나오느라 얼마 전 전역한 사촌 형한테 물려받은 손목시계를 아빠 차에 두고 나왔었다. 딱히 하는 것도 없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워서 뒹굴거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시간도 모른다. 진짜 정신과 시간의 방 그 자체였다. 눈을 감았다 떴는데 늘 보던 내 방 천장이 아니었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글로도 묘사하기 싫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 환경에서도 우리는 적응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 요상한 공간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내 또래 남자애들이 이 조그마한 공간에 모였다.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나와 아예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새롭고 신기하다. 공고를 졸업하고 삼성에서 일하다가 온 친구, K리그에서 프로 선수로 뛰다가 입대한 형, 중국에서 태어나서 굳이 군대를 올 필요가 없었는데 자원입대한 친구...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인생이라고 하기도 짧은 나이지만, 얘네들 인생 얘기 듣다보면 빼앗긴 스마트폰이 그립지 않았다. 처음에는 호통만 치던 조교와 소대장님도 조금씩 미소를 지으시기 시작하셨다. 물론 화를 낼 때가 더 많았지만.​

그렇게 2주 간의 격리 생활이 끝나고 남은 3주에는 훈련을 몰아서 했다. 솔직히 죽는 줄 알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우리 소대가 배식당번까지 전담하데 되면서 정말 점호 전까지는 앉아 있을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들이 있어서 버텼다. 말로는 죽겠다 죽겠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배식당번을 하면서 설거지장에서 신나게 사회의 노래를 불렀고, 취침 전 3분 남짓 동기들과 떠들 때면 그래도 오늘이 끝났구나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무슨 전역 날짜 기다리듯 퇴소식까지 남은 날짜를 세면서, 야 오늘 끝나면 훈련소 50%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버텼다. 그 사이에 소대장님이 가져오신, 아빠가 보냈다는 택배 안에 있는 새 손목시계를 보고 한 번, 배식당번 포상으로 첫 통화를 하며 두 번, 그리고 소등 후 침낭 안에서 불침번 몰래 인편을 보며 세 번 울었다. 체력측정이니 각개전투니 행군이니 하는 훈련들이 힘들긴 했어도 눈물이 나올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사회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이 친구들이 문득 내 앞에 나타나서 그게 고맙고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세 번을 우니 군복 가슴팍에 짝대기가 하나 생겼다.

2. 이등병 후기

5주간의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한 번 낯선 곳에 떨어졌다. 자대. 그게 진짜다. 남은 17개월을 그곳에서 보내야 하고, 그곳에는 친구보다 윗사람이 더 많다. 신교대는 그래도 시설이라도 깔끔했지 지어진지 몇 십년이 지난 내 부대는 충격적일 정도로 허름했다. 요즘 부대에는 뭐 카페도 있고 피씨방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온갖 SNS에서 난리를 치던데 우리 부대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노래방이 있긴 했다. 자글자글한 화면에 에코인지 뭔지 모를 조악한 이펙트가 들어간 스피커, 그리고 원래 목소리를 유추할 수 없는 처참한 음질의 마이크가 딸린.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다행인 점은, 자대에 와서는 휴대폰을 쓸 수 있었다. 행보관님께 한 달만에 스마트폰을 받았는데 그때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터치가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돌덩이를 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색한 느낌. 그렇게 스마트폰을 받고 며칠에 걸려 밀렸던 소식들을 확인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사회와 조그마한 창이 하나 뚫리니 살 것 같았다.​

이등병 시절, 선임들은 다 착했다. 먼저 말을 걸어줬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나를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중대는 두 명 빼고 다 일병이었다. 약 4~5개월 정도의 기간에 짬이 다닥다닥 몰려 있었다. 내 선임들도 대부분 막 일병을 달았었다. 뭘 시키는 게 어색할 짬이다. 나도 군기가 바짝 들었다. 나는 체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체력적인 부분 말고 다른 부분에서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뭐가 있으면 바로 손을 들고 관등성명을 외쳤다. 그때는 우리 분대장도 나보고 그래도 뭐 하려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뿌듯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귀찮은 일이 많았는데.​

나야 막 자대에 들어온 신병이었으니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코로나는 군대의 풍경도 많이 바꿔놓았다. 먼저 원칙상으로는 하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답답한 마스크. 사회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지만, 그래도 집에 오면 마스크를 벗지 않는가. 여기는 집도 집이 아니다. 물론 대충 눈치 봐서 마스크를 슥 내리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까다로운 간부들 앞에서는 황급히 마스크를 올려써야 했다. 뭐 사실 마스크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사라진 외출, 외박과 면회, 휴가였다. 이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휴대폰을 쓸 수 있어서 그나마 낫다지만 그래도 바깥 세상 구경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훈련도 같이 줄었다는 것이다. 신병 때 큰 훈련이 없었다는 것은 코로나에게 고마운 몇 안되는 점들 중 하나다. 하지만, 훈련이 없다는 것은 생각만큼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큰 훈련이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런데 훈련도, 외출도, 외박도, 면회도 휴가도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해보면... 방금 전입온 나는 별 체감을 못했지만 아마 짬 좀 찬 선임들은 시간이 안 가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서 애먼 후임들에게 화풀이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고.​

이등병 시절은 부대에서 큰 작업을 하던 시기라 육체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게 지냈다. 그 사이에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며 휴가가 풀렸고, 꿈에 그리던 첫 휴가를 나갔다.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원래는 4일인 신병휴가에 연가를 붙여 7일로 휴가를 나갔다. 첫 휴가때는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원래는 만날 생각이었는데 부대에서는 그렇게 길던 일주일이 얼마나 짧은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친척들을 만나고, 기상나팔이니 식사집합이니 귀찮은 것들로부터 풀려나서 대충 뒹굴거리다보니 복귀일이었다. 세상 무너지는 마음으로 부대에 복귀하니 짝대기가 두 개가 되어 있었다.

3. 일병 후기

일병. 일병이 아마 부대 내에서 제일 힘든 계급일 것이다. 한 달 남짓한 이등병 때는 '그래도 신병이니까...'라며 용서되던 것들이 일병 때부터는 엄격해지기 시작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휴가가 다시 막힌다. 언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하지 못했던 훈련 일정들이 하나둘 잡히기 시작한다. 전투준비태세나 대침투 훈련은 그래도 낫다. 유격과 혹한기. 따뜻한 남쪽인데다가 워낙 추위를 덜타서 혹한기는 그래도 버틸만 했다만 유격은 최악이었다. 유격은 행군만큼이나 무식한 훈련이다. 그냥 온몸의 근육이 욱씬거릴 때까지 굴린다. 날씨는 덥고 햇볕은 쨍쨍한데 흙바닥 위에서 정신없이 뛰고 몸을 비트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친다. 게다가 잠도 텐트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편히 자지도 못한다. 물론 간부들 물에 빠뜨리는 걸 보면서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도 있고, 물 속에 뛰어들어서 정신없이 놀았던 기억도 있고... 그것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라지만 힘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혹한기 훈련은 별 거 없었다. 그냥 대충 쌀쌀한 곳에서 버티면 됐다. 소대장님과 같은 조가 되었는데 몰래 휴대용 버너를 챙겨오셔서 컵라면을 끓여주셨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다 먹고 전투식량을 라면 그릇에 비벼먹었었는데 그게 살면서 먹어본 제일 맛있는 전투식량이었다. 일병 시절에 몰린 큰 훈련 두 개는 그렇게 지나갔다.

​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지만 그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내 윗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저 하하 싫어하라지 맘대로 하라지 같은 태도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유는 대충 그런 것들이었다. 어리버리하다, 체력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 그리고 몇몇 오해들. 맞선임이 불러서 따라갔다 오니까 다들 일하고 왔는데 어디갔다 왔냐고 묻는다. 아니 나는 일하는지도 몰랐는데. 누구누구 일병이 불러서 갔다왔습니다. 야. 걔가 나보다 선임이냐? 가불기가 돌아오는게 뻔하기에 그저 죄송합니다밖에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뭐 어리버리한 거라던가 체력이 부족하다라던가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더 눈치가 빠르고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그걸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내 딴에서는 주말에 나가 뛰기도 하고 작업거리가 있으면 하려고도 하고 휴식시간에도 운동하자고 부르면 종종 나갔던 것 같은데, 몇몇 선임들은 내가 평일 일과 후에도 나가 뛰어다니고 능숙하게 작업을 하면서 간부와 선임들의 기분을 눈치챌 수 있는 약삭빠름을 가지길 원했다. 아마 더 이야기하면 선임 욕이 될 것 같아 관둔다. 사실 그렇게까지 나쁘기만 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내가 부족했던 만큼 그들에게도 내가 떠올리기 싫은 후임일 수도 있었으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그들의 잘못이기만 한 것도, 내 잘못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나와 그들은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원래 주변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내 주변에는 만나도 맥주 한 병 잘 안마시고 PC방 가서 끝말잇기 온라인 따위를 하며 그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듯이 낄낄대는 머저리들 - 그런 와중에도 다들 대학은 꼬박꼬박 챙겨 다니는 - 그런 애들이 모였다. 내가 학창 시절부터 노는 법도 모르고 심심하다 싶으면 삼각대 들고 돌아다니는 샌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뛰어든 사람, 친구들과 모이면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는 걸 즐겼던 사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 그들은 나와는 너무 정반대에 있던 삶을 살았다. 사회에서는 솔직히 접점이 생길 수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나와 그들은 사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소한의 존중은 해줄 수 있겠지만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이 선후임이라는 수직적 관계 속에 묶였으니 트러블이 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나한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는 솔직히 원망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별 생각 없게 됐다. 다시 만날 일이 없어서? 글쎄.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사람들이 다시 동갑내기 혹은 한두살 터울 형으로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해도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참은 만큼 그 사람들도 많이 참았을 거다. 그냥 각자의 세계를 살면 되는 일이다.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래도 만나기 싫은 사람이 딱 한 명이 있는데 이 사람은 나 말고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전역할 때 우리 중대 중 아무도 배웅을 나가지 않았다. 중대장님이 오셔서 니들 선임 전역하는데 배웅은 해야하지 않긋나 하자 밍기적거리면서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기껏해야 일이분 거리인 위병소까지 나가지도 않았다. 본관 정문에서 어색한 배웅을 하고 서로 잘지내라는 말 한 마디도 없이 흩어졌다. 본인은 시원섭섭한 것처럼 보였지만 난 그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일병이 전역하는 병장을 안쓰러워한다니 누군가에게는 웃긴 일일테지만 그건 계급과 무관한 것이었다.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안쓰러웠다. 늘 짜증섞인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을 욕하던 그 사람이, 앞에서는 아무 말 않다가 그 사람이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새끼 한 것도 없는데 포상 왜 주냐 이야기하던 그 사람이, 저새끼 경희대 어떻게 갔냐, 그새끼 서울대라더니 뭐뭐 하나도 못하더라, 본인보다 나은 점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던 그 사람 자체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내가 전역할 때도 저런 모습일까 무서운 걱정을 했다.

언젠가 초소에서 자기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군대에 갇혀있으니 다 꼽히고 짜증만 내게 된다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회에서는 좀 다른 모습으로 웃으며 살기를 바래본다. 그래도 만나기 싫은건 매한가지다. 뭐 그 사람이 날 만나겠다고 찾지도 않겠지만.

4. 상병 후기

아무튼 일병은 힘들었다. 제일 힘들었다. 선임들과의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훈련은 훈련대로 있고 코로나 때문에 언제 나갈 수 있을거라는 기약도 없었다.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는 놀랍도록 무력한 존재였고 정말 죽은 듯이 지냈는데 시간도 결국엔 흐르더라. 그렇게 몇 번을 우울해하고 저 문을 두드릴까 들어가서 확 울어버릴까 몇 번을 고민하고... 중대 선임을 몇 명 전역시키고 나니 짝대기 세 개가 되었다. 상병이다. 상병이면 짬 좀 찬 것 같다. 근데 이제 절반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 생활관은 일병 생활관이었다. 상병이 되어도 선임 한두명이 빠진 것 빼고는 변한 게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대충 그런 거다. 갓 일병을 달고 같은 일병한테 갈굼을 당하던 친구들이 상병이 되었다. 그런데 상병이 되어도 그대로인 것이다. 저새끼는 일병 때부터 나한테 개지랄했는데. 일종의 억울함과 분노가 밀려온다. 그건 선임들도 마찬가지다. 저새끼 짬 좀 차더니 맞먹으려 드네? 조금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새끼 XXXX 가지고 XX하는 XX새끼다. 야. 곰팡이새끼야. 야. 꿀꿀이죽. 야. 무슨무슨새끼야. 일병 때는 서로 장난이라면서 웃고 넘겼던 - 사실은 넘길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이 조금씩 꼽히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 그만 좀 하십쇼. 왜 맨날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그럼 니가 그렇게 태어나질 말던가 XX새끼야ㅋㅋㅋ' 사실 텍스트로 적으면 살벌해도 입이 험한 사람한테는 친구끼리의 애정표현이나 농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쪽은 다르다. 사회에 있던 친구는 '니가 뭔데 XX새끼야ㅋㅋㅋ' 하면서 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밑에 있는 후임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저새끼 장난가지고 또 진지빠네. 저새끼 요즘 왜 저러냐?

상병 초는 살벌했다 정말. 다행히 나에겐 동기들이 있었다. 웬만하면 동기들과 다녔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였다. 야. 너 왜 요즘 동기들하고만 다니냐? 너도 내가 싫냐?

결국 몇 명이 부대를 떠났다. 떠나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조금 갑작스러우면서도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회에서 동등한 관계로 만났으면 -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달라서 만날 일이 없었겠지만 - 잘 지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잘 지내던 친구가 있기도 했고. 하지만 우리 중대원 대부분들은 그럴 수 없는 타입의 사람들이었는지 결국 여론조사 끝에 떠나게 되었다. 상병 초, 중대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해졌다.

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중간 라인이 되었다. 매일 갈굼만 듣던 입장에서 갑자기 갈구기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갈구질 못하겠다. 후임들이 다행히 열심히 하려고 해준 것도 있었고, 내 성격 자체가 남한테 쓴소리 못한다. 찐따같은 성격이다. 그래도 내가 참 이기적인게, 당장 후임들한테 못 시켜서 내가 할 상황이 생기니까 시키게 되더라. 그렇다고 아예 놀게 된 건 아니었다. 위에 있던 몇 명이 당장 빠진 만큼 나도 동기들도 후임들에게 모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선임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그냥 다같이 엔분의 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많이 편해졌다. 후임들이 힘든 일은 먼저 하려고 해줬고 위에 있던 선임들도 선임이라고 빠지고 하는 것 없이 다같이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때부터 스트레스를 좀 덜 받기 시작했다. 물론 휴가 통제나 훈련은 힘들었지만 일병 때처럼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다같이 끌려온 입장에서, 다같이 좋게 지내면 윈윈 아닌가. 그런데 같은 피해자 입장인 병사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있다. 서로 뒤돌아서서 욕하고 씹고, 앞에서는 웃지만 눈치를 봐야 하고... 상병 즈음에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이 좁아터진 곳에서 정치질을 하고 자빠졌지? 우리 부대가 특히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군대의 정치질은 정말 역겨웠다. 대체 서로 파벌 갈라져서 싸우면 무슨 이득이 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우리 중대 왕고이자 우리 소대 분대장 때문이었다.

4.5 왕고의 전역

신병 시절, 우리 분대장은 막 일병 3호봉을 달았었다. 일병 3호봉에 중대 서열 3위. 군번 진짜 잘 풀렸던 우리 분대장은 나를 포함한 동기들에게 정말 잘 해줬었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돼. 늘 뭔가 알려주려고 하면서 뒤에서는 묵묵히 일을 했다. 주말에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항상 아침마다 나가서 우리 청소 구역을 쓸고 있었다. 왜 맨날 혼자 나가서 그러냐고 물어보면 거기 청소하는 게 우리 중대 담당이지 않냐는 정말 상투적이고 재미없는 답변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 중대의 대부분은 그 분대장을 싫어했다. 신병인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 걔랑 가까이 지내면 안 돼. 걔 지금 자기 편 만드려고 너희들한테 잘 해주는 거라니까? 맨날 혼자 나가서 청소하는 거 못 봤어? 그거 다 간부한테 칭찬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놓고 간부들한테는 남들이 안해서 자기가 한다고 이야기한다니까.

첫날부터 말을 걸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줬던 선임이 그런 말들을 하니 신병인 우리는 그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논리가 꽤 그럴듯해서, 우리도 곧 그 분대장을 썩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꽉 막힌 사람이었기에 더욱 싫어할 건덕지가 많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고, 이걸 왜 하냐 물으면 원래 해야 하는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군인이라면 할 수밖에 없는 푸념에 '그래도 이렇게 우리가 나라를 지키니까 부모님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는거야.'라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사를 쳤었다. 그런 점이 실제로 우리를 조금 피곤하게 만들었었고 그런 와중에 다른 선임들이 저거 다 가식이다. 뒤에서는 니들 엄청 씹는다 같은 이야기를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던 선임들이 하나둘 떠났다. 목소리들이 걷히고 나니 그 사람의 진심이 보였다. 분대장도 그냥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일하는 것보다는 쉬는 게 더 좋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바르고 책임감이 강했을 뿐이었다. 딱히 우리를 뒤에서 씹지도 않았었고 - 씹었다고 해도 그냥 후임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푸념 정도였고 - 간부들이 없는 날에도 책임감에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동기들이, 후임들이 뒤에서 정치질했던걸 본인은 몰랐을까? 몰랐을 리가 없는데. 미안한 마음에 우리는 분대장을 더 잘 따르게 되었다. 다들 장난도 치고, 좀 더 살갑게 대했다. 다같이 웃는 날이 많아졌다.​

그랬던 중대 왕고가 전역했다. 진짜 전역이었다. 혼자 위병소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전역이 아니라 진짜 전역이었다. 전역 전날에는 아무도 제시간에 잠을 자지 않았다. 항상 의무니 규칙이니를 강조했던 분대장도 전역 전 날에는 풀어져서 당직사관 몰래 생활관에서 라면을 끓였다. 소등 시간이 지났는데 모두가 테이블에 라면을 두고 모여서 이야기를 풀었다.​

'병장님, 아니 형, 나 사실 그때 좀 서운했어. '

'미안해. 그래도 내가 너 많이 아꼈던거 알지? ' ​

다같이 편지를 써주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진해서 위병소까지 걸어나가서 잘 지내라며 아쉬운 인사를 했다. 듣기로는 그 형, 차 안에서 우리들 편지를 읽으며 울었다고 했다. 원래 말이 그렇게 많던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그 한 명 빠지니까 생활관이 텅 빈 것 같았다. 그건 더 이상 잔소리할 사람이 사라졌다는 후련함이 아니었다. 입대하고 나서 처음 겪은, 이별같은 이별이었다.

군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완벽히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모인다. 당연히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도 결국 같이 지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깔끔하게 잘라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개중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점들이 또라이 같아서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하나씩은 좋은 부분이 있었다. 분대장을 욕했던 그 선임들도, 이등병 시절에는 부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결국 자유도 뭐도 사라진 이 좁은 부대에서는 결국 사람으로 버텨야 하는구나. 더러운 정치질로 내 편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왕 끌려와서 같이 지내야 하는 거 좋은 점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서, 다같이 이해해주고 끌어주면서 지내야 하는구나. 그걸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5. 병장 후기

선임을 보내니 이제 병장이다. 병장이 되면 후임들 웃기는 게 최대 관심사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웃기려고 했다. 딱히 '애들을 웃겨야지!'하고 의식하면서 살았던 건 아니다. 그냥 이 공간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편해지다보니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때처럼 실없는 농담을 자주 던지게 된 것 뿐이었다.

