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이드 드레드

맵게 맛있다

불합리함 즐기기

메트로이드 드레드입니다.

20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겨우 엔딩을 봤고,

닌텐도 스위치 독점작입니다.

엔딩보고 쓰는 심층 게임리뷰,

오랜만에 지금 시작합니다.

INTRO : 메트로이드를 아십니까?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 메트로이드...가 아니라 사무스 아란

메트로이드 시리즈를 아십니까? 어찌 동양권에서는 인지도가 미묘한 것 같지만, 나름 게임의 한 장르를 만든 시리즈입니다. 이름하여 메트로배니아. 2D 플랫포머를 기반으로 여러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맵을 들쑤시고 다니는 그런 장르입니다. 요즘 게이머들한테는 <할로우 나이트>나 <오리와 눈 먼 숲>같은 게임이라고 하면 설명이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크 소울>도 3D긴 하지만 플레이 방식 부분에서는 이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영향을 좀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장르에 대한 설명이 묘하게 허전하다고 느끼신다면 기분 탓이 아닙니다. 저는 메트로배니아를 잘 모릅니다. 해본 메트로배니아라고는 할인한다길래 사놓고 한 시간 정도 해본 <할로우 나이트>와 버추얼 콘솔로 초반 5분정도 플레이해본 <슈퍼 메트로이드> 정도. 게다가 저는 길치입니다. 길찾기 요소가 없는 게임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한 곳을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때가 많고, 현실에서도 10번 이상 가본 길이 아니라면 기억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찾기가 핵심인 메트로배니아의 원조격 게임인 메트로이드를 사버렸습니다. 살 생각은 없었는데 트레일러를 보니까 꽤 재밌어보였고, 영상을 만들며 스토리를 조사해봤는데 다음 내용이 꽤 궁금해지더군요. 게다가 이녀석 무려 18년만의 후속작입니다. 18년만에 나온 후속작이 판매량 부진으로 막을 내려버린다면 시리즈의 팬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샀고, 어찌어찌 엔딩을 봤습니다. 저에게는 메트로배니아 입문작이고, 장르의 매니악함을 고려할 때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이번 메트로이드가 메트로배니아 입문작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입문자의 입장에서 이번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어떨까요?

불친절함과 편의성 사이에서

직관적이고 범용성 높은 액션

게임을 시작하면 이전작들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컷씬이 나오고, 바로 게임이 시작됩니다. 튜토리얼이 따로 없습니다. 스틱을 기울여 이동하는 것은 당연하고, 많지도 않은 버튼들을 하나씩 눌러보면 대충 어떤 키를 누르면 빔이 나가고 어떤 키를 누르면 점프가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장 설정 창에만 들어가도 커맨드를 알 수 있긴 합니다만, 다른 게임들처럼 친절하게 어디로 가보세요, 적이 나타나면 무슨 키를 눌러서 공격해보세요 하면서 친절하게 게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냥 떨궈놨으니 알아서 빔을 쏴대고 뛰어다니면서 게임의 진행 방법을 파악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초반의 게임 진행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뚫려있는 곳으로 알아서 가다보면 게임이 진행됩니다. 스토리도 게임의 진행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스토리가 게임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게임이 스토리를 끌고 갑니다.

플랫포머 게임들에서 난이도를 올린다고 조작감을 이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랫포머 게임의 경우, 관성에 장난을 조금만 치면 욕나오는 난이도를 만들 수 있거든요. 반면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딱 생각한대로 움직입니다. 직관적입니다. 덕분에 굳이 조작감에 익숙해질 시간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액션은 대부분 이해하기 쉽고 범용성 높습니다.

사용법만 안다면 높은 편의성을 자랑한다

편의성도 좋습니다. 자동 저장이나 원하는 때에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은 없지만 세이브포인트가 도처에 널려 있고, A.D.A.M과 나눴던 대화들도 언제든 다시 읽어볼 수 있어 목표를 까먹을 일도 없습니다. 특히 맵의 편의성이 정말 좋은 편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맵이 어딘지, 숨겨진 아이템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특정 지형이 어디어디 있는지 그 위치까지 스캔해서 알려줍니다. 물론 편의성을 더 높일 여지는 남아있었지만, 여기서 더 편의성을 올렸다가는 장르 특성상 게임이 조금 지루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묘하게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기묘한 레벨 디자인