짬이 차면 짜증나는 일이 많아진다. 이걸 또 해? 왜? 왜 저러는 거냐 진짜? 전에는 까라면 깠었는데, 계속 까다 보니까 이걸 왜 까야되나 싶다. 그렇다고 깽판칠 깡다구는 없으니 푸념과 짜증만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휴가 조사를 받았는데 휴가 전전날이 되도록 휴가 승인이 났는지 안 났는지를 안 알려주는 거다. 아니, 다른 중대는 다 일주일 전에 승인 난 거 알려준다던데 왜 우리 중대는 이 모양이냐? 아니 왜 맨날 그러는거야? 이게 한두번이 아니잖아. 일과 시작 전까지 계속 푸념을 늘어놓고 나서야, 내 행동이 옛 선임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난히 욕을 많이 하고 짜증을 많이 내던 선임이 있었다.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도 신병 시절 잘 챙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줬던 기억에 나는 그 선임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꽤 친하게 지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선임이 딱히 우리 때문에 우리를 대상으로 짜증을 냈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군대 특유의 요상한 일 처리 방식과 불합리함에 대한 푸념이었다. 하지만, 선임들의 푸념과 짜증은 같은 선임들 입장에서는 공감대 형성일지 몰라도 후임들 입장에서는 아니다. 선임들이 짜증을 내면 생활관 분위기가 살벌하게 느껴진다. 그게 정말 죽여버리겠다의 짜증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푸념이더라도 그렇다. 유쾌하게 하하 웃으면서 늘어놓는 푸념이면 몰라도 표정이 구겨지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차 싶었다. 생활관 분위기를 내려앉게 만드는 선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짬이 다닥다닥 몰려있는 우리 중대 특성상 한 명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그 짜증이 선임 라인 전체로 번지게 된다. 병장 다섯이서 같이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일이병들은 아마 죽을 맛일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했다. 웃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남은 군생활이 아무리 막막하고 까마득해도 저기 일이병 친구들만할까.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으면 최대한 화제를 돌리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말을 제일 많이 한 시기가 이때였을 것이다. 대신 일은 좀 덜 했다. 후임들이 병장들이 일하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했고 나도 사람인지라 이제 좀 편해지고 싶었다. 나는 먼저 전역한 분대장만큼 책임감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말년에 유격을 가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부대 내에서 유격을 한 번 겪은 병장들이 유격을 가는 중대는 우리 중대가 유일했다. 먼저 적었듯 유격은 정말 두 번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최악의 훈련이었는데... 결국 가게 된 거 어쩌겠냐.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정말 즐거웠다. 진짜 이상하다. 일병의 유격은 몇몇 순간들을 빼면 정말 죽을 맛이었었다. 일정에는 별 차이가 없었고 심지어 병장의 유격이 훨씬 길었는데 이상하게 병장의 유격은 훨씬 즐거웠다. 유격체조는 여전히 힘들고 빨리 부대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상하게 뒤돌아 떠올려보면 힘들었던 순간보다 즐거웠던 순간이 더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텐트 안에서 후임과 나눴던 이야기, 물에 빠지는 후임을 보며 깔깔 웃었던 기억, 숙소에 둘러앉아 했던 라이어게임... 정말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인가 싶었다.

옆 부대에서 병사도 죽었다. 입대하고 세 번째로 보는 죽음이었다. 입대하기 전 통학버스에서 군필자 두명이 우리 부대에서 자살자가 있었다, 어 정말이냐, 우리 부대에서도 몇 명 죽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대체 군대는 어떤 곳일까 생각했었는데 그걸 어쩌다 세 번이나 겪었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나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대신 나는 운이 좋았다. 다행히 훈련 강도가 약한 편인 후방 부대로 배정받았고,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와준 선임, 짬이 찼다고 빼지 않고 오히려 더 솔선수범하려고 하던 선임을 만났다. 함께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던 동기를 둘이나 만났고, 서로 적당히 막 대하면서 동기처럼 지냈던 맞후임과 먼저 움직이던 성실한 후임들을 만났다. 모자란 부분을 질책하기보다는 장점을 바라봐주시는 중대장님을 만났고, 열정 가득한, 동네 형같은 소대장님과 병사들과 친구처럼 지내려고 하시던 간부님을 만났다.

거의 끝나가는 군 생활, 난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5.5 맞선임과 동기의 전역

맞선임이 전역했다. 위병소로 향하는 맞선임의 짐을 들었다. 이건 일종의 의전이었다. 아무리 군생활 지랄맞게 했어도 후임들이 짐 정도는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맞선임이 군생활을 그렇게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한두달 차이 군번이라서 신병 시절부터 어려운 점을 함께 견뎌냈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후임들 관리하면서 투덜대기만 할 뿐 큰소리 낸 적 한 번 없었고, 간부랑 싸우면서까지 우리들 편을 들어주던 고마운 선임이었다. 맞선임은 상당히 들떠보였다. 전역을 몇 주 남긴 시점부터 맞선임은 이제 너희들 안 봐도 된다, 진짜 지긋지긋하다같은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럴만도 하지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좀 서운하긴 했다. 며칠 안 남은거 그래도 좋게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그런 맞선임의 전역날 아침, 우리 조그마한 중대가 위병소 앞에 다시 모였다. 부대 밖으로 나간 선임에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드는데 갑자기 선임이 고개를 돌렸다.​

야 저 사람도 우네.​

선임은 우리가 계속 부르는데 그냥 고개를 돌린 채로 머뭇거리다가 길을 떠났다. 말은 지긋지긋하다, 너희들 그만 보고 싶다 했어도 끝까지 우리와 친하게 지냈던 선임이었다. 뒤늦게 카톡으로 배웅해줘서 고맙다, 멀리서 너네들 인사도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는 답이 왔다.

동기들도 전역했다. 내가 휴가를 많이 나간 탓에, 그리고 코로나가 전역 전까지도 안 끝난 탓에 동기들이 먼저 조기 전역을 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1~2주 차이긴 하지만. 동기들의 전역은 그리 슬프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체감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잠깐 휴가를 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동기들을 한 명 한 명 보낼 때마다 그리움보다는 내 전역이 다가오고 있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 며칠 안 남은거 조금 앞으로 당겨보겠다고 전역 10일 남은 사람이 후임들 데리고 장기자랑도 나갔다. 세상에 장기자랑이라니, 발표 때도 손을 덜덜 떨기 일쑤였던 내게 무대는 너무 무서운 곳이었는데. 후임들 믿고 무대에서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노래도 부르고 뛰어다니기도 해봤다. 목표했던 포상휴가는 따지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값진 추억을 얻었다. 여기 동기들도 있으면 더 즐거웠을 텐데. 그렇게 동기들의 빈자리가 조금씩 체감되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내 차례가 왔다.​

'당직사관님, 제가 내일 전역인데 라면 연등 좀 해도 되겠습니까?'

​ '너 전역하는 거랑 라면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 전역하기 전에 중대원들과 추억 좀 남기고 싶습니다.'

'먹고 나서 보고해라.'

'넵.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마지막일 행정반에 올라가 라면을 끓였다. 형 내일이면 진짜 가네. 그런가. 진짜 가나. 내일에는 이 퀴퀴한 행정반에 안 올라오려나.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너네 근무 많아서 어떡하냐. 조만간 포도 쏜다고 하지 않았냐. 어차피 내일이면 가시지 않습니까. 함께 우리 중대의 별 거 없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미래에 내가 없다는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지막 새벽 근무. 후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전역하면 뭐 하실 겁니까. 그러게.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야 할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건 없네. 매 새벽마다 있었던 지긋지긋한 초소 근무도 이제 끝이다. 여기서 별별 이야기 다 했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시계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휴가 계획이나 푸념처럼 일상적인 것부터, 이제 막 스무살을 넘긴 애송이들의 인생 이야기, 어제 유튜브에서 본 미스터리 영상, 남들에게 한 적 없었던 첫사랑 이야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막연한 낙관... 이것도 이제 끝이다.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총기를 검사하고, 마지막으로 근무 철수 보고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날, 마법처럼 비가 내렸다.

6. 전역 후기

평소보다 늦게 잤고, 새벽 근무도 있었는데도 기상 시간보다 일찍 깼다. 마지막 아침점호. 비가 내려서 실내점호였다. 실내점호를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정말 별거 아닌데 아침에 연병장 안 뛰고 TV 10분 더 볼 수 있는게, 그게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마지막이다. 아침은 결식했다. 차피 오늘 집 가는데 뭐가 무서우랴.

휴대폰을 받고, 본관 앞에서 중대원들과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1년 6개월 동안 짐이 꽤 많이 쌓였다. 소소한 생활용품부터 장병무슨무슨지원금으로 산 책들. 몇 달 전에는 내가 맞선임의 짐을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내 맞후임과 맞맞후임이 짐을 들어줬다. 내려가는데 위병소 건너편에 익숙한 차가 서 있다. 마스크를 쓰고 계신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보인다.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셨다. 위병소에 얘기한다. 병장 최민호, 전역 전 휴가. 미복귀. 어. 이제 진짜 끝인가? 집에 가는 건가?​

야. 나 부모님도 오셨으니까 걍 빨리 들어가서 생활관에서 쉬어라. 비도 오는데. 주말이잖아.

그런데도 이놈들 들어가질 않는다. 숙소에 가신 줄 알았던 중대장님도 나오셨다. 후임 한 녀석이 울었다. 한 녀석이 울자 옆에 있던 녀석도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야 왜 우냐 하면서 나도 울었다. 그 녀석처럼 서럽게 울지는 않았고 그냥 눈물 조금 고였다. 다행히 비가 내려서 부모님한테 들키진 않았다. 무슨 전쟁 파견 나가는 것처럼 후임들과 주접을 떨고 있는 동안 부모님과 중대장님이 무슨무슨 대화를 나누셨다. 차에 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입대할 때도 이랬었지. 그때는 부대로 들어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었다. 이번에는 부대를 나오는데, 영영 나오는데 무슨 그리운 곳을 떠나는 양, 중요한 것을 두고 온 마냥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전 선임한테 전화가 온다. 야. 소식 들었다. 전역했다며? 어... 라고 하려는데 반말이 뭔가 어색하다. 갑자기 전역 축하한다면서 치킨 기프티콘을 보냈다. 후임들한테 카톡이 온다. 보내지 말라니까 치킨이니 아이스크림이니 마카롱이니 뭘 잔뜩 보내놨다. 야 해준 것도 없는데 뭘 이렇게 보내냐하는데 무슨 이유들을 줄줄 읊는다. 유격 때 같이 게임했던 것도 기억에 남고, 점호 시간때도 병장님 덕분에 많이 웃었고... 그래 고맙다. 전역할 때 연락해라. 중대장님이 그러시는데, 너가 애들 많이 챙겨주고 해서 고마웠다더라. 아닌데요. 오히려 저 때문에 중대장님이 많이 고생하셨을 텐데... 체력도 딸리고 일머리도 없고 어리버리하기만 한 폐급이었는데. 나는 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나.

7. 프롤로그

1년 반은 나를 굉장히 많이 바꿔 놓았다. 그렇게까지 중대한 전환점은 아니고, 사실 소소한 것들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딱히 현재에 도움되는 것들은 아니다. 3D 모델링이나, 악기 배우기, 유튜브 되살리기 같이 언젠간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그런데 전역하니 마법같이 의욕이 줄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튜브에 다 쏟는 와중에 노는 것까지 몰아서 하느라 바빴던 거지만. 이제 노는 것도 슬슬 질려서 줄었던 의욕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모델링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악기는 당근마켓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매물이 나오는 순간 팔려버려서 구매할 타이밍을 못 잡고 있다.

잃어버린 취미를 찾았다. 부대에서 자투리 시간동안 할 것을 찾다가 중학생 때 이후로 뜸했던 그림을 다시 잡았다. 처음에는 그리는 법도 까먹어서 우왕좌왕했지만 꾸준히 그리다보니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 글도 좀 많이 썼다. 대학 새내기 시절,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허접한 글을 많이 끄적이다가 한동안 펜을 놓아버렸었다. 그랬는데 부대에서는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소통할 방법이 없어서 조금 간절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다만 그걸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래서 짧은 글들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타임어택처럼 쓴 짧은 글이 몇십 편이 쌓였다. 잘난 사람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글이지만 간혹 좋다는 사람들이 보여서 내 글을 나보다 사랑하게 되었다.

삶의 원동력이 늘었다.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다음주 방영하는 드라마 한 편만으로도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것이 사람이다. 한창 유행할 때는 볼 생각도 하지 않던 귀멸의 칼날. 이 애니 덕분에 군생활을 버텼다. 이걸 기점으로 뜬금없이 일본 노래니 애니메이션이니에 조금 빠져버렸다.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취향은 아니지만 벼랑 끝에 몰려도 죽지 못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시야가 넓어졌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세계가 훨씬 많았다. 아마 그냥 살았다면 만날 일 없었던 세계다. 나는 너무 좁은 곳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간절해졌다. 슬슬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는 내가 날 못 믿어서 그게 두려웠는데 나를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붙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가지? 그건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후임과 자주 하던 이야기가 있다. 인생 최고 업적이 대학 합격, 전역, 취업 뿐이라면 실패한 인생 아니겠느냐고. 유튜브 구독자 15000명? 아직 업적으로 치긴 애매하다. 실버버튼은 받던가 못해도 나무위키에 이름이라도 있어야지. 학생 시절 거창하게 걸었던 목표는 아직도 유효하다. 어딘가에 이름을 걸고 싶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슬슬 움직여야 한다. 일단 내일은 사놓고 몇 번 피지도 않았던 C언어 책을 펴야겠다. 이제 프롤로그는 마쳤으니...

201220 차원과 양자물리학과 별과 시

한때 천문학자나 이론물리학자를 지망하던 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신비로운 것이었다

빛의 속도로 가도 몇십억년 아득한 곳에서 별빛이 달려오고

고개를 들면 그 몇십억년 전의 과거가 보이고

우주는 무한하다던데 지금도 우주는 빛보다 빠르게 팽창하고 있고

양자 단위로 요동치는 미시 공간에서는 입자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그래서 티비에 연예인들 나와서 양자역학 운운하면서 상상하면 이루어지는게 양자역학이라느니 말도 안되는 소리 해대는 거 보면 그렇게 화가 났다

다만 나도 칼라비 야우 공간이니 브레인 월드 우주론이니 루프 양자 중력이니 대통일 이론이니

마냥 쳐다봐도 이해 안 가는 걸 알아들었다고 아는 체 하고 다녔으니 화낼 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초끈 이론은 틀렸다 파인만도 그건 아니라고 했고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 그냥 내 신념이다

아무튼 그렇게 매일같이 과학잡지 쳐다봤던 아이는

어느 순간 야 이건 내 머리로는 안되겠다 싶었고

굶는 게 싫어서 포기했다가 지금은 영상을 만들고 글을 끄적거린다 굶기 좋은 것만 골라한다

- 201220, <차원과 양자물리학과 별과 시>

210925 소비의 심리학

오늘은 손님이 오는 날

낯선 초인종 소리를 기다린다

이건 멈춰버린 세상에서 일종의 이벤트같은 것이다

나도 내일이 좀 기다려졌으면 해서

만원 선에서 적당히 불러들일 손님을 찾는다

굳이 몇십만원까지 가지 않아도

기다릴 누군가의 존재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묽어빠진 삶을 덜 초라하게 만들기에

2,500원 배송비는 그 설렘의 값

초인종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행복의 값이다

어쩌면 도어락 소리가 더 듣기 좋을 수도 있겠는데

그것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으니

길다란 목록표에서 타산이 맞는 손님을 찾는다

아마 내일은 만원짜리 행복이 올 것이다

금새 잃어버리고 말, 딱 만원짜리 행복이

- 210925, <소비의 심리학>


210820 전역

여기서 만난 사람들

살면서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아서 슬퍼진다

뭔가 설레면서도 공허하고 기대되면서도 착잡하는게

고등학교 졸업과 비슷한 기분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고등학교는 계속 있고 싶었는데

여기는 걍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

모든 날 24시간이 불행했던 건 아닌데

그 시간 중에도 웃었던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자유로운게 더 좋지

기상나팔 아침점호 뜀걸음 도수체조 개인임무분담제 야간근무

하루빨리 내 삶을 구속하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그런데 그렇게 떠나고 싶은데도

왠지모를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는데

아마도 사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는 바야흐로 1년 전 일병 시절

말년이던 선임이 그런 말을 했었다

여기 간부들은 병사들 그냥 부품으로밖에 안 본다

그냥 쓸 수 있는 만큼 굴렸다가 갈아끼우는 부품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하하

놀랍게도 설마 그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얘네는 진짜 우리를 부품으로 본다

특히 같은 병사끼리 그러면 더 서러운데

아무튼 그런 일화는 생각하기도 싫고 적기도 싫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부품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더 소중했다

못난 후임 데리고 고생하다가 먼저 집 간 선임들

같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툴툴댔던 후임들

바쁘신 와중에도 신경써주시던 중대장님

동네 형 같던 소대장님 지원관님

여기 정말 지긋지긋하고 싫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어떻게 사람들한테는 정이 붙었는지

마음까지는 떠나기 어렵게 만드는데

그래도 떠나야겠지


210731 근황

원래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나 가끔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의 사람이 아니면 전부 카톡에서 숨김처리를 해놓는다. 그래서 카톡 친구창에는 늘 보던 40명 가량의 사람들만 있는데, 전역을 앞두고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 숨김되어 있는 사람들의 카톡 프로필을 둘러봤다.

살면서 그냥 스쳐지나갔던 사람들,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마주칠 일 없을 수도 있는 사람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런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얼굴들이 조그마한 프로필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중학생 시절 같이 바보같은 농담을 했던, 그 시절에는 꽤 친한 것 같았던 친구는 홍대 앞에서 유행할 법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많이 낯설어졌다. 옛날에 좋아했던 아이는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잠깐 아련해지긴 했는데 그것도 몇 년 전 일이라... 그 뒤로는 별 생각 안 들었다. 정말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듯 군복을 입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살던 친구는 뭔가 대단한 대회에서 상이라도 받은 듯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살더라. 나와는 반대로.​

지난 1년 반 동안 군대에 있었고, 부대 밖에서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다. 무슨무슨 거리두기 기사를 보면서 세상도 나와 함께 멈춰있다는 착각을 했었다. 말이 착각이지 그건 사실 바람이었다. 내가 무기력하게 멈춰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코로나를 핑계로 멈춰있기를 바랬다.

자주 끄적였던 내용이지만, 나는 좀 어리다. 유치한 걸 좋아하고 낙관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낙관적이라기보다는 진지한 걱정을 싫어했다. 암울한 생각을 하면 너무 깊게 빠져버려서 일부러 피했다고 보는 게 맞다. 전에는 그것도 나름 장점이지 하고 되는 대로 살았지만 시간은 나를 벌써 이십대 중반까지 몰아놓고 말았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진짜로 어렸을 적에는 이십대 중반이면 웬만큼 독립적인 어른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십대 중반의 나는 아직도 불안정하며 좋아하는 일만을 찾고 누군가의 잔소리 없이는 쉽게 방구석에 퍼질러져버리고 마는 사람인 것만 같다.

전역하면 컴퓨터를 맞추고 타블렛을 사고 영상을 만들어서 공모전을 나가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 년 반을 타의에 의해 멈춰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악기 배우기, 영상과 방송처럼 취미 수준의 일부터 모델링, 게임 개발처럼 진지하게 진로와 관련된 일들까지. 그렇다고 진지하고 거창한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냥 나도 일 년 넘도록 텅 비어있는 카톡 프로필에 올릴 만한 근황을 만들어야겠다. 굳이 대단한 공모전의 상장이나 멋들어진 배경의 여행 사진이 아니어도 좋으니.

-210731, <근황>

210712 저온화상

따뜻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몸이 좀 찬 편이라

별 것 아닌 온기에도 쉽게 길들여지고 맙니다

저는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데이고 말거든요

길들여진 사람은 온기가 사라진 뒤에야

뒤늦게 알아챕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자국을 보면서

저는 은은한 열상이 더 무섭습니다

아예 불타버렸다면 미련이라도 없지 않았을까요

어디서 듣기로 신경까지 불타버린 상처는

오히려 고통이 적답니다 회복은 어렵겠지만

저도 데여본 적이 있는데

겉보기엔 어떻게 어떻게 괜찮아져서

이제는 멀쩡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런데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회복되지 않는 듯 싶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쌀쌀맞게 대해주실래요

저는 두렵거든요 당신의 온기가 떠난 후

벌겋게 달아오른 기억이 쓰라려 오는 것이

- 210712, <저온화상>

210706 장마

서랍에 갈빗대를 잃어버린 우산 몇 개가 쌓였다

사실 앞으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괜히 버리긴 아까워서 구석에 박아뒀던 것이 몇 개가 쌓였다

집에 있어야겠다 날이 개거나 새 우산이 오기 전까지는

하루종일 회색인 날들이 이어지고

시끄러운 음악이 계속 아스팔트 위를 두드려서

어제는 옆사람 말도 잘 듣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회색인 채로 말없이 걸었다 그게 최선이었기에

핑계가 필요한 날들이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대꾸할 수 없는 일들에

괜히 축 처지는 날들에

그럴듯하게 댈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해서

타이밍 좋게 하늘이 새까매지면 애꿎은 비 탓을 한다

그러고는 마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산이 부러져서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다만 남 탓도 적당히 해야지

본인 기분을 동네방네 광고하는 피곤한 사람은 되기 싫다

그러니 오늘은

그나마 날씨는 선선해서 좋았다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가끔씩은 나쁘지 않겠다고 하겠다

- 210706, <장마>

210618 그림은 취미야

나는 취미가 좀 많다.

영화 보기나 노래 감상 같은 건 솔직히 취미로 치기 애매하다. 재미없는 사람이 새학기 자기소개 시간에 대충 얼버무리는 느낌, 아니면 조금 어색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상황에서 상대방의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디폴트로 나오는 답변 같달까. 세상에 영화 안 보고 노래 안 듣는 사람이 어딨어. 그건 취미라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이지. 이상형이나 희망 직업처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취향.

취미는 좀 더 간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악기 연주나, 홈베이킹 뭐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너무 간절해지면 그건 취미가 아니라 전공의 영역이다. 또한, 그 간절함이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욕구와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내가 좋아서 내가 간절해야 한다. 나에게 취미란, 진짜 간절하게 좋아하긴 하는데 그걸로 먹고 살기에는 운도 돈도 재능도 애매해서 어쩔 수 없이 적당히 간절해진 것들이다.

대충 내 취미를 세어 보자. 글 쓰는 거, 그림 그리는 거, 영상 만드는 거, 큐브도 조금 좋아한다. 그리고 콘솔게임. 게임이 어떻게 취미냐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게임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존재하고 그것을 간절함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내가 정의한 취미의 영역에 집어넣기 적합하다. 물론 취미를 게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영화보기나 음악감상을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재미없는 사람처럼 비춰지기 때문에 어디 가서 게임이 취미라고는 잘 말하지 않게 된다.

내 취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일정 수준의 노력과 간절함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써봐야 하고, 그림을 잘 그리려면 많이 그려봐야 한다. 글은 적어도 한 달에 한 편은 쓰려고 노력중이고, 그림도 작법서를 잔뜩 사서 읽었고 유튜브 그림강좌도 찾아본다. 일부러 애니로 본 만화들을 원작으로 찾아읽으면서 연출이나 인물 동세같은 걸 찬찬히 뜯어보면서 읽기도 한다. 학생 시절에는 영상에 대한 열정이 나름 대단해서 학교 끝나고 남아서 영상을 만들었고 시험기간이라 바쁜 와중에도 영상 대회가 있으면 무조건 나갔었다. 큐브도 한창 빠져있을 때 공식 열심히 외워서 대충 기록이 45초대쯤 나온다. 아쉽게도 내 큐브에 대한 열정은 수십 개의 F2L 공식을 외울 정도로 강하지 못해서 45초대가 한계다. 콘솔게임은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문화 자체를 좋아해서 블로그에 게임 글을 올리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다. 게임 관련 글과 영상을 만드는 것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재미있는 점은, 여기 언급한 취미들 중 큐브 빼고는 막연하게 진로로 삼을 생각을 해보았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는 꿈이 웹툰작가였다. 글 잘 쓰는 파워블로거가 꿈인 적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을 내는 건 내 버킷리스트 항목들 중 하나다. 게임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이 영화 칼럼니스트만큼만 메이저했더라면 나는 한 번쯤은 게임 칼럼니스트를 장래희망으로 잡았을 것 같고 영상은 내 취미들 중 제일 진지하게 진로로 고민하던 것이다. 진지하게 영상 관련 학과를 고민했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상 편집 프로그램 강좌를 찾아보고 그걸 직접 써먹어보는데 하루 대부분을 쓰던 때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늦게 빠져든 분야에 내 대학과 인생을 걸 정도로 과감하지 못해서 영상학과에는 못 갔다. 그렇게 재능 탓 돈 탓 무슨무슨 탓을 하면서 꿈이 되지 못했던 것들이 취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최근에는 그림을 굉장히 열심히 그린다. 맨날 정면 똑같은 표정으로 서있는 자세만 그리다가 역동적인 자세도 그려보려고 투시도 넣어보고 자세도 틀어보고 이것저것 해보니까 실력이 확실히 많이 늘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 지금은 여건이 되지 않아 활동이 뜸하지만 좋아하는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한동안 열심히 영상들을 찍어냈었다. 그렇게 살다보면 이 취미가 직업이 되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기가 만인의 소망 아닌가.

다만 한편으로는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건 더 이상 취미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내가 웹툰 마감에 쫓기면서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할 수 있을지, 몇백 장짜리 원고를 쓰고 매일 컴퓨터를 붙잡고 영상을 찍어내면서도 그것들을 취미로 즐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어찌보면 재능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운이 없어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내 취미들은 덕분에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취미로 남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때때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샘솟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취미생활도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단지 여기서 더 간절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더 간절해지면 슬퍼질 것 같다. 그냥 혼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고, 쓰고 싶은 글을 쓰다가. 가끔씩 어디서 배운 거냐고 재능 있는 것 같다고 호들갑 떠는 칭찬에,

'그림은 취미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정도만...

210522 리모델링

오월에는 변해버린 것들을 그리워합니다

말라서 군데군데 뜯어진 자국들 위로

새로 바른 페인트가 반들반들 빛나는데

무심코 기댔다가 옷에 묻어날까 영 찝찝한 것이

이제는 예전처럼 기댈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헤어짐은 만남보다 길고 깊습니다

습관처럼 새 휴대폰 새 장난감을 찾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오월에는

문득 낡아버린 것들이

낡아서 죽어버린 것들이

죽어서 변해버린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곧 당신이 없는 여름이 옵니다

당신마저 없는 여름이 옵니다

낯선 차양 밑에서 이젠 없는 풍경들을 더듬습니다

이렇게 더듬는 저도 곧 익숙해지고 말테지만

일단 오늘은 그것이 무슨 의미겠냐고 되뇌인 다음

잠시 여기 묻어있던 이야기 속에나 잠기렵니다

- 210522, <리모델링>

210423 잡념

밤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못다한 이야기들을 베고 눕는다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 많고 문장들은 점점 어려워진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지는데

가끔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 날에는 걱정에 눌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런 날에는

그래서 밤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글자들을 껴안는다

꼭 남겨진 것만 같을 때는 그만한 벗이 없다

그저 붙잡고 있는 모습이 가끔 보면 짝사랑같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뱉을 요량이 없으니

- 210423, <잡념>

210402 진심은 안타깝게도 익사하질 않는다

거짓말 속에 진심을 숨기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득 가여워진다

서투른 진심은 사람을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 빠뜨리는데

마음은 좀처럼 익사하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허우적대본 사람의 진심은 쉽게 벙어리가 된다

운없이 살아남은 진심들은

목소리 없이 갈 곳 잃고 표류하다가

종종 위태로운 거짓말에 실려 보내지곤 한다

차라리 함께 죽어버렸다면 좋았으련만

- 210402, <진심은 안타깝게도 익사하질 않는다>

210304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

이제 사람들은 다 비디오를 찾는다 라디오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

명절길 자동차 안 정도가 아니면 찾은 적이 없었다

비디오는 텍스트도 죽였다

뉴스 칼럼에서는 온통 텍스트의 시대는 갔다고 떠들어댔다

누구는 티비와 라디오에 비유를 했다 텍스트를 찾는 사람은 이제 딱 라디오를 찾는 사람만큼만 남을 거라고

정말로 사람들은 죄다 유튜브를 찾느라 바쁘다

어찌나 바쁜지 그마저도 편집으로 배속으로 듣는다 화면 속 사람이 숨 쉴 틈도 없이 단어들을 뱉는데 그제서야 자막이 필요하다며 텍스트를 찾는다 모순적인 사람들

비디오는 문장을 죽였다

이제는 덜 오글거리고 읽기 쉬운 문장들만이 희미하게 숨을 쉰다

나도 문득 부끄러워져서 한동안 입을 막았었는데 엉킨 생각들이 윙윙 잡음만 내서 그 모습이 꼭 고장난 라디오와 같았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

하지만 라디오 전파는 여전히 도로를 떠돌아다닌다

주파수는 여전히 소수점 아래까지 빼곡한데 그걸 누가 듣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방송국은 전국 곳곳에 라디오 전파를 뿌린다 어쩌면 아무도 듣지 않을 목소리를 비처럼 뿌린다

비디오는 텍스트를 죽였다

그런데 글쟁이들은 죽이지 못했는지

그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문장을 읽기나 할지도 모르는 문장을 정성껏 빚어 비처럼 뿌려댄다

그렇게 시대보다 느린 사람들은 어쨌든 펜을 돌려대니 갈 곳 잃은 문장들은 한심한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닌다 라디오 전파처럼

- 210304, <video killed the radio star>

210219 피터팬의 종말

어느샌가 사람들은 너무 커져버렸고 나는 뒤늦게 가방을 뒤적거린다​

내 가방 주머니에는 유치한 그림 끄적였던 노트 몇 권 변신하는 로봇 장난감 이젠 수집가들이나 찾는 옛날 게임기 따위의 것들

엄마는 진작 갖다버리라고 말했었는데 쓰잘데기 없는 정만 많던 아이는 못내 버리지 못하고 품고만 있었다

누구는 함께 있던 시간이 많아서 그게 아른거려서 외롭다고 하던데 내 기억 저편에는 혼자 장난감 쥐고 이것저것 끄적거리던 어린아이만이 있다

걔는 웬만하면 혼자 놀다가 질릴 때면 사람들 찾았는데 그때는 찾으면 사람이 있었다 굳이 복잡하게 인맥이니 뭐니 따지지 않아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널린 사람보다 비싼 장난감이 더 고팠다

그때 새 장난감만으로도 세상 행복했던 어린아이는 다 커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데 뒤돌아보니 아이의 뒷모습이 문득 외로워진다

꼬맹아 너는 대체 어떻게 그리 행복했었냐

아 나는 잊어버렸다 행복해지는 법을

내 가방에는 여전히 유치한 그림 로봇 장난감 옛날 게임기 가득한데 사고 싶으면 살 수 있는데 이제 나는 것들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사람이 고픈데 한창 내멋대로만 살아서 사람을 잘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 210219, <피터팬의 종말>

210206 공매도

나는 네게 마음을 빚졌다

어리숙해 빠진 나는

이 꿔다놓은 마음을 어쩔까 하다 다 써버리고는

이제 와서야 내 마음을 갖다 받쳐야겠구나 다짐했는데

아 사람 마음은 쉽게도 요동친다

요동치는 마음속에서

너무 늦어버린 내 마음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수지타산 안 맞는 거래 끝에

내겐 네 온기만이 남았는데

그렇게 네 마음을 벌어놓은 나는

어쩐지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네 순수한 마음을 그리워하는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 210206, <공매도>

210131 이월

일월, 시작의 설렘도 꺾여서 이월됐다

이월 되었어도 이월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으면 한다

이월돼서 좋을 거 없는 것들은 반토막내어

그저 여기 일월에 남겨두고

좋은 기억들만 이월로, 그렇게 이월됐으면 한다

- 210129, <이월>

210129 여는 노래

내 시절 꼬맹이들은 티비 앞에 앉아 의미도 모르고 꿈이나 희망 같은 것들을 노래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들은 유치한 것들이 되어버렸고 차츰 그런 것들을 요즘 꼬맹이들에게 양보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요즘 꼬맹이들은 더 조그만 화면 속에서 더 정신없는 것을 찾아서

이제는 다 늙어버린 꼬맹이들만이 그 시절을 찾는다

어디서 듣기를

그 시절 주제가들이 꿈이니 희망이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른이 된 어린이들이 의미도 모른 채 스쳐지나갔던 어린 시절 주제가들을 펼쳐보았을 때 위로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른은 아닌데 어린이보다는 머리가 굵어지고 삐뚤어진 나는 이제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수저 잘 물고 태어난 놈 것이고 질풍같은 용기니 새로운 세상이니 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던 시절이 그리워서인가

종종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면 쉽게 녹아버려서는 티비 앞에 앉아있던 꼬맹이가 되어버린다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그래도 날아오르고 싶어지고

이 작은 날개짓에 꿈을 담아서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고 싶어진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문장들에 푹 묻혀버린다

- 210129, <여는 노래>

210123 귀소본능

붉게 익어가든 차갑게 푸르든 새까맣게 칠해졌든 그 색에 관계없이

점처럼 찍혀있든 쏟은 듯 퍼져있든 흰 물감같던 구름의 농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늘만 보면 무작정 렌즈를 들이밀었다

맥락없이도 고개 치켜들고 오늘 하늘 참 예쁘네- 하면 마법이라도 걸린 듯 그랬다

그건 일종의 주문이었다

오늘이나 어제나 어쩌면 내일도 같은 하늘일텐데 무슨 유난이냐

그렇게 생각하는 나도 별 수 없어서 렌즈를 들이미는데

그건 아마 본능일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하늘 하나씩 품고 살아서

걔네들 사진첩 펼쳐보면 하늘이 그렇게 많다

특히 남들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더 많은 생각 때문에 더 많은 슬픔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무심코 돌아가고 싶다 마음 속으로 떠드는데

그렇게 몇 자 적고는 고이 품어놓았던 제 고향 사진을 걸어놓는다

그건 아마 본능일 것이다

- 210123, <귀소본능>

210116 내리사랑

나는 나보다 내 글을 더 사랑한다

나도 불완전하고 내 글도 불완전하지만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 많고 내 글보다 잘 쓴 글 많지만 이 녀석은 적어도 나보다는 활동적이고 당당해서 늘 어디에 갇혀서 묶여있던 나와는 반대로 하고 싶은 말 잘 하고 여기저기 얼굴도 잘 비춘다

다만 이 녀석이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가끔가다 우울해한다 늘 희망적이고 밝은 놈이 되고 싶어하는데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망상에서 그친다 또 특출나게 대단한 점도 없는 주제에 남들 따라가는 것도 싫어해서 인기도 없다

정말이지 모자란 녀석이다 마치 나처럼

나는 그런 내가 싫은데 나를 꼭 빼닮은 내 글은 나보다 더 사랑한다

나를 닮아서 사랑한다, 나는 그런 내가 싫은데

- 210116, <내리사랑>

210115 제목없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제목을 먼저 쓰고 글을 쓰는 사람

글을 먼저 쓰고 제목을 쓰는 사람

늘 나는 제목을 먼저 적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제목을 지어놓고 기다렸는데

그 애는 불현듯 마침표를 찍고 떠나버렸다

가진 거라고는 제목뿐이었던 제 목뿐이었던 나는

이제서야 이렇게 먼저 읊고는

끝에 와서야 없는 너를 붙이고야 말았다

- 210115, <제목없음>

210112 Good Boy Twist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잘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 놀기만 하는 사람이면 그것도 그것대로 낭만은 있겠으나 해야할 일도 내팽개쳐놓은 채로 팽팽 놀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다. 나는 잘 놀면서 또 할 일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 어이가 없고 주제넘으며 우스운 일이지만,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 나는 습관처럼 서울대보다는 고려대나 연세대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뭔가 서울대생은 공부만 할 것 같았고 고려대생 연세대생들은 고연전이니 연고전이니 신촌이니 안암이니 하면서 적당히 잘 놀면서 즐겁게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편견이며 착각에 불과했고 나는 그 두 학교의 문앞에도 가지 못했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만 내 타고난 성향이라는 것이 밖에 나가서 운동장을 도는 것보다는 차라리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쳐다보고 뭔가를 끄적대는 걸 좋아했다. 다같이 깔깔대며 웃다가도 혼자인 날에는 뜬금없이 우울해지고 처음 본 사람에게 넉살좋게 다가갈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장점을 하나 찾자면 남들보다 머리가 조금 잘 돌아갔다는 것. 그래서 성적은 꽤 괜찮게 나왔었는데, 그러면서도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나 하는 재미없는 범생이는 되기 싫었다. 어쩌면 영상 제작에 미쳐서 PD를 꿈꿨던 것도 그때문일지 모르겠다. 종종 야자시간마다 영상 공모전을 핑계로 삼각대를 들고 친구들과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렇게 야자를 째는 것이 내 기준에서 범생이가 할 짓은 아니었다. 그렇게 살면 적어도 조용히 공부만 하는 놈처럼 보이진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 전략은 먹혔다. 야자 째고 친구들과 노래방이니 엽기떡볶이니 생과일주스집이니 학교 뒤편 놀이터니 잘만 놀러다녔다. 그렇게 사니 어렸을 적 생각했던, 그 적당히 할 일 하면서 적당히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스무살이 되고 스물셋이 되니 같이 돌아다녔던 친구들은 조금 더 그럴듯한 것을 찾기 시작한다. 놀이터보다는 시끄러운 곳을 찾고 과일스무디보다는 쓴 것을 마신다. 반면 여전히 그 시절의 렌즈 안에 갇혀있는 나는 노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되어버렸다. 잘 노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 막연하다. 대체 잘 노는 사람이 무엇이란 말인가. 매일같이 클럽에 가서 즐기는 사람? 각종 행사나 술자리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사람? 인스타그램에 여기저기 여행다닌 사진을 올리는 사람? 확실한 것은,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가벼운 관계가,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꽉 찬 일정이 싫었던 나는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 춤을 추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도통 저들이 무슨 춤을 추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어떻게 춤을 배워왔는지 지금은 또 어디서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은 각자의 춤사위로 바쁘다. 나만 이렇게 조용히 엉거주춤 겉돌고 있는 것 같다. 춤추는 법도 모르는데 어찌 날아오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치게 되는 것이었다. 나도 그 춤을 알려달라고, 나도 그 춤을 즐길 수 있게 해달라고, 나도 너희들 사이 섞여서 춤출 수 있게 해달라고...

- 210112, <Good Boy Twist>

210106 INFP형 인간

주목받는 건 좋은데 나서는 건 싫고

예술은 좋은데 배고픈 건 싫고

사실 배고픈 것보다 무관심이 더 싫고

망상은 좋은데 실천하는 건 싫고

관계는 좋은데 사람은 무섭고

목표는 있는데 계획은 없고

머리는 좋은데 공부는 안하고 - 이건 우리 엄마가 맨날 하던 말이고

묵혀둔 말들은 많은데 표현은 서투르고

비밀은 많은데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고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시작은 어렵고

완벽한 게 좋은데 완벽해지기에는 게으르고

끝까지 읽는 건 어려운데 후유증은 길고

뜬금없이 빠져들어서는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하고

끄적대는거 보여주고는 싶은데 조금 부끄럽고 - 그래서 이렇게 몰래 보여주고

어색한 분위기는 숨막히는데 먼저 말 꺼내는 건 어렵고

예민한데 예민한 걸 티내기는 싫고 - 하지만 늘 실패하고

유명한 건 싫은데 가끔은 유명인이 되는 것을 동경하고

신을 믿지는 않는데 가끔은 신의 존재에 의지하고

사람도 잘 안 믿는데 가끔은 믿는 사람 있어서 다 말해버리고

말 막 하는 사람 미워하는데 가끔은 사람 쉽게 미워하는 내가 더 밉고

나같은 사람 싫어하는데 가끔은 내 주변에 나같은 사람 있었으면 싶고

자주 우울해하는데 내 삶도 썩 나쁘진 않다 싶고

이런 내 성격 지랄맞은 거 아는데 그래도 이해해주는 누구 있었으면 싶고

그래서 사랑은 하고 싶은데 이별은 죽을만큼 두렵고

그래서 혼자 있고는 싶은데 또 외로운 건 싫다

- 210106, <INFP형 인간>

210104 voyager

몇 년인가 당신의 주위를 떠돌았고

이제는 떠나려고 합니다

저는 이 궤도를 벗어나 멀리 날아가서는

저 멀리 날아가서는 작은 점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제 운명이었으니

누구는 떠날 때는 조용히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계속 이야기하겠죠

제가 본 세상의 아름다움에 관해

제가 품었던 우주의 황홀함에 관해

다 낡아버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뿐이니까요

저는 곧 죽어갈 것입니다

아니 저는 살아있기야 하겠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곳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것이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죽어가는 저에게도 부탁이 있는데

멀어지는 순간에도 당신을 바라보던 저의 눈을

칠흑 속에서도 별들을 이야기하던 저의 목소리를

이제 저는 닿지 않겠지만 기억해주시겠습니까

- 210104, <voyager>

210101 신년사

2021년입니다.

2020년은 유독 길기도 했고 짧기도 했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내기에는 너무 짧았는데, 견뎌야 하는 시간은 또 너무 길었습니다. 작년의 오늘에 세웠던 계획들은 어떻게 되셨나요. 계획이라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 절반만 이루셨어도 성공하신 겁니다. 특히 올해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울해진 하루들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눈치 없는 세상은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더군요. 물론 간혹 그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적어도 이번에는 그렇게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그나마 합리적인 변명이 있지 않습니까. 다 저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치고 털어버립시다. 충분히 노력하셨고 잘해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래 이맘때쯤이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데,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악의 해라는 평가가 많더군요. 예상했던 지극히 당연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반면 예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갖 암울한 소식들은 뉴스를 채우더니 전염병처럼 번져서는 겨울의 설렘까지도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살면서 이렇게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2020년이 최악이긴 했나 봅니다.

​다만 2020년이 꼭 불행하기만 한 한 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저도 조금 징징대긴 했지만, 분명 달력의 모든 페이지가 나쁜 일들로만 빼곡히 채워진 것은 아니었거든요. 찰리 채플린의 원문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같은 한해였더라도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을 아시는지요. 흑사병 시대를 배경으로 써진 책인데, 1억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최악의 상황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분위기는 밝다 못해 야하기까지 합니다. 세상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잘만 사랑하고 행복하게 잘 지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국에 막 놀러 다니고 여럿 뭉쳐서 다니라는 뜻은 아니구요, 이렇게 미쳐가는 세상에서도 나름의 즐거움은 존재하니 각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렇게 박혀 있게 되었지만 대신 글을 쓰게 되지 않았습니까. 2020년이 없었다면 이렇게 문장 속에 파묻혀볼 일도 없었을 겁니다.