이렇게 커다란 맵이 몇 개가 더 있다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핵심은 길찾기입니다. 방대한 크기의 맵이 수많은 통로와 방들로 꼬여 있는 만큼 길을 찾는 것 자체가 게임의 목표이고 플레이어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부분들 중 하나입니다. <슈퍼 메트로이드>를 비롯한 많은 메트로배니아 게임들이 이 길찾기를 정면에 내세우면서 원하는 순서대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비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의 최신작인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놀랍도록 선형적으로 진행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발자의 의도대로 진행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는 선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본인이 선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처음 보는 여러 장치들로 막혀있는 길이나 닿을 수 없어보이는 곳에 위치하는 아이템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에는 보이지만 당장은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어를 약올립니다.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이벤트를 발생시키며 자연스럽게 길들을 막아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사무스는 여러 능력들을 차례차례 얻으며 수수께끼의 장치들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되고, 닿을 수 없던 장소에 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플레이어가 그냥 차례차례 아이템을 획득하면서 죽 일직선으로 진행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멀쩡한 게이트를 잠구고 길을 얼려놓으면서 앞길을 막아놓습니다. 앞길이 막힌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능력을 얻으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일단 되돌아가게 됩니다. 앞으로 가봤자 길이 막혀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돌아가다 보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길들이 보입니다. 방금 얻은 새로운 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길들 말입니다. 어드벤처 게임들, 특히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레벨 디자인입니다. 우연찮게 이런 길을 발견할 당시에는 조금 짜증날지 몰라도 플레이하며 능력을 얻고 갈 수 없었던 곳으로 갈 수 있게 되면 그 쾌감이 배가 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생각합니다. 내가 스스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맵을 탐색해가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레벨 디자인의 일부로, 플레이어는 개발자의 의도대로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렇게 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플레이 감각을 제공합니다.

최근에 오픈월드 붐이 일면서 왠지 선형적인 진행은 구시대적인 게임처럼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형적인 진행과 단조로운 진행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진행은 분명 선형적이지만, 거기에 적당한 변주를 가하고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면서 단조로운 진행에서 벗어납니다.

그렇다고 아예 선형적인 것도 아닙니다. 합법적인 치트가 존재합니다. 2D 마리오의 대포나 비밀토관 같은 느낌입니다. 어느 정도 숙련되고 눈썰미가 좋은 플레이어는 특정 구간을 스킵하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숙련된 컨트롤보다는 적당한 센스만 있다면 길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몇몇 아이템들은 컨트롤까지 요구하기에 하드한 난이도를 원하는 게이머들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표시된 부분이 숨겨진 블록인데 능력을 얻기 전까지는 저렇게 반짝거리지 않는다

다만 정말 불합리하고 양심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숨겨진 블록이 그렇습니다. 물론 숨겨진 블록의 존재는 플랫포머 게임의 필수요소에 가깝기에 존재 자체가 화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숨겨진 블록이 정말 감쪽같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게 그냥 아이템을 숨기는 정도라면 그래도 납득 가능한데,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통로에 이 숨겨진 블록을 배치해두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한참 맵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알고보니 길이 숨겨진 블록에 막혀있었다. 이걸 한 번 당하고 나면 당분간 사방에 빔을 쏘면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썩 효율적인 플레이 방법은 아닙니다. 듣기로는 이게 시리즈의 전통이라는데, 기왕 레벨 디자인도 선형적으로 조정한 거 이것도 아이템 숨겨놓는 정도로만 써먹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탐색에 긴장감을 더하다

하지만 탐색의 재미만으로는 아직 심심합니다. 탐색하고 싶은 장소에 별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다면 탐색의 재미 이상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탐색을 하러 맵을 들쑤시고 다니려는 플레이어의 앞에 과감하게 장애물을 걸어놓습니다. 탐색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지 않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E.M.M.I 존입니다.

흰색 로봇이 E.M.M.I(발음에 주의)

E.M.M.I, 이하 에미라는 이 로봇한테 잡히면 높은 확률로 게임 오버를 맞습니다. 돌아다니는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몇몇은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빔도 쏘고 스턴도 먹입니다. A.I 가 멍청한 것도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플레이어를 미친듯이 쫒아옵니다. 플레이어는 이 에미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만약 들켰다면 정신없이 도망치면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에미는 맵 전체에 서식하지 않습니다. E.M.M.I 존, 이하 에미존이라고 불리는 일부 구간을 배회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일부 구간이 에리어 내의 여러 장소들의 중심에 있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장소로 향하기 위해 이 에미존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단순히 에미존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죠.