매년 적용되는 뻔한 말이지만, 올해는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올해에는 웃는 얼굴을 직접 볼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리를 좁힌 채로 함께 웃을 수 있는 2021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 210101, <신년사>

201228 이천이십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재작년이었나 썼던 글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올해는 유독 긴 날들이 많았고 나는 또 투덜대기 바빴네

전날의 다짐이 무색해질 만큼

온갖 암울한 소식들은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여기저기에 달라붙었지

거리 간판이며 소음이며 사람 온기며 내 옷가지까지

한낱 평범한 이십대인 나는 별 수 있나 멍하니 마스크니 군장이니 하는 것들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찬찬히 널부러져버리고 말았지

그렇게 깔려서는 시끄럽게 중얼댔다 이건 아니지 세상이 미쳤어 불평을 늘어놓고

예고도 없이 어그러진 세계에 떨어져서는

이곳 우울해진 하루들에 적응하려 애썼건만

뒤돌아보니 언제는 내가 세상 섞여 살아갔었나 늘 낑낑대지 않았나 내가 본 나는 늘 주변인이었는데

세상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으니 적응이 아닌 순응을 목표로 단 안주하지는 않도록 그게 이천이십일의 다짐이다


- 201228, <이천이십>

201224 snowman

조용히 얼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이 내 바람이었으니

아무 말도 않고 얼어버려서는 해쳐버리고 말 것이다

닿는 사람 살까지 쩍하고 달라붙어 찢어지도록

세상이 이토록 매섭게 몰아치는데 나도 지쳤다 난 얼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두커니 얼어있으려 했건만

빌어먹을 세상은 얼어있기에는 또 너무 따뜻해서

제기랄 나는 또 녹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 201224, <snowman>

201223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나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

이유를 묻는 너를 앞에 두고 네 방 침대 밑에 귀신이 있는 것보다 사람이 있는게 더 무섭지 않겠냐 그런 낡아빠진 비유를 들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사람 때문에 운 적은 있어도 귀신 때문에 운 적은 없었고 귀신한테 받은 상처보다는 사람한테 받은 상처가 더 컸다 그래서 귀신보다는 사람이 원망스럽고 무섭고 두려웠고 미련했던 적이 많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래도 귀신보단 사람이 낫다

무섭기도 하고 상처받을 걸 알아도 그렇다 귀신보단 사람을 믿고 싶고 믿게 되니

아무래도 내 방에도 귀신보다는 사람을 들이는 게 낫겠다 싶다

- 201223,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201219 멈춰있는 마음

정전기의 전압은 수만 볼트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전기로 인해 감전사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하면 정전기는 멈춰있기 때문이다

머물러있는 전기는 흐르지 않는다 잠시 따끔하고 말 뿐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멈춰있는 말들이 있다 그 속에 마음이 있다

아무리 큰 마음이더라도 끄집어내기 전에는 멈춰있고 멈춰있는 마음은 흐르지 못한다 분명 여기 고여 있기는 한데 뱉지를 않으니 단지 머물러 있다

그런 말들은 깊은 곳에서 굳어가는 마음들은

그럴듯한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잊혀지고 외로워지고 오로지 멈춰있던 사람만이 그 따끔함을 기억한다 정전기, 마치 정전기처럼

- 201219, <멈춰있는 마음>

201215 마이크 테스트

아 아

하나 둘 하나 둘


저도 짐작하고 있어요

별 일 없겠죠 아마도 어제가 그랬고 저번이 그랬듯

오늘도 비슷하겠죠

늘 하던 얘기를 하겠죠 늘 있는 비슷비슷한 일들에 관해서


살다 보면 말하기 싫은 날도 있는데

세상은 저를 가만히 냅두지 않겠다 하니

이거 참 뭐라도 말은 해야 하는데

제 목소리는 어제와 다름없이 꽝꽝 울려대겠습니다

말하는 저도 시끄러울 만큼


그 가끔은 조용한 날도 있었으면 하거든요

그냥 혹시나 싶어서

솔직히 조금은 바라는 마음으로 아 아 해봤는데

어김없이 메아리는 잘만 울리더군요


역시나 오늘도 별 일 없네요

아쉽지만 오늘도 시끄럽겠습니다


- 201215, <마이크테스트>

201213 환상통

또 저려온다

아련한 게 욱씬거린다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눈을 감으면 노이즈 낀 듯한 시야에 무엇인가 어른거리고

가령 야자 시간 교실 뒷편의 스탠드 책상이라던가

그 애와 걷던 낙엽 바스락거리던 하굣길

덜 여문 달 아래 알맞게 서늘하던 새벽 냄새

오렌지색 햇빛 나른하게 덮힌 오후 같은 것들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것들은

한때 내 목밑까지 차올랐었고

나는 깊숙히 잠겨 젖어버렸다가

지금은 다 말라서 쩍쩍 갈라졌는데

이제는 또 것들 때문에 텅 빈 듯 욱씬거린다

- 201213, <환상통>

201211 이세카이

매일 뉴스에는 심각한 표정의 사람이 한 명 나와서 웬 숫자를 줄줄 읊어대는데 그걸 본 사람들은 눈만 뻐끔 내놓고 다니고 그마저도 거리에 사람들 바글바글했던 것이 언제적인지 익숙했던 장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아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냥 올해는 잘될 줄 알았는데 아니 잘되진 못해도 여느 때와 같을 줄 알았고 그것이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눈을 감았다 뜨고 나니 여기는 또 어딘가 내가 알던 세계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우리는 기약없는 이세계에 갇혀버렸다

이곳에는 관중도 없고 축제도 없고

무언가 사랑을 말하는 입술도 없고

우리는 거리를 둔 채로 멀리서 희미한 것들만 오가는데

- 201211, <이세카이>

201201 조물주의 축복

'어제도 그 뭐였더라,

사람들한테 재능을 1인분씩 나눠주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마지막에 그게 딱 1.5인분이 남은거야.'

'...이걸 또 반으로 나누자니 애매하고 해서

그냥 앞에 사람한테 1.5인분 다 부어줬거든. '

'근데 또 1.5인분이면 좀 애매하지 않나 싶어서

그래 기분이다 선심 썼다 하고

옆에 열정이랑 야망이랑 이것저것

그냥 남은 거 싹 다 쏟아부어줬지.'

'재능도 평균 이상으로 있고 열정도 듬뿍 줬으니

걘 아마 자기 재능 펼치며 행복하게 살겠지?'

- 201201, <조물주의 축복>

201129 나의 10대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나는 적당히 이름난 학교 들어가면 인생 잘 풀릴줄만 알았건만 그게 아니더라 세상이 원하는 학벌이나 스펙의 기준은 내 생각보다 훨씬 높더라 그러니까 차라리 바짝 고생해서 나보다는 고민 덜 하고 열등감 좀 덜어내고 살아라​

악기 하나쯤 배워놔라 귀찮겠지만 요즘보면 악기 잘 다루는 사람이 그렇게 멋지더라 자기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더 멋지더라 이왕이면 건반이나 베이스를 배워라 걔네가 간지나니깐

​사람 너무 쉽게 미워하지 마라 그때는 당연히 미워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외로워지는건 나더라

친구들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당연하게 여기면 소홀해지고 소홀해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쓸쓸해지더라 그나마 아직 니 편인 사람들 잘 잡아둬라

감정에 솔직해져라 표정에서 티 다 나는거 병신같이 감정 숨기는 척하면서 앓지말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시원하게 차이고 끝내던가 해라

- 201129, <나의 10대에게>

201125 베르테르와 고양이

고양이는 웬만하면 귀엽더라

우리도 고양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처럼 말라도 귀엽고 살쪄도 귀엽고

모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모두가 고양이만큼 객관적으로 귀엽다면 사랑스럽다면

아마 그곳에는 슬픈 사랑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면 대부분 이루어지고

간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차피 내가 귀여우니 괜찮다며

다른 귀여운 사람 만나면 된다며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아마 그곳에는 크립도 없을 것이고 이브나도 없을 것이고

여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끄적이는

찌질한 글쟁이도 없을 것이다

- 201125, <베르테르와 고양이>

201108 습작

노력한 만큼 사랑할 수는 없더라

밤을 새워도 완성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긴 시간을 바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

저기 누구는 멋들어진 걸 쉽게도 쓰던데

나는 머리를 싸매도 거기서 거기인 듯해서

널 생각하면서 서투르게 끄적여대놓고

어설픔이 부끄러워서 습작이라 둘러댔지만

그것도 내 전부였었어

그 습작 한 켠에는 널 생각하던 시간과 마음과

-201108, <습작>

201028 낭만에 관하여

난 글쓰는 게 좋다 했더니

동기가 산 속에서 시쓰다 아사한 시인 이야기를 했다

와 그거 참 낭만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죽기는 싫다 나도 사람이라

부가 고프고 명예가 고프다

타고난 흥미가 원체 돈 벌기 힘든 일들인데

딱히 돋보일만한 재능도 없어서리

산중에서 끄적거리면 낭만은 있겠다만

그냥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다가 집으로 돌아와

기타줄이나 튕기고 뭐라도 끄적거리는게 내 낭만의 한계겠다

그래서 낭만이 뭐냐 했더니

선임이 인생은 낭만이고 낭만은 섹스라고

젊을 때 실컷 즐기다가 뒤지라고 이야기를 했다

- 201028, <낭만에 관하여>

201030 떨어지는 것들

어지러운 계절이 온다

하늘은 일그러지고 일렁거리고

무너질 듯 걸려있던 것들이 쏟아진다 발밑으로

붉게 쏟아져서 발끝에 푹푹 채인다

쓸어내야 할 것이 늘었다

사람은 외롭고 사람이라 외롭고

저기 누구는 죽어간다는데

그런데도 세상은 잘만 돌고

사람들은 우리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시끄럽다

우리는 견고해보였지만 위태롭게 걸려있었고

그중 하나는 둘은 결국 쏟아지고

누구는 표정을 찡그리며 쓸어야 할 것이 늘었다고 하고

누구는 그것이 필연이라고 하고

- 201030, <떨어지는 것들>

201027 재생목록

질리지 않는 곡들이 있다

나에겐 브로콜리너마저의 곡들이 그랬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들의 음악을 들었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은 보편적인 노래를 들었고

유자차 마지막 구절은 아직도 들을 때마다 별 일도 없이 아련해지고

내 엠피쓰리에는 걔네 노래만 몇십곡이 있어서 야자시간 엠피쓰리 빌려간 친구들이 뭐 넌 처음보는 노래가 이렇게 많냐 그런 소리들을 했는데 그렇게 말만 하고 들어보진 않더라

나도 일단 유행에 뒤쳐지기 싫어서

습관처럼 멜론 탑100을 듣기는 하는데

아직도 걔네 노래만한 게 없어서 습관처럼 자기 전에는 다섯시반을 듣는다

좋더라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면 또 처음 듣는 노래같이 고요해지고

질리지 않는 곡들이 있다

나에겐 에픽하이의 곡들이 그랬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들의 음악을 들었고

적어도 며칠에 한 번은 백야를 들었고

당신의조각들 마지막 구절은 아직도 들을 때마다 별 일도 없이 아련해지고

- 201027, <재생목록>

201018 잘못의 유통기한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노래가 늘었다.

그럭저럭 좋아하던 가수가 있었다.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쓴 멜로디를 좋아했고 노랫말을 좋아했다. 종종 그의 음악을 찾아들었고 노래방에 가서 몇 번 부르기도 했다. 특히 고양이에 관해 쓴 곡은 나의 18번이었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디스패치에서 그의 과거 범죄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몇 년 전에 범죄를 저질렀던 그는 몰카범이었다. 역겨웠다. 나를 위로했던 곡들이 그런 범죄자의 손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해서 그 사건 이후로 그의 노래를 듣지 않았다.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듣지 않게 된 가수가 그 한 명뿐만은 아니었다. 쇼미더머니에서 처음 보고 응원하기 시작했던 모 래퍼는 학교폭력 소식을 알자마자 정이 뚝 떨어졌다. 그의 솔로곡은 별로 듣고 싶지도 않고 단체곡에서나 가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확실히 잘하긴 하는데 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또 범죄에 엄격한 사람이냐면... 그건 또 아닌 듯 싶다. 마약사범인 이센스의 에넥도트는 내가 처음으로 발매일을 기다리며 한정판을 구했던 앨범이었다. 잔나비의 곡들은 아직도 좋다. 그 곡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의 손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좋고 여전히 들으며 4명의 신곡을 기다린다. 빅뱅도 마찬가지다. 승리가 얼마나 더러운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도, 탑과 지드래곤의 마약 사실도 알지만 5인의 빅뱅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아이돌이었고 그들의 곡들은 여전히 내 추억 한 곳을 장식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4인으로라도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음주운전을 한 노홍철도 무한도전 으로 복귀하길 바랬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길도 돌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스디스의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방에 가면 이수 노래도 자주 부른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사람인가.

얼마 전, 우연히 버스 안에서 그 몰카범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흘러나와 오랜만에 들은 그의 곡은 여전히 구역질나게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근 3년만에 내가 좋아했던 그 곡을 다시 찾아들었다. 여전히 그 곡은 짜증나게 따뜻했다.

그리고 얼마 전, 좋아하던 가수의 학교폭력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엔 박경이었다. 나는 그의 음악을 좋아했고 데뷔 전 곡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응원하던 가수였는데. 꺼림직한 기분에 그의 곡들을 하나하나 지우려고 하는데 이번엔 블락비의 음악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블락비의 음악을 지워야하나 냅둬야하나. 한편 몰카범이었던 그 가수는 정말 오랜만에 앨범을 냈더라. 또 찾아듣게 될까봐 이번엔 아예 듣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다. 그것이 학교폭력이나 마약이나 음주운전처럼 중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나도 마음 한 켠에는 용서를 구하지 못한 잘못들이 쌓여있다. 질투심에 미워했던 친구들의 이름과 이해해주지 못했던 도움반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방관했던 반 왕따의 이름은 아직도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고 배척할 만큼 완벽히 깨끗한 사람인가.

아무튼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좋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다. 몇몇 죄들은 사람까지 미워지게 만들고, 몇몇 사람들은 죄까지 쉽게 용서하게 만든다. 과연 잘못의 유통기한은 얼마만큼으로 해둬야 하는걸까. 얼마나 지나야 잘못을 용서할 수 있고 얼마만큼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그들의 진심을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미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게 된 나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201018, <잘못의 유통기한>

201010 갈릴레이

세상은 외쳤다

공대를 가라고

니 뭐 좋아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취미로 하고

그냥 공대를 가라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놓고

몰래 반항을 저지르던 우리는

현실이라는 선고를 받고서도

아직 이렇게 살아있다고

지금처럼 소심하게 끄적이고

나지막하게 읊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고

살아있어서 글을 쓴다고

- 201010, <갈릴레이>

201001 의미

적당히 선선한 바람과

채 가시지 않았던 팔구월 여름의 열기가 돌때쯤

나는 하지 못한 말 이루지 못할 말을 입 안에 머금고

다이소에서 친구들끼리 돈 모아 산 만원짜리 삼각대를 들고

여기저기를 잘도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미래를 들고

여기저기를 바쁘게 쏘아다닐때도

나는 후드 주머니에 양손 찔러넣은 채로

저쪽에서 문제집 끄적대는 너를 흘깃흘깃 쳐다봤더랬다

친구가 그랬다

이 멍청아 말도 못 붙이고 찐따처럼 그러고 있을거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의미가 없어도 좋았었다

그 애를 쳐다본 시간들이 무의미해도 좋았었다

결국 엇나가고 엇갈리게 되었을 때에도

그래서 고개 푹 숙이고 있다가

곧 너 사라진 반대편을 향해 고개를 들 때도

그렇게 너를 쳐다봤던 시간들은 후회스럽진 않았더랬다

그런데 지금 나를 봐,

주변에서 그토록 어깨를 떠밀었던

중요하다고 목소리 높이던 그 일들은

도통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는데

그 십육년에 의미없이 쫓아다녔던 네 뒷모습은

이제와서도 이렇게 어른거리는지

그 의미없는 시간들은 왜 그토록 행복했고 돌아가고 싶은 건지


  • 201001, <의미>

200918 여름이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도는 밈이다. 밈의 요지는 대략 어떤 아무말 뒤에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을 붙이면 뭔가 문학적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울리지 않는 알람 소리에 늦잠을 잤다.

여름이었다.

별로 문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아무튼 없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들리지 않는가.

사실 여름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계절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푹푹 찌는 더위에 무섭게 달려드는 모기들... 추울 때에는 껴입으면 따뜻하기라도 하지 더울 때에는 에어컨 바람 밑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통 방법이 없다. 벗고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러고 다닌다고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특히 나에게는 여름이 더 최악의 계절이다. 더위도 많이 타는 데다가 조금만 걸어도 땀을 비오듯 흘리는 체질인 나는 여름과 통 맞질 않는다. 때문에 여름에만 잠깐 쌀쌀한 해외로 나가서 살다오는 것이 꿈인 적도 있었다. 여름이 오면 빨리 여름이 지나가길 기도한다. 근데 왜 지나고 뒤돌아보면 여름은 그토록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날씨로 생각해보면 여름은 낭만적일 이유가 없는 계절이다. 차라리 선선한 봄이나 가을이면 모를까. 꽃피는 봄은 사람을 괜히 두근거리게 만들고, 낙엽이 떨어지는 겨울은 사람을 왠지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겨울은 차가웠지만 뭔가 들뜨는 기분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마저 없었다면 겨울은 지금보다 조금 더 외롭고 쌀쌀한 계절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여름의 날씨는 불쾌할 정도로 푹푹 찌고 답답한데 겨울과는 달리 크리스마스같은 낭만적인 기념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는 설렘이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고, 봄이 찾아오고, 올해에는 뭔가 잘 될 것 같은 그런 막연한 느낌이 딱 여름까지 남아있었다. 그러다 가을이 되면 결국 올 한해도 별 일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한다. 문학으로 따지면 대충 기승전결 중 '승'이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무언가 바뀔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고조되는 희망에 젖어 살다가, 곧 그 희망도 별 성과 없이 증발되어 사라져버림을 알게 되고, 다시 지나간 한해를 정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한참 희망에 취해 살 때가 여름인 것이다.

추억은 미화된다. 불쾌한 날씨는 사실 나중 지나고 보면 크게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땀을 흘리고 에어컨 바람을 찾는 와중에서도 뭔가 잘 풀릴 거라는 희망을 품던 기억만이 남는다. 좋아하던 아이와 에어컨도 없는 학교 복도에 나와 앉아서 풀던 문제집,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첫 축제, 친구들과 영상동아리를 만든 후 첫 단편영화의 야외촬영...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대학생활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단편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품었던 희망은 황홀함으로 변해 여름의 기억에 스며들어 있었다.

뜨겁게 쏟아지던 햇빛 아래서 비오듯이 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봄의 설렘에 취해있던 계절.

그게 나의 여름이었다.

200916 2020년의 우리들

우리가 모든 게 이뤄질거라 믿었던 그 날은

어느 새 손에 닿을 만큼이나 다가왔는데

그렇게 바랐던 그 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2009년의 시간들

브로콜리 너마저 - 2009년의 우리들 중에서

이름에 년도가 들어간 노래들은 왠지 더 아련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름에 년도가 들어간 노래들 중 찾아듣는 곡은 이거랑 <2008년 석관동> 뿐이지만.

사실 이 곡을 알게 된 건 2015년 즈음이었다. 2009년에 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존재조차 모르던 초등학생이었고... 2015년에는 제목 속 2009라는 숫자가 참 아련했는데 이제는 2015라는 숫자도 아련해질만큼 긴 시간이 지났다.

'그때는 그럴 줄 알았지, 2009년이 되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너에게 말을 할 수 있을 거라'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면 뭔가 바뀔 줄 알았다. 2019년이 되고 2020년이 되면 뭔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2018년 고등학교 졸업을 맞이하고 썼던 글에서 그랬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디즈니 영화가 좋고 술담배는 왠지 꺼려진다고. 마음껏 꿈꿀 수 있던 십대에 조금 더 머물러있고 싶다고.

그 이후로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바뀐 게 없는 것만 같다. 내 몸은 이 좁은 부대에 갇혀있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디즈니 영화가 좋고 술담배를 멀리하게 된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술 얘기나 여자 얘기들 속에서 나는 끼어들 틈이 없다. 꼴에 순수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그렇지, 너무 오래 십대에 머물러버린걸까.

당연히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순 없겠지. 전역하면 본격적으로 학점도 챙겨야하고, 코딩 실력도 남들한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쌓아놔야 하며, 대외활동이든 해외여행이든 뭐든 경험도 만들어야 한다. 토익도 보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항들은 무궁무진하고, 난 지금껏 그것들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지마는... 전역 후에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취준이니 뭐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옥죄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방황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끔 길을 찾은 것만 같은 때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쉽게 휘둘리는 나는 또 방황하고 있다. 전역하고 나면 정신을 좀 차리려나. 한 2025년쯤 되면 방황하지 않으려나. 아니면 계속 방황하면서도 지금처럼 어떻게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나...

모든 게 이뤄질 것 같았던 2020년이 오늘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그 꿈만 같았던 2020년은 날개를 펼치지 못한 채로 내 마음 한 켠에 머물러 있다.

200910 et hoc transibit

'et hoc transibit'

라틴어로 된 이 짧은 글귀는 입대 후 훈련소 생활을 끝마치고, 자대에 와 처음으로 휴대폰을 받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 카톡 상태메세지에 박혀있는 글귀이다. 한국어로 번역한 뜻은 이렇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듯 싶지만 조금은 낡은 것 같기도 한 이 글귀. 이 글귀가 입대 후 반 년 동안 내 카톡 상태메세지를 장식하게 된 계기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신교대 생활에 있었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3월 초, 나는 입대했다.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교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다시 벚꽃이 필 때쯤 입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3월에 입대 신청을 했고 계획대로 3월에 입대하게 되었으나 세상은 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입대를 한 달 가량 앞두고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라는 변수가 터져버렸다. 우리 동네에서 발생한 확진자와 함께 잡았던 약속들은 줄줄이 취소되었다. 나는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코로나 때문에 휑해진 거리를 뒤로 한 채 훈련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코로나로 인해 훈련소의 풍경도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바뀌었다. 나와 아버지는 예정된 입소 시간을 몇 시간 앞두고 훈련소에 도착했고, 원래는 차 안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뒤 오지 못하신 어머니와 친구들과의 마지막 전화 통화를 마치고 입소식에 가려 했건만... 코로나 문진으로 인해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마지막 대화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예정보다 훨씬 빨리 훈련소로 걸어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께서 내 외투를 든 채로 훈련소 안쪽으로 줄맞춰 들어가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셨다. 눈물 때문에 아버지의 표정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어깨가 평소보다 조금 더 축 처져 있었던 것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입소식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 가득한 곳에서 갑작스럽게 온도를 재고, 군복 입은 사람들이 주는 표를 작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오늘 내가 눈을 감으면 오늘 일어났던 곳과 다른 곳에서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 도통 피부로 느껴지질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신교대의 천장이 아니었다. 동원훈련 생활관의 천장이었다.

갑자기 부모님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나는 예상치 못한 격리를 당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던 만성 기침 때문에 코로나 의심 환자로 분류된 탓이었다. 예상하던 신교대 건물이 아닌 동원훈련 생활관 건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답답한 마스크 하루종일 얼굴을 덮은 채 밖으로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동기들과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TV나 전화는 물론이고 인편도 받지 못했다. 실수로 손목시계도 놓고 가서 시간도 알 수가 없었다. 이 건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회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 속에서 틈틈이 들려오는 교관님의 호통 소리까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색하고 답답한 공기 속에 고립된 채로 흘러간 2주는 내 생애 가장 길었던 2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2주는 결국 흘러갔다. 격리 생활을 마치고 신병교육대대 건물로 이동하면서, 이제는 좀 괜찮겠지, 버틸 만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격리 기간동안 하지 못했던 훈련을 남은 기간 동안 전부 소화해야 했고 매일 빽빽한 훈련 스케줄 속에서 하루가 굴러갔다. 게다가 남은 기간동안 배식분대까지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점호를 받고 아침구보를 한 뒤에 밥통을 닦고 바로 훈련을 받은 뒤 다시 밥통을 닦고 훈련을 받고 밥통을 닦고... 정말 숨 쉴 틈이 없었다. 남들 쉴 시간에 배식과 식기세척을 해야 하니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하루종일 우울감에 빠져 동기들에게 비관적인 소리를 해댔다. '나는 여기서 도저히 더 버틸 자신이 없어'라던가, '그냥 다 때려치고 나가고 싶다'라던가. 평생을 나태하게 제멋대로 살던 사람에게 하루종일 해야 할 일이 생기니 적응을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교대에서 맞는 두 번째 주말이었다. 입대 후 정말 오랜만에 자유시간을 받았다. 하지만 집에 있을 때처럼 휴대폰을 볼 수도, 컴퓨터를 할 수도, TV를 시청할 수도 없으니 도통 할 게 없었다. 동기들과 몇 마디 나누다가 금방 지루해진 나는 신교대 내 도서관에서 평소 읽지도 않던 책을 몇 권 골라왔다. 그중 한 권이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이었다. 외국어라면 질색을 하는 나였지만 라틴어라는 언어가 주는 묘한 신비감에, 뭐에 홀린 듯이 그 책을 뽑아들고 생활관 침상에 앉아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 책에서 본 글귀가 바로 그거였다. 'et hoc transibit'.

옛날 옛적, 한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큰 절망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긴 반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실로 말도 안되는 주문이었고, 반지는 끝내주게 잘 만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글귀는 찾을 수 없었던 반지 세공사는 현명하기로 유명한 솔로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때 솔로몬이 알려준 글귀가 'et hoc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그리고, 그 글귀를 받은 왕은 크게 감탄하며 반지 세공사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해보니, 몇 년 전 아버지의 카톡 상태메세지에 한동안 걸려 있던 글귀였다.

내가 어렸을 때,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살던 집을 팔고 천장에 곰팡이가 슬고 형광등이 불규칙하게 깜빡거리던 월셋집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어른들의 어려운 사정들을 알기엔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었으나 어머니의 심각해보이는 통화 소리로부터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 상황이 어렵고, 우리 집에 꽤 많은 액수의 빚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살던 집을 팔고 저 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몇 년동안 아버지의 상태메세지는 그것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카톡을 열 때마다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 옆에 매일같이 걸려 있던 그 글귀가, 족히 수천 번은 더 봤을 법했던 그 글귀가 카톡도 없이 낯선 곳에 떨어진 나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맞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나갔고, 지나갈 것이다. 그토록 길었던 동원훈련 생활관에서의 격리 생활도 결국 지나갔고, 행복했던 사회에서의 마지막 겨울방학도 결국 지나갔다. 훈련으로 가득찬 신교대에서의 힘든 하루하루도 결국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놀라울 만큼 편해지는 것이었다. 그래. 결국 지나가겠지. 지금이 죽을 만큼 힘들어도, 매일매일 꽉 찬 훈련 일정들이 그토록 두려워도, 그 순간들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남들이 쉴 때 바로 밥통을 닦야 할 때도 생각했다. 결국 지나갈 일이라고. 결국 해야 할 일이고 끝나는 일이니 최대한 즐겁게 하자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식기세척을 했고 그러자 힘든 배식분대 일도 즐겁게 지나갔다. 매일 일과가 끝나고 저녁점호를 받은 뒤에도, 꿈 같던 주말이 끝난 후에도 침상에 누워 생각했다.

'결국 오늘도 지나갔구나.'

그때 이사를 한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월셋집에서 벗어나 진짜 우리 집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심각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상태 메세지에 걸려 있던 글귀도 내려갔다. 결국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아버지의 그 글귀가 내 상태 메세지에 걸려있다.

동기들과 함께했던 신교대 생활도 지나갔다. 늘 함께일 것 같았던, 정들었던 신교대 동기들과도 작별을 말하게 되었다. 아쉬운 헤어짐을 뒤로 하고 자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만났던 새로운 사람들도 하나둘 지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언젠간 지나가게 되겠지. 지금은 끝이 없어보이는 군 생활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또 이곳에서의 생활을 추억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군대에 있는 1년 반 동안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즐거운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지나갈 일이다. 전역한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라리 군대에 있을 때가 나았지 싶을 정도로 힘든 일들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행복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도 결국 지나갈 일이다. 신교대에서 읽었던 책 속 글귀 한 줄은, 즐거운 순간은 최대한 만끽하되 낭비하지 않고, 힘든 순간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자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오늘은 결국 지나가니까. 오늘에 충실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가니까.

200815 티키틱 <팔면 좋겠다> 리뷰

요즘 SNS에 광고 많이 올라온다.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진다는 약, 베기만 하면 잠이 쏟아진다는 베개, 뿌리면 인기만점이 된다는 향수 등등. 언뜻 들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지만 광고를 워낙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탓에 혹시나 싶은 생각에 알면서도 속기 일쑤이다.

우리의 삶은 이전 세대보다 분명히 더 편리해졌다. 조그마한 화면으로 세계를 볼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다. 터치 몇 번만 하면 문 앞까지 필요한 물건이 알아서 날아와준다. 이 편리함은 분명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지만, 과연 우리는 풍요로운 만큼 더 행복해졌는가? 이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쓰는가. 오늘 나온 웹툰도 다 봤고, 연락할 곳도 없고, 그렇다고 게임을 하기에는 또 애매할 때. 그런데 일단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있고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을 때. 그럴 때 우리는 무심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들어가곤 한다. SNS 속 사람들은 웬만하면 다 즐거워 보인다. 세상 잘난 사람들 천지고 재밌는 일 천지다. 그도 그럴 것이, SNS에는 웬만하면 잘난 사람들의 즐겁고 특별한 날들만이 올라온다. 사람 심리상 좋았던 일들만 기록해두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잘난 사람들의 일상이 주목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니까. 취준에 실패한 비명문대 출신 A씨의 삶보다는 대기업에 취업한 명문대 출신 B씨의 삶이, 평범한 외모의 솔로 C씨의 평범한 삶보다는 준수한 외모의 커플 D씨의 삶이 더욱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우리는 SNS에서 그 잘난 사람들의 잘난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저 사람들은 그토록 쉽게 얻은 것 같은데, 나는 좀처럼 쉽게 되지가 않는다. 누구는 노력이 부족하다 하는데, SNS 속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도, 취준도, 입시도. SNS 속 누군가는 너무 쉽게 이뤄낸 것 같은데 나한테는 그게 쉽지가 않다. SNS 속 번쩍번쩍하고 특출나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잡는데 지친 우리는 그 밖의 사소한 일들에서 노력 없이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SNS에서 광고하는 향수를 뿌리는 것만으로 인기가 많아지길 원하고, 그냥 약을 좀 먹는 것만으로 살이 빠지길 원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향수 하나 뿌린다고 인기가 많아질 수도, 약 좀 먹는다고 살이 빠질 수도 없다. 걱정의 답은 내일 아침 택배로 받아볼 수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곤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SNS 속 잘난 사람들도 무언가 힘든 점이 있고 고민이 있을 것이다. 영상 속 인기 많아 보이는 김스카이가 자존감을 충전시켜주는 도구를 원하고, 영상 속 혜서니가 상처받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듯이 말이다. SNS에는 본인의 잘난 면을 광고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세상 사는 건 쉽지 않다. 세상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도 뭐든지 쉬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SNS에 내 행복도 팔았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팔지 않는다. 그냥 인정하고 살아가자. 우리는 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200814 블루투스

우린 더 자유로워졌어


굳이 맞닿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네 소식을 들을 수 있어

그렇지만

접촉 없이 분주히 흘러가는 사람들

희미하게 연결된 관계들을 보자면

가끔은 그리워지곤 해

선에 묶여있었던 날들이

서로에게 맞닿아있던 날들이

우리는 종종 엉키기도 하고

복잡하게 꼬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선을 자른 적은 없었어

그것들도 결국 풀릴 것을 알았기에


너는 알고 있을까

우리도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는 걸

서로 온기를 나눴던 날들이 있었다는 걸

- 200814, <블루투스>

200809 티키틱 <마스크를 벗고 나면> 리뷰

2020년, 우리는 일상을 잃어버렸다.

2010년대가 끝났다. 20년대가 되면 뭔가 새롭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 아니, 새롭고 엄청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행복한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 '내년엔 잘될거야 아마두'를 외치던 그 래퍼들처럼 말이다. 한 해의 시작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고 우리는 버릇처럼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세우곤 했다. 지키지 못할 걸 알지만, 긍정적으로 변화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니까.

그랬던 우리의 계획과 희망은 무너져버렸다. 상상이나 했을까. 연초에 터진 우한폐렴 사태로 인해 2020년이 절반 이상 지나간 지금까지 온세상 사람들이 갑갑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될 줄을. 연례행사처럼 잠깐씩 유행하는 전염병인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질기고 독한 놈이었고, 녀석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마스크 없이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는 외출도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제한되고 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바뀌었고, 당연하지 않던 것들은 또 당연한 것들로 바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지금 군대에 있다. 이곳은 사회와 다르다. 나는 이 부대에 묶여있어 나갈 수 없다. 정해진 시간에 일과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휴식을 하는데 그 휴식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나도 이곳에서 일상을 잃어버렸다. 주말의 늦잠을 잃어버렸고 의미없이 보내던 오후를 잃어버렸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바뀌었고, 당연하지 않던 것들은 또 당연한 것들로 바뀌었다.

영상 속 세진의 모습처럼, 우리는 평소 습관처럼 수많은 계획을 세우곤 했다. 헬스하기나 외국어 배우기, 알바해서 유럽여행처럼 거창한 계획부터, 연락 안한지 오래된 친구 만나기같은 가벼운 계획까지. 그리고 그 계획의 대다수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무산되기 일쑤였다. 지금 당장 놀고 싶고, 쉬고 싶어서. 귀찮아서.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실로 다양했던 그 핑계들은 코로나19의 등장과 함께 하나로 굳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나의 경우에는, 군대에 있으니까.

사실 번 핑계는 꽤나 합당한 편이다. 이 시국에 밖을 나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군대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다만,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미뤄진 계획들을 죽 회상하던 세진은 문득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과거의 자신을. 과거의 세진도 똑같았다. 코로나라는 그럴듯한 핑계가 없었을 뿐 이리저리 계획을 미루던 건 똑같았다. 운동해야 되긴 하는데 일단은 다음에. 같이 밥 한 번 먹긴 해야되는데 일단은 다음에. 코로나만 없었으면 훌륭히 이뤄냈을 듯 싶었는데, 코로나가 없을 때의 우리의 모습도 결국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나도 똑같다. 군대에 갇힌 몸으로 열심히 굴러다니며 전역만 하면 이것저것 배우고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하지만... 지금 그렇게나 동경하는 사회에서의 내 모습은 열심히 사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가 일상을 잃어버리고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지금. 우리는 의미없이 흘러보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이 일상을 되찾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 쌓여있는데. 막상 또 되찾고 나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어버리진 않을까. 이 시기가 지나가고, 우리의 일상을 되찾았을 때는 지금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그날이 오면 이번엔 조금 달라지길 기대해본다.

이번엔 조금 달라질까. 마스크를 벗고 나면.

200704 집 앞 롯데마트 이야기

우리 집 앞엔 롯데마트가 있다.

아니, 롯데마트가 있었다.

처음 이사왔던 이 동네의 분위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전부였던 꼬맹이에게 할머니가 사시던 천안이라는 곳은 그냥 시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낯선 곳에 떨어진 나와 가족들은 나름대로 이 곳의 장점을 찾으려고 애썼고, 그 애써서 찾은 장점 중 하나가 대형마트가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주택가 바로 옆에 붙어있던 롯데마트. 기껏해야 3층 정도의, 대형마트치고는 조금 아담한 크기였으나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더 이상 장을 보기 위해 차를 가지고 계신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거나 택시를 부를 필요가 없어졌다. 엄마는 방과 후 할일없이 뒹굴거리던 나를 종종 밖으로 불러내셨고 그 롯데마트에서 그날 먹을 저녁 이야기를 하며 재료들을 골라담았다. 마트를 한 바퀴 돌면 어느새 쇼핑카트에는 저녁거리 뿐만 아니라 각종 주전부리와 잡동사니들이 잔뜩 담겨있었고 엄마와 나는 예상보다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매주 금요일마다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롯데마트에서 엄마를 기다렸었다. 그리고는 그 주에 먹을 집밥 이야기를 하며, 그 주에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마트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대학생이 되고 어색한 타지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롯데마트는 집에서 맞는 연휴의 시작이었고... 마트로 향하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도 자잘한 행복이었다.

롯데마트는 그 근방에 있던 제일 큰 건물이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동네 친구들과의 약속은 대부분 그 롯데마트 앞에서 이루어졌다. '6시까지 롯마 앞에서 만나.' 대충 그렇게 약속을 잡은 후에는 롯데마트 입구에서 어색하게 서성이며 멀리 횡단보도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의 모습을 찾으려 두리번거렸었는데.

그랬던 롯데마트가 이젠 사라졌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 그러니까 2월 중반쯤부터 군대에 온 지금까지 롯데마트를 가지 못했었다. 내가 없는 사이 동네 롯데마트에는 폐점을 알리는 공고가 붙었고 지금 그곳은 이번 달을 기점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집 밖을 나오면 커다랗게 번쩍이던 롯데마트 간판도,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다리던 마트 입구도,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던 롯데리아도, 겨울이면 추위를 녹이러 향하던 조그마한 어묵 가게도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중학생 때, 빼빼로데이를 맞아 친구들과 빼빼로를 사러 롯데마트를 돌아다닌 적도 있었고, 별 용건 없이 일단 친구를 만났다가 할 것을 찾지 못해 롯데마트를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학원이 끝난 후 친구를 따라 롯데마트를 돈 적도 있었고, 엄마 몰래 숨겨둔 용돈으로 게임칩을 사려고 롯데마트로 향했던 적도 있었다. 롯데마트는 단순 마트가 아니라, 내 유년시절의 일상이 배어있는 공간이었다. 나에게 고등학교가 그랬듯 집 앞 롯데마트라는 일상은 또 추억이 되어버렸다. 집 앞에 있던 마트 하나 사라진 것이 나를 이토록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이젠 갈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집 앞 마트가 소소하게 행복했으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곳에 서려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0620 우울에 관하여 2

요즘 페북을 보면 그런 책들이 많이 유행하는 것 같다. 흔히 힐링책이라고 하는, 그럭저럭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인스타에서 볼 법한 짧은 글귀들을 적어놓은 그런 책들 말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둥, 자존감을 키우게 도와준다는 둥... 그냥 인터넷에서 광고만 많이 하는 줄 알았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라며 팔고 있었다. 와 저걸 진짜로 사는 사람이 있구나. 사실 그런 종류의 책들이 꾸준히 광고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잘 팔린다는걸 의미한다. 근데 그 비슷비슷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잔뜩 올라있을 줄은 몰랐지.

대체로 그런 책들의 내용은 참 뻔하다. '당신은 빛나는 사람이에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주변 시선에 신경쓰지 마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요.' 지극히 당연하고 별 거 없는 이야기를 페이지마다 한 구절씩 널찍하게 적어놓고는, 따뜻한 색감의 일러스트와 함께 그럴듯하게 꾸며놓는다. 아마 일러스트를 빼고 일반 책처럼 텍스트를 정렬한다면 아마 책의 분량이 십분의 일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뭐 그건 진짜 문학이 아니지 엣헴엣헴 하면서 꼰대짓을 하고 싶은게 아니다. 애초에 나는 문학 쪽 종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소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자주 접해온 사람도 아니니까. 어쩌면 범람하는 온라인 매체들과 짧은 글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에 맞춰서, 책도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약간의 변화를 맞이한 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그 책들은 하나같이 독자가 매우 힘들고 지친 상황이라는 가정 하에 무의미하고 뻔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걸까.

사실 이건 꽤 민감한 주제다. 뭐가 그렇게 힘들길래 그딴 책을 사고 앉아있냐고 하면 젊은 꼰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 20대의 취업난이라던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스펙에 대한 집착은 심각한 수준이고, 그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것 역시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점은, 그런 책들을 사서 독서로 위로를 받는답시고 SNS에 광고하던 사람들은 딱히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신나게 플렉스니 욜로니 술마시는 사진을 올리다가 어느 날에는 뜬금없이 요즘 삶이 너무 울적하다고 한다. 우울한 사람이라고 해서 24시간을 우울하게 지내며 우울함을 동네방네 소문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SNS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며 행복을 광고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우울함을 토로하니 나로서는 그 이유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말 못할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해질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 치고는 또 너무나도 빨리 flex하고 yolo하니... 한 번 기분이 다운되면 좀처럼 쉽게 돌아오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활패턴이었다.

물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다만 flex나 yolo와 함께 이런 힐링 컨텐츠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소비되는 것을 보면, 과연 그 사람들이 정말 울고 싶어서 우는 건지, 아니면 힐링과 위로를 강제하는 양산형 미디어들에 울음을 광고하고 싶어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진정으로 우울한 사람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글을 조심스럽게 쓰다보니 내용이 좀 난잡해졌지만, 아무튼 내가 든 생각은 그거다. 우울도 유행을 타는 것 같다고.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우울감의 표출은 행복의 표출보다도 효과적인 관심끌기 방법이니까.

190924 마라탕에 관한 고찰

마라탕은 무슨 맛일까.