게다가 에미를 만난다고 무조건 게임 오버는 아닙니다. 자비로운 에미는 두 번의 기회를 줍니다. 타이밍을 잘 맞추면 에미의 공격을 패링하고 잠시 에미를 행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라는 것이 상당히 양심이 없습니다. 그냥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무난하게 돌파할 수 있다 수준이 아니라, 진짜 후반으로 가도 운이 좋아야만 가끔 한두번 패링할 수 있는 난이도입니다. 제가 호들갑을 떠는 것 같으신가요? 근데 정말입니다. 겁.나.어.렵.습.니.다.

E.M.M.I 존의 존재로 탐색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이 무서운 에미의 존재가 자칫 평탄해질 수 있는 게임의 구성을 환기시킵니다. 완급조절의 모범적인 예라고 할까요. 만약 에미가 없었다면? 게임의 탐색은 압도적으로 쉬워지고 게임 전체에서 긴장감을 느낄 구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에미존이 따로 없고 맵 전체를 에미가 배회했다면? 에미를 피하느라 바빠서 맵을 탐색할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제작진들은 에미를 에미존이라는 공간에 가둬두고, 에미존을 맵의 중심부에 허브 역할로 배치함으로서 탐색에 필연적이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다행히 에미존에는 탐색할 것이 그리 많지 않아서, 플레이어는 에미와의 추격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잡히면 죽는다... 그런데 가끔 안 죽을 때도 있다

자비없는 난이도의 패링이 존재한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만약 패링이 너무 쉬웠다면 에미가 전혀 무섭지 않아져서 에미존을 통과할 때의 긴장감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예 패링이 불가능했다면 어땠을까요? 에미는 쉽지 않습니다. 보스전을 제외하면 제일 게임 오버 화면을 많이 보게 되는 곳이 바로 에미존입니다. 잡히는 대로 게임 오버 화면이 떴다면 너무 지쳐서 플레이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게임 오버 직전, 10번 시도하면 운에 따라 한두번 성공하는 기묘한 난이도의 패링 시스템을 적용해 게임을 강제종료하려는 플레이어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 확률을 뚫고 성공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자신감이 붙어서 몇 번 더 시도하게 됩니다. 만약 패링의 성공 확률이 50% 정도라도 됐다면 플레이는 좀 원활해졌을지 몰라도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보다 실패했을 때의 짜증이 더 컸을 겁니다.

죽으면서 배워라

지금까지 <메트로이드 드레드>가 게임을 진행시키는 방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맵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으며, 중간중간에 에미존을 등장시켜 플레이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레벨 디자인의 핵심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직 중요한게 하나 남았습니다. 바로 보스전입니다. 보스전은 E.M.M.I와 함께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난이도 상승의 주범인 동시에 저같은 미묘한 실력의 게이머들에게 적당히 커다란 벽으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그 빈도도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수준이라 주기적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스전을 빼기에는 뭔가 섭합니다. 보스전은 게임의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명 어렵고 게임오버 화면을 수십번까지 보게 만들지만, 묘한 매력으로 계속 도전하게 만들고 클리어했을 때 상당한 쾌감을 제공합니다.

이 보스전은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E.M.M.I와 센트럴 유닛, 조인족 병사들, 그리고 진짜 보스전입니다.

사실 별 거 없는 보스전도 있다

센트럴 유닛은 보스라고 하기에는 조금 밋밋한 느낌입니다. 딱히 패턴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그냥 적당히 피하면서 미사일 맞추면 해치울 수 있습니다. 에미와의 전투는 이벤트 배틀같은 느낌인데, 이벤트 배틀 치고는 조금 어렵습니다. 피지컬보다는 플레이어의 센스와 두뇌 회전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퍼즐 느낌의 보스전은 아니구요,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회피나 복잡한 컨트롤이 필요 없는 대신 복잡하게 꼬인 지형에서 에미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벌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계속 플레이어를 괴롭혔던 에미를 직접 부숴버릴 수 있다는 점은 보스전들 중 가장 즐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플레이 자체의 재미만 본다면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보스전은 아닙니다.