나는 음식 유행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편이다. 인싸들이야 페북에 서로서로 태그하면서 대박 중국당면 대박 라멘 대박 돈카츠 대박 먹으러가자 하고 앉아있지만 본성이 아싸에다가 그나마 있는 친구들이라고는 가성비에 미친 국밥충들 뿐이라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 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라탕을 혼밥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혼밥 경력 2년차에 접어든 나에게도 마라탕 혼밥은 내 한계치 이상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마라탕의 맛이 궁금해졌다. 안그래도 인싸북이나 TV에서 마라탕을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었고, 매주 마라탕을 먹으면서 혈중마라농도를 측정하고 있는 친구의 사연 등을 대숲에서 읽어온 바 있었다. 그렇게 마라탕의 존재를 알음알음 알아가고 있었는데, 최근 한 화 전체를 마라탕 먹으러 간 썰로 채운 웹툰을 보게 되면서 비로소 그 마라탕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찾아보니 마라탕은 맵고 중독성이 강하댄다. 원하는 재료를 골라 넣어 만든다는데, 몇 번 먹어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가장 완벽한 조합법을 찾게 된다고 한다. 매운 음식이라. 나는 매운 음식을 밖에서 먹는 것이 조금 꺼려진다. 매운 음식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내 혓바닥은 어머니의 김치 조기교육으로 잘 단련되어 있었다. 다만 매운 음식을 눈 깜빡 안하고 먹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오리지날 불닭볶음면은 약간 버거우며 거기에 치즈를 한 두장 넣어야 비로소 입맛에 딱 맞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굳이 수치로 따지자면 상위 25%정도 되겠다. 문제는 땀이다. 원체 땀이 많은 편이고, 매운 음식을 먹을 때도 예외는 아니라 아마 매운맛 조절에 실패한 마라탕을 먹게 된다면 땀을 폭포수처럼 쏟아낼게 뻔하다. 이런 여름에 땀을 잔뜩 흘리고 다니는 것은 여간 찝찝한 일이 아니다.

마라탕을 몇 번 접해본 멀리 사는 친구의 말로는, 요즘 마라탕맛 라면같은게 잔뜩 나오니까 그걸로 맛을 유추해보랜다. 하지만 그것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만약 그 포기하지 마라탕면을 먹었다가 라면에 알게모르게 스며있는 마라의 풍미에 중독되면 어떡하지?

더 큰 문제는, 포기하지 마라탕면으로 가짜 마라의 맛을 접한 후에 진짜 마라탕을 먹게 되었을 때다. 맛있으면 다행이지만, 기대하던 맛과 다르면? 내가 좋아하던 그 마라탕의 풍미가 사실은 라면스프와 마라탕의 오묘한 비율에서 나온 것이라면? 아무리 내 입맛에 맞는 포기하지 마라탕면을 잔뜩 먹어도 이 마라탕의 풍미가 그 본질을 흉내낸 것이라는 찝찝함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그 진짜 마라탕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190829 2019년의 달동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대전을 간 적 있었다. 대전이면 광역시. 나름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동네다. 차에 탄 채로 흘러가는 그럭저럭 높은 빌딩들과 프랜차이즈 간판들 사이로 기이한 광경을 하나 보았다. 판자촌이었다.

"저게 다 뭐야. 판자촌인가? 저런게 아직도 있어?"

"요즘도 판자촌 많아."

"아니, 여긴 도심이잖아. 빌딩도 많고."

"서울에도 강남에도 있어. 우리가 못 봐서 그렇지."

신기했다. 동시에 찝찝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함이었다. 스쳐지나갔던 그 쓰러져가는 집들의 모습은 한동안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넷에서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을 한 장 보게 된 것이었다. 판자촌의 뒤로 높다랗게 솟은 타워팰리스, 그리고 기울어진 교회 십자가가 빛나고 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저 사진의 배경이 된 곳이 구룡마을이라고 한다. 강남 타워팰리스를 등지고 있는 판자촌. 몰랐는데 뉴스에도 종종 나오고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곳이라고 했다. 호기심에 구글에 검색을 해봤다. 올해 구룡마을을 방문한 사람의 블로그 포스트가 있었다. 구룡마을뿐만 아니라, 서울의 다른 달동네, 판자촌들도 방문한건지 블로그 카테고리에는 100편 가까이 되는 글과 사진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장장 몇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그 글들을 전부 찬찬히 뜯어읽어봤다. 지금도 이런 판자촌이 이렇게 많다고? 그것도 서울에? 내가 그토록 동경하고 가고 싶어했던 서울에? 경희대나 외대 재학생이라면 친숙할 이문동의 판자촌을 다룬 글도 있었다. 이미 철거가 진행중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룬 글도 있었다. 심지어는 재개발이 진행 도중 중단되어 쓰레기장이 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다룬 글도 있었다. 뭔가 다른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오래되긴 했어도 그런대로 멀쩡한 집에 살면서도 언젠가 화장실 두 개 딸린 집으로 이사하길 상상하던 나에게 아직도 저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이번엔 네이버에 검색해봤다. 구룡마을. 구룡마을 얘기는 없고 웬 부동산 카페들만 나온다. 구룡마을 개발산업 진행 현황, 구룡마을 투자노트, 구룡마을 공공분양... 너무 유명한 곳을 골랐나 싶어 조금 덜 유명한 곳을 찾아본다. 달터마을. 달터마을 공원정비 가속화, 달터마을 토지분양... 네이버 지도 속의 달터마을은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를 존재하지도 않는 달터공원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상도동 새싹마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상도동 달동네. 상도동 쓰레기산.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상도4동 재개발11구역이라는 나름 구체적인 검색어를 입력한 뒤에야 글 몇 개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사회와 언론은 달동네의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투자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물론 무허가 판자촌 위에 사는 사람들은 범법자다. 그냥 밀어버리는 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들은 거리의 불법 노점상이 아니다. 계곡의 불법 백숙집도 아니다. 동네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과거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국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남아있는 구룡마을, 달터마을, 새싹마을로 몰려들었다. 마을 뒷편에 높다란 빌딩이 들어서고 강남이 부촌으로 성장할 때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벗어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단순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해결하기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버리고 말았다. 2010년대의 달동네는 더 이상 소외된 사람들만의 마을이 아니게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재테크를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판자촌이 있던 곳에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부동산 업자들이 모여들었다. 새롭게 들어설 높은 아파트들을 기대하면서 무너져가는 집을 사고 토지를 산다. 마을 사람들도 업자의 말이나 이권에 따라서 갈라지고 재개발 소식에 따라 휘청인다.

그리고 국가는 그들을 위해 담벼락에 벽화 몇 점을 그려주었다. 잘 풀렸으면 개미마을이나 감천문화마을처럼 되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은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저 무너뜨리기도, 새로 무언가를 쌓기도 어려워지고 말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냄새를 맡아버렸다.

난쏘공 이후로 3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190804 창문

도시의 창들은 눈을 감을 줄 모른다

나는 별을 보고 싶은데.

밤새 켜진 빌딩의 시선들에 이미 다 부서지고 없구나

190614 지방할당제에 관하여

지난 5월, 공기업 선발인원의 40%를 지역인재 할당제를 통해 선발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교육에서 발생하는 지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법안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논의되어왔다. 그리고 2017년, 정부에서 공기업의 신규 채용 인원 30%를 지역인재 할당제를 통해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지방대학 학생들의 채용을 강제하는 법안을 공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역인재 할당제는 무엇이고, 실제로 효력이 있을까? 과연 지역인재 할당제는 지역 불균형과 학생들의 취업난을 해결하는 옳은 제도로 볼 수 있는가?

대한민국의 인프라와 인구는 수도인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유명 강사나 학원 등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며,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들은 ‘인서울’이라고 불리는 서울권 대학에 주로 진학한다. 인적 자원의 서울 집중은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좋지 못한 현상이다. 특히 교육 인프라의 집중은 우수한 인재들을 서울로 불러모으면서 지역 격차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악영향을 낳는다. 이와 같은 지역 격차의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지역인재 할당제, 이하 지방할당제이다. 비수도권의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에게 취업상의 이점을 주는 제도로, 현재는 일정 비율의 공기업 선발 인원을 비수도권 대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채용 비율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지방할당제는 대학이 단순히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공기업의 취업이 수월해진다는 이점이 존재하겠지만,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은 취업 외에도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대외활동이나 인턴, 기업 연계 프로젝트, 또는 여가 생활 등 대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경험을 시켜줄 인프라는 이미 서울에 집중된 상태이다. 오로지 공기업 취업만을 바라보고 대학에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방할당제는 서울로 향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발걸음을 돌릴 매력적인 제도가 되지 못한다.

또한, 지방할당제가 정말로 국토의 균형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될지 역시 확실하지 않다. 많은 경제활동과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해서 낙후된 지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부산과 같은 서울 못지않은 인프라를 가진 지역에 위치한 대학이나, 굴지의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있는 포항공대, 대규모의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카이스트 등을 떠올려 보자. 이와 같은 대학들이 지방에 있다고 해서 수도권 지역보다 낙후되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수도권이라고 해서 전부 발전된 것은 아니다. 서울이나 경기도에도 지방보다 낙후되고 평균 소득이 낮은 지역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지방할당제는 혜택의 기준을 대학의 소재지로만 보고 대학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이분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의 대학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서열화되어 있으며, 위에서 언급한 일부 특수 대학들을 제외하면 서열 속의 상위권 대학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이 주로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지방할당제는 어떤가. 시골에서 노력하여 우수한 성적을 받고 서울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서울의 부촌에서 상대적으로 덜한 노력으로 지방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혜택을 받는다. 물론 누군가는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다. 학창 시절 노력을 조금 덜 했다고 평생 가는 취업에서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게 형평성에 맞는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한 아주 좋은 대안이 있다. 바로 학벌 블라인드 제도이다. 현재 시행 중인 학벌 블라인드 제도에서 기업은 지원자의 학벌을 보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과 경험을 평가한다. 인서울과 지방대 학생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벌이 아닌, 다른 학생들과 차별화되는 경험과 능력을 쌓도록 장려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지방대학 학생들도, 수도권대학 학생들도 기회의 평등 아래 지역적인 격차를 극복 가능하다는 점에서 학벌 블라인드 제도는 나름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방할당제는 그렇지 않다. 지방할당제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기존 티오에서 정해진 인원을 지방대학 학생들을 위해 배정하며, 수도권대학 학생들은 지방할당제로 배정된 직급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른 청년의 일자리를 뺏어 지방 청년들에게 나눠주는 꼴이다. 따라서 지방할당제는 당연히 청년실업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노력을 장려하는 사회를 만들 수도 없다. 오히려 학벌로 인한 역차별을 초래함과 동시에 수도권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까지 안겨줄 수 있다.

물론 교육의 불평등은 해소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잘 갖춰진 교육 환경 아래에서 원하는 만큼 노력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방할당제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방대학 학생들의 취업난이라는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얼마 안 가서 수도권 대학 학생들의 취업난이 다시 불거질 것이 뻔하다. 취업이라는 피상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왜 기업에서 지방대학 학생들을 뽑지 않으려 하고, 왜 학생들이 지방대학을 선호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개발되는 인프라,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 지방대학 학생들의 취업난보다 먼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지방대학들이 역차별적인 제도 없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190307 불면증

요즘 밤엔 잠이 잘 오지가 않는다. 아침에는 그렇게 잠에 취해서 일어나기가 힘겨운데, 밤만 되면 잠드는게 힘들어진다. 종강 이후 생활 패턴의 문제인가 싶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학기중에도 잠이 안 와서 새벽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날 1교시 수업이 있던 날에도 새벽 두 시를 넘기기 전까진 잠들기가 어려웠었고. 새벽 두 시면 남들한테는 잠자기 이른 시간일지 모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밤 열한 시면 칼같이 잠이 왔었는데, 요새는 눈을 감으면 불안한 생각들이 엉키기 시작하더니 이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려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불안해하는가. 왜 나는 망할 잡념들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목적의 상실이었다. 막연하게 꿈꾸던 입시 문제도 너무 미적지근하게 해결되어버렸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남는 시간에는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공식이라도 하나 더 외우면 됐는데. 이젠, 이젠 뭘 해야 하지? 자기계발? 시발, 그건 너무 추상적이라고. 딱 25살이 되는 해 전국 25살들의 자기계발의 정도를 점수로 매겨서 줄세우기시키고 순서대로 회사에 입사시키면 모를까. 프로그래밍 3점, 애프터이펙트 2점, 미분방정식 1점... 생각해보니, 컴공 주제에 애프터이펙트에 2점은 너무 관대한 것 같다. 0.2점 정도면 모를까. 더욱 심각한 사실은 내가 그 0.2점, 0.1점짜리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좋아는 하지만 전공자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영상 편집, 조금 잘 그리는 일반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림 실력, 레퍼런스밖에 못하는 디자인 센스까지. 0.2점짜리 과목에 매달리면서 거기서도 만점을 받질 못한다.

잘 될거라고 생각했던 관계는 내가 주저하는 사이 시기를 놓쳐버렸고, 먼저 다가가는 법을 잊어버린 탓에 대학의 인간관계도 무너져버렸다. 손에 잡힐 것 같던 목표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성공에 대한 막연한 압박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암울하기 짝이 없구나. 약간의 열등감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낙관적이고 열정 넘치던 지난 날의 나는 어디로 갔나...

180706 나는 놀고 싶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코미디언이 했던 말이다. 그에게는 별 생각 없이 던진 애드립이었겠지만, 뭇 많은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관통한 이 말은 흔히 말하는 '짤방'으로까지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놀기를 원한다. 나도 그렇다. 놀고 싶다. 나는 교복을 입기 시작할 때부터 간절하게 놀기를 원했으나 사회 분위기는 학생이 노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들 뛰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걸음 속도를 늦출 순 있어도 아예 주저앉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노는 시간에 다른 이가 앞서나가고, 결론적으로 뒤쳐진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마음 한 켠의 불안감은 계속 내 양심을 찔렀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에야 잠시의 해방감에 젖어 노래방 PC방을 전전하면서 하루종일 게임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놀이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진 못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대학 가서 마음껏 놀으라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놀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서 도착한 대학이었으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대학의 놀이 문화는 나랑 맞지 않았다. 술과 술게임. 재밌지가 않다. 억지로 알지도 못하는 이성을 만나는 것도 별 감흥이 없던 탓에 미팅이나 과팅도 술게임을 버틸만한 이유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술을 싫어하는 나는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렇다. 대학에는 그 놀 게 없다던 고등학교보다 놀 게 없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사실 고등학교 때 못 놀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교내 공모전 수상, 대입 스펙을 핑계로 나는 3년동안 계속 놀고 있었다. 일반적인 학생들의 인식을 기준으로 하면 '와, 쟤는 정말 열심히 산다'라고 느낄만한 것이었으나 나는 계속 놀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PC방의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곳은 따로 있었다. 야자시간에 멘토링을 핑계로 교실을 빠져나와 1층 원탁에서 나누던 담소가 내겐 곧 놀이었다. 밤 열 시, 심야자율학습이 지루해질 때면 선생님들 몰래 교실 불을 끄고 나눴던 이야기들이 내겐 곧 놀이었다. 선생님들 몰래 교과서 한 켠에 끄적거리던 낙서가 내겐 곧 놀이였다.

공모전 역시 그랬다. 상장 한 장은 핑계였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UCC 시나리오를 짜고, 연기하는 친구들의 NG를 보며 웃고, 완성된 영상을 보고 느꼈던 성취감 모두가 내겐 즐거움이었다. 고등학교는 놀 것 천지였다. 굳이 술을 퍼마시지 않아도. 그 놀이의 과정에서 친구들 사이의 어색함은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졌고 그 놀이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친밀해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서는 뭔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는 쓴 알코올 덩어리를 삼켜야 한다. 어른이라는 명목으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술을 마시기란 내 성격상 쉽게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몇몇은 그렇게 술을 싫어해서는 사회생활하기 힘드니 어떻게든 적응하는 게 낫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럴수록 사회생활을 위해 주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술이 아니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함에 대한 묘한 반항심만 커질 뿐이었다. 이 맛대가리도 없는 걸 뭐가 맛있다고 먹고 먹이는거야. 이해가 안되네 정말.

만 19세가 된 지 반 년이 되어가지만 이 분위기에는 적응하기 힘들다. 선생님 몰래 숨어들어가서 떠들었던 불 꺼진 교실이 그립다. 급식이 맛없는 날이면 향했던 학교 뒤편 먹자골목이 그립다. 자율학습시간 멘토링을 핑계로 복도에 앉아 나눴던 이야기들이 그립다.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은 내겐 최고의 놀이였다. 그 일상마저 추억으로 사라져 버린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나.

180623 술과 아싸에 관한 고찰

아싸. 아웃사이더. 어느샌가 10대 20대들 사이에 퍼진 말이다. 카톡이 쉴새없이 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인싸'와 그 반대의 개념인 '아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연락도 잘 이어나가지 못하는 아싸의 모습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도태된 종류의 인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게 무서워서 입학 시즌만 되면 대학 게시판에 '아싸 안되려면 오티 꼭 가야하나요', '인싸 되려면 술자리 다 참석해야되겠죠' 따위의 질문글이 올라오는 것일터. 진짜 좋아하는 친구와의 약속이나 완전 좋아하는 영화의 개봉이 아니면 방구석을 고수하는 나였으나, 그렇게 아싸가 되는 게 두려워서 오티에 참석했다. 교집합 하나 없는 사람들과 숨이 막혀 버릴 듯 어색한 공기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술자리가 싫다. 술게임이 재밌는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나에게 술이란 허물없이 가까운 친구 한 두명만 모아 허심탄회한 담소를 나눌 때나 쓰던 것이었다. 술의 쓴맛은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푸근해지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나는 종종 두세명만 모이는 술자리를 잡곤 했다. 그런데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시끄럽게 술게임을 하면서 술을 마시라니. 겉으로는 즐거운 척 웃었지만 어색해 미칠 지경이었다. 선배들이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신경써주셨고 그 부분은 굉장히 감사했지만 술이 아니라 그 분위기에 면역이 없던 나는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돈과 시간이 아깝다.

지금 친구들과 어떤 계기로 친해졌는지 되짚어본다. 고민상담을 해주게 되면서 친해진 경우도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며 친해진 경우도 있었고, 특별실 이동시간에 우연히 교실에 둘만 남았다가 친해진 경우도 있었다. 학생 때는 술이 없어도 평생 갈 인연들을 잘만 만들었는데, 대학이라고 뭐 특별히 다르겠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 한두명만 있어도 삶은 살만하고, 그 인연들은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찾아올 거라 믿는다. 일단 오늘은 혼밥을 해야겠지만...

180503 시나리오:초능력자

(로고)


S#1

샷1

(뛰고 있는 남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나씩 설명. 관련있는 장면 보여주고 대사 호흡이 끝날 때마다 모션블러로 컷 전환)

운동화 끈도 잘 묶고, 타자 속도는 무려 1분에 500타, 줄넘기 3단뛰기도 가능. 물병 던져 세우기 성공률 구십프로.

근데, 사실 내 진짜 비범함은 따로 있다.

열일곱살이 되던 해,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뛰다가 말고 벤치에 앉는 남주.)

그렇다. 초능력.

나는 무려,

밤에 선글라스를 써도 앞이 잘 보인다.

별 거 아닌 듯 보일 수도 있다.

그 엑스맨 영화 보면 사이클롭스한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뭐 그런 능력의 전조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축제 기간. 선글라스를 끼고 점잖은 척 여자들을 바라보는 남주)

물론 이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은 없다.

내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면 정부나 FBI같은 곳에서 날 잡으러 올지도 모른다.

(상상 - 골목에 위장해있던 비밀요원들에게 끌려가는 남주)

끔찍한 실험이나, 귀찮은 취재진들이 몰려들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니까.

나는 늘 비밀을 지킨다.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

(타이틀 - 초능력자)

S#2 술집 야외 테이블

남주: 어? 내가 말이야, 초능력이 있는데! 어! 막 그 뭐냐 대단한 건 아니어도! 무려!

친구1: 야 저새끼 또 저지랄이다. 술만 마시면 저타령이야.

친구2: 에휴, 저러니까 여친이 없지.

친구1: 지는.

남주: 어! 임마! 내가... (뻗는다)

친구1: 야, 저새끼 니가 좀 챙겨라.

친구2: 아 왜. 오늘은 너가 챙겨.

친구1: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친님께서 찾으셔서. (급하게 짐을 챙긴다) 그럼 이만! (장난치듯 익살스럽게)

친구2: 얌마!

친구2, 황급히 친구1을 쫓아 화면 밖에서 사라진 후 잠시 실랑이하는 소리. 잠시 후 친구1 화면 안으로 들어오고 남주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둘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들어오는 여주. 남주와 친구가 사라진 방향을 빤히 바라본다.

S#4 동방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남주는 손만 뻗어 뒤적거리다 폰을 가져간다.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남주. 머리를 한 번 헝클어트리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본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남주.

S#5 생대 앞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는 남주. 일어서서는 버스가 오는 쪽을 향해 두리번거린다. 이때, 남주의 시선에 들어오는 여주. 남주의 시선으로 여주 한 번 클로즈업. 멍하니 바라보는 남주의 얼굴. 여주가 남주쪽으로 다가오자 바닥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주: 저기요.

남주, 여주의 말에 놀라며 대답한다.

남주: 네..네? 저요?

여주: (고개를 끄덕인 후) 네. 혹시 그쪽... (뜸을 들인다) 초능력자시죠?

남주 당황한 표정. 잠시 흐르는 정적.

남주: 아.. 아뇨! 저 초능력자 아닌데요!