언뜻 봐도 쉽지 않다

진짜 보스전은 한 에어리어를 클리어할 때 나옵니다. 크레이드나 실험체 등 생긴 것부터 커다란 게 이 녀석들은 진짜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확 듭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보스전은 쉽지 않습니다. 그냥 적당히 피하면서 몇 방 때리면 죽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는 이 녀석들을 해치울 수 없습니다. 처음 돌입하는 보스전에서는 웬만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으라고 만들어 놨습니다. 아니 이걸 깨라고? 이걸 어떻게 깨라는 거야. 얘네들 미쳤나 진짜? 처음 보스전 돌입하면 진짜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보스전 패턴이 하나같이 까다롭고 위협적입니다. 보스의 피통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거의 다 잡은 상태에서 게임 오버를 봐도 페이즈 2부터 시작한다던가 하는 친절이 없습니다. 죽으면 얄짤없이 처음부터 시작입니다.

끈질기게 보게 될 조인족 병사(였던 것)

게임의 중반부에 돌입하면 조인족 병사들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중간 보스같은 느낌입니다. 기교와 센스보다는 기본적인 피지컬과 액션의 숙련도로 격파하는 타입의 보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조인족 병사들이 진짜 보스전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맵을 넓게 보면서 기본 액션을 사용해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동시에 공격을 꽂아넣어야 하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게임 중 여러 번 튀어나오는 조인족 병사들의 공격 패턴이 거의 비슷합니다. 별로 다행이지 않은 점은, 패턴은 비슷하지만 묘하게 강화되어서 나옵니다. 게임의 후반부로 가면 두 마리가 동시에 나옵니다. 이제 조인족 병사는 보스도 아니지 하면서 자만하고 있었는데 옆에 한 마리가 더 나오는 모습에 저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조인족 병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또 잔뜩 게임오버 화면을 봐야 했습니다.

무시무시하지만 조금 멍청한 보스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 죽어서 짜증이 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보스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저같은 게임에 재능 없는 사람도 말이죠. 그 이유가 뭘까요? 보스전의 패턴이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없습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게 반복적입니다. 빔을 정신없이 쏘는데 그 위치와 타이밍까지도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죽으면서 패턴을 알게 되고, 다시 몇 번 더 죽으면서 해당 패턴을 조금씩 회피해보면서 파훼법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죽으면서 방법을 찾다보면 어느샌가 보스를 가지고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약간의 관찰력과 센스, 반복숙달이 가능한 최소한의 피지컬이 있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고, 실제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이거 깰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클리어하게 되는 건 그런 생각이 들고 몇 번을 더 죽어야 가능하지만요.

다만 피통 비슷한 것도 없다보니 지금 때리고 있는 공격이 유효한 공격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실험체 Z-57과 약 50분 정도 사투를 벌인 후에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그제서야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한 추가 공격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2D치고 제법이군요

로딩 화면의 퀄리티가 꽤 높다

게임의 연출과 그래픽도 짤막하게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스위치 게임들에서 그래픽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게임의 개성이 보이고 플레이하면서 불편하지만 않다면, 그리고 프레임 드랍만 없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만 그걸 굳이 신경쓰는 사람들이 존재하긴 하니까요.

그래픽은 스위치 게임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실사에 가까우면서도 음침한 메트로이드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습니다. 2D 맵이면서도 맵의 배경에 깊이감을 줘서 맵을 보는 것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다만 에어리어 별로 확고한 개성이 없고 뭔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게임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전체적인 색감을 비슷비슷하게 어둑한 느낌으로 잡아놨는데, 덕분에 에어리어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거기서 거기인듯한 느낌입니다. 뭐 아쉽다 수준이지 그렇게 큰 단점은 아닙니다.

프레임 드랍도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구요, 로딩 컷씬과 특정 구간에서 가끔씩 프레임 드랍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빈도도 한두번 정도였고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보스전 돌입 전과 에어리어 이동을 제외하면 로딩도 거의 없어서 흐름이 끊기는 일 없이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보스전에서 컷씬과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는 그래픽보다는 호쾌한 연출에 호평을 하고 싶습니다. 게임 속의 컷씬은 2D 화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갓 오브 워> 수준의 원테이크는 아니지만, 주요 전투들에서 컷씬과 플레이가 롱테이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컷씬 도중에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간단한 조작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히 컷씬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컷씬 도중에도 미사일을 쏘는 등 공격 조작이 가능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이 계속 게임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 중간중간 삽입되는 화려한 연출의 컷씬으로 보스전에도 완급 조절이 생깁니다. 보스의 공격을 피하면서 깔짝깔짝 때리다보면 어느새 끝나는 피로한 보스전이 아니라, 중간중간 등장하는 컷씬에서 틈새를 포착한 사무스가 보스를 신나게 패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는 미사일 난사 말고는 딱히 집중할 필요가 없기에 잠시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도 있습니다.