여주, 의심쩍은 눈초리.

남주: 아니,,, 아니 생각해보니까 초능력자 같은건 세상에 없죠! 하하..

여주: 생각해보니까?

남주: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해보는게 아니라 당연한거! 당연히 초능력자같은건 없죠!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남주.

여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잠깐 시간 되세요?

남주: 아.. 저 그 교회 다니거든요.

여주: 네? (잠시 생각한 뒤 웃으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남주: (변명거리를 찾는 듯) 어.. 근데 저 지금 강의 가봐야 돼서요.

뒤돌아서 가려는 남주, 여주가 남주의 손목을 잡는다

여주: 저는 러시아어학과 17학번 김여주에요. 조만간 한 번 봬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주를 바라보는 남주.

남주: ...네.

잠시 후, 버스 문 닫히고 출발하는 소리.

남주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진다.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는 여주.

insert)

S# 자대 라운지

열람실 책상에 놓인 강의 교재들과 남주의 노트북.

남주, 페북으로 김여주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짓는 남주.

이때, 여주 남주쪽으로 다가온다.

여주: 안녕하세요!

남주, 당황하며 휴대폰 화면을 끈다.

남주: 아, 안녕하세요! 여기서 다 뵙네요.

남주: 어...네. 예디대엔 어쩐 일이세요?

여주: 그냥, 여기 계실 것 같아서 와봤어요. 우주과학과셨죠?

남주: 네. (잠시 후) 근데 제가 그걸 말씀드린 적이 있었나요..?

여주: (대답없이 웃는다)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남주: 어... 이남주요.

여주: 어제 일과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여기는 좀 그렇고. 밖 어때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고민하는 듯 어리둥절한 남주의 표정.

S# 자대 정류장 방향 인도 거리

여주와 남주 같이 걷고 있다.

여주: 사실, 저도 초능력자에요.

남주: 아하. 어쩐지.

남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다.

남주: 네?

여주: 남주분도 초능력자 아니세요?

남주: 초능력자가 세상에 어딨어요. 여주분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저는 이해가 잘..

여주: (남주의 말을 끊고) 다 봤어요.

남주: 네?

여주: 그 때, 술집에서요. 저번주였나?

남주: 술집이요...?

필름 뒤로 감기는 효과. 남주의 술주정이 스쳐 지나간다.

남주: 아....

여주: 기억나셨어요?

남주: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네...

여주: (웃으며) 맞죠? 초능력자.

남주: 네. 맞아요. 별 능력은 아니긴 하지만요.

여주: 잘됐네요. 저도 저랑 비슷한 분이랑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거든요. 지금 카페 어때요?

남주: 죄송합니다. 지금은, 좀 있다가 강의가 있거든요.

여주: 음... 중요한 강의에요?

남주: 몽골철학의 이해요. 뭐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교양이긴 한데..

여주: 그럼 하루 정도 빠져도 되겠네요?

남주: 네?

이상한 눈으로 여주를 바라보는 남주.

여주 말없이 미소짓더니 머리를 넘긴다.

이때 울리는 남주의 핸드폰, 남주 휴대폰을 꺼내 확인한다.

휴대폰 스크린에 떠있는 휴강 문자 남주의 시선에서 촬영.

남주: 아니. 지금 휴강한다고... 와. 신기하네요. 어떻게 딱 지금...

여주: (옆의 남주를 바라보며) 그럼, 카페 갈까요?

여주 먼저 도로를 건너려 한다.

남주, 뭔가를 느낀 듯 여주의 손목을 잡아 인도쪽으로 당긴다.

여주가 남주쪽으로 옴과 동시에 자전거가 쌩 지나쳐간다.

남주: (자전거가 사라진 도로 쪽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무슨 교내에서 저렇게 빨리 달리고 있어. (여주 쪽을 바라보며) 괜찮으세요?

여주: (다소 놀란 듯) 아 네. 고마워요.

함께 걸어가는 여주와 남주

S# 송파 카페

남주와 여주, 마주보고 앉아있다.

남주의 옆자리에는 남주의 가방이 있고, 가방 안에는 선글라스가 들어있다.

여주: 그래서, 늘 바라고 있었어요.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초능력자를 만날 기회를요.

남주: 아.. 맘고생이 심하셨겠네요.

여주: 네. 이런 걸 말해봤자...아무도 믿어주지 않잖아요. 저를 이상하게 보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잠시 후) 솔직히 저같아도 못 믿을 것 같긴 해요. 뜬금없이 초능력자라니..

남주: 그렇긴 하죠. 근데 그.. (주위를 살펴보며 비밀스럽게) 제가 초능력자..라는 건 어떻게 아신거에요? 술주정하는 걸 들었다고 해도... 그냥 지나치고 말지, 여주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잘 안 믿잖아요.

여주: 원래 초능력자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요. 뭔가 근처를 지나면 그런 느낌같은게 강하게 오거든요. 남주분은 못느끼셨어요?

남주: 저요? 아 저도 뭔가 그런 게 있었던 것도 같고? 하하하.

남주, 어색한 웃음 뒤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한다.

남주: 근데 그쪽 초능력.. 그건 어떻게 되세요?

여주: 오늘 올 때 보셨잖아요.

남주: 네?

남주가 의아해하자 말없이 씩 웃는 여주.

여주: 그럼, 남주님은 어떻게 되세요?

남주: 어.. 저는...

여주: 그때 차도에서 진짜 놀랐거든요. 살짝 미래를 보는? 그런 능력인가? 아님 스파이더맨처럼 위기같은걸 느끼는 그런거..?

가방 안의 선글라스에 초점이 잡힌다. 멍하니 선글라스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남주.

배경음악의 드럼 소리가 고조되다가 뚝 끊기며 남주의 대사.

남주: 어... 비슷해요.

여주: 진짜로요? 완전 대단한데요. 그.. 정확히 무슨 능력이에요?

남주: 직접 말씀드리긴 곤란해요. 여기서는... 다음에!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여주: 네? 다음에요?

남주: 네. 그..지금은 타이밍이 좀 그렇기도 하고.. (메뉴판을 보며 급히 말을 돌린다) 뭐라도 드실래요?

여주: 어... (메뉴판을 보며 고민한 후) 저는 민트초코 프라푸치노요.

남주: 민트...네. 주문하고 올게요.

카운터로 향하는 남주.

주문하는 남주의 뒷모습. 미묘한 미소를 짓는 여주.

insert)

S# 벤치

술에 취해 앉아있는 여주. 벤치 옆엔 캔맥주가 놓여있다.

저편에서 남주가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온다.

여주를 발견하고는 뛰어오는 남주.

남주: 여기서 뭐하세요?

남주의 시선에서 옆에 있는 캔맥주 캔 촬영.

남주: 지금 여기서 술 드신 거에요?

여주: 네. (한숨 쉰다) 그 있잖아요. 저는, 가끔 보면 제 능력이 저주같아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말끝을 흐린 후 술을 한 모금 들이킨다)

남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여주: 아무래도, 말 못할 고민들이 많아지잖아요. 그 능력 때문에요.

남주: (잠시 생각하다) 그.. 능력 덕분에 어쩌다 어쩌다 서로 알게 되었잖아요? 저는 여주분을, 여주분은 저를. 저도 같은 입장이니까. 고민 있으시면 저한테 털어놓으셔도 되고..

여주, 남주의 말을 듣고는 남주 쪽을 쳐다본다.

여주,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금방 다리가 풀린 듯 벤치에 다시 쓰러지듯 앉는다.

남주: 아이고. 넘어지시겠다. 부축해드릴게요.

여주와 남주 함께 걸어간다.

(이 장면은 다음 장면과 구도 비슷하게 하고 크로스페이드로 전환하면 괜찮을듯)

S# 사색의광장 옆 거리

혼자 걸어가는 여주의 뒷모습.

남주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커피를 건넨다.

고마워하는 여주와 머쓱해하는 남주 계속 걸어가며 앵글에서 멀어진다.

S#

강의실. 교수의 강의 소리가 들린다.

책상 위 남주의 폰에 카톡 알림이 켜진다.

교수의 눈치를 보며 몰래 책상 밑에서 카톡을 확인하는 남주.

(내레이션으로)

여주: 오늘 수업 끝나고 영화 어때요? / 이번엔 제가 살게요.

남주: 좋아요.

휴대폰을 보는 남주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희망찬 음악.

뒤에서 다가오는 친구2, 뒤에서 남주를 툭 툭 치자 음악이 끊긴다

친구2: 야. 뭐하냐. 강의도 끝났는데.

남주: 어? 벌써? 그러네.

급히 가방을 챙기고 강의실을 나서는 남주.

친구2, 남주를 수상쩍게 바라본다.

S# 영화관 or 거리

화창한 날씨.

남주의 손에는 어벤져스 팜플렛과 우산이 들려있다.

여주: 오늘 영화 재밌었죠?

남주: 네. 대단하던데요? 그 마법사가 싸우는 장면이 제일 멋있더라구요.

여주: 남주분도 멋있으세요.

남주: 네? 제가요?

여주: 남주분도 되게 대단한 능력자시잖아요.

남주: (급히 변명하듯) 어... 그 그렇죠. 대단하다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르긴 하지만..

남주, 변명하다 포기한 듯 말끝을 흐리고 뭔가 죄책감이 드는 듯 영화 팜플렛을 바라본다.

여주: 우산 들고나오셨네요?

남주: 아. 오늘 비 올 확률이 구십퍼인가 된다 그래서 가져왔는데. 여주분 말대로 안오네요.

여주: 오늘 남주분 만나는 날이라 오랜만에....

남주: 오랜만에....네???

여주; (남주의 반응을 무시하고) 날씨도 좋은데. 캠퍼스나 한바퀴 걸을까요?

앞서나가는 여주. 어리둥절해있던 남주 여주를 따라간다. 초점을 주변 사물로 바꾼다.

insert)

S#

중앙도서관. 친구1과 남주, 친구2 계단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친구1은 기운없는 표정.

친구2: 야 이새끼 수상하다니까? 요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아. 재수없게.

남주: 야 무슨 소리야.

이때 울리는 남주의 카톡 알림음. 남주 카톡 화면을 확인하고 배시시 웃으며 답장한다.

친구2: 봐봐 이새끼 또이런다니까. 이거 백타 여자다.

남주: (무심하게) 뭐래. 남의 연애사에 신경 꺼.

친구2: 뭐? 연애사?

남주, 아차 싶다는 표정.

친구1: 그래. 너라도 잘돼야지. 잘 해봐.

친구2: 야씨 그럼 나 빼고 다 커플이야? 너네 여친만난다고 나 안놀아주고 그럼 안된다?

남주: 야. 설레발치지 마.

친구1: 뭐 모솔이 뭘 알겠냐.

친구2: 너가 제일 나빠. 대학 들어오자마자 CC나 하고 말이야. 빨리 깨져버려라 그냥.

친구1: 안그래도 헤어질 삘이야 요즘.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친구2, 자세가 다소곳해진다. 흔들리는 시선처리.

친구2: (애써 밝은 척하며 급조한 웃음) 지랄. 맨날 헤어질것같다 싸웠다 하면서 잘만 만나더만.

친구1: 이번엔 진짜야. 생각할 시간을 갖재.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남주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남주: 능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친구1: 나, 정말 걔한테 잘 보이고 싶어했잖냐. 그래서 몰래 빡쎄게 알바해가면서. 돈 많은 척 하면서. 그랬었는데. 들켜버렸어. 다.

친구2: 야. 돈이 없다고 그러는게 말이 돼? 너가 걔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친구1: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한테 거짓말하고, 솔직하지 못했다는 게 실망이 크다고 하는데... 모르겠다 나도.

친구1 대사의 볼륨이 점점 줄어들고 남주에게 초점이 잡힌다.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는 남주.

친구1: 야, 남주. 너 표정이 왜그래. 너가 싸운것도 아닌데.

친구2: 너 걱정되나보지.

친구1: 역시. 남주밖에 없네. (살갑게 남주의 어깨를 감싸안는다.)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술이나 할까?

남주: (어색하게 밝은 척 하면서) 난 빼줘. 어제 엄청 마셔서.

S# 기숙사 안

침대에 축 쳐져 쓰러지는 남주.

옆에서 카톡이 울린다. 휴대폰을 보는 남주.

여주: (카톡) 오늘 만날래요?

잠시 미소를 짓다가 금세 표정이 침울해진다.

깊은 한숨.

S# 카페

남주, 불안한 듯 앉아있다.

카페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며 남주를 찾는 여주.

여주: (남주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일찍 오셨네요?

남주, 여주 쪽을 보며 애써 미소짓는다.

남주 앞자리에 앉는 여주.

여주: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좋아 보여요.

남주: 그게.. (잠깐 뜸을 들인 후 결심한 듯)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여주: 네? 뭔데요?

남주, 잠시 망설이다 침을 한 번 삼킨 후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남주: 사실 제 능력은 정말 별거 없어요. 여주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대단한 능력이 아니에요. 전 그냥... 날씨를 바꿀 수도 없고, 없던 휴강을 만들 수도 없어요. 그때 여주님이 보신 것도 그냥. 우연의 일치였어요.

여주: 그게 무슨...

남주: 제가 가진 건 그냥 선글라스를 밤에 껴도 잘 보이는, 그런 쓸데없는 능력이에요. 속일 의도는 없었는데, 전 여주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많이 실망하셨을거 알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남주, 말이 끝나자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군다.

여주, 남주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살짝 놀라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피식 웃는 여주의 미소.

여주: 저도 별거 없어요. 그냥, 비 오기 전날에 허리가 좀 쑤시는 게 제 능력인걸요.

남주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여주: 지금 보니까 좀 있으면 비도 올 것 같은데 막걸리에 파전이나 할까요?

남주의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듯한 미소가 번진다.

남주: (고개를 끄덕이며) 네. 좋아요.

여주, 머리를 쓸어 넘긴다.

insert)

S# 밤, 술집

행인1: 어. 비 온단 소식 없었는데.

행인2: 야. 넌 일기예보를 믿냐?

행인1: 오늘은 도저히 비가 올 날씨가 아니었단 말야.

행인2: 음, 생각해보니까 방금 전까지 구름 한 점 없긴 했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소나긴가봐.

행인1: 그런가.

미심쩍은 표정의 행인들 뒤로 웃는 표정으로 대화하는 여주와 남주 포커스.


-엔딩 크레딧-

180407 게임에 관하여

어릴 적 즐겨하던 게임이 있었다. 아쉽게도, 부모님께서는 내 취미생활을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대학에 가야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

일상 틈틈이 파고든 말들은 어느새 내 무의식을 점령해버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게임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두게 된 것이다. 장난감을 샀을 돈으로 문제집을 샀다.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는 마음껏 그 게임을 할 수 있을거야. 문제집을 살 돈으로 장난감을 사야지.

그리고 마침내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에 새로 나온 게임을 샀지만 왠지 모를 지루함에 금방 전원을 내려버렸다.멋진 장난감을 봐도 더 이상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별거 아닌 게임 하나에 반나절 가까이를 몰입할 수 있었던, 쓸모없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몇달간 용돈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아 왠지 모를 공허한 감정들이 나를 채웠지만. 움직이기를 보채는 알림 소리에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180210 의식의 흐름대로 쓴 졸업 후기

어색했던 중학교 교복은 이제 서랍 속 깊은 곳에 묻혀있다. 고등학교 교복도 곧 그렇게 되겠지. 바뀐 교복의 색깔에 어색해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 평범했던 일상은 또 추억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천일 남짓한 시간동안 나름대로 생각이 많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딱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할법한 고민들 말이다. 성적, 입시, 친구 관계, 뭐 그런 것들. 머리가 좀 굵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나는 어려서 그 사색의 수준이 고등학생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렇다고 나이를 먹으면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난 늘 서툴렀고, 어렸다. 그건 앞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을거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있었고, 숨죽여 운 적도 있었다. 자괴감에 빠져 하루종일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간절히 바래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고, 간절히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목표가 있다. 간절히 좋아해도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 간단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기가 그토록 힘이 들었다. 지금도 이게 썩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이걸 두고 어른이라고 하는 건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칭하는 것은 상당히 민망하긴 하지만 아무튼 난 이제 어른이다.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 있다. 담배를 고를 수도 있고, 피가 튀기는 19금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근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술은 입에 안 대게 되고, 담배는 관심조차 없다. 아직은 19금 영화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더 좋다. 그런 걸 보면, 아직 나는 십대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된다. 다시는 오지 않을 고등학생 시절을 자꾸만 그리워하게 된다. 계속 학생이고 싶다. 성인이 되는 대신에, 그냥 조금만 더 책임감 있는 청소년이 되면 안될까요.

될 리가 없지.

시간의 흐름은 필연적이다. 시간은 인간이 완벽한 선택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렇기에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후회를 한다. 후회 역시 필연적이다. 그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다면. 그 애한테 마음을 좀 더 빨리 고백했다면.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졌다면... 아쉬움으로 점칠된 감정들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인 내 십대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둬서 뭐하겠나. 정면을 보자. 어찌됐건 나는 꿈이 있고, 야망이 있다. 그것도 매우 큰. 누가 그랬더라, 큰 꿈이 있으면 한 걸음은 앞서나가는 거라고. 그리고 나는 이제 두번째 발자국을 떼었다. 나의 이십대에는 목표를 향한 발자국이 더 많이 찍히길 바라면서 후회를, 그리움을, 미련을 추억으로 남겨본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본다.

잘 있어라, 나의 십대.

생각나면 종종 찾아올게.

180105 중력

난 자유로워지고 싶으니

날 그만 좀 놓아줘


나는 드디어 너라는 중력에서 벗어나는구나


그렇게 나는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으나

사물들 역시 무질서하게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그 사물들을 이전처럼 다룰 수 없었다


연필도 잡을 수 없었고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고

TV를 틀 수도 없었다


중력이 사라진 내 세상은

오히려 더 혼란할 뿐이었다는 것을


나를 구속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중력이

내 일상을 지탱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깨달은 후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저 나는

무질서한 사물들과

해체된 일상 곳을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170414 올해의 벚꽃은 함께

S#1

학교 돌계단 앞 앉아서 쑥스러운 듯 남주를 바라보는 여주

(여주 옆에 코코팜 캔)

(계단에 앉아 남주를 바라보는 여주의 모습)

그 앞에 남주가 서서 여주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올리려 한다. 여주 손 움찔, 남주 의식한 듯 똑같이 멈칫, 하지만 이내 후드의 손목부분을 잡아 올린다.

(여주가 바라본 남주의 모습 촬영후 컷)

(여주의 다리부터 남주의 손 부분만 나오도록)

여주 볼이 빨개진 상태로 남주를 올려다본다. 남주는 긴장한 듯 여자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걷자.”

(돌계단에 앉아있는 여주와 서있는 남주외 주변 풍경이 보이도록)

(잠시 검은화면 이후 맑은 하늘이 보이며 올해의 벚꽃도 함께 로고 등장)

S#2

남주 고민이 있는 듯 학교 돌계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여주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옆으로 돌려본다.

(남주 모습 정면촬영 여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장면까지)

여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순수하고 발랄하게

남주: 아무것도 아니야. / 별거 아닌 듯이 말하지만 내심 긴장한 기색을 나타낸다.

(돌계단에 앉아있는 남주)

여주: 아무것도 아닌데 폼을 그렇게 잡아?/ 장난하듯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남주: 내... 내가 무슨 폼을 잡았다고 그래?/ 크게 놀라며 당황한 듯이 어리숙한 말투

여주: 풉. 그냥 장난인데 뭘 놀라고 그러냐./ 남주가 귀엽다는 듯이

남주: 노...놀라긴 뭘....../태연한척하지만 창피한 기색을 못 숨기고 더듬는 말투로/

그런데 있잖아......./매우 긴장된 듯

남주가 여주에게 말을 하려는 장면에서 예비 종소리가 울린다.

(남주와 여주가 모두 보이도록 멀리서)

여주: 종쳤다. 다음에 말해줘~/밝게(발랄하게)

(말을 끝 맞추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여주)

남주 입을 열며 손짓을 하려다 멈칫한 뒤 손을 다시 내린다. 그리고선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여주를 향해 손짓하려는 남주의 모습/한숨 후 남주가 바라본 하늘)

S#3

시끌벅적한 교실 안 홀로 고민이 있는 듯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로 한숨을 쉰다.

(남주 뒤에 떠드는 몇몇학생이 약간 보이도록)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남주가 한숨을 쉬는 것을 바라본 A가 친구와의 대화를 잠시 끊고 남주에게 다가온다.

A: 야 뭔데 한숨을 아주 그냥 땅이 꺼져라 푸욱~ 푸욱~ 쉬냐? 무슨 일 있어?

(A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남주에게 다가오는 장면)

남주: 무슨 일이 있긴 뭘.../별일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남주가 친구의 말에 고개를 들고 턱을 괸 상태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장면)

A: 흐으으으음...... 너 설마......./ 뭔가 알아차린 듯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남주를 바라보는 A)

남주: 뭐...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안절부절 못하며

(당황하는 남주의 모습)

A:이번에 포경하냐?/ 진지하게

남주: 아이 씨 진짜! 그런거 아니니까 저리 좀 가라!/ 짜증난 표정으로 화를 내며

(필통을 A에게 던지는 남주의 모습)

A: 뭘 그렇게 화내냐 그러니까 진작에 했어야지!/ 쑥스러워 할 필요 없다는 듯이

(던지는 필통을 피하는 A)

남주: 아오 저리가!/ 끝까지 화내며

(손짓으로 A를 위협하는 남주의 모습, 끝까지 A의 놀리는 목소리가 들리게)

한숨을 쉬며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턱을 괸 채로 창문을 바라본다.

남주: 이제 봄이네.../ 감상에 젖은 듯

(창문 밖을 바라보는 남주의 모습 촬영 후 남주가 바라본 창 밖 풍경을 보여준 후 그 중 벚꽃을 클로즈업)

A: 그래 포경은 여름보다 지금 하는 게 훨씬 좋아/ 불쑥 남주 얼굴 옆에 나타나며

(창 밖을 바라보는 남주에 A가 갑자기 끼어드는 모습)

남주: 이 새끼가 진짜 죽을라고!/ 흠칫 놀란모습 이후 불같이 화내며

(방금 전 카메라 앵글 유지)

A: 잡아봐 잡아봐~/ 약올리는 듯이

(교탁쪽으로 카메라 앵글을 잡은뒤 교탁쪽으로 도망간 뒤 남주를 놀리는A의 모습)

S#4

수업시간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는 풍경 남주 역시 A와 남주의 친구들과 복도로 나온다.

(남주 반 앞 풍경)

A: 와우와우 극혐이야 그냥/용주말투로 <- 이야기 예시

남주: 얜 또 갑자기 왜이래?/벌레 보듯이

(남주와 친구들이 대화. 그때 뒤에서 여주와 여주의 친구들 목소리가 들린다.)

뒤쪽에서 여주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본다.

여주와 친구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남주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여주와 여주의 친구들이 대화) <- 친구 1명만 있어도 ㄱㅊ

A: 야... 야!

(멍하니 여주를 바라보는 남주)

A:너 어디에 그렇게 정신이 팔려있냐?/ 남주의 행동을 의아한 듯

남주: 어...? 어? 아니야 아무것도./ 당황한 듯이

B: 흐음... 너 뭔가 수상해....../ 수상하다는 듯이

남주: 뭐... 뭐가?/ 애써 아무것도 아닌척하며

B: 너... 여주 좋아하지?/ 알았다는 듯이

(A와 B 같이 촬영 옆에 있었던 A 놀란 표정)

남주: 무... 무슨소리야! 내가 걔를 왜 좋아하냐!/ 강한 부정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나타나게

(손짓하며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남주)

A: 뭐야 이 반응? 설마 진짜 여주 좋아하냐?/ 놀라운 듯이 추궁하며

남주: 아... 아니라고.../ 매우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말투로

A: 야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좋아한건데?/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B: 연애하면 나 아니겠냐? 이 형님이 제대로 상담해줄게./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A와 B 같이 나오게)

남주: 됐으니까 내가 알아서 하게 냅둬.../ 이미 감추는걸 포기한 듯이

B: 어허 내가 알기론 여주랑 중학교 때부터 만났던 걸로 아는데 네가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해!/ 완장질 하듯

남주: 내가 알아서 한다니... 그런데 A 어디갔어?/ 갑자기 사라진 A 때문에 어리둥절한 듯이

B: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는데? / 어리둥절한 듯이

A: 야~ / 밝은 모습으로

(A가 여주와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가며 말하려는 장면)

남주,B: 이런 미친 새끼가! / 다급하게 A를 보며

(남주와 B가 A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A: 나암 읍 읍! / 발버둥 치며

(남주와 B에 의해 입이 막히고 못 움직이는 모습)

여주와 일당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남주 일당을 쳐다본다.

(남주와 일당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다 가던길을 가는 모습)

여주가 지나갈 때까지 끝까지 주시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A를 놔준다.

(여주 일당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남주와 B 그리고 잡힌 A)

A: 콜록 켁 켁 아오 죽는 줄 알았네!/ 과장된 말투로

(막 남주와 B에게서 풀려난 A)

남주: 그냥 죽지 넌 도대체 왜 그러냐.../ 진이 다 빠진 말투로 A를 바라보며

(A를 바라보는 남주의 모습)

B: 넌 진짜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앙? / 화난 듯이

A: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빨리 고백해버려 답답하게 하지말고./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는 듯이

(A와 B 모습이 다 보이도록 B가 A를 내려다보게)

남주: 넌 진짜 한마디라도 내뱉으면 죽여 버린다. B 너도 마찬가지고 알겠냐?/ 협박하듯이

(A와 B를 바라보는 남주의 모습)

B: 난 걱정 말고 이놈 걱정이나 해라/ 진이 조금 빠진 듯

A: 내가 뭘.../ 시무룩하게

(A와 B 둘 다 나오도록 촬영)

S#5

시간이 조금 흘러 학교가 끝나는 시간 남주가 가방을 멘 상태로 복도로 나와 집에 가려고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길을 막아선다.

남주: 뭐야?/ 약간 놀란 듯이

(가방을 멘 남주의 앞모습)

B: 12시 방향 여주 집으로 갈 준비 합니다. 안 따라가고 뭐하니?

(길을 막아선 A와 B)

남주: 뭐??? 그게 무슨.../ 당황한 듯이

A: 여주님이 매일 후문을 통해 혼자 하교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으쓱하며

남주: 갑자기 그게 무슨.../ 어리둥정한 표정으로

B: 시끄럽고 당장 여주한테 가! 당분간 우리랑 못간다 너는!/ 재촉하며

남주: 야! 야 밀지마!

(억지로 A와 B한테 떠밀리는 남주)

A와 B로 인해 결국 후문으로 향한 남주, 여주 혼자 하교하는 모습을 남주가 발견한다. 남주 마음을 가다듬고 여주에게 향한다.

(남주의 모습 정면, 이후 후문을 통해 하교 하는 여주의 모습, 다시 남주의 모습)

남주: 흐흠 흠흠/ 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교하는 여주, 그 옆으로 헛 기침을 하며 남주가 등장)

여주: 어? 남주 네가 왜 후문 쪽으로 나와?/ 약간 놀란 듯이

남주: 응? 아 그게... 새로 학원을 다녀서 그래! 맞아 학원 때문이야!/ 갑작스럽게

여주: 그래? 잘 됐네! 매일 혼자 집으로 갔는데!/ 밝게 웃으며

남주: 그러게. 잘 됐다..../ 소심한 목소리로 매우 작게

여주: 뭐라고?

남주: 아... 아니야!

(여주와 남주 둘이 같이 보이게)

여주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큰 무리없이 남주와 여주가 이야기를 나눈다.

(여주 웃는모습 촬영 후, 남주 그걸 보고 설레는 표정, 이후 멀리서 둘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 소리 안 나옴

한창 이야기를 다 나눈뒤 여주가 주위를 보며 말한다.

여주: 이제 봄이네./ 감상에 젖은 듯

남주: 그러게. / 주위를 둘러보며

(남주 촬영 후 남주가 바라본 주위 풍경)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멀리서 측면으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

여주가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지자 남자가 혼자서 날뛰며 좋아한다.

자신의 집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S#6

다음날 학교 남주의 자리에 A와 B가 와있다.

A: 어떻게 됐어?

B: 잘 됐어?

남주: 잘 모르겠어....... 그런데 혼자 집으로 갔는데 이제 나랑 같이 가니까 잘 됐다고 말 했어/ 고개 갸우뚱 이후 행복한 표정으로

A: 그럼 끝난거지 임마!/ 확신에 찬 듯이

B: 아니 아직 몰라... 여자가 너 놈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 임마./ 신중하다는 듯이

A: ㅋㅋㅋㅋ그런 놈이 아직 연애 한 번도 못해봤냐? / 어이없다는 듯이

B: 뭐? 너도 모쏠인 주제에!/ 자존심이 상한 듯

(B 촬영 이후 A와 B 말 다툼 하는 장면) <- 소리 안 들림

앞에서 A와 B가 싸우지만 남주는 눈에 안 들어오는 듯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행복한 표정의 남주)

다시 하교할 시간이 다가오자 남주가 복도로 나온다. A와 B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남주에게 힘을 불어 넣어준다.

S#7

후문에 먼저 여주가 나와 있다. 남주를 보자 반갑게 인사하는 여주

남주 역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남주와 여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 소리 없음

똑같은 장소에서 또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 소리 없음

다시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눔 <- 소리 없음

(교실 남주와 A, B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전보다 짧게 빨리 촬영)

남주와 여주 다시 후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걷는다. 이후 똑같은 지점에서 헤어짐 <- 소리 없음

(전보다 짧고 더 빠르게)

다시 교실에서 남주와 A, B 셋이 이야기를 나눈다.

(셋이 보이게)

A: 그래서?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이

남주: 그냥 평소랑 똑같지 뭐....../ 멋쩍은 듯

B: 이제 슬슬 고백해야하지 않아?

남주: 고백은 아직.../ 용기가 없다는 듯이

A: 어우 답답한 놈 / 답답하다는 듯이

B: 그래 임마 이제 고백 각 좀 잡자./ 단호하게

남주: 난 잘 모르겠다./ 확신이서지 않는 듯

B: 오늘 비도 내리겠다. 우산 같이 쓰고 걸으면 그 얼마나 풋풋하고 분위기 있냐! 완전 찬스라고 이거!/ 열정적으로

남주: 에이 우산 가져 왔겠지.

A: 아니 이젠 없어.

B: 그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B와 남주 같이 A를 바라본다)

A: 내가 몰래 우산 빼왔거든 이제 걔 우산 없어!/ 씨익 웃으며

(누가 봐도 여자 우산을 꺼내드는 A)

남주: 완전 이거 또라이 아니야! / 놀라며

B: A 너 쫌 하는데...? / 인정한다는 말투로

A: 뭐 이정도야~/ 으쓱하며

(A와 B 같이 나오게 촬영)

B: A가 기회를 만들어 줬다! 오늘은 점수 제대로 따는 거다!

남주: 난 모르겠다..../ 자신이 없는 듯

남주 우산을 쓴 상태로 우산이 없어 당황할 여주를 생각하며 후문쪽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여주는 보이지 않아 남주는 당황한다.

그러다 여주의 친구가 반대쪽으로 가는 것을 발견한 남주.

(여주를 찾는 남주)

남주: 혹시 여주 봤어?

C: 아 여주? 먼저 가던데?

남주: 우산도 없이 어떻게?

C: 너가 여주 우산 없는걸 어떻게 알아?

남주: 아 그 뭐냐... 걔가 워낙 덤벙대니까... 어쨌든 어떻게 갔어?

C: 어떤 남자랑 같이 우산 쓰고 가던데

남주: 뭐...?

남주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C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주를 쳐다본다.

남주: 알았어 고마워... 내일보자!

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남주는 여주와 항상 헤어지던 곳까지 뛰어간다.

(남주 촬영 이후 뛰어가는 남주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C)

헤이지던 그 장소에 다다르자 여주가 다른 남자와 있는 장면을 남주가 목격한다.

(힘들어하는 남주 촬영후 남주가 보는 시선으로 여주와, 같이있는 남자(친오빠))

친오빠: 군대 휴가까지 나와서 네 뒤치다꺼리나 해야겠냐.

여주: 분명 가져왔는데 점심시간에 보니까 사라졌다니까!

남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여주를 바라본다.

여주와 친오빠가 이야기를 나눈다.

(점점 멀어져 멀리서 보는 남주까지 나오게 만든 후 남주의 망연자실한 표정, 이후 봄비가 내리는 하늘 및 풍경)

S#8

다음날 남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교실에 앉아있다. A와 B역시 남주 곁에 있다.

A: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라니?!/ 황당하다는 듯이

남주: 나도 몰라... 하지만 둘이 엄청 친해 보였고.../ 망연자실한 듯이

B: 이거 생각도 못했던 변수인데.../ 한숨 쉬며

A: 그럼 여주가 어장 한거야?

남주: 야 말 조심해! 걔 그럴 애 아니야./ 발끈하며

A: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건데?

남주: 그게... 나도 잘 모르겠다.

A: 어장.. 어장.../뭔가 생각하다가

그럼 너도 어장을 해버려! 걔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애들한테 괜히 말도 좀 걸고! 원래 이렇게 밀당을 조금씩 해야.../A, 남주 눈치를 보다 남주가 축 처져있자 말을 그만둔다

B: 니가 그렇게 되지도 않는 작전같은거 써대니까 모쏠인거야.

A: 지는...

(남주 깊은 한숨)

A: 만약에, 정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면, 그냥 더 힘들기 전에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나아.

남주: 3년..

A: 뭐? 썅녀ㄴ..?

남주: 3년을 그렇게 바라만 봤는데, 그 감정이 어떻게 한 순간에 지워질 수 있겠어...

(잠시 흐르는 정적)

A: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새끼봐라ㅋㅋㅋㅋ/정적을 깨며

B: 야 그런 오글거리는 멘트칠 때는 깜빡이좀 키고 들어와라.../ 오글거린다는 듯이 찡그리며

A: 결판을 내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

남주: 물어봐? 뭐라고?

A: 너 나 어장하냐?

B: 아니 이 미친놈아... /A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냥 뭐랄까 음...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렇게?

남주: 그걸 어떻게 말해..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며 남주, A, B가 말할 때마다 단독샷 촬영)

A와 B, 서로를 바라본다.

S#9

남주, 돌계단 근처에 서있다. 코코팜 하나를 들고 시계를 쳐다보는 남주.

남주: 얘네들은 만나기로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오는거야..

(코코팜을 따려는 찰나 뒤에서 다가오는 여주)

여주: 남주!

남주, 깜짝 놀란다.

남주: 어, 어... 안녕?/뒤돌아보며

여주: 너 요즘 이상하다? 말도 잘 안 걸고, 잘 보이지도 않고..

남주: 어, 그러니까, 요즘 좀 바빠서.../얼버무리는 듯

(여주, 몇 계단 내려와 남주 앞에 앉는다)

여주: 그래서, 뭐야?

남주: ...뭐가?

여주: 나한테 할 말 있다며.

남주, 의아하다는 표정.

여주: B가 그러던데? 너가 할 말 있으니까 여기로 와달라고 했다고.

남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애써 숨긴다.

남주: 아 그랬나? 그랬지... 하하/어색한 웃음

남주, 조용히 계단 옆 쪽? 벚꽃나무를 바라본다.

남주: 너, 그 좋아하는.../여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여주: 어? 뭐라고?

(남주 잠시 말이 끊기고 여주를 말없이 바라본다)

남주: 아, 그... 음료수 마실래?

여주: 와, 고마워!

(여주, 남주에게 음료수를 받는다. 따달라는 듯 다시 남주에게 건네고, 남주가 말없이 한손으로 따서 주자 한 모금 마시고 옆에 둔다.)

여주: 올해 벚꽃도 혼자서 보겠네..

(남주, 뭔가 의아하단 표정으로 되묻는다.)

남주: 어?

여주: 아직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올해 벚꽃도 이대로 그냥 질 것 같아서.. /별 생각 없다는 듯

잠시 흐르는 정적.

남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여주쪽을 바라본다.

고개들어 남주를 바라보는 여주.

여주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올리려 한다. 여주 손 움찔, 남주의식한 듯 똑같이 멈칫, 하지만 이내 후드의 손목부분을 잡아 올린다.

(여주가 바라본 남주의 모습 촬영후 컷)

(여주의 다리부터 남주의 손 부분만 나오도록)

남주: 걷자.

160828 저작권 글짓기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기초조사서라는 걸 나눠준다. 자신의 장래희망이나 집 주소, 취미, 적성 등을 적는 A4 한 장짜리 조사서. 집 주소나 장래희망은 여러 번 바뀌어왔지만, 취미에 적어왔던 것은 늘 똑같았다. 바로 음악 감상이다.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게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아빠의 낡은 MP3를 통해서 접한 음악들은 다음 해 생일 선물로 MP3를 선물 받으면서 내 취미가 되었다. 하지만, 그 때도 음악을 돈을 내고 구매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내 돈을 주고 샀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니오’다.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음악의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그랬던 내가 음악을 돈을 주고 사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그 일이 있은 후부터였다.

17살의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악들’에 빠져있었다. 흔히 인디 음악이라고 하는 장르 말이다. 지금껏 들어왔던 가요들과는 뭔가 색다른 매력이 있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 종류의 음악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인디 음악은 매력적인 장르였다. 내가 그 음악을, 그 가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직접 설명해주고 곡을 추천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매일 밤마다 유튜브와 같은 사이트들에서‘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악들’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몰랐던 음악들을 알아가는 과정은 꽤나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한 인디 밴드를 알게 되었다.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기타를 치는 남자 보컬과 젬베를 치는 여자 보컬 한 명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밴드였다. 하지만 그 둘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굉장히 독특하고 귀를 끄는 매력이 있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밴드의 음악 활동을 찾아보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이 밴드의 ‘팬’이 된 것이다. 몇 장의 싱글 앨범을 내고,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밴드의 코멘트. 밴드의 코멘트는 1년 정도 업로드가 없긴 했지만 팬으로서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곧 있을 예정이었던 음악 시간의 ‘좋아하는 가수 소개하기’ 발표 계획서에 나는 당당히 그 밴드의 이름을 써서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밴드의 코멘트가 업데이트되었다. 금전적인 문제로 밴드의 음악 활동을 당분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그냥 관심 있던 괜찮은 밴드 하나의 음악을 듣게 될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랬던 내 생각을 바꾼 사건은 음악 시간 때 벌어졌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밴드를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소개했다. 내가 이 밴드의 팬이고, 지금은 아쉽게도 금전적인 문제로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는 설명과 함께.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돈을 주고 샀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머릿속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아마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 없이 돈을 내지 않고 들었던 음악들에 대한 죄책감. 그 때는 분명 아무런 생각 없이 들어왔던 음악들이다. 그 밴드가 음악을 포기한 이유가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 밴드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 밴드의 입장에서 나는 팬이라기보다는 도둑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힘겹게 만든 음악을 훔친 도둑.

우리는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가져가면 우리는 그 사람을 도둑이라 부른다. 하지만 음악은? 영화는? 만화는? 영화나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고, 만화의 스캔본을 보는 사람들을 도둑으로 부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음악이나 만화를 검색하면 불법 다운로드 링크를 찾을 수 있다. TV를 키면 굿다운로드 캠페인이라는 광고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불법 다운로드는 나쁜 거라고,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음악이나 영화를 다운받자고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 역시도 그랬다. 잘못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음악 선생님의 질문을 받기 전까진.

그 일 이후로 내 취미가 하나 더 늘었다. 음악 앨범 수집. 평소였으면 내가 입을 옷이나 내가 갖고 싶었던 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 쉽게 말하자면 나를 위해 사용했을 돈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도 그 돈을 나를 위해 사용한다. 내가 듣고 싶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160720 정보윤리공모전

이른 주말 아침.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켰다. 창문 모양의 로고가 떠오르고 로딩중임을 알리는 흰 동그라미가 돌아갈 동안 주방 선반으로 가 먹을 만한 것을 찾았다. 텅 비어있는 선반. 아, 분명 어제 하나 남았었던 컵라면을 먹었던 것도 같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지폐 몇 장을 바지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는 집 밖으로 나섰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페이스북이나 좀 볼 생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휴대폰을 놓고 왔구나. 평소 같으면 급히 집으로 뛰어가서 휴대폰을 가져왔을 일이지만, 동네 슈퍼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다. 왕복 30분. 뭐, 그 정도 쯤이야. 휴대폰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그냥 내 앞에 멈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하나, 둘,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 사람들은 전부 손 안의 작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18층에서 1층까지- 고작 1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가만히 서있기란 생각보다 어색했고, 나는 또 있지도 않은 휴대폰을 찾으며 비어있는 주머니를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는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파랗던 나뭇잎들이 하나 둘 울긋불긋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구나. 고개를 숙이고 걷느라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양 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SNS를 들여다보며 걸었을 텐데. 그 때의 내 모습이 딱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걸어가며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모습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호등 앞에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또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작은 화면을 바라보며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내겐 너무 당연해 보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신호등 초록불을 기다리며 부쩍 다가온 가을을 느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눴으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목적지를 기다리며 나름의 생각에 빠지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저마다 작은 화면을 보기 바쁘다. 기껏해야 몇 분. 그 짧은 시간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이웃과의 정다운 인사를 잃었다. 혼자만의 사색을 잃었고, 소리 없이 다가온 계절을 느낄 시간을 잃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렇게 찾던 스마트폰이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무심코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데 시선을 돌리니 노트 한 권이 보였다. 스마트폰을 사기 전까지만 해도 노트 한 구석에 그림을 그리는 게 취미였는데, 이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연필을 잡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이라도 내 손을, 머리를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다. 노트와 연필과 함께 침대에 기대어 앉고는 아까 봤던 단풍나무를 서투르게나마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뺏겼던 나의 일상을 비로소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