카운터를 잘 쳐야 이긴다

이 컷씬을 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바로 멜레이 카운터라는 시스템입니다.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르면 공격을 튕겨내며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패링 시스템인데, 이 멜레이 카운터가 보스전에서는 컷씬 도입부에 등장하면서 보스의 처형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타이밍이 좀 빡세긴 하지만 판정이 그렇게 양심없는 편이 아니라 웬만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멜레이 카운터의 성공이 보스 격파에 필수적이다 보니 다소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멜레이 카운터의 존재로 플레이와 컷씬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동시에 평범한 QTE 이상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OUTRO : 맵게 맛있다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메트로이드 시리즈를 잘 모르셨던 분은 어두운 분위기의 트레일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닌텐도가 이런 게임을 만든다고? 그런데 직접 플레이해보면, 게임의 분위기는 흔히 생각하는 닌텐도 게임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지만 결국 닌텐도는 닌텐도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복잡한 기교 없이 플레이어에게 직관적이고 간결한 액션만을 던져주고 자연스러운 레벨 디자인을 통해 플레이어의 탐색을 요구합니다. 그 과정도 결코 단조롭게 하지 않습니다. E.M.M.I와 같은 장애물들로 긴장감을 부여하고, 지금의 능력으로는 갈 수 없는 곳에 보상을 위치시킨 뒤 플레이어가 성장한 뒤 해당 보상을 떠올리고 습득하게 해 성취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건 닌텐도가 제일 잘 하는 게임 디자인 방법입니다.

동시에 닌텐도답지 않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게임에는 분명 불친절하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리즈의 특성이라고 눈감아 주기에는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통로가 불합리하게 막혀있는 경우가 묘하게 잦아서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형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탐색을 한다면 못 찾을 정도는 아니라지만, 그런 방식의 탐색을 게임 내에서 먼저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무작정 빔을 쏘면서 돌아다니는 탐색 방식은 플레이어를 다소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플레이하다보면 구역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는 E.M.M.I에게 발각당해 게임오버 화면을 수십번은 넘게 보게 됩니다. 보스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히 맵습니다. 웬만큼 끈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스전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기도 전에 대체 이걸 어떻게 깨라는 거야 하면서 패드를 집어던질 수도 있습니다.

사무스는 플레이어와 함께 강해진다

하지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그런 불합리함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그걸 이겨야 게임을 진행시키고 엔딩을 볼 수 있다' 같이 꼬우면 때려치던가 식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게임의 도입부부터 일관성 있게 불합리함이라는 컨셉을 지켜나가면서 플레이어에게 그 불합리함을 이겨낼 수 있는 탐색의 필요성와 거기에서 오는 재미, 그리고 소소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또한, 게임 속 캐릭터가 능력을 얻으며 그 불합리함을 뛰어넘을 만큼 강해지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능력을 대부분 얻은 후반부로 가서는 게임 속 불합리했던 부분들이 사무스의 능력으로 전부 커버됩니다. E.M.M.I가 탐색 중간중간에 집어넣었던 긴장감은 에미를 부수면서 쾌감과 해방감으로 바뀝니다. 보스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패턴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게 되기 시작하면 소위 '뽕맛'을 느끼기 충분한 연출의 컷씬으로 보답합니다. 이렇게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자칫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매운맛에 플레이어를 서서히 적응시킵니다.

이처럼 게임의 디자인이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지만 도전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맞춰져 있지만,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게임은 아닙니다. 앞서 짤막하게 언급했듯 애초에 매운맛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선택지도 있습니다. 엔딩을 보고 나면 하드 모드가 개방되며, 추가 특전을 얻기 위한 스피드런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도 여러 히든 루트를 숨겨둬서 스피드런에 도전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합법적 치트도 준비해뒀습니다.

매운데, 맛있다

그렇다고 이 게임을 '맛있게 맵다', '매워서 맛있다'라고 하기엔... 매워서 맛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매운맛이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조금 덜 매웠어도 충분히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근데 꽤 맛있긴 합니다. 이게 맵다는 사실보다 중요합니다. 무작정 맵게 만든 후 클리어했을 때의 성취감만으로 플레이어를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분명 그런 종류의 재미도 제공하지만, 능동적인 탐색과 적당한 긴장감이 주는 잘 짜여진 재미가 그걸 뒷받침합니다. 바로 이 재미가 종종 등장하는 불합리함과 어려움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저는 맵다는 사실보다는 맛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맵게 맛있다는 거죠